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4화 〉 634. 싱크홀(6)
* * *
은현은 곧바로 응급처치해둔 델리아의 골절상을 확인했다.
“상처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검집을 부목으로 고정한 그녀의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퉁퉁 부어올라 있었지만, 그리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골절된 뼈가 다시 붙고 완치가 될 때까지 무리하지 않고 요양만 한다면 상처 자체는 쉽게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그녀와 다른 이들이 있는 곳이, 횃불에 의존하지 않으면 시야도 제대로 밝힐 수 없는 깜깜한 어둠이 가득한 개미굴 안이라는 점이다.
은현은 품에서 포션을 꺼내었다.
“마시세요.”
“이건….”
델리아는 은현이 건넨 포션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병부터 담겨 있는 물약의 색깔까지,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이 굉장히 비싸 보였다.
침을 꿀꺽 삼키며 반신반의하여 리오드와 차한성을 한 번씩 훑어보며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이런 비싼 포션을 선뜻 건네는 것이 당연한 판단이라는 양, 자신에게 눈짓을 보내고 있으니 델리아도 어쩔 수 없이 은현에게서 포션을 받았다.
“절반은 마시고 절반은 골절된 다리에 뿌리시면 됩니다.”
“가, 감사합니다….”
델리아는 어색한 표정으로 은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곧장 포션을 입안에 들이켰다.
단맛이 배어 나오는 액체가 목을 타고 안으로 흘러들어와 그녀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아….”
은현이 시키는 대로 약 절반 정도의 포션을 마셨을 때, 델리아는 자신의 몸에 생기는 변화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찰과상과 골절로 누적된 통증들이 싹 가시고, 먹구름이 끼어 있었던 것처럼 지끈한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마셔본 적이 있는 하급 포션들과는 그 효능이 질적으로 틀리다.
‘이건 설마…. 상급 포션…?’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효능은 그것을 의심해보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은현이 건넨 그 포션은 모험가 길드 안에서 금화 1닢에 거래될 정도로 매우 비싼 포션이다.
델리아는 이것을 자신에게 선뜻 건넨 은현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런 귀한 걸…. 선뜻 저에게 주셔도 괜찮은 건가요?”
“아, 네. 이런 상황을 대비하여 가져온 거니까요.”
“…….”
당연하다는 투로 답하는 은현을 보며 델리아는 얼이 빠진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이 얼마짜리 포션을 한순간에 들이킨 것인지 깨달은 델리아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던전의 내부에서 에밀리아와 인형들의 철저한 관리하에 재배된 극상의 약초들과 은현의 연금학 지식으로 만들어진 레시피로 제조된 포션들은 엄청난 효과들을 자랑한다.
이것을 직접 제작하고 지스 상회에 정기적으로 납품을 하는 이가 다름 아닌 은현이기 때문에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사실상 손실은 제로에 가깝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델리아이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이리 줘. 도와줄게.”
델리아가 아직 당혹스러움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자, 차한성이 도움을 자처했다.
“아….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녀에게서 포션을 받아든 차한성이 장비를 벗고 맨살의 피부를 드러낸 그녀의 오른쪽 다리에 포션을 뿌렸다.
매우 얇고 가녀리지만, 기사 훈련을 받은 델리아의 다리는 그러면서도 제법 근육이 탄탄하제 잡혀 있어 단단했다.
퉁퉁 부어오른 붓기가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복용한 포션의 효과가 내부의 전신에 스며들면서 부러진 뼈와 상처 입은 혈관들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차한성이 그렇게 델리아의 상처를 치료하고 회복을 돕고 있는 동안, 은현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리오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데리고 위로 올라간다.”
굉장히 심플하고 정론에 가까운 대답이었지만, 은현은 그의 대답 속에서 그 이외의 것은 아무런 생각도 상정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 그래.”
