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31화 (614/730)

〈 631화 〉 631. 싱크홀(3)

* * *

“저, 저게 뭐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들을 보고, 기사들이 경악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키, 키릭!

성대를 긁는듯한 거친 소리를 흘리면서 점점 다가오는 그것들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팔다리가 달려있고, 머리가 달려있다고는 하지만, 그 형태 자체가 몹시 기이하다.

전체적으로 몸통과 팔다리가 몹시 가늘지만, 보통 사람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기다랗다.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사람으로 볼 수 없었다.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인간의 모습을 하는 메뚜기 같은 벌레라고 할 수 있는 충격적인 비주얼.

키리릭!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인간 메뚜기의 얼굴이다.

성대를 긁는듯한 거친 소리를 내는 입과 귀는 존재하지만, 코와 두 눈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한 안구가 없음에도, 그것은 정확히 아르티아 기사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다수, 수십, 수백 마리나 되는 인간 메뚜기들이.

“지, 징그러워!”

벌레를 질색하는 에린이 결국 참지 못하고 신경질을 냈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레반테인을 뽑아 들고 칼날에 검기를 두른 그녀는 언제라도 저것들을 베어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에린뿐만이 아니다.

수십 마리의 인간 메뚜기 떼들이 빠른 속도로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광경은 정말로 끔찍했으며 비위가 약한 누군가는 순간적으로 헛구역질을 토해낼 정도.

모두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역함을 애써 참아낸 끝에 아르티아의 기사들이나 모험가들 또한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전원! 적을 섬멸해라!”

이 공략 원정대의 지휘관인 리오드의 호령이 떨어지자, 병력은 일제히 인간 메뚜기들을 향해 돌격했다.

키릭!

이윽고 인간 메뚜기들이 기사들을 향해 일제히 점프했다.

기다란 팔다리들이 굽혀지며 몸을 웅크리면서 위로 튀어 오른 인간 메뚜기들을 올려다보며 돌진해왔던 기사들의 행동이 일제히 멈칫했다.

“엇!?”

무시무시한 탄력으로 점프한 인간 메뚜기들의 속도는 너무 빨라서, 기사들이 순간 그 움직임을 놓칠 정도다.

키아악!

순식간에 낙하하는 인간 메뚜기들이 일제히 기사들을 향해 입을 벌렸다.

하지만 기사들은 자신의 살점을 뜯어먹기 위해 달려드는 인간 메뚜기들을 올려다보고 멍하니 있지만은 않았다.

이 정도로 당할 수준이었다면 그들은 아르티아 기사단에 입단하지도 못했으리라.

“큭…!”

황급히 정신을 차린 기사들이 자신을 향해 점프해오는 인간 메뚜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하마터면 자신의 신체 일부를 허무하게 뜯어먹힐 뻔했다는 것을 자각한 아르티아 기사들은 마음의 동요를 가슴 깊숙이 억누르고 조우한 괴물의 처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형세는 그렇게 쉽고 빠르게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젠…장!”

한 기사가 쉽게 쓰러지지 않는 인간 메뚜기를 향해 검을 휘두르면서 욕지기를 내뱉었다.

인간 메뚜기의 각력은 순간 모습을 놓칠 정도로, 확실히 위협적이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점프를 이용한 직선상의 고속 이동이 빠를 뿐, 다른 것은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기사들이 성가시게 여겨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이유는 인간 메뚜기들의 단단한 피부 때문이다.

생각보다 단단한 인간 메뚜기들의 방어력이 그것들의 숨통을 바로 끊어놓지 못하는 제약이 되고 있었다.

하다못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된 지상에서의 싸움이라면 급소를 노려 끝을 볼 수도 있었지만, 은현이 보급해준 등불이 있음에도 그것은 쉽지 않았다.

키릭!

적월과 청월을 양손에 쥔 은현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인간 메뚜기의 몸을 정확하게 반으로 갈랐다.

그의 양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검에는 매섭고 날카로운 검기가 둘러져 있다.

그 어떠한 단단한 경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단 한 번의 검격으로 절단을 내는 무시무시한 절삭력은 시에테에서 전수 받고 지금껏 갈고닦아온 은현의 검술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꺄아아악! 징그러워! 가까이 오지 마!”

그의 곁에서는 에린이 질색을 하며 레반테인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저 무작위로 레이피어를 휘두르는 그녀의 검술에는 평소와는 다르게 굉장히 무질서하고 난폭함이 가득했다.

