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6화 〉 636. 사육된 재앙(1)
* * *
여성 거미들을 처리했음에도, 싸움은 곧바로 종결되지 않았다.
그것의 비명을 듣고 거대한 개미굴 안으로 모여드는 새끼 거미들의 숫자만 해도 수백 마리.
새끼 거미가 가진 전투력 자체는 거슬리긴 했지만 그리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성가신 것은 숫자 그 자체다.
몸집이 작고 무작정 몸체를 파괴한다면 내부에 있던 체액이 폭발하듯 외부로 튀면서, 체액이 닿는 곳이 높은 산성으로 인해 녹아내린다.
그야말로 다리가 달린 폭탄과도 같다.
빠른 속도로 달려와 준 리오드가 은현에게 받은 보석에 마력을 불어넣어 결계를 발동시키지 않았다면, 차한성과 델리아는 목숨을 온전히 보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어서 여성 거미의 머리를 베어 숨통을 끊은 은현이 달려왔다.
“저건….”
차한성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은현의 손에 쥐어져 있는 물건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전생 전, 지구에서는 제법 익숙한 물건이다.
특히나 군대를 만기 전역했던 차한성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비주얼이었다.
“…수류탄?”
새끼 거미의 무리를 요리조리 피하고 세 사람을 향해 달려오고 있던 은현은 수류탄에 꽂혀있던 안전핀을 망설임 없이 뽑았고 땅바닥에 버렸다.
치이이익!
금속으로 된 유탄이 부르르 떨면서 열려있는 구멍으로부터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주위를 가득 메우기 시작한다.
차한성은 은현이 사용한 수류탄이 적을 섬멸하기 위한 폭발용 수류탄이 아니라, 연기를 뿜어내는 연막탄의 일종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폭발과도 같은 커다란 충격은 자칫 잘못하면 지반이 약한 이 개미굴이 다시 한번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판단이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 상대의 시야를 가리는 용도로 사용되는 연막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 사람이 설마 연막탄을 사용했을 리가 없지.’
이 어두운 시야 속에서 연막탄은 감각이 특별히 발달한 새끼 거미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을 터였다.
은현이 한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 있었던 것은 리오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리오드는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면서 코와 입을 막는 은현의 모습을 발견했고, 곧바로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둘 다 코와 입을 막아라.”
“네!”
“알겠습니다!”
은현이 바닥에 던진 유탄은 곤충들에게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는 살충 가스가 들어간 유탄이었다.
거리를 좁히며 리오드 일행에게 다가가고 있던 새끼 거미들이 살충 가스와 닿자 자그마한 몸체를 부르르 떨며 쓰러졌다.
외부의 독에 대하여 내성이 전혀 없는 새끼 거미들은 무력하게 사체가 되어 전멸했다.
한 손으로 계속 코와 입을 막은 상태로, 은현은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자신들이 이 넓은 개미굴로 들어왔던 입구였다.
빠르게 이곳을 나가자는 의미로 해석한 리오드가 고개를 끄덕였고 선행하는 은현을 따라 리오드와 차한성, 델리아가 일제히 자신들이 걸어왔던 통로로 피신했다.
거미들이 가득한 개미굴에서 나와, 살충 가스가 닿지 않는 먼 곳까지 피신해온 네 사람은 주위의 안전이 확보되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후우.”
철컥
폭풍과도 같은 전투가 끝나자 델리아가 덜그럭거리는 갑옷 소리를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입단한 지 1년밖에 안 된 후임 기사에게는 은현과 리오드가 보여주었던 전투가 경악스러웠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잔뜩 위축되어 있던 긴장이 풀린 탓인지 델리아는 다리에 더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괜찮아?”
차한성이 바닥에 주저앉은 델리아의 상태를 살폈다.
“괘, 괜찮아요. 조금 지친 것뿐이에요. 다시 일어….”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던 델리아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흘끗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은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델리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5분만 쉬고 다시 움직이자.”
“그러지.”
은현은 다시 고개를 돌려 델리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고 약간의 짧은 휴식을 제안했다.
리오드 또한 긴장으로 인해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델리아를 보고 은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발목을 잡은 탓에 이동이 지체되었다고 생각한 델리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가 되고 있는 자신의 무력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관찰하던 차한성이 그녀에게 생수가 든 수통을 건넸다.
“마셔.”
“가, 감사합니다….”
델리아는 차한성이 건넨 물통을 받아 곧바로 뚜껑을 개봉하여 입안에 생수를 흘려 넣었다.
시원하고 청량한 물이 목을 타고 들어오는 감각은 긴장과 피로로 지쳐있던 그녀의 몸과 심리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어?”
뒤늦게 자신이 입을 가져다 대고 있는 것이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던 차한성의 수통이라는 것을 깨닫고, 생수를 잔뜩 마시고 있던 델리아의 몸이 멈칫하여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이 수통을 입에 가져다 대고 생수를 마셨을 차한성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이거…. 간접 키스 아니야?’
도저히 한 치 앞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떠올릴 만한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떠오른 이 생각을 지우지 못했던 것은, 기사이기 이전에 델리아가 한창때의 처녀이기 때문이다.
“왜 그래?”
생수를 마시다 만 상태 그대로 딱딱하게 경직된 델리아의 모습을 보며 차한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물 잘 마셨습니다. 선배님….”
델리아는 묘하게 상기된 표정으로 차한성의 시선을 피했다.
“음?”
갑작스레 어색해하는 델리아의 모습은 차한성에게 매우 기묘했다.
