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7화 〉 637. 사육된 재앙(2)
* * *
긴 실랑이와 설득 끝에,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은 어떻게든 리오드를 찾으러 아래로 내려가겠다는 에이라를 말릴 수 있었다.
현재 본의 아니게 리오드가 고립되어 버리면서 공석이 되어버린 지휘관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 카인이 탐색 원정의 근본적인 목적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실종된 서른 명의 모험가들의 행적을 조사하는 겁니다.”
“그리고?”
“실종의 원인과 확인되지 않은 어떤 위협을 찾아내어 왕국에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근절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너의 그 막무가내식 단독 행동을 들어줘야 할 이유가 있어?”
“으….”
순간 몸을 움찔 떨었던 에이라는 카인의 물음에 반박하지 못하고 신음했다.
확실히 지휘관인 리오드의 부재와 고립은 아르티아 기사단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에이라의 반응은 확실히 이상했다.
지금의 에이라는 기사단에 소속된 기사가 아니라, 리오드의 딸로서 그를 걱정하고 행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해야 할 때, 중요한 기사단의 임무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에이라의 행동은 옳지 못했다.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에이라였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만큼 쉽게 동요를 잡아내지 못했다.
“멋대로 명령을 거부하고 단독 행동을 벌인 건 차한성 그 녀석만으로 충분해. 우리는 태세를 다시 정비하고 임무를 속행한다.”
“한성이….”
에이라는 리오드를 돕기 위해 은현의 뒤를 따라 함께 뛰어내린 차한성을 떠올렸다.
그가 걱정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 개판이네.”
한쪽에서 기사들을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의 고개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일제히 돌려지면서 시선이 집중되었다.
시선이 집중된 곳에 있었던 것은 활을 장비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모험가들 사이에서 척후 분야에서는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는 금위계의 모험가였다.
한 손에 커다란 활을 쥐고 있던 그녀는 한심한 것들을 보는 눈빛으로 신랄한 비판을 입에 담았다.
“왕국 최고의 기사단이라고 하더니, 겨우 이것밖에 안 돼?”
“뭐…라고?”
“저게 지금 미쳤나.”
여성 모험가 궁수의 발언에 발끈한 기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으려 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뭐. 그렇잖아. 지금 당신들 꼴을 봐. 단원 두 명하고 지휘관 하나가 고립됐다고 우왕좌왕하는 꼴이라니. 정말 우습기 그지없는데?”
어깨를 으쓱이며 대놓고 비난하는 여성 모험가 궁수의 말을 들은 에이라는 허릴 찔린 표정을 지었다.
지휘관의 부재만으로 허둥대고 동요하는 오합지졸이라고 비아냥대는 원인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걱정하는 사적인 감정을 이 원정 임무에서 우선시했던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기사단 전체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으….”
“이딴 개판 같은 원정 임무라면 나는 빠지겠어.”
여성 모험가 궁수는 단호하게 의사를 밝혔다.
그녀의 이탈 의사를 들은 다른 모험가들 또한 술렁이며 서로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한 차례의 전투를 겪어본 모험가들은 이 원정 임무의 난이도가 어떤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모험가 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충격적인 비주얼의 괴물들과의 전투는 절대 만만치 않았으며, 앞으로도 고생길이 훤할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모험가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인 의뢰를 중도 포기하지 않는 편이다.
포기하게 되면 선금으로 받은 의뢰금을 되물어줘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심지어 계약 조항에 따라 배로 물어줘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길드 측에서 부과하는 페널티로 인해 명성이나 실적에 큰 부담이 쌓이고 다음 등급으로 올라가는 승급 심사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모험가들이 눈치를 보면서 고민하는 이유는 의뢰를 포기했을 경우 길드에 내야 하는 위약금이나 페널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모험가들과 달리 금위계의 등급을 가진 여성 궁수 모험가는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위약금? 내면 그만이야. 길드에서 부과하는 페널티도 마찬가지고.”
아무리 많은 보수를 받고 높은 등급의 의뢰를 성공시켜 실적을 쌓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몸과 목숨이 재산인 모험가들은 쉽사리 위험에 몸을 던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금위계 모험가로 활동하면서 가진 재산도 제법 많았고, 가장 높은 등급을 가지고 있으므로 명성이나 평판에 대한 페널티도 금방 회복시킬 자신이 있었다.
“지휘 통제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는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건 사양이야.”
그녀가 이번 의뢰를 받아들인 이유는 티르니스령의 모험가 길드에서 제시한 높은 의뢰금도 의뢰금이었지만, 왕국 최고의 전력이라고 평가받는 아르티아 기사단의 원정에 참여한다는 점이었다.
아르티아 기사단의 원정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명성을 쌓을 수 있는 이점도 있고, 무엇보다 리오드 올리비온이라는 남자가 원정을 지휘한다는 점이 원정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원정대에 편성되어 활동을 해보니, 여성 모험가 궁수는 원정을 무사히 마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확실히 아르티아 기사단의 기사들은 강했다.
개개인의 전투 능력은 일반적인 모험가들을 가볍게 상회했고 착용하고 있는 장비들 또한 매우 우수하다.