그런데도 차례차례로 인간 메뚜기를 불태워 없애버리고 있는 이유는 그녀의 레반테인 검신에 둘러져 있는 푸른 불꽃 때문이다.

깃들어 있는 마력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신수의 불꽃을, 인간 메뚜기들은 버텨내지 못하고 있었다.

은현은 차근차근 인간 메뚜기들을 정리해나가면서 주위의 전황을 살폈다.

리오드나 아르티아의 선임 기사들도 계속해서 인간 메뚜기들을 정리해나가고 있었지만, 이외의 기사들은 인간 메뚜기들의 단단한 피부를 베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설령 리오드나 은현처럼 날카롭고 정갈한 검기를 다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어둠 속에서 노련한 감각으로 급소를 공격하는 것을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포위당했군.’

앞뒤로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는 인간 메뚜기들의 숫자를 파악한 은현은 고민했다.

전방은 리오드와 선임기사들에게 맡겨두고 자신과 에린은 후방으로 지원을 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이 인간 메뚜기들은 확실히 위협적인 괴물이라는 것은 맞지만, 은현은 이 괴물들이 이 싱크홀 굴 안에서 가장 약한 전력을 가진 괴물들일 것이라 확신했다.

겨우 여기서 좌절된다면 이 탐색 공략대에 미래는 없다.

부상을 당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전황을 파악하고 생각을 마친 은현은 품에서 보석을 꺼내어 마력을 불어넣었고 허공을 향해 내던졌다.

그리고 보석 안에 불어넣은 마력을 해방시켰다.

[엘리시아 보석 증폭술]

[11월의 탄생석, 토파즈(Topaz)]

허공으로 떠오른 황옥의 보석이 밝은 빛을 내뿜으며 전투가 치러지고 있는 와중이 한창인 굴 내부를 환하게 가득 채웠다.

그것은 은현이 발동시킨 보석 증폭술이었으나,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기사들에게는 몹시 당황스러운 변화였다.

하지만 기사들은 굴 내부를 가득 비추는 저 빛에 대해 의문을 품기보다, 순식간에 밝아진 시야의 이점을 살려 인간 메뚜기들을 처리하는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키리릭!

가느다랗고 기다란 팔다리를 쳐내고 살점을 물어뜯기 위해 크게 벌린 인간 메뚜기의 입안에 장검을 꽂아 넣는다.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던 인간 메뚜기들이 급소를 공격당하면서 하나둘씩 토벌되어 갔다.

시야가 밝게 확보된 상태에서의 전투는 불리했던 전황을 변화시켰으며 기사들이 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발판이 되었다.

키아악!

마침내 마지막 인간 메뚜기까지 숨통을 끊어놓게 되자, 전투는 종료되었고 몇몇 기사들이 긴장이 풀린 듯 바닥에 검을 꽂고 주저앉았다.

“아직 긴장을 늦추지 마라.”

전투는 끝났지만, 싱크홀 탐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경계의 태세를 취하고 있는 선임 기사의 말에 주저앉아 있던 기사들이 얼굴을 굳히며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아니. 쉬지 말라는 얘기까지는 아니었어. 정신줄을 놓지 말라는 얘기였지.”

긴장을 유지한 채로 간단한 휴식에 들어가게 된 기사들은 리오드의 명령 하에 부상자 수를 파악했다.

은현은 몇몇 기사들이 모아준 인간 메뚜기들의 사체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팔다리를 잘라 관찰하고, 안구가 존재하지 않는 머리를 몸통에서 뜯어보는 등, 하는 행동이 몹시 기괴하기 짝이 없다.

“으으…. 현아. 그거 꼭 해야 해?”

옆에서 은현을 지켜보고 있던 에린이 자신의 코를 틀어막아 냄새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방지했다.

인간 메뚜기의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악취는, 감각이 몹시 예민한 에린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올 정도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수야.”

“…너도 본 적이 없다는 건가?”

리오드는 은현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랜 시간을 불멸자로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아왔던 은현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수라는 사실에 이내 얼굴을 굳힌다.

이 싱크홀이라는 거대한 구덩이가 왜 생겨났는지,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생겨났는지 더더욱 파악할 수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 마수는 아마도 이 싱크홀 내부의 생태에 적합하도록 형태가 변화한 거겠지.”

안구가 없는 얼굴이 그 특징이다.

빛 한 줌이 흘러들어오지 않는 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는 시야를 확보할 수가 없으니 자연스레 퇴화하게 된 것이다.