‘내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건가….’
델리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차한성의 반응이 더더욱 신경 쓰였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어 머릿속으로 떠오른 잡념을 떨쳐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억지로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그렇게 델리아가 휴식을 취하고 차한성이 망을 보고 있을 때, 은현은 리오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무언가 신경 쓰이는 얼굴이군.”
“…그 거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나?”
“너 그렇게 생긴 마수 본 적 있어? 아니. 그 이전에 보았던 사람의 형상을 한 메뚜기도.”
“…없다. 설마 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마수들인가?”
리오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는 은현의 대답을 확인하고 얼굴을 굳혔다.
자신의 몇 배나 되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보아왔던 은현도 조우해본 적이 없는 마수라는 것은 리오드를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그 생김새들이야.”
“생김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잖아.”
여성 거미는 하체는 거대한 거미의 하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위의 상체는 인간 여성의 상체였다.
인간 메뚜기들은 팔다리가 몸통에 달린 상태로 사람의 모습과 흡사했으며, 어두운 시야 속에서 필요 없는 안구는 퇴화했고 점프와 속도에 최적화된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의 형태로 몸이 변형되어 있었다.
수십, 수백 마리의 새끼 거미들은 그렇다 쳐도 메뚜기와 거미들을 보고 느낀 점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육체를 기본 베이스로 두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째서 인간의 모습을 기본 베이스로 두고 있는 걸까.”
그것이 은현의 마음에 걸렸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가능성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가설 중에서 이렇다 할 확신이 드는 것은 아직 없었다.
무엇보다도 판단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그런가.”
리오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은현을 따라 그가 가진 의문에 대하여 고민을 해보았지만, 속 시원히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동하자. 일단은 네 기사단과 합류하는 게 우선이니까.”
은현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자신의 머릿속에 다시 집어넣고 우선순위를 다시 설정하여 행동했다.
“그러지.”
리오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차한성과 델리아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감지를 발동시켜 전방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전위에 서 있던 은현은 위로 올라가는 굴을 찾아다니면서 에린을 떠올렸다.
‘걱정하고 있을 텐데.’
리오드를 따라 갈라진 지면 사이로 몸을 던졌을 때, 깜짝 놀란 에린의 외침을 생각하면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것이 당연했다.
[…신수 아이에게 걱정을 시키고 있다는 자각은 있는 것이냐?]
‘뭐…. 없지는 않았죠.’
은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베르단디의 핀잔에 답했다.
하지만 리오드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고,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해본 결과 그를 따라 이곳으로 온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생각은 지금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럴 때를 대비하여 생각해둔 계획도 있었다.
[후우. 아이는 정말 막무가내구나.]
은현의 생각을 읽은 베르단디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탁드릴게요.’
[…알았다.]
◆ ◆ ◆
지반과 천장이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 싱크홀 내부로 진입한 탐색 원정대가 큰 피해 없이 후퇴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인간 메뚜기들과의 교전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중상자는 물론 사망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불행 중에 그나마 유일하게 존재했던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었다.
탐색 원정대의 주축이 되는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의 분위기는 현재 대체로 어수선했다.
중상자나 사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개미굴 아래로 떨어져 고립된 조난자가 넷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조난자 중 한 명이 아르티아의 기사단장이라는 것이 기사단원들의 사기에 큰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현이 바보.”
에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그 조난자 중 또 다른 한 명으로 스스로 몸을 던져 뛰어내린 자신의 남편을 욕했다.
그렇게 걱정을 끼치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자신의 말은 또 귓등으로 듣지도 않는 것에 서운함을 느꼈다.
차라리 자신이라도 함께 데려갔다면 불만이 덜했을 텐데, 은현은 자신에게 탐색 원정대와 함께 행동하라는 말을 남기고 또 혼자서 가버렸다.
통신용 수정 구슬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할 수 있었겠지만, 에린은 이번 원정에서 자신의 수정 구슬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다.
언제나 은현의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은현이라면 괜찮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돌아가면 진짜로 일리아나님한테 혼내 달라고 다 일러바쳐야지.”
에린이 은현에게 느끼고 있는 가슴 속의 감정을 삭이고 있는 동안, 에이라의 외침이 들려왔다.
“당장 아래로 내려가서 수색하게 해주세요!”
“진정해! 에이라!”
“하지만 단장님이…. 아버지가…!”
고립된 기사들 중 리오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에이라를 적잖이 동요하게 만들고 있었다.
“언니….”
에린은 자신이 은현을 걱정하는 것처럼, 아버지인 리오드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에이라의 마음에 공감했다.
하지만 일단은 그녀를 진정시켜야 한다는 마음에 몸을 일으켰을 때.
[신수 아이야.]
“얼레?”
에린이 자신을 부르는 여신의 목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베르단디를 보고, 에린의 뒤늦게 탄성을 터뜨렸다.
통신용 수정 구슬이 없더라도, 자신과 은현 사이에는 여신의 사도와 사도의 권속이라는 연결점이 존재하지 않는가.
왜 진즉에 이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베, 베르단디님! 현이는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데요?”
남들이 보기에 지금 에린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다가 말을 걸고 있는 상황.
웬 미친 여자처럼 보이기 쉬운 상황이었지만, 지금 에린은 그것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
베르단디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에린을 안심시켜주었다.
[아이는 무사하다. 함께 행동하고 있는 이들도 모두 큰 상처 없이 이동 중이지.]
“다행이다…. 휴….”
에린은 베르단디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안심하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로부터 전언을 가지고 왔다.]
“현이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