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29화 (612/730)

〈 629화 〉 629. 싱크홀(1)

* * *

“…왜 여기에?”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하고 뼈만 남은 백골의 사체들을 보고, 에린은 작게 중얼거렸다.

이들은 티르니스령 지부의 모험가 길드에서 은현에 대하여 저속한 농담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던 모험가들이었다.

사람의 생김새를 특정할 수 없는 사체들을 보고 에린이 이 사체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들 때문이다.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지만,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는 아직 에린의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아마도 그때 길드를 나오고 바로 이곳으로 향해왔던 게 아닐까.”

은현은 그렇게 그들의 사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추측했다.

그들이 이곳으로 향해온 이유를 추측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사라진 모험가들의 장비가 탐났던 거겠지.”

약 서른 명에 가까운 모험가가 행방불명으로 처리되면서 소식이 끊겼으니, 만약 그들이 사망했다면 주인이 없어진 장비들이 욕심나는 것도 당연하다.

아마도 은현이 주었던 두 병의 최상급 포션도 있었으니, 최악의 상황에서 그 포션을 사용하고 도망친다면 최소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바보들.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잖아.”

에린은 적잖게 한숨을 내쉬었다.

은현의 추측이 너무도 허무하고 안일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 모험가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제법 손상되지 않은 고가의 장비를 주웠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무엇이 있을지를 알고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에린은 세상에 아직도 자신이 어찌하지 못하는 위험한 것들이 가득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조차도 그럴 진데, 이제 막 신참의 딱지를 뗀 동위계 모험가들이라면 상위 마수들을 직면한 것만으로도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을 터.

자기는 괜찮을 것이라,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안일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판단이 너무나도 어리석었다.

“모험가란 직업이 원래 그렇잖아.”

대부분의 모험가가 이러한 안일함과 경솔함으로 인해 많이들 죽고는 한다.

이 안일함과 경솔함 속에서 운이 좋게 살아남고, 트라우마와도 같은 끔찍한 경험을 이겨내고 교훈으로 삼아서, 모험가들은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현재 은위계, 금위계의 모험가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을 가까이 이러한 경험들로 경력을 쌓으면서 차근차근 자신의 실력을 쌓아 올린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저 어리석었고, 운이 좋지 못했다는 것으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는 아주 흔한 죽음이었다.

“…그렇네.”

에린은 은현의 짧은 설명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선택을 내리고 행동을 하던, 그것은 모험가의 자기 책임.

그들에게 드는 에린의 감정은 힘이 없는 무력한 자에게 보내는 동정과 안타까움보다는 어리석은 판단을 한 자에게 보내는 한탄에 가깝다.

“바보들….”

에린은 복잡한 표정으로 모험가들의 백골 사체를 응시했다.

그들과 실랑이가 있었으며 은현을 헐뜯고 뒷담화를 했었던 벌을 받길 바라긴 했지만, 그것이 그들의 죽음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이윽고 흘끗 거대한 구덩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짙은 어둠이 가득한 싱크홀은 불쾌한 기분 마음속을 가득 채운다.

“어떻게 할 거야. 현아?”

에린은 자신과 마찬가지고 거대한 검은 구덩이 속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은현에게 의견을 물었다.

“…….”

은현은 에린의 물음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감지를 통해서 진지한 얼굴로 싱크홀 내부를 탐색하고 있었다.

‘뭔가가 있을 것 같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이게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리는…. 없고.’

싱크홀은 보기 드문 현상인 것은 맞지만, 자연적으로 아예 발생할 수 없는 현상은 아니다.

그저 정말로 크기만 큰 커다란 구덩이로 보일 가능성도 있어도, 모험가들의 백골 사체가 이곳에 떡하니 있는 이상, 이 은현은 이 상황을 가볍게 볼 수 없었다.

이 싱크홀의 아래에 무엇이 자리를 잡고 있을지는, 은현으로서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서른 명이 넘는 모험가들을 간단히 지워버리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확신에는 오랜 경험 속에서 많은 사선을 넘나 들어보았던 은현의 감과도 같은 부분도 작용했다.

“…리오드와 기사단을 기다리자.”

저곳을 둘이서만 진입하는 건 무리다.

아무리 자신이나 에린이 신의 사도와 신수의 후예라고 하더라도, 일반적인 던전의 공략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도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혼자였다면 모를까, 은현은 저곳에 에린을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에린 만약 이곳에서 기다리라고 한다면….”

“절~대로 싫어!”

에린은 은현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것을 거부했다.

인상을 팍 쓰며 싫다는 것을 얼굴로,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에린의 반응을 보고,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은현이 에린을 저 싱크홀 안으로 데려갈 수 없듯이, 에린 또한 은현을 저곳에 무방비의 상태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저 위험한 곳에 보낼 수는 없다는 그녀의 단호한 태도가 기쁘면서도, 그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다는 것이 몹시 씁쓸하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저곳에 내려가 신의 사도로서의 당연한 의무.

하지만 그 선택을 망설이는 것은 신의 사도가 아닌, 가정을 가지고 있는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우선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현은 변했다.

[뭐 어떻느냐.]

은현의 마음을 읽은 베르단디가 기쁜 마음을 표현하며, 그의 뺨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나는 아이의 그 생각을 존중한다. 망설이지 마라.]

“…알겠습니다.”

베르단디의 허가도 떨어졌기 때문인지,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에 대한 책임감을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은현과 에린은 싱크홀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야영을 시작했다.

사망한 백골의 사체들이 있는 곳에서 야영한다는 것이 여간 껄끄러운 일이기도 했고, 에린의 후각으로 발견한 정체불명의 거대 싱크홀이 서른 명 이상의 모험가들을 실종되게 만들어버린 원인이라는 것은 틀림없을 터.