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위로 올라가는 동안 몇 번의 교전을 상정하고 있는지, 탐색 원정대와 합류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필요해지는 소모품들 등.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정도로 급박했다는 것은 은현 또한 알고 있다.
“너 진짜로 혼자서 저 단원분 데리고 위로 올라올 자신 있었어?”
“있어서 한 행동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만 했다는 생각 밖에 없었지.”
“…어떻게 된 게 예전이랑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리오드는 예전부터 이랬다.
그는 심성이 굉장히 올곧고 직관적이지만, 그 생각과 성격 때문에 주변을 잘 보지 못한다.
많은 기사들을 이끄는 기사단장의 지위에 오르면서 출세를 했지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 그의 성정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페르니아스 왕국 내부에서 수많은 귀족들의 견제를 받아왔던 이유는 불합리한 일에는 절대로 굽히지 않는 올곧은 성정 때문이다.
하지만 왕국의 주요 전력으로 평가받는 아르티아 기사단과 그 기사단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을 해도 괜찮은 걸까.
괜찮을 리가 없다.
“아니. 변했기 때문에 이렇게 한 거다.”
“뭐?”
“…….”
은현은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리오드는 끝내 그의 되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리오드가 마음 속으로 정해둔 신념과도 같은 것으로, 절대로 굽힐 수 없는 고집이기도 했다.
20년 전,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제국의 황제를 죽여야만 했던 마지막 싸움에서.
은현은 목숨을 잃었다.
자신과 다른 동료들이 제국의 황제를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홀로 수만 마리의 마수들을 막아냈던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마수들에게 살점을 뜯어먹히고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했던 은현의 모습은 그를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일리아나에게만 트라우마로 남겨진 것이 아니었다.
리오드도, 제라드도, 아니에스도, 앨리스도, 레이넌도 모두가 그러했다.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일리아나가 좀 더 강했을 뿐인 그런 간단한 이야기.
그때의 그 경험은 리오드에게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 다시 내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노력했고 왕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사단을 이끄는 기사단장이 되었다.
리오드가 입단한지 1년이 조금 지난 후임 기사 델리아를 포기하지 않고 구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 이유는 그 결심을 굽히지 않은 결과였다.
비록 어리석은 행동일지라도, 리오드는 자신의 이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다른 사람의 생각은 했어야지.”
“위에는 카인이나 내 자리를 대신할 녀석은 있으니까….”
“그걸 얘기한 게 아니야. 에이라와 테레지아, 그리고 엘리온과 이제 막 태어난 네 막내딸을 생각하라는 얘기였지.”
“…….”
은현의 지적에 리오드는 처음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테레지아한테는, 그리고 네 아들과 딸에게는 아직 네가 필요해. 그러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네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마.”
그것은 굉장히 올바르고 모순이 없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는 이가 은현이기 때문에, 굉장히 모순적이었다.
“그렇다면…. 그때 너는 왜 그랬지?”
“뭐?”
“너는 왜 그때 홀로 그곳을 막는 선택을 했던 거냐.”
은현은 리오드가 언제를 이야기하는 것인지를 곧바로 깨달았다.
자신이 죽음을 맞이했던 미르바빌라 제국의 황궁에서의 일을 묻는 것이다.
은현은 리오드에게 스스로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사실 가장 그것을 실천하지 않고 있던 것은 은현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서 그런 조언을 들은 것을 몹시도 불합리하게 느꼈는지, 보기 드물게 리오드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감정을 드러냈다.
“너라면 그때 그 상황에서 분명 너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그것이 빠르고 효율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리오드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효율이 좋고 괜찮은 방법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나는 그때 너의 제안에 찬성했었지. 하지만….”
만약에라도, 은현이 도와달라고, 팀원 중 한명이라도 남아서 자신과 함께 이곳을 막자고 말을 했다면.
그것을 거절할 팀원들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서, 자신의 목숨을 가장 가볍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은현이었다.
