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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635화 (618/730)

〈 635화 〉 635. 싱크홀(7)

* * *

탁 트여 넓은 공간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여성 거미를 향해, 두 명의 검사가 빠르게 질주했다.

어두운 개미굴 안에서 여성 거미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한 은현과 리오드의 질주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속도는 여성 거미의 본능에 위험 신호를 보내올 만큼 위협적인 수준.

키리릭!

겁도 없이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기 위해 돌진해오는 두 검사를 가소롭게 여긴 것도 잠시.

여성 거미는 노도와 같은 기세 속에서 본능의 위험을 감지했다.

재빨리 거미줄을 만들어내어 두 검사에게 쏘아 보냈다.

분사된 거미줄의 덩어리는 빠르게 은현과 리오드를 향해 날아갔다.

그 거미줄은 여성 거미의 체내에서 분비되는 위액을 포함하여 닿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어마어마한 산성을 보유하고 있다.

거미줄에 닿는 순간, 그들의 장비는 물론 뼈와 살점을 모조리 녹여버릴 것이 분명하다.

거미줄의 투사체들이 날아오고 있음에도, 은현과 리오드는 질주의 속도를 낮추지 않았다.

낮추기는커녕 오히려 더더욱 속력을 높였다.

키릭!

여성 거미는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조금만 있으면 자신의 먹잇감이 더더욱 늘어난다는 생각에, 뱀처럼 길고 가느다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았다.

하지만 상황은 포식자의 입장인 여성 거미에게 그렇게 좋을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멈추지 마.”

“알았다.”

짧게 내리는 은현의 지시에 리오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지는 않았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 횃불에 의해 흐릿하게 날아오는 투사체의 존재를 보고도, 리오드는 거대한 여성 거미를 향해 돌진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은현이 멈추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방에서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여성 거미의 위액으로 가득한 거미줄들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째서 그런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그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그 부분은 다름 아닌 은현이 처리해줄 문제였기 때문이다.

[은현 고유 능력]

[시간 가속]

마력을 이용한 신체 강화에 더불어, 여신의 권능까지 사용한 은현의 속도가 더더욱 빨라졌다.

리오드보다 앞장서 날아오는 거미줄의 투사체가 은현의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은현은 자신의 영혼에 각인된 여신의 무구를 발동시켰다.

[신의 무구]

[아이기스]

미네르바에게서 하사받은 여신의 방패가 은현의 앞에 등장하여 거미줄들을 방어했다.

치이익!

아이기스에 가로막힌 거미줄들이 연기를 내뿜었다.

키릭!?

그 광경에 여성 거미가 적잖게 당황하는 반응을 보였다.

거미의 입장에서는 반투명한 거울의 장벽에 자신의 거미줄이 막힌 것처럼 보인 상황.

영문을 모를 그 상황은 거미에게는 처음 있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거미줄을 피해냈던 사냥감은 있어도 정면에서 막아낸 사냥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수단조차도 영문을 모를 기묘하다.

리오드는 아주 짧은 순간 주춤하는 여성 거미의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거미의 오른쪽을 파고들었고, 오른쪽에 위치한 여덟 개의 다리 중 가장 앞쪽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고요하고 빠르게.’

막대한 마력을 불어넣어 만들어낸 검기를 터뜨리듯 해방하는, 리오드의 특기를 가장 잘 살린 참격이 아니다.

리오드가 가진 기술의 최대 장점은 고위 자릿수의 마법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위력과 넓은 공격 범위.

하지만 이곳에서 자신의 전력을 발휘했다가는 언제 또다시 천장과 지면이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리오드는 현재 자신의 특기와 전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의 제약에 주춤할 정도로 아르티아의 기사단장이자 리오드 올리비온이라는 남자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보다 강한 괴물과도 목숨을 걸고 싸워봤고, 그 경험 속에서 리오드나 은현, 이외의 팀원들은 불합리한 조건이 가득한 상황은 언제나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 상황 속에서 리오드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상황에 필요한 만큼만 힘을 발휘한다면, 나머지는 언제나 자신의 동료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이 상황에서 리오드는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강한, 은현이라는 든든한 동료가 있기 때문에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키릭!