저 싱크홀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데, 가까운 곳에서 야영하는 어리석은 바보는 없다.

하지만 당연히 경계를 해야 하는 것도 당연했기에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야영지를 설치할 수도 없었다.

“이걸 설치해.”

야영지의 설치를 끝낸 은현은 에린에게 말뚝의 모양을 한 아티팩트 수십 개를 건넸다.

땅을 울리는 지면의 진동을 감지해서 설정해둔 일정 수준의 기준치를 넘어가게 되면 큰 소리가 나도록 만든 경보장치 아티팩트였다.

거대 싱크홀의 크기는 생각보다 크기가 커서 싱크홀의 지름에 일정한 간격으로 경보장치 아티팩트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수십 개가 필요했다.

“응.”

은현과 에린은 그렇게 경보장치를 설치하여, 싱크홀 안에서 무언가가 기어 올라온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조치했다.

평범한 사람보다 특히 예민한 에린의 감각도 있으니, 이상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일 터.

두 사람은 그렇게 리오드와 아르티아 기사단이 오기를 기다리며 야영지에서 대기했다.

◆ ◆ ◆

약 2일의 시간이 지나고, 리오드와 아르티아 기사단이 도착했다.

에린은 멀리서 보이는 행군의 행렬을 발견하고 손을 들어 올렸다.

“안녕하세요. 리오드님. 그리고 기사단 여러분!”

가까이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해오는 에린의 모습에 기사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부터 위험한 사선으로 향하는 행군의 한창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긴장으로 가득했던 마음 한구석이 풀어지고 안정을 찾는다.

“음.”

“오, 아가씨 안녕? 오랜만이네?”

제법 안면이 있는 선임 기사들은 에린의 인사를 받고 친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가기까지 했다.

은현과 통신용 수정 구슬을 통해 정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던 리오드는 자신을 마중 나온 에린을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은 흘끗 그의 뒤를 바라보며 행군을 해온 병력의 구성을 탐색했다.

기사들의 숫자만 약 200명이 넘고, 이외의 인원이 30명.

이중 티르니스령 지부의 베스타 신전으로부터 지원해준 사제들은 고작 5명뿐.

잔뜩 긴장한 듯 움츠려 있는 모습이 앞으로 공략할 예정인 장소에 대한 악명을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중위 사제는 없나 보구나.’

경험이 많은 베테랑 사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신전 측에서 이번 일에 사제를 지원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아마도 베스타 신전 안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아니에스와 친분이 있는 리오드 때문이리라.

사제들과 짐꾼을 제외하면 이번 지원에 응해준 모험가들은 2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모험가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스스로 지원해오고도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 빠져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모험가 사이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금위계 모험가들조차도 소식이 끊긴 장소에 왔으니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긴 했다.

“그 녀석은 어디있지?”

그렇게 공략 인원의 구성을 살펴보고 있을 때, 에린은 생각을 접고 리오드의 물음에 답했다.

“아, 현이는 지금 입구에서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러지.”

아르티아 기사단과 공략 원정 병력은 약 10분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에린. 특별한 일은 없었어?”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기사들 사이에서 에린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물어본 것은 에이라였다.

순간 에린의 머릿속에 자신과 실랑이가 있었던 모험가들의 백골 사체가 떠올랐지만, 에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것을 부정했다.

그것은 경험과 위기의식이 부족했던 동위계 모험가의 안일한 판단으로 만들어진 비참한 결말이었지만,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흔해서 씁쓸한 결말 그 자체였다.

굳이 에이라에게 말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다.

“…그렇구나.”

에이라는 에린의 표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지만, 굳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에린의 눈치를 보고 더는 묻지 않았다.

“그보다 언니는 이번 원정 공략에 참여하셔도 괜찮으셨던 거에요? 그…. 테레지아님이….”

늦둥이 막내딸을 낳고 산후조리에 들어간 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은 테레지아를 두고 리오드와 에이라가 동시에 자리를 비운 것이 의문이었던 에린의 물음에, 에이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머니가 꼭 부탁하셨거든. 괜찮으니까 아버지와 함께 무사히 돌아와달라고.”

에이라는 테레지아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은현이 지어주었던 보약과 엘레노아의 축복으로 호화스러운 케어를 받고 있는 탓인지 테레지아의 회복 경과는 몹시 빨랐다.

그러지 않았다면 에이라도 이번 원정 공략에 참가하여 리오드를 돕는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20분 정도의 행군을 이어간 끝에, 리오드와 기사단 병력은 은현이 있는 야영지에 도착했다.

“오, 왔냐?”

“음.”

은현에 대해 잘 모르는 티르니스령의 사제들이나 모험가들은 살짝 당황하며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왕국 최고의 기사라고 불리우는 페르니아스의 검을 스스럼없이 부르는 그의 태도는 마치 오랜 친분을 쌓아온 친구 사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는 아르티아 기사단원들의 태도가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을 더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의문과 당황을 풀어줄 시간적인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다시 행군을 개시한 리오드와 기사단 병력은 은현의 안내로 빠르게 야영지까지 도착했다.

곧바로 은현의 안내에 따라 거대한 싱크홀을 직접 목격한 리오드와 원정 공략 인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굳히며 긴장했다.

“…이 아래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내 생각은 그래.”

“휴식을 취하고 10분 뒤 바로 내려가서 탐색을 진행하고 싶다. 가능한가?”

“물론. 이미 준비는 마쳐두었어.”

은현은 리오드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티르니스령에서 보급과 휴식을 마치고 출발했다는 소식을 통신으로 들은 순간부터 싱크홀 내부로 진입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끝내둔 상태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내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은현의 이야기에, 리오드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가도록 하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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