“…뼈를 맞은 것처럼 아프네.”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일리아나나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시켜왔는지는 이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되돌려줄 말이 없다.
“그래도 이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어.”
일리아나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모시고 있는 여신에게도.
다시는 자신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고.
흘끗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는 베르단디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음.]
기특하다는 듯 기쁜 웃음을 짓고 있는 베르단디의 포옹은 몹시 상냥하고 기뻤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한창 이어가고 있는 지금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베르단디님.’
[뭐 어떻느냐. 다른 아이들에게는 보이는 것도 아닌데.]
옳은 지적이지만, 무언가 김이 샌 듯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나 나나, 돌아가야 할 곳이 있잖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책임을 져야할 이들이 있다.
“지금은 위로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자.”
앞으로는 몸 좀 사리면서 일하라는 잔소리는 그 다음이다.
“…그러지.”
“자, 그러면 대강 이야기도 마쳤고.”
은현은 흘끗 어두운 개미굴의 전방을 바라보았다.
감지를 통해서 이 근처에 느껴지는 무언가의 기척을 느꼈다.
곧바로 적월과 청월을 소환하여 양손에 쥐고 임전태세에 들어가는 은현을 보고, 리오드 또한 허리 춤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차한성.”
“예. 단장님.”
갑작스러운 호명이었지만, 낌새를 알아차린 차한성 또한 눈빛을 바꾸며 침착히 그의 부름에 답했다.
“델리아를 지켜라.”
“알겠습니다.”
차한성은 담담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후임 기사인 델리아를 제외하고 세 사람중 가장 약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두 남자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델리아도 검을 뽑아들며 경계를 시작했다.
그녀는 은현이 건네준 상급 포션의 효과로 상처와 함께 컨디션의 일부도 회복시킨 상태로 다시 검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리오드에게 부상으로 꼴사나운 모습만을 보인 것이 몹시 민망했는지, 그녀의 눈빛은 결심으로 차 있었다.
“알았다.”
그 의기를 꺾어버리는 것도 뭐했는지 리오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여기서 얌전히 보호를 받는다는 선택지를 고를 만한 기사를 자신이 뽑았을리도 없었다.
은현과 리오드를 전위로 두고, 두 사람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차한성과 델리아가 후위를 경계하는 구성으로, 네 사람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네 사람이 도착한 것은 탁 트인 거대한 굴이다.
키릭!
“저건….”
후위에서 차한성이 들고 있던 횃불의 빛이 닿는 시야 안으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껏 보았던 사람의 형상을 한 메뚜기가 아니다.
“거미…?”
사람의 2배가 넘는 거대한 크기를 가진 거미.
거대한 몸체에 총 여덟 개의 다리가 달려있는 거미의 하체와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상체.
키리릭!
사람과 거미의 모습을 합쳐놓은 듯한 충격적인 비주얼의 괴물이 입술을 핥으며 은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횃불로도 제대로 된 시야가 밝혀지지 않는 어두운 굴 안에서도, 포식자의 두 눈에서 쏘아 보내는 날카로운 시선은 차한성과 델리아의 몸을 딱딱하게 굳히기에 충분했다.
아주 잠깐 두 사람이 주춤한 사이, 은현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갑자기 옛날 생각나네. 너랑 제라드와 함께 던전 안에서 조난 당했을 때. 엄청 고생했었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경험이 부족하고 철이 없었던, 젊었을 적의 이야기를 꺼내자 리오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것은 자신과 제라드의 흑역사나 다름이 없는 이야기다.
“왼쪽.”
“오른쪽을 맡지.”
먼저 은현이 방향을 제시하자, 리오드는 빠르게 그의 말에 호응하여 답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명의 검사는 거대한 인간 거미를 배제하기 위해 행동을 개시했다.
키리릭!
가소로운 먹잇감의 돌진을 확인한 인간 거미가 입에서 실을 뽑아내어 은현과 리오드를 향해 내뿜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