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0화 〉 630. 싱크홀(2)
* * *
“이게…. 뭡니까?”
아르티아 기사단의 부단장 카인은 미심쩍은 시선으로 싱크홀의 앞에 존재하는 ‘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가 물어본 대상은 당연히 문을 설치한 은현이었다.
“게이트라는 아티팩트입니다. 이 문의 너머는 저 싱크홀의 끝에 있는 지면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아티팩트가….”
카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르티아 기사들과 사제, 모험가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생전 처음 보는 아티팩트의 존재에 모두가 놀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 중에서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거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은 직접, 이 게이트라는 아티팩트를 사용해본 적이 있었던 리오드나 에이라, 그리고 차한성 정도다.
“…단장님께서는 놀라지 않으십니까?”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리오드를 보며 카인이 물었다.
“저 녀석이 하는 일에 일일이 놀라는 것도 이제는 시간 낭비다.”
“…….”
오히려 흥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리오드의 무신경함이 더더욱 기가 찼다.
하지만 카인은 리오드처럼 이에 대한 생각을 접을 수 없었다.
‘이건…이렇게 밝혀져도 좋은 건가?’
은현은 게이트라는 아티팩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남들 앞에서 사용했지만, 이 아티팩트는 다수의 사람에게 보여서 좋을 게 없는 아티팩트다.
설치한 문을 통해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사기적이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매리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상업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여러모로 쓸 용도가 많으므로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이 가득했다.
“그럼 출발하지.”
게이트의 설치 준비까지 모두 확인하자, 리오드는 망설임 없이 출발을 명했다.
하지만 명령을 들은 기사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사단장인 리오드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수행하는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반응이었다.
“자, 잠시만요! 단장님! 그냥 이대로 들어가시겠다는 겁니까?”
“문제가 있나?”
“그…. 하지만 저희로서는 조금 당혹스럽습니다. 저 아티팩트는 지금껏 보아왔던 아티팩트들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아티팩트이지 않습니까. 먼저 위험이 없는지 확인 작업을 거치시는 게….”
그 판단은 당연했다.
카인이나 다른 이들에게는 이 게이트라는 아티팩트 자체가 지금껏 전혀 본 적이 없는 생소한 물건이다.
문 너머의 공간이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나 발상, 개념 자체가 지금껏 아예 없었는데, 그저 허공에 설치된 저 문 너머를 선뜻 지나가겠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대낮에 설치된 저 문 너머는 빛 한 줌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하여 들어가기가 몹시 꺼려지는 공간이다.
“하하, 카인님의 그 말씀은 지당합니다.”
은현은 카인의 우려를 예상했다는 듯 웃었다.
“이건 저와 제 아내인 일리아나가 함께 개발했고, 제작해낸 아티팩트입니다. 이미 몇 번이나 사용하면서 그에 대한 실용성도 검증을 마친 상태죠.”
“마녀님께서….”
일리아나 케니퍼라면, 페르니아스 왕국 내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로 알려진 궁정마법사단장 사이먼 마기우스보다 강한 마법사.
마법사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고, 귀족들이나 기사들의 귀에도 들려올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여성이다.
그런 그녀와 함께 개발한 아티팩트라는 점이 신뢰감을 더했다.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리오드가 저 문을 통과하려 했던 행동이 일리아나와 은현이 만들어낸 아티팩트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믿기 힘드시다면, 먼저 검증을 해드려야겠군요. 에린.”
은현은 마치 별 것 아니라는 양 자신의 또 다른 아내를 불렀다.
“응.”
에린은 따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시키려는 것인지 이해했고 아무런 주저 없이 문을 통과했다.
문을 넘어가자 에린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에 그 광경을 목격한 기사들과 모험가들이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몇 초 뒤 에린이 다시 문을 넘어와 복귀했다.
“제대로 연결됐어.”
“그렇다네요.”
