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8화 〉 638. 사육된 재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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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의 지휘하에, 아르티아 기사단과 모험가, 사제들이 총 8개의 조로 편성되었다.
한 개의 조에는 기본적으로 약 8명에서 12명 사이.
아르티아의 기사단원 다수와 모험가 둘.
그리고 사제가 한 명씩 배치하는 형태로.
그중 가장 특이했던 점은 에린이 속해 있는 조였다.
아르티아 기사단의 부단장인 카인과 에이라 그리고 에린으로 단 세 명만으로 편성된 조는 누가 봐도 위험 부담이 가장 큰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제일 구성원의 숫자가 적으면서 사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밸런스가 가장 위태로운 구성.
하지만 이 구성을 짠 것은 에린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에린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 리오드와 은현의 지시다.
수십 개의 통로를 한 개의 원정대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내부를 탐색하는 것은 너무 효율이 나쁘므로 내린 특단의 조치.
다름 아닌 은현이 아내인 에린을 밸런스가 가장 위태로운 조에 편성한 이유는 에린의 전력을 믿기 때문이다.
에린에게는 그녀의 부름에 답하여 즉시 전력이 되어줄 수 있는 강력한 백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에린 혼자서도 탐색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그 이외에 동행을 붙인 것은 보험이기도 했다.
아무리 에린이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에린의 체력과 마력은 무한하지 않다.
교전이 지속되면 될수록 그녀의 몸은 피로가 쌓이고 정신력은 소모될 것이다.
그런 에린을 백업하기 위해 편성된 전력이 카인과 에이라다.
왕국 기사단의 기사를 백업을 위한 전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여 모험가들이나 사제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에린을 바라보았다.
‘저 여자가 누군데?’
얼핏 들은 소문으로는 2년이라는 단기간에 금위계의 등급을 달성한 천재 모험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런 구성의 파티는 너무 오만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솔로에 특화된 모험가라고 하더라도 저것은 자만심만이 가득 찬 어리석음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카인이나 에이라, 다른 아르티아 기사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에린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비스 섬과 모그라프령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에린의 실력은 이미 기사들의 실력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그것을 모르는 모험가들이나 사제들의 의아한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 탐색 원정대의 중심이 되는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니,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뭐, 내가 속한 조도 아니니까. 알아서 하겠지.’
애초에 저 위험천만한 조에 자신들이 포함되는 것도 아니니, 이의를 제기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그럼 각자 편성된 조대로 출발하도록.”
“예.”
흩어진 원정대들은 각자 개미굴 속으로 들어가며 내부를 탐색했다.
세 사람의 대형은 삼각대형으로 전방에는 탐색에 특화된 특별한 감각을 가진 에린이 선두를 섰고, 에이라와 카인이 좌우를 나란히 따라가며 주위의 경계를 주시했다.
어두운 개미굴의 통로를 지나가면서도, 에이라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떨치지 못했다.
“아버지는…. 정말 괜찮으실까?”
에린을 통해 리오드와 은현, 차한성과 델리아의 네 사람이 큰 부상 없이 멀쩡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니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음…. 괜찮지 않을까요?”
리오드를 걱정을 하는 에이라와 달리, 에린의 반응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에린은 걱정되지 않아? 그분도 함께 내려갔잖아.”
에이라의 물음에 에린은 미간을 좁히며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당연히 걱정되죠! 제가 진짜 얼마나 마음 졸이고 있었는지 언니 아세요!?”
“그, 그러니…?”
“그럼요! 진짜 현이는 제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집에 가면 진짜로 일리아나님한테 혼쭐을 내달라고 말할 거에요!”
잔뜩 흥분하며 격정적인 말을 재잘재잘 늘어놓는 에린의 반응은 개미굴 내부를 탐색하는 신중한 분위기와는 몹시 어울리지 않았다.
이윽고 에이라는 에린의 말 속에서 은현이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말로는 심히 걱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은현의 능력 자체를 절대로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과 별개로, 아내로서 남편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대단하네.”
그렇게 굳게 믿을 수 있는 신뢰가 대단하다고, 에이라는 느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아버지인 리오드가 왕국에서 가장 강한 기사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리오드가 얼마나 강한지는 에이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리오드를 걱정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리오드가 존경해 마지않는 상대이자,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단장님은 이런 곳에서 끝나실 분이 아니야.”
삼각대형의 우측을 맡고 있던 카인 또한, 주위를 경계하며 걸으면서 에이라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해 말했다.
카인도 리오드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분은…. 이런 곳에서 끝나선 안 돼.”
카인을 비롯하여 리오드가 만든 아르티아 기사단에 입단한 기사들의 동기는 모두 제각각으로 다르다.
누군가는 작위와 권력을 가지는 출세를 위하여.
누군가는 용맹하고 명예로운 기사를 동경하여.
누군가는 순수한 강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동기는 다르더라도,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은 모두 공통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 사람이라면 나의 목숨을 맡기고 따라갈 수 있다.’
리오드를 따른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동기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
누군가는 실적과 명성을 쌓고 출세를 할 수 있다.
그처럼 용맹하고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 기사가 될 수 있다.
검술을 깨우치고 성장하여 강자가 될 수 있다.
그러한 미래를 꿈꿀 수가 있는 것이다.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에게 리오드는 자신들에게 길을 제시해주는 굳건한 다리이자 등불이었다.
