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44화 (627/730)

〈 644화 〉 644. 사육된 재앙(9)

* * *

“어…째서…!”

악마는 경악했다.

눈앞의 백은발 남자가 자신의 매혹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런 인간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경악스럽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매혹은 낮은 등급의 하급 악마들조차 종속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

그런 힘을 겨우 평범해 보이는 한낱 인간이 저항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은현은 악마의 손목을 꽉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실었다.

“크…윽!?”

얼마나 강하게 잡았는지 붙잡힌 손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몸을 움찔거릴 정도였다.

악마의 신체 능력은 정말로 별 볼 일 없었다.

‘에린이 만났던 서큐버스는 제법 강한 축에 속했다는데, 이 악마는 아니군.’

처음 구미호의 힘을 각성하고 에린이 조우했던 리라라는 서큐버스는 악마이면서 검술을 익힌 특별한 악마였다.

그 차이는 악마로서 가지고 있는 힘의 차이 때문이었다.

리라는 인간들을 세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효과를 크게 볼 수 없었던 하급 악마.

하지만 눈앞의 악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 이외에, 기교를 배울 필요가 없는 중급 악마의 축에 속했다.

그저 마력을 개방하고 능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인간들은 너무도 쉽게 세뇌에 걸리며 악마의 명령을 받아들인다.

존재할 때부터 강한 능력과 힘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신체를 이용한 기술을 배울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강한 세뇌 능력이 통하지 않는 순간, 악마는 터무니없이 무력해지는 모순이 현실로 작용했다.

한마디로 상성이 너무 안 좋다.

아무리 마력이라는 능력치가 100이라는 높은 숫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10이라는 체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마력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능력치나 마찬가지.

“이, 이거 놔!”

악마가 억지로 팔을 흔들어 붙잡고 있는 손목을 뿌리치려 했지만, 인간과 비슷한 별 볼 일 없는 신체 능력을 보유한 악마에게는 불가능했다.

은현은 차한성과 델리아를 먼저 올려보내고 혼자 만남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직감했다.

두 사람이 세뇌에 걸렸다면, 그 둘을 상처 없이 제압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이 빼앗겼으리라.

‘여기서 싹을 잘라야 해.’

서큐버스의 힘은 너무도 위험하다.

이미 아내 중 한 명인 릴리를 받아들이고 유용한 그녀의 능력을 활용하는 만큼, 은현은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악마를 놓치고 기사들과 조우하게 될 최악의 전개만큼은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확인을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은현은 반대쪽 손으로 악마의 목덜미를 잡아채며 들어 올렸다.

“크…윽!?”

악마는 너무도 가벼워서 간단히 들어 올려졌다.

목을 졸리면서 허공으로 떠오른 악마가 허둥거리며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쓸데없는 발버둥이다.

은현은 거칠게 압박하고 있는 악마에게 물었다.

“여기에 있는 건 도대체 뭐야.”

“내가…! 말해줄 줄 알…! 꺄아아악!?”

협박에 굴할 생각이 없었던 악마는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악마의 복부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박혀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것은 단검이 아니라, 그 칼날에 뒤섞여 있는 특별한 힘이다.

오염된 마나로 구성된 육체를 헤집고 내부에 흘러들어오는 신성의 기운은 악마들을 정화하는 상위 존재의 힘.

악마는 정신체인 자신의 영혼이 신성한 기운으로 정화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만! 그마아아안!”

발버둥을 치며 난동을 부리는 악마가 느끼고 있는 고통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 고통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불에 지져지면서 몸 안의 일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

그것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고통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데미지의 수준도 남다르다.

은현은 그렇게 고통을 호소하는 악마에게 다시 물었다.

“다시 물을게. 이 개미굴 안에 있는 저 거대한 존재는 도대체 뭐야.”

“마…. 마수야….”

“마수?”

은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기억 속에는 없는 처음 느끼는 기척의 마수다.

저 거대한 존재감도, 안에 품고 있는 오염된 마나의 크기도, 그리고 인간 여성들을 농락하고 수태를 시켜 자신의 새끼들을 잉태하는 특성은 가진 마수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자신이 모르는 마수들이 하나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설명해.”

“크윽…!”

은현은 악마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손에 힘을 실어 더욱 세게 압박했다.

신음을 흘리면서 무력하게 아무런 저항도 못 하는 악마는 지금 은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세뇌가 통하지 않고,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정화해 불태울 수 있는 이 남자는 지금껏 농락을 당해왔던 인간 남성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 한 번도 세뇌의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았던 악마는 지금 이 상황을 대처하지 못하고 이성은 공포로 물들었다.

악마로서 열등한 종족인 인간에게 압도당한다는 굴욕을 느낄 새도 없이, 생존을 위해서 악마가 은현의 물음에 답했다.

“저건…. 마계에 있었던 고대 마수야.”

“…….”

고대 마수.

과거에 엘프의 숲을 습격했었던 키클롭스나 고르곤, 히드라나 리오드와 아르티아 기사단이 몰살시킨 흡혈귀의 기원인 노스페라드와 같은 모든 마수의 기원이 되는 존재들.

마계에 존재하는 고대의 마수들은 은현이 미처 모두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그 종류가 다양하니 처음 접하는 마수에 대한 정보인 것도 당연하다.

“…말이 안돼.”

하지만 그런 강력한 마수를 이 하계에 소환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인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가능하다.