아무런 두려움이나 망설임도 없이 게이트 아티팩트의 시연을 마치자, 사람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아르티아 기사단원들 사이에 섞여 있던 에이라나 차한성이 주위의 이 반응에 공감하여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들 또한 이 게이트를 처음 사용해보았을 때 이런 반응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 들어가지.”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도 증명이 되자, 리오드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
“아, 알겠습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카인이 급하게 정신을 깨우치고 상관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아나라는 이름을 걸고, 직접 문 너머를 왕복하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여기서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곧바로 부하들에게 준비 명령을 내렸다.
“그럼 먼저 간다.”
“알았다.”
은현은 리오드의 대답을 듣고 에린과 함께 게이트를 타고 싱크홀 내부로 진입했다.
안정성이 검증되었다지만, 200명이 넘는 인원을 통솔하고 있는 이상 진입에도 시간이 걸릴 터.
먼저 내부로 진입하여 리오드와 카인의 통제에 따라 차례대로 싱크홀 내부로 진입하는 공략 인원들을 안내하기 위함이다.
게이트를 타고 이동한 싱크홀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위로 고개를 올려다보면, 지상으로 이어지는 빛이 아주 작은 구멍으로 보일 정도였다.
지금은 게이트 문 너머에서 흘러들어오는 지상의 빛 때문에 그나마 싱크홀의 내부가 보였지, 이것도 없다면 완전한 어둠에 잠기리라.
“…현아.”
잠깐 둘이만 있게 되자, 에린이 은현을 불렀다.
“응?”
“혼자 이곳에 내려와 있었어?”
이 게이트 아티팩트는 확실히 편리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활성화를 시켜 공간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이동해야 하는 곳에 반드시 이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제약이 존재했다.
즉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에 두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고 활성화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위험할 뻔했잖아! 이곳에 뭐가 있는 줄 알고!”
“미리 확인해보고 내려온 거야. 그게 아니었으면 아무리 검증이 필요했다고 해도 너를 이곳에 혼자 들어갔다가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어.”
은현은 에린이 리오드와 공략 인원 병력들을 마중 나간 동안, 혼자서 싱크홀 아래로 내려와 게이트를 설치했다.
그러면서 감지를 통해서 이 싱크홀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무언가들에 대한 탐색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무런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에린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으리라.
[신수 아이가 잘 말하고 있구나. 더 따끔히 혼내주어라.]
심지어 그 무모한 행동을 힐난하는 에린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베르단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뜯어말렸지만, 은현은 고집스럽게 베르단디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하지만…. 저도 무턱대고 내려온 게 아니잖아요. 제대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확인하고 내려왔고, 이곳을 공략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게이트만 설치하겠다는 거였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혼날 일인 걸까.
“게이트 설치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잖아! 차라리 나랑 같이 내려와서 현이가 망을 봐주고 내가 해줘도 됐는데….”
“걱정은 고마워. 그래도 리오드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이곳에 진입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어.”
은현은 쓰게 웃으며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여간 자신의 아내들이나 여신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에린이 결국,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치…. 한 번만 더 이러면 진짜로 나도 가만 안 있을 거야.”
“가만히 안 있으면?”
“일리아나님한테 다 일러바칠 거야!”
“…그건 좀 무서운데.”
에린의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쓸어내려 주는 은현의 손이 멈칫할 정도다.
[괜찮은 생각이구나.]
베르단디 또한 묘수를 떠올렸다는 듯 에린의 막무가내식 경고에 공감을 표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은현은 리오드를 선두로 게이트를 차례차례 넘어오는 기사들을 안내하는 것에 시선을 돌려 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50명의 인원은 지상에 대기시켜두었다.”
“그래야겠지.”
은현은 정석적인 리오드의 판단에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공략을 위해서 200명이라는 인원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200명 전원을 이 싱크홀에 투입시키는 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은현은 이 싱크홀이 서른 명이 넘는 모험가들을 집어삼키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있는 장소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확신과 판단이 달랐을 때를 대비한 병력도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카인님. 이걸 기사분들에게 전달해주세요.”
“이건 뭡니까?”