하지만 던전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탐색과 난전에 대해서는 경험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경험이 많은 선임 기사들 대부분은 이러한 싸움에 익숙한 듯 보였지만, 문제는 후임 기사들 쪽의 경험 부족과 동요다.
리오드의 부재로 인해 급격하게 후임 기사들의 사기가 꺾이는 이 상황은 도저히 왕국 최고의 전력을 가진 기사단이라는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나 가장 거슬렸던 것은 제대로 냉정한 판단이 불가능했던 에이라의 행동이었다.
‘…젠장.’
간신히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던 카인은 모험가들 사이에 흐르는 술렁이는 기류에 이를 갈았다.
그들은 원정대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명확한 계약 관계로 이루어져 있을 뿐, 페널티까지 감수하겠다는 모험가에게 과도한 의사를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확실히 모험가들은 쉽게 고용할 수 있는 강한 전력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있었지만, 명확한 이해득실로 이루어지는 만큼 손해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는 가차 없이 등을 돌린다는 단점 또한 명확했다.
카인은 속으로 고민했다.
그리고 모험가들을 향해 말했다.
“20분간 휴식을 취하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겠습니다. 빠지고 싶으신 분들은 빠지셔도 상관 없습니다.”
리오드를 대신하여 지휘를 잡은 카인의 선언을 들은 모험가들은 고민하여 서로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흐응. 20분 뒤에. 말이지.”
하지만 여성 모험가 궁수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인의 말에서 20분 내로 단원들의 동요를 잡고 설득하여 혼란스러운 지휘체계를 바로잡겠다는 의미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카인이 자신의 경고를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것을 확인한 그녀의 표정은 매우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여성 모험가 궁수는 확실히 리오드 올리비온이라는 남자는 강했지만, 겨우 단 한 명의 기사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기사단이라면 진즉에 이 원정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기사단장의 부재라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하여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뿐, 아르티아 기사단 자체는 강력한 기사들로 구성된 집단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모험가들에게 계획을 전달하고 카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더 깊숙한 아래로 추락한 리오드와 델리아, 차한성을 수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단장님이라면….’
리오드라면 당연히 기사단에 부여된 임무의 완수를 우선순위로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단의 명예와 책임을 중시하는 만큼 자신이 선발한 기사단원들을 아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확실하게 단원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위험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것이 리오드 올리비온이라는 기사다.
카인은 리오드가 조난된 단원들을 무사히 데리고 올라올 것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게다가 단장님을 따라서 그 멍청이는 몰라도, 그 양반도 함께 뛰어내렸으니…. 아마도 괜찮겠지.’
리오드를 백업하기 위해 뛰어내린 은현도 함께 행동하고 있을 테니, 어쩐지 더더욱 안심이 갔다.
자신의 상관이자 왕국 최고의 기사인 리오드가 아니라, 출신이 불분명한 평민의 젊은 남성을 더 신뢰하게 되다니, 사정을 모른다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고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현은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서 그의 능력을 증명했다.
그 리오드가 유일하게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은 기사단원들 안에서도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다.
“저어…. 언니.”
이윽고 동요를 진정시키고 있는 에이라 쪽으로 에린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에린?”
“그…. 방금 현이한테서 연락이 왔는데요. 리오드님이랑 차한성님. 그리고…델리아님? 다 무사하시데요.”
“…정말로?”
에린이 가져온 소식에 에이라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재차 확인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하다.
“네.”
“…잠깐. 아가씨는 어떻게 그 소식을 전달 받은 거야?”
에린과 에이라의 대화를 들은 카인도 놀라서 곧장 에린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어…. 그, 그게….”
하지만 에린은 연락을 받을 수 있었던 수단에 대하여 질문을 받자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카인의 추궁은 당연했다.
만약 에린이 리오드와 함께 있는 은현 쪽과 연락할 수 있는 모종의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리오드가 무사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아르티아 기사들의 사기는 다시 회복할 것이다.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흘끗 시선을 옆으로 옮겨 허공에 떠 있는 베르단디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았다.
여신인 베르단디를 통해서 은현의 전언을 전달받았다고 한들, 카인을 비롯한 아르티아의 기사들은 납득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했던 것은 은현도 마찬가지다.
이미 리오드와 두 단원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리고 전달 수단을 추궁받았을 경우도 은현에게 들어두었던 에린은 곧바로 에이라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잠깐 귀 좀 빌려주세요.”
“응?”
그 뜬금없는 부탁에 에이라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에린의 입가에 자신의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이윽고 에린이 에이라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혼전임신’은 안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어?”
“어, 그러니까 혼전….”
에이라가 다급히 에린의 입가에서 얼굴을 떼고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 잠깐만 에린! 그 이야기 누구한테서 들었니!?”
그것은 에이라와 리오드가 단둘이서만 나누었던 이야기일 텐데, 어째서 에린이 알고 있는 것일까.
당혹스러움으로 얼굴을 붉힌 에이라를 보고도, 에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 단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에린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 리오드님이 자기가 무사하다는 걸 알리려면 이 방법이 제일 좋을 거라고 현이한테 말씀하셨다는데….”
“알았어! 아버지가 무사하다는 건 이제 확실히 알겠으니까! 이 얘기는 아무한테도 하면 안 돼! 알겠니?”
에이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혀 다른 의미로 동요하며 에린의 입을 단속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