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8화 〉 628. 미확인 던전 탐색(5)
* * *
은현과 에린은 일단 티르니스령으로 복귀했다.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지만 이미 하늘은 해가 지면서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략한 던전으로 인해 쌓인 피로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적은 편도 아니었다.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소모한 마력과 몇 시간을 가까이 경계를 유지하면서 곤두서 있던 신경을 유지하느라 적지 않은 정신력을 소모했다.
던전의 공략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이거나, 아직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라면 모를까.
무엇보다 던전이 아니라, 이 숲속 어딘가에 금위계 모험가조차도 어떻게 하지 못할 위험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숲에서 단둘이 노숙을 하는 것도 악수나 다름이 없다.
도보로 이동한다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 거리지만, 레토나라는 사기적인 이동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이상, 현 상황에서는 굳이 노숙할 이유도 없었다.
“조사도 조사지만, 일단은 복귀하자. 모험가 길드에도 보고해야 할 것 같아.”
“응.”
에린은 은현의 판단에 동의했다.
그녀 또한 피로를 풀지 못한 상태도 이 숲에서 노숙하는 건 사양이었다.
두 사람은 레토나를 타고 곧바로 티르니스령으로 복귀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당연히 모험가 길드였다.
비상시에 대비하여 당직 근무를 서고 있던 길드의 접수 직원이 은현과 에린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버, 벌써 오신 겁니까?”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아침 일찍 길드에 보고하고 출발했던 두 사람이 24시간도 안 돼서 복귀를 해왔으니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했다.
“길드장님은 계십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접수대에서 은현과 에린을 맞이했던 직원은 급하게 위층으로 올라갔다.
원래라면 길드장도 진즉에 퇴근하여 집으로 향했을 시간이지만, 티르니스령의 길드장은 현재 이 길드 건물에서 숙식하면서 상시 대기중인 모양이었다.
“성실한 분이시네.”
“그러게.”
상황을 이해한 에린이 살짝 감탄했다.
생각해보면 회의실에서 처음 보았던 길드장의 모습도 에린의 눈에는 인상적이었다.
제대로 된 숙면을 취하지 못했는지, 두 눈은 퀭했고 머리도 부스스했던 것이 아마도 이번 사태 때문에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에서 나무 계단을 차고 황급히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버, 벌써 오셨습니까!?”
숙직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인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제대로 정돈도 하지 못하고, 헐레벌떡 뛰어온 길드장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은 처음 은현과 에린을 맞이했던 길드의 접수 직원과 같았다.
“급하게 보고해야 할 건이 있어서 곧바로 복귀했습니다.”
“…….”
은현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용건을 전하자, 길드장도 당황스러운 안색을 감추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
“회의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접수 직원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도착한 은현과 에린은 곧바로 던전의 공략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는 위험을 측정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미확인 던전을 공략했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건 안에서 획득한 던전 코어입니다.”
길드장은 은현이 내민 던전 코어를 확인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생각보다…. 아니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만?”
“그렇죠.”
은현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던전의 핵인 던전 코어는 그 던전의 등급에 따라 그 크기가 나뉜다.
길드장이 의문을 품은 점은 금위계 모험가들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던전 치고는 그 던전 코어가 너무도 작았다는 것이다.
저 정도의 크기는 중하급 던전에서나 나오는 크기가 아닌가.
길드장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은현을 바라보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다른 던전의 코어를 가져와서 던전을 공략했다고 거짓된 보고를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저급한 사기를 칠 양반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하지만 길드장이 보내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도, 은현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이 무언가를 깨닫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길드장은 생각에 잠겼다.
이내 한 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리고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설마….”
길드장은 조심스레 그 가능성을 입에 담았다.
“진짜로 위험한 건…던전이 아니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적어도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30명이 넘는 모험가들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워버린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던전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는 것.
그것은 그 발언만큼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던전 내부에 있는 마수가 외부로 나오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던전 내부의 마수가 계속해서 생성되고, 그 숫자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게 되면, 그때 마수들이 외부로 쏟아져나오며 범람하게 된다.
이것이 던전의 스탬피드 현상.
대량의 마수들이 동시에 출몰하면서 생기는 재난은 그야말로 악몽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이 현상은 던전 내부에 있는 마수의 숫자가 수용량의 한계치에 달하기 전까지는 일어나지 않는다.
즉 유예 시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던전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수는 금위계의 모험가 파티조차도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이것이 던전 안에서 외부로 기어 나온다면 그야말로 재앙이 따로 없다.
“그럴 수가….”
길드장은 경악했다.
자신이나 티르니스령의 주인인 영주가 기를 쓰고 던전을 공략하기 위한 수단을 모으고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마수가 외부로 나와 영지를 휩쓸지도 모르는 크나큰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미 그 강력한 마수가 외부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면, 언제 티르니스령으로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막말로 지금 당장, 동이 트지도 않은 이 새벽에 습격해올지도 모르는 일.
“…….”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길드장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곧바로 답을 내리지 못하는 그는 머릿속으로 깊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은현이 제시한 가능성은 너무나도 충격적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처음에는 허무맹랑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생각을 해보면 해볼수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야기해온 것이 은현과 에린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말도 안 된다며 부정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판단을 내리냐에 따라 티르니스령 영지민들의 앞날이 결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깨가 더욱 무거웠다.
하지만 길드장은 끝내 답을 내놓았다.
“…영주님을 뵙고 이야기를 전달하겠습니다.”
은현을 마주 보는 길드장의 퀭한 두 눈에는 어느샌가 힘이 실려있었다.
고심 끝에 결단을 내린 눈빛이다.
“알겠습니다.”