은현이 리오드와 카인에게 내민 것은 기다란 막대 모양을 한 봉이었다.
손잡이의 끄트머리에 달린 원형 구체에 마력을 흘려 넣자 구체가 발광하며 어두 껌껌한 내부의 시야를 밝혔다.
그 효과를 본 카인이 눈을 빛내며 이 도구의 용도를 알아차렸다.
“등불이로군요.”
“맞습니다.”
이런 어두운 장소에서 빛은 자신의 시야를 밝혀주는 도구이지만, 반대로 마수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리스크도 동반한다.
은현이나 에린이야 이러한 등불 없이도 적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긴 했지만,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이나 모험가들은 그렇지 못하다.
적어도 리스크를 지더라도 최소한이라도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곧바로 보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싱크홀 내부의 탐색 준비는 은현의 사전준비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리고 마침내 탐색이 시작되었다.
150명의 대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탐색대는 몹시 조용했다.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고, 텁텁한 지하의 흙냄새가 가득한 공기와 등불이 닿지 않는 전방의 어둠은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가득 불러일으켰다.
싱크홀 내부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기사들의 갑옷에서 생기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전부였다.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는 무거운 정적이 이어진 가운데, 약 30분의 탐색이 진행되고 휴식의 시간이 주어졌다.
“후우….”
절반은 경계를 서고, 절반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암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토해냈다.
교대로 숨을 돌리는 것으로 약 20분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리오드가 은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지?”
“…마치 개미굴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네.”
“개미굴?”
처음 듣는 단어에 리오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개미가 구멍을 파고 모여 사는 굴이지.”
개미굴은 작은 굴을 시작으로 일개미들을 만들어내고 규모가 커지면서 점점 다양한 용도의 방들이 생겨나는 굴을 말한다.
식량 창고, 새로 태어날 예정인 알들을 보관하는 장소, 쓰레기장, 여왕개미의 방.
용도는 다양하다.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리오드가 보기 드물게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손톱만 한 벌레인 개미들의 생태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은현의 지식이 신기했다.
“…징그러워.”
벌레를 싫어하는 에린도 질색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 그냥 어쩌다 보니. 내가 신경 쓰이는 점은 그게 아니야.”
은현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리오드와 에린에게 보여주었다.
탐색이 진행되면서 탐색대가 걸어온 길을 맵핑해둔 지도였다.
지도에는 이곳까지 오면서 지나쳤던 갈림길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마주친 갈림길만 총 3개야.”
30분 동안 탐색을 진행하고 갈림길을 3개 마주쳤다는 것은, 거의 10분에 1개꼴로 갈림길이 나왔다는 뜻이다.
에린은 은현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굉장히 복잡한 구조네.”
“그렇지.”
탐색을 진행하면서도 무수히 많은 갈림길을 마주칠 것이 분명하고, 아무리 맵핑을 해둔다고 하더라도 방향감각조차 제대로 확신할 수 없는 이곳에서는 길을 잃는 것이 너무 쉬웠다.
“지나온 갈림길들은 모두 표시를 해서 방향이라도 알 수 있도록 해야겠군.”
“맞아.”
“…현아.”
싱크홀 탐색에 대한 회의를 나누고 있을 때,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에린이 긴장한 목소리로 은현을 불렀다.
전신에 소름이 돋아 몸을 살짝 떨었던 에린은 어느샌가 은현의 셔츠 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뭔가가 있어.”
느껴지는 기척은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과 흡사하다는 위화감이 에린을 긴장케 했다.
이야기를 들은 리오드의 조치는 빨랐다.
“전원! 경계해라!”
휴식을 취하고 있던 기사들의 태도가 일제히 돌변하여 각자가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도록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에린이 쳐다보고 있는 방향을 모두 주시한 가운데, 새까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일렁이며 움직였다.
키릭
성대를 긁는듯한 끔찍한 소리.
그것은 웃음 소리 같기도 했고, 고통에 찬 비명 같기도 했다.
이내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들을 보고, 기사들이 경악했다.
“저, 저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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