하지만 고대 마수와 같은 거대한 오염된 마나를 가진 존재를 하계에 소환하기 위해서는, 악마를 소환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막대한 마력과 제물이 필요하다.

과거 엘프의 숲을 습격하려 했던 고대 마수를 셋이나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다른 차원의 일리아나가 만들어낸 ‘차원 도약’의 특별한 능력 덕분이다.

그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용인(?人)’ 레나트가 고대 마수를 소환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통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소환에 필요한 페널티를 짊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저 고대 마수를 이 하계에 소환할 수 있었던 걸까.

해답은 곧바로 나왔다.

“…마계에서 저걸 소환한 게 누구야.”

설마하는 표정을 지으며, 제발 아니길 바라는 심정을 가득 담아 추궁하는 은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은현이 자신도 모르게 감정과 힘이 실려 더욱 목이 졸리자, 악마가 다급히 답했다.

“여자…! 여자였어!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마법사…! 스스로를 ‘마녀’라고 칭했다고!”

“……!”

은현의 얼굴이 동요로 가득 차면서 악마의 목을 조르고 있던 손의 악력이 허무하게 풀렸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악마가 일어나지 않고 주저앉은 채로 뒤로 기어가며 은현과 거리를 벌렸다.

보기 드물게 잔뜩 동요하고 있던 은현은 그런 악마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른 차원의 일리아나가….’

그녀가 ‘차원 도약’을 통해서 마계에 존재하는 고대 마수를 이곳으로 소환했다면, 이야기는 제법 맞게 흘러간다.

‘아마도 저 마수는 고대의 마수치고는 그렇게 강력한 편에 속하지 않았겠지.’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키클롭스.

아홉 개의 머리와 강력한 독성을 가진 히드라.

그리고 바라본 대상을 석화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고르곤.

질병을 퍼뜨려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노스페라드.

하나같이 강력한 능력과 특성을 가진 것들이 고대 마수들의 특징.

반면 깊은 땅속에 둥지를 트고 개미굴을 만든 이 이름 모를 고대 마수는 시작부터 강력한 힘이나 덩치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조용하고 은밀히 하계에 소환되어 숨어 있을 수가 없다.

이 거대한 개미굴 안을 모두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우고 몸집을 불릴 수 있었던 것은, 이 마수 자체가 가지고 있던 ‘수태 능력’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남자들은 모두 잡아먹어 영양분으로 삼고, 여자들은 생식기에 자신의 씨앗을 뿌려 수태시킴으로서 그 규모를 점점 늘려나간 거야.’

납치한 여성들의 배 속에서 태어난 괴물들은 다시 고대 마수에게 잡아먹혀 양분임과 동시에 자신의 명령을 듣는 충실한 부하들.

마치 스스로가 농장을 만들고 자신의 식량이 될 존재들을 사육하고 있는 것만 같다.

“…….”

정말로 역겹고 짜증나는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게다가 이 재앙의 원흉이 ‘다른 차원의 일리아나’라는 사실이 더더욱 충격적이다.

머릿속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면서 사고가 순간 정지했다.

[아이야!]

그런 은현의 의식을 일깨운 것은 베르단디였다.

[정신을 차리거라! 지금은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그렇죠. 죄송해요. 그리고…감사합니다.’

빠르게 자신을 재촉하는 여신의 꾸중에 은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의 말대로, 이 마수가 자신의 새끼들과 함께 지상으로 진출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로 재앙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행히도 이 괴물들의 우두머리이자, 재앙의 근원이나 다름이 없는 이 마수를 발견하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이것과 만난 게 에린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다행이기도 했다.

백귀야행이라는 강력한 전력을 활용하여 고대 마수의 촉수와 교전을 하면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몹시 든든했다.

‘나중에 상이라도 줘야 하려나.’

아마도 에린은 울면서 자신에게 어리광을 부려올 테니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터.

그렇게 아내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은현은 자신에게서 거리를 벌린 악마와 거리를 좁혔다.

“흡!?”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접근하여,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은현을 보고 악마가 숨을 삼켰다.

서걱

살려달라고 목숨을 구걸할 틈도 없이, 은현의 칼날이 악마의 몸을 반으로 가르는 일섬이 그어졌다.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한 악마의 육체가 절반으로 갈라진다.

“…….”

[아이야. 지금은…?]

“알고 있습니다. 베르단디님.”

은현은 베르단디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의 배속에 마수를 수태시키는 이 행위는 그야말로 마수를 사육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행위.

인간을 인간이 아닌 식량과 씨받이로 이용하고 그 존엄을 무시하는 이 행위는 한없이 악랄하다.

다른 차원의 일리아나가 이 사건에 개입한 것을 안 은현은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적이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

베르단디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걱정을 사전에 차단하는 은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억지로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였다.

은현은 그렇게 베르단디를 뒤로 하고 자신의 파트너를 소환했다.

[뭐야? 이번엔 무슨 일이냐?]

“잡아야 할 놈이 하나 있어.”

[…아 그래.]

브류나크는 심상치 않은 은현의 목소리를 느끼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란 창대를 손에 꽉 쥔 은현은 강력한 마력과 기척이 느껴지는 장소를 향해 창대를 조준했다.

막대한 신력을 눌러담은 브류나크의 창대가 거칠게 진동했다.

지반을 지지하는 다리로부터 힘을 싣고, 허리를 비틀어 뒤로 쭉 당기고 있는 창에 그 힘을 전달했다.

[브류나크 창술]

[나선 던지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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