은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두 분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휴식을 취한 뒤에 다시 나가서 공략했던 던전의 인근을 조사해볼 생각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상태로 있는 건 저희도 찜찜하니까요. 저희가 급하게 복귀를 서두른 이유는 던전의 공략 사실과 함께 저희가 떠올린 이 가능성을 길드장님께 전달해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리오드와 아르티아 기사단이 티르니스령에 도착하기 전까지, 은현도 가능한 많은 정보를 모아두고 싶었다.
은현의 계획을 들은 길드장은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길드장에게 보고를 마치고, 모험가 길드를 나오자, 에린이 은현에게 몸을 기대어 왔다.
“현아…. 졸려어….”
“그래. 이제 자러 가자.”
티르니스령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에린은 조금씩 비몽사몽 한 상태로 졸고 있었다.
은현은 흐느적거리며 자신에게 기대어오는 에린을 등에 업었다.
미리 잡아둔 고급 여관에 가서 하룻밤 숙면을 취했다.
◆ ◆ ◆
“아이야. 정말 괜찮은 것이냐?”
“뭐가요?”
이제 막 날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
운전석에 앉아서 레토나를 운전하고 있는 은현은 흘끗 백미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쉬지 않고 이렇게 계속 움직여도 괜찮은 것인지, 나는 굉장히 걱정되는구나.”
뒷좌석에 앉아 있는 이는 아주 오랜만에 실체화를 한 베르단디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실체화하지 않는 여신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사도에게 늘 하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으응….”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거친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탓인지, 가끔가다가 덜컹거리는 차체에 에린이 살짝 인상을 쓰며 칭얼거렸다.
유독 아침에 약한 에린은 아직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했다.
여관에서 휴식을 취한지, 약 3시간.
은현이 에린을 업고 영지를 나와 다시 공략했던 던전을 향하여 이동하고 있는 와중이 한창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에린을 달래듯 베르단디는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는 에린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내려 주었다.
“괜찮아요. 이 정도야. 뭐.”
은현은 피식 웃으며 베르단디의 걱정을 흘려넘겼다.
실제로 은현에게 이 정도 피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직 실체도 확인하지 못한 정체불명의 마수라는 존재가 굉장히 신경이 쓰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몸과 마음 중 둘 중 하나밖에 편할 수 없다면, 은현은 몸이 조금 힘들더라도 마음이 편해야 하는 쪽의 성향에 가깝다.
“아이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만….”
베르단디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걱정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응?”
순간 잠에 취해있던 에린이 두 눈을 번쩍 뜨며 창문 너머의 한곳을 응시했다.
은현은 뒷좌석에서 몸을 일으킨 에린의 모습을 확인하고 브레이크를 밟아 정차했다.
“무슨 일이야?”
아침에 약한 편인 에린이 정신을 번쩍 든 이유는 그녀를 그렇게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심각한 무언가를 느꼈다는 뜻.
유독 감각이 예민한 에린은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이상한 냄새가 나.”
“냄새?”
그것은 은현에게는 없는, 신수의 특성을 물려받아 생겨난 예민한 감각은 구미호를 제외하면 오직 에린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고유 능력이다.
“티르니스령에 복귀할 때는 이런 냄새 못 맡았는데….”
집중하여 그 냄새를 자세히 맡아 본 에린이 기분이 나빠진 듯 인상을 찡그렸다.
“뼈 냄새야.”
“뼈?”
“응.”
사람의 냄새도 아니고, 뼈의 냄새라니 굉장히 독특했다.
에린은 자신이 맡은 기분 나쁜 냄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보통 이런 냄새…. 오래 썩은 백골 사체에서 많이 나던데…. 조금 이상해.”
모험가 활동을 하면서, 솔로로 유적을 탐험하다 보면 자주 맡게 되는 냄새였다.
처음에는 굉장히 역해서 구토도 했었지만, 2년 차가 될 때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이런 것마저도 익숙해져야 할 때가 왔었다.
에린의 설명을 들은 은현은 그녀에게 자세히 물었다.
“썩은 냄새는 아니야.”
“…백골의 사체는 있는데, 썩지는 않았다는 얘기야?”
“…아마도?”
“베르단디님.”
“그래.”
베르단디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체화를 풀었다.
반투명한 상태로 전환된 여신과 함께, 은현은 에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응. 이쪽이야.”
점점 가까워지는 백골의 냄새는 점점 짙어져 갔다.
주위의 지형지물과 에린이 말한 백골 사체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은현은 전방을 향해 광범위한 마력을 흩뿌려 감지를 발동시켰다.
“…….”
은현은 자신의 감지에 걸린 어떤 것을 느끼고, 은현은 브레이크를 밟아 정차했다.
썩지 않은 백골 사체의 위치를 찾기 위해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에린도 점점 얼굴이 굳어져 갔다.
“현아. 이거….”
에린은 은현처럼 광범위하고 정밀한 감지로 지형지물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신수의 특성으로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피부로 느껴지는 이질적인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특정의 한곳으로 모여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흘러가는 공기의 흐름.
“그래. …찾은 것 같네.”
은현이 발견한 것은 땅바닥에 생겨난 거대한 구멍이었다.
그 끝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싱크홀의 앞에, 총 다섯 구의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
에린은 작게 탄식했다.
살점이 존재하지 않는 백골의 사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장비와 옷들은 남겨두고, 마치 살점만을 깨끗하게 먹어치운 것만 같은 깨끗한 백골들의 모습은 몹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에린이 탄식한 이유는 그 백골의 사체들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들 때문이었다.
그것은 에린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비들이었으니까.
“이거 그 사람들….”
모험가 길드에서 저속한 농담으로 은현의 뒷담화를 이어갔던 남성 모험가 파티가 착용하고 있었던 장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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