그 대신 비정상적으로 예민한 청각이 발달되었으리라.

이족보행이 아닌 사족보행과 그 각력에서 만들어지는 놀라운 도약력은 이 개미굴 같은 복잡한 굴 안에서 활동하기 적합한 형태로 진화한 결과물에 가깝다.

“우리의 위치를 특정하고 수백 마리가 몰려 들어온 걸 보면…. 귀찮네.”

“…그렇군.”

은현의 생각을 들은 리오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 싱크홀 지하 개미굴이 얼마나 넓은 공간을 가졌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고, 더욱이 앞으로도 격렬한 전투를 치르게 될 것을 생각하니 고생길이 훤했다.

“으으…. 이곳에는 이런 마수들밖에 없는 거야? 진짜 싫다….”

에린은 산처럼 쌓인 인간 메뚜기들의 사체들을 보고 소름이 돋는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혐오감에 치가 떨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싫어?”

“진짜로 싫어! 바퀴벌레보다 더 싫어!”

“그건 나도 싫기는 하지만.”

은현은 에린의 그 반응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쿠구구

갑작스레 개미굴의 내부가 거칠게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건 또 무슨…!”

휴식을 취하고 있던 기사들이 또다시 시작된 갑작스러운 이상 사태에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천장의 흙더미들이 떨어지고 벽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여 진동은 더욱 거세진다.

“이건…!”

은현은 얼굴을 굳혔다.

격렬한 전투의 영향 때문인지, 지반이 약한 개미굴이 누적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리오드! 당장 후퇴해야 해!”

그 말을 들은 리오드는 곧바로 혼비백산하고 있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후퇴한다!”

지휘관의 명령을 듣자마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기사들이 지금껏 걸어왔던 길을 부리나케 달려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천장이 무너지면서 암석들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와 열을 맞춘 진형을 갖출 여유도 없이, 탐색대는 황급히 달리기 바빴다.

수백 명이 땅을 차며 달려가는 소리가 개미굴 안에 가득 퍼졌다.

쩌저적!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개미굴의 천장이 무너져감과 동시에, 지면이 갈라져 갔다.

“으악!”

황급히 게이트가 설치된 초입 부근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던 와중, 마지막에서 달려오던 후임 기사가 하나가 뒤처진 끝에 갈라진 지면 사이로 떨어졌다.

“……!”

가까이에 있던 기사들이 멈칫하여 떨어져 가는 후임 기사를 향해 손을 내뻗었지만, 그 손은 끝내 잡을 수 없었고, 절망 어린 후임 기사의 얼굴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이런 젠…!”

“후퇴해라!”

욕지기를 내뱉으며 옆에 있던 기사가 망설이던 차, 리오드의 짧은 명령이 다시 망설이던 기사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단장님! 하지만…!”

“누가 버리고 간다고 했나! 너희는 후퇴해라! 어서!”

계속해서 갈라지는 지면과 무너지는 천장은 기사들이 망설일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건 명령이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던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리오드는 후임 기사가 떨어진 갈라진 지면 아래로 몸을 던졌다.

“아버지!”

그 갑작스러운 독단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그의 딸인 에이라다.

아니, 에이라 뿐만이 아닌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 전체가 비슷한 반응이었다.

“단장님!”

부하를 구하기 위해 갈라진 지면 아래로 몸을 던전 기사단장의 독단 행동에 모두가 얼어붙은 몇 초 사이.

“전원 복귀해! 단장님의 명령이다!”

리오드의 부재로 인해 다음 지휘권을 넘겨받은 부단장 카인이 호통을 치며 기사단원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아, 안돼요! 아버지가…!”

“에이라! 안돼!”

“복귀하라고! 단장님의 명령이야!”

리오드를 따라 갈라진 지면 아래로 뛰어내리려던 에이라를 극구 만류시키고 그녀를 억지로 끌고 가며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은 후퇴했다.

“쯧. 저 바보가.”

리오드의 그 급작스러운 행동에 은현은 혀를 찼다.

“에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옆에서 나란히 뛰고 있는 에린을 불렀다.

“응?”

“후퇴하면 대기해. 따로 연락할게.”

“…어?”

에린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그녀가 은현의 말을 이해하고 표정을 굳혔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은현은 다시 몸을 돌려 천장이 무너져내리면서 떨어지는 암석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리오드를 뒤따라 갈라진 지면 아래로 몸을 던졌다.

“현아아아!”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에린이 비명 섞인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은현의 귓가에 맴돌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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