리오드의 접근을 확인한 여성 거미가 왼쪽 팔을 휘둘러 리오드의 검격을 쳐냈다.

카앙!

여성 거미의 손톱 부분과 충돌한 리오드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리오드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고, 밀려나면서 무너진 밸런스를 되찾았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날카로운 검기를 두른 리오드의 칼날이 여성 거미의 다리 한쪽을 완벽히 잘라낼 수 있었지만, 거구의 몸집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거미의 몸놀림은 굉장히 빨랐다.

‘상관없어.’

리오드는 자신의 일격이 먹히지 않았음에도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검격을 막아낸 여성 거미는 다리 한쪽을 지켜낼 순 있었지만, 여성 거미 쪽도 온전했던 것은 아니다.

여성 거미의 팔 끝, 리오드의 검격과 정면으로 충돌한 날카롭고 기다란 손톱 부분이 부르르 떨렸다.

완전히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경직 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1초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리오드의 진짜 노림수.

은현이라면 여성 거미가 경직 상태에 빠진 이 짧은 순간을 절대로 놓칠 리가 없었다.

[시에테 검성술]

[백화참수(?花??)]

어두운 시야 속에서, 명확히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백은빛의 검기.

일반적으로 마력으로 만들어진 푸른색의 검기가 아닌, 신력으로 만들어진 그 검기가 깨끗한 일섬(一?)을 갈랐다.

여성 거미는 자신의 오른쪽 앞다리 하나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한 건, 그 백은빛의 일섬이 그어지고 몇 초 뒤였다.

키릭!?

리오드의 접근과 공격에 온 신경이 쏠려있던 찰나, 자신의 거미줄들을 깔끔하게 막아낸 은현이 재빠르게 반대쪽 다리로 이동하여 다리 한쪽을 절단했다.

순식간에 오른쪽 다리 하나가 잘려나가면서 균형이 무너진 여성 거미가 조금씩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침내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여성 거미의 상체가 지면과 충돌하여 쓰러진 순간.

가까스로 지켜냈던 왼쪽의 다리 하나마저도 리오드의 검격에 의해 처참하게 잘려나갔다.

여성 거미는 두 검사가 자신의 몸을 타고 밟으면서 조금씩 자신의 머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서슬 퍼런 백은빛 검기를 발하는 두 자루의 칼날과 푸른색 검기를 두른 한 자루의 칼날이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그것은 점점 ‘죽음’이라는 것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본능의 위협이다.

키아아아악!

생존 본능이 경종을 가득 울리는 한창, 여성 거미가 날카롭고 가느다란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은 공기를 긁는 듯한 기분 나쁜 성대의 울림으로 귀청이 나갈 것만 같은 소음으로 개미굴 안에 있는 은현과 리오드를 순간적으로 경직 상태에 빠지게 했다.

“큭…!?”

소음의 여파는 이 넓은 개미굴의 내부 전체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차한성과 델리아 또한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은 소음에 인상을 찡그리고 두 귀를 막았다.

하지만 이 소음은 그들을 경직 상태에 빠뜨리기 위해서 만들어낸 소음이 아니었다.

이변을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감지를 통해서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던 은현이었다.

이 개미굴로 이어진 다른 굴들은 수십 개가 넘는 상태.

천장에도 이어져 있는 굴들에서, 수십 마리의 거미들이 이곳으로 몰려온 것을 확인한 은현은 여성 거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낳은 새끼 거미들을 한곳으로 불러모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현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리오드!”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새끼 거미들에게 둘러싸이기 시작하는 차한성과 델리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지.”

마무리는 자신에게 맡기고 단원들의 안전을 우선시하라는 은현의 뜻을 알아차리고, 리오드는 고꾸라진 여성 거미의 몸체에서 멀리 떨어졌다.

“가져가.”

은현은 품에서 보석을 꺼내어 리오드를 향해 내던졌다.

마력을 불어넣으면 자동으로 결계가 작동되도록 설정해둔 보석은 새끼 거미들의 진입을 차단해 줄 것이다.

보석을 받은 리오드는 여성 거미의 처리를 은현에게 맡기고 곧장 차한성과 델리아를 향해 달렸다.

