〈 647화 〉 647. 영웅의 성장(3)
* * *
카아앙!
어두운 개미굴 안에서 두 존재의 공격이 매섭게 충돌한다.
마력과 마기의 충돌로 가라앉아 있던 굴 안의 공기가 요동치고 내부 전체가 진동했다.
그것은 리오드의 검과 악마의 기다란 손톱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충격의 여파.
악마는 한쪽 손의 손톱으로 리오드의 검과 정면으로 부딪치며 힘겨루기를 하면서, 반대쪽 손의 손톱을 휘둘렀다.
빠르게 내질러오는 악마의 손톱은 그대로 리오드의 복부를 관통하려는 날카로움을 과시했다.
리오드는 악마의 공격을 눈치챘지만,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빼지 않았다.
오히려 악마와 힘겨루기를 하는 팔에 힘을 빼면서 손톱의 공격을 옆으로 흘려냈고 더욱 악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복부를 관통하려는 손톱의 공격에 제대로 힘이 실리기 전에, 리오드의 검이 품에 파고든 악마에게 먼저 휘둘러졌다.
“어이쿠.”
오히려 리오드의 돌진에 악마가 먼저 몸을 뒤로 빼면서 그의 검격을 피해냈다.
날카로운 칼날의 올려 베기가 악마의 가슴 부근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쳤다.
서로의 공격을 한 차례씩 주고받은 둘은 이내 서로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서로를 응시했다.
“큭큭. 역시 강하구나! 네놈!”
악마는 기쁜 듯이 웃으며 리오드의 실력에 감탄했다.
“인간치고는 대단해! 날 처리하겠다는 그 자신감은 건방지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세는 아니었군!”
처음에는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을 망설임 없이 내뱉는 것이 건방졌다.
하지만 직접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싸움을 이어나가다 보니, 리오드의 검은 지금까지 사냥해본 인간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안 지금 악마는 감탄하고 있었다.
“…….”
반면 리오드는 인상을 찡그리며 아무런 말도 없이 악마를 노려보았다.
‘역시 강하다.’
눈앞의 악마는 특별했다.
보통 악마들은 마계에서 소환된 정신체로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전 페르닌에 잠입하여 수작을 부렸던 리라라는 서큐버스가 남성들을 유혹하고 정기를 뽑아먹는 능력을 갖췄던 것처럼.
또는 지구에 있을 적 그저 가까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녹이고 불태워버렸던 아스타로스의 ‘소멸의 겁화’처럼.
특화된 능력을 갖추고 있는 반면, 정신체와 오염된 마력만으로 하계에 육체를 구성한 악마들은 그렇게 강인한 육체를 가진 편은 아니었다.
물론 평범한 인간들에 비하면 강하기야 하겠지만, 오랜 단련으로 강화된 육체를 가진 기사들이나 모험가들과 비교한다면 약한 편.
악마들이 강한 이유는 인간들은 재현할 수도, 저항하지도 못하는 강력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악마는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고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시에테님과 그 녀석이 했던 말은 사실이었나.’
마계에 존재하는 악마들은 수천수만이 넘는 종류가 넘도록 존재하며,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특성이 있다는 이야기.
리오드는 그 이야기를 은현과 시에테에서 들었던 걸 떠올렸다.
그중에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대신, 유독 강인한 오염된 마력을 타고나며 정신체와 마력만으로도 강력한 육체를 구성할 수 있는 악마들이 있다고.
그리고 시에테가 그런 특성을 가진 악마에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까지.
리오드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 악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본래 네 놈의 그 육체는 나의 주군이신 구시온님께 바칠 육체로 온전한 상태로 제압하고 싶었지만, 건방진 그 입을 함부로 놀린 대가를 치르도록 해주마.
자신이 충성하는 악마에게 육체를 바친다는 이야기.
그 말 속에서 리오드는 한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그 육체. 네 것이 아니군.”
“큭큭. 제법 눈썰미가 좋군.”
악마는 리오드의 추측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팔을 벌려 높게 들고는 자랑스럽게 정답이라는 듯 답했다.
“그렇다. 이 육체는 최근에 잡아먹은 모험가라는 인간의 강력한 육체를 내가 차지한 것이지.”
그 육체는 최근 실종되었던 금위계 모험가의 육체였다.
꾸준한 단련과 노력을 통해서 완성된 육체는 그대로 악마의 정신에 의해 잠식되었고 악마의 정신체와 그 자체가 품고 있던 오염된 마나에 의해 육체의 변이가 진행된 것이 지금의 결과다.
하체는 역관절의 특징이 도드라지는 짐승의 다리.
상체는 인간의 상체를 그대로 닮았으며, 머리 위에는 한 쌍의 물소 뿔이 돋아나 있었다.
‘…귀찮군.’
강인한 금위계의 모험가 육체에 악마의 정신체가 깃든 지금 악마의 방어력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강화하여 길고 날카롭게 성장시킨 악마의 손톱이 자신의 검격과 정면으로 충돌하고도 멀쩡한 것을 보며 리오드는 악마를 쉽게 정리하기는 글렀다고 판단했다.
‘육체의 방어력도 방어력이지만, 정말로 성가신 건 악마의 신체 능력이다.’
리오드와 대치하고 있는 악마는 다른 보통 악마들과는 뭔가가 달랐다.
특별한 능력을 선보이지도 않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잠식한 육체의 강화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듯 보였다.
악마의 움직임과 공격은 자신이나 다른 상위 모험가들에 버금갈 정도로 빠르고 매서웠으며 그저 마수들처럼 본능만으로 휘두르는 공격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급소를 정확히 이해하여 노리고 들어오는 이성이 존재했고, 수없이 많은 반복된 동작으로 완성된 기술의 정수가 담겨있다.