과거 20년 전에 은현이 리오드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카인은 이런 곳에서 리오드가 쓰러질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리오드는 존경스러운 상관이자 영원히 따라잡고 싶은 기사의 귀감이다.
그렇기에 리오드가 무사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군요.”
에이라도 카인의 결의에 찬 중얼거림을 듣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많은 기사들에게 존경받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라는 속으로 고민했다.
‘나는 정말로 아버지를 기사로 보고 있었던 걸까.’
에이라가 리오드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그가 피로 이어진 자신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를 왕국의 기사단장으로 보고하고 있던 걱정이 맞을까.
그렇지 않았다.
“가죠.”
카인과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인식의 차이를 깨달은 에이라는 결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실린 힘을 느끼고 카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선두에서 앞장서 걷고 있던 에린이 발걸음을 멈칫했다.
“에린? 무슨 일이야?”
“…뭐가 있어요.”
에린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어둠으로 가득한 전방을 주시했다.
시야를 밝혀주는 팔찌의 아티팩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너머에서 느껴지는 냄새를 맡은 에린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사람의 냄새? 그런데….”
마치 오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역한 냄새가 뒤섞여 있다.
조심스레 허리춤의 레반테인 손잡이로 손을 가져다 대는 에린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에이라와 카인 또한 검을 뽑으며 전투의 태세를 취했다.
세 사람은 천천히 전방을 밝히는 팔찌의 불빛에 의존하여 앞으로 걸어갔다.
“윽…!”
이윽고 점점 역해지는 악취를 맡은 에이라와 카인이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어둠이 가득한 전방의 내부에는 사람의 사체가 썩어 문드러진 냄새가 가득했다.
◆ ◆ ◆
내부를 탐색하며 조금씩 위로 향하는 길을 올라가던 은현은 자신의 감지에 걸린 방 하나의 존재를 느끼고 발을 멈췄다.
“왜 그러지?”
“…신경 쓰이는 장소가 한 곳 있네.”
은현은 그 방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리오드나 차한성, 델리아 또한 은현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했지만, 은현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갈림길이 존재했던 이 개미굴을 이동하는 데에는 은현의 길잡이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괴물들과의 조우를 최대한 피하면서 전투로 인해 쌓이는 피로의 누적을 최소화하면서 위로 향하는 최단 루트를 찾아내어 이끄는 은현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
심지어 인벤토리 안에서 보존 식으로 준비해둔 칼로리 바를 계속 제공하여 열량을 보충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이 파티를 이끄는 것은 은현이나 다름이 없었다.
“신경 쓰인다면 조사해보는 게 맞겠지.”
리오드는 담담히 먼저 의견을 꺼냈다.
애초부터 자신이 지휘관으로 이끌고 있던 탐색 원정대의 목적은 이 개미굴 속에 있는 무언가의 정체를 밝혀내고, 위협적인 존재라면 그 존재 자체를 근절하는 것이다.
현재 세 사람에게 길을 제시하고 이끄는 것은 은현이었지만, 은현은 앞으로의 판단에 대해서는 지휘관인 리오드의 결정에 따랐다.
다행히도 리오드는 은현과 같은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었다.
리오드의 허가가 떨어지자, 은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감지에 걸린 그 방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으….”
시간이 지나 그 방에 가까워질수록, 앞에서 흘러나오는 악취에 델리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코를 막아 저 악취가 기관지를 타고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양손으로 장검을 쥔 상태로 주위의 경계를 풀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그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마침내 은현을 선두로 네 사람이 방 안에 도착했다.
은현이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 아티팩트를 조작하여 밝기를 조작하자 환한 빛이 방안을 비추었다.
방안은 여성 거미와 교전을 벌였던 장소만큼이나 몹시 거대했다.
““흡!?””
그리고 방안의 광경을 확인한 차한성과 델리아가 경악하며 숨을 삼켰다.
“이건….”
처음 보는 광경에 리오드 또한 놀라며 전신을 경직시켰다.
바닥에 가득 널브러져 있는 것은 깨져버린 거대한 알껍데기들.
그리고 그 알껍데기들에 담겨있는 체액과 역한 냄새들.
이 광경을 본 은현이 머릿속으로 떠올린 인상을 입에 담았다.
“산란장?”
이곳은 대규모의 숫자로 무언가가 부화한 산란장이었다.
알껍데기들의 숫자는 대충 세어보아도 세자릿수를 간단히 넘겼다.
아마도 개미굴 안을 누비고 다녔던, 인간의 모습을 하고 메뚜기처럼 기형적으로 팔다리가 발달한 괴물들은 이 산란장에서 껍질을 가고 부화한 것일 터.
그리고 유독 깨진 알껍데기들이 가득 싸인 곳을 향해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졌다.
그곳에 있던 것은 인간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저들은 도저히 인간의 몰골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옷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상태로, 하나같이 복부가 볼록하여 만삭의 임산부를 연상케 하는 모습.
그리고 주위에 싸늘하게 널브러져 있는 인간 여성의 시체들.
그 시체들과 만삭의 임산부를 연상케 하는 인간 여성들이 뒤엉켜 있는 광경은 참혹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은 수준이다.
“우욱…!”
도저히 두 눈을 뜨고 봐줄 수 없는 광경에 델리아가 두 눈을 돌리고 구토를 참아내지 못하여 위액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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