키릭!

앞으로 고꾸라졌던 여성 거미가 비명으로 새끼 거미들을 불러모음과 동시에, 고막에 충격을 주어 잠깐의 시간을 벌면서 태세를 정비했다.

은현은 여성 거미가 완전히 몸을 일으키기 전에, 고꾸라진 여성 거미의 목을 베어 넘기려 했지만.

본능적으로 급소를 방어해낸 여성 거미의 날카로운 손톱이 청월의 칼날을 막아냈다.

이윽고 천장에 위치해 있던 수십 개의 개미굴에서 모습을 드러낸 새끼 거미들이 은현을 향해 거미줄을 분사했다.

새끼 거미들의 입에서 분사한 거미줄들은 여성 거미가 쏘아냈던 산성이 가득한 거미줄과는 비교할 게 못 되지만, 쌓이면 쌓일수록 물리적인 데미지는 물론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은현은 고민했다.

‘보석 결계와 아이기스.’

수십 마리의 새끼 거미들이 쏘아낸 거미줄을 막아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 수단이다.

개수가 한정된 보석을 소모해야 하는 보석 증폭술과 신력을 소모해야 하는 아이기스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해야 할까.

여신의 권능으로 사고력을 극한으로 가속한 은현이 그 두 가지 수단을 저울질 하여 하나를 선택하는 데는 0.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신의 무구]

[아이기스]

은현은 소환한 아이기스를 위쪽에 배치하여 천장의 개미굴에 있는 새끼 거미들에게서 분사되고 있는 거미줄들을 모조리 막아내고 유지했다.

아이기스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보석 증폭술을 발동시키는 보석은 이 개미굴 안에서는 수급할 수도 없고 리오드 일행을 돕기 위해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아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기스의 발동도 막대한 신력을 소모하여 그리 자주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니긴 하지만, 여차하면 베르단디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급한 대로 신력을 끌어올 수도 있었다.

은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망설이지 않는 베르단디라면 그것을 오히려 기뻐한다.

키, 키릭!

자신이 불러모은 새끼 거미들의 공격이 또다시 영문을 모르겠는 반투명한 장벽에 가로막혀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자, 여성 거미가 당황했다.

인간의 덩치를 상회하는 커다란 체구.

굳건한 방어력을 자랑했던 외피도.

압도적으로 많은 물량의 숫자.

장비와 뼈 그리고 살점을 모조리 녹여버리는 위액의 산성.

지금껏 먹잇감들을 일방적으로 유린하고 농락했던 여성 거미의 우월한 요소들이, 눈앞의 백은빛의 검기를 두르고 있는 백은발의 인간 남성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언제나 포식자였던 괴물이, 자신보다 우월한 상대를 눈앞에 두고 처음 느껴보는 기분.

그것은 피식자가 포식자를 앞에 두고 느껴보는 공포였다.

은현은 움직였다.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성 거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공포라는 감정은 괴물의 생존 본능을 자극하고 위축시켜 몸을 굳게 만든다.

자신보다 작은 체구의 인간 하나에게 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지도 못할 때.

서걱

이형환위를 발동시켜 잔상을 남긴 채로 빠르게 이동한 은현이 도달한 것은 여성 거미의 뒷목 부근이었다.

백은빛의 일섬이 여성 거미의 목을 그었다.

공포로 굳어있던 여성 거미의 목이 허무하게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와 동시에 바닥에 착지한 은현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괴물의 사체를 응시했다.

은현의 그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베르단디가 물었다.

[아이야. 무언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느냐?]

“…이 괴물. 도대체 뭐였을까요?”

은현이 가진 이 의문은 자신이 목을 벤 여성 거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싱크홀 내부로 진입하고 초입부터 조우했던 인간 메뚜기들의 존재도 굉장히 거슬렸다.

인간의 외형이 남아 있으면서,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괴물들에 대한 의문.

이것들이 정말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수들일까.

그럴 리가 없다고 은현은 확신했다.

자신이 이 대륙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적어도 근 400년을 가까이 이 대륙을 방랑하며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괴물들의 존재는 몹시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 개미굴의 가장 안쪽에는…. 뭐가 있을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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