마치 오랜 수련을 통해 기술을 연마한 인간과도 같은 움직임.
리오드는 악마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투쟁을 즐기는 싸움꾼을 상대하는 기분을 느꼈다.
“원래는 네놈을 죽이고 그 육체를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취할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너에게 제안을 하도록 하지.”
“…뭐라고?”
악마는 웃으며 리오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마가 되어라.”
“……?”
리오드는 멈칫하며 순간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지금 무슨 제안을 들은 것인지 두 귀로 똑똑히 들었지만, 머릿속의 이성이 그것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 건가?”
“…인간이…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건가?”
“못할 것도 없지. 물론 모든 인간의 영혼이 악마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악마는 자신했다.
리오드라면 악마가 되어서 더욱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자신이 모시는 주군인 구시온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그 육체와 경험, 기술들은 인간으로서의 수명이 다한다면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릴 것들이다. 너무 아깝지 않나? 악마가 된다면 그것을 영구히 남길 수 있고 오히려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여지를 얻게 되는 셈이지!”
인간과 악마라는 점을 제쳐두고 강함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더 높은 경지를 향해 걸어갈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정말로 달콤한 유혹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악마는 리오드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악마의 예상은 너무도 빠르게 빗나갔다.
“거절한다.”
“…뭐?”
단칼에 거절하는 리오드의 대답에 이번엔 도리어 악마 쪽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리오드에게 되물었다.
아까 전 리오드가 악마가 되라는 제안을 들었을 때처럼, 이번엔 악마가 자신이 잘못들었나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절한다고 했다.”
“…어째서지?”
“그딴 제안을 받지 않아도, 나는, 인간은 충분히 강해질 수 있으니까.”
적어도 리오드는 인간의 몸으로 그 한계를 뛰어넘어선 강자를 둘이나 알고 있다.
그의 목표는 그중 한 사람인 자신의 친구이자 동료를 따라잡는 것.
그것을 위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리오드는 고민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고 악마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거절이 굉장히 아니꼬웠던 악마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감히…. 자비를 베푼 내 제안을 거절해?”
날카로운 손톱으로 무장한 악마의 양팔이 떨렸다.
제안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마치 지금의 상태로도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인간의 태도가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뀌었다. 네놈의 육체 따위는 필요 없어. 구시온님께는 더 강한 인간을 사냥하여 바치도록 하지!”
저 무덤덤한 기사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목숨을 구걸하는 것을 보고 싶어진 악마는 리오드를 향해 돌진했다.
짐승의 다리에서 만들어진 폭발적인 각력이 그대로 가속하여, 리오드의 앞에 도달한 악마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눈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
뒤늦게 그것을 확인한 리오드가 고개를 옆으로 틀어 손톱을 피해냈다.
거기에 이어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악마의 연격이 계속해서 퍼부어졌다.
리오드는 노도의 연격을 모두 대처하면서 반격의 틈을 엿보았지만, 무차별적으로 보이는 연격을 퍼부으면서도 악마는 쉽게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리오드는 인정해야만 했다.
‘강하다. 어쩌면 나보다도.’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악마들과는 그 성질 자체가 틀리다.
저 강인한 육체와 신체 능력을 뛰어넘는 것은 오랜 단련을 통해서 완성한 리오드로도 버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육체의 피지컬만으로 무력의 크기가 결정된다면, 순수한 신체 능력으로는 자신보다 떨어지는 은현이 그 수 많은 악마와의 사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중요한 건 네가 쌓아온 수련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기술이야.’
리오드의 머릿속에 은현의 조언이 떠올랐다.
‘그렇겠지.’
그것은 리오드도 동의하는 바다.
자신이 지금까지 단련해온 시간과 경험을 믿지 않는다면, 자신이 이뤄온 것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리오드는 페르니아스 왕국 안에서 가장 강한 기사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의 전력이 악마들에게도 모두 통용되지는 않았다.
은현과 함께 악마들을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 위의 단계를 노려야만 했다.
그래서 리오드는 열망했다.
육체의 피지컬로는 이미 최고 단계에 도달한 시점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고.
‘지금이 그 순간이구나.’
리오드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야 할 순간이 지금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보다 강한 눈앞의 악마는 현재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으며 뛰어넘어야 하는 벽이다.
흘끗 시선을 옮겨 커다란 굴 내부를 밝히고 있는 노란색 빛을 뿜어내는 보석을 응시했다.
그 보석은 먼저 자리를 떠버린 은현이 발동시켜주었던 보석 마법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 어두운 곳에서 리오드가 악마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마련해준 조건이었다.
하지만 저 보석 마법이 유지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정해져 있다.
‘충분하지.’
시야를 밝혀주는 보석 마법의 효력이 사라지기 전에 악마를 처리하기로 마음을 먹은 리오드가 자신감으로 찬 눈빛을 발하며 악마를 바라보았다.
“건방진…!”
악마는 이를 갈았다.
자신을 이길 수 있다는 저 인간의 오만한 눈빛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놈은 팔다리를 잘라놓고 나한테 목숨을 구걸하도록 만들어주마!”
“아니. 너는 그러지 못한다.”
리오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악마를 부정하며 검을 휘둘렀다.
겨우 육체의 피지컬만이 우위에 서 있지만, 기술의 차이는 그래도 리오드 쪽이 더 위다.
검술의 정점을 바라보고 있는 두 검사의 등을 쫓고 있는 지금의 리오드에게 악마는 그저 성장의 발판에 불과했다.
“겨우 너 따위에게 발목을 붙잡혀서는, 그 녀석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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