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7화 〉 627. 미확인 던전 탐색(4)
* * *
“준비는 끝났나?”
“예. 단장님. 모두 마쳤습니다.”
담담히 묻는 리오드의 질문에, 카인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비상 병력의 주둔을 남겨두고, 리오드를 포함한 2개 중대의 규모로 총 200명의 기사가 출정의 준비를 마쳤다.
“…그렇군.”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카인은 리오드의 심기가 적잖게 불편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아르티아 기사단이 창설되고 리오드의 기사다운 모습에 감화되어 성인이 되자마자 기사단에 입단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무뚝뚝한 리오드의 얼굴 변화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의 가족과 은현을 비롯하여 젊은 시절을 생사고락에서 함께 보냈던 팀원들을 제외하고는 몇이 되지 않는다.
카인은 그 몇 되지 않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부단장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오랫동안 리오드를 보좌해왔던 카인이기 때문에, 미묘한 리오드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리오드의 심기가 몹시 불편한 이유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공작부인은 괜찮으실 겁니다.”
“…….”
테레지아가 막내딸을 출산한 이래로 약 2주의 시간이 지났다.
출산 후에 허약해진 몸의 기력을 회복시키는 기간이 한창인 지금, 원정으로 자리를 비워야만 자신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리라.
엘레노아와 은현이 고위계의 축복과 산후조리에 좋은 보약과 음식들을 전해주어 빠른 회복이 진행되고는 있다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1개월 정도는 요양해야 한다는 은현의 조언을 지키지 못한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왕국 기사단장의 책임, 한 집안의 가장이며 남편의 책임 사이에 놓인 리오드의 고민을 아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출발하지.”
이내 리오드는 마음을 다잡은 얼굴로 단장실을 나왔다.
불편한 심기를 가슴 깊숙이 밀어 넣은 그의 표정은 왕국을 수호하는 최고의 기사라는 칭호에 걸맞은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영웅의 면모를 그대로 선보였다.
아르티아 기사단의 행선지는 정체불명의 미확인 던전이 있는 티르니스령.
리오드는 은현의 말을 떠올렸다.
먼저 가서 조사 좀 하고 있는다.
◆ ◆ ◆
“혹시…오늘 바로 두 분이 만 던전을 공략하시려는 겁니까?”
미심쩍은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길드장의 말에 은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너무 위험한 판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무모하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설득하는 길드장의 태도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많은 모험가를 응대해본 길드장은 금위계의 모험가들 대부분이 굉장히 자존심이 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고 경험과 실력을 쌓으며 금위계라는 등급을 쟁취한 모험가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과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무시당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에린처럼 모험가 길드 측을 입장해주거나 배려해주면서 예의 바른 태도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금위계 모험가들 대부분이 굉장히 독선적이고 제멋대로인 인성을 지닌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은현과 에린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모험가 길드 측으로서는 두 사람을 대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금위계 모험가가 구성된 모험가 파티 하나가 소식이 끊겨버린 상태입니다.”
심지어 그 파티의 숫자는 총 여섯.
그런 파티마저도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상황일진데, 어떻게 단둘이서만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것 안심하고 맡길 수가 있을까.
“걱정 감사합니다.”
은현은 웃으며 답했다.
길드장이 자신과 에린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걱정을 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완전히 둘이서만 공략을 진행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럼…?”
“저희는 조만간 티르니스령으로 들어올 아르티아 기사단과 함께 공략을 진행할 생각이거든요.”
“예? 그런데 왜….”
“저와 제 아내가 지원하는 포지션은 척후 쪽입니다. 그래서 던전으로 향하는 길이나 내부의 초입 부분 정도는 사전에 조사를 해두고 싶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길드장은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신기한 눈으로 은현과 에린을 쳐다보았다.
원래 모험가란 직업은 자신의 몸과 장비가 전재산인만큼, 위험을 달고 사면서 일확천금이라는 꿈을 노리는 직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협업을 하거나 이익을 나누려는 행동, 생각들을 전혀 하지 않는다.
금위계 등급의 모험가라면 다른 모험가들과 파티를 맺으면서 그 이익을 나누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효율과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맺는 계약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모험가들은 공적인 기관이나 다름이 없는 왕국의 기사단이나 마법사단과 일을 공조하지 않는다.
특히나 던전의 공략 같은 경우에는 던전 안에 숨겨져 있는 금은보화를 발견하였을 때, 그것을 나누는 배분이 굉장히 귀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현은 처음부터 이 부분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지 당당하게 아르티아 기사단과의 협업을 밝혔다.
‘신기한 양반이네.’
다른 모험가들과는 다르게 출세나 성공, 재물에 욕심이 없고, 무엇을 위해서 움직이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기도 했다.
‘이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소문으로는 은현이 바로 에린이라는 여성을 모험가 일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금위계라는 등급을 달성시킬 수 있게 성장시킨 남자.
그 실력 또한 소문이 자자한 에린의 이상일 것임이 틀림없다.
길드장은 은현을 믿기로 결심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곧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부하를 시켜 은현이 요청한 미확인 던전에 대한 정보들을 모두 가져오도록 했다.
◆ ◆ ◆
정보를 모두 정리하고, 은현과 에린은 곧바로 티르니스령을 나왔다.
던전의 위치는 이미 모험가 길드의 보고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던전을 찾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아. 저기인가 본데?”
레토나에 탑승하고 있던 에린이 창 너머로 손을 뻗어 점점 가까워지는 던전의 입구를 가리켰다.
“그렇네.”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의 입구 부근에서 보이는 신비한 일그러짐은 그 동굴 내부와 이곳이 다른 차원으로 이어져 있다는 뜻.
즉 던전의 입구다.
“별거 없는 것 같은데….”
에린은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이상한 점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도저히 30명이 넘는 모험가들의 소식을 끊기게 할 정도로 위험천만한 던전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곳으로 오면서 마수들과 조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고블린이나 코볼트같은 잡스러운 마수들은 모두 겁도 없이 레토나에 달려들어 역으로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리고 던전의 입구에 도달하자, 은현과 에린은 레토나에서 내렸고 인벤토리 안에 다시 역소환시켰다.
“들어가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경계 단단히 하고.”
“응.”
아무리 그래도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던전이니 재차 주의를 주는 은현의 말에 에린은 허리춤의 레반테인을 꽉 쥐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언제라도 레반테인을 뽑을 수 있도록, 경계를 단단히 하는 에린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임전 태세를 취한 두 사람은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시야였지만, 어둠은 두 사람에게 아무런 제약도 되지 않았다.
은현은 감지를 이용하여 전방위의 경계를, 에린은 뛰어난 오감으로 던전 안의 흐름을 파악했다.
키애액!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은현의 왼쪽 부근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은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이미 소환하여 쥐고 있던 두 자루의 검 중 적월을 휘둘렀다.
이미 숨어있던 위치를 특정 당한 것도 모르고, 기습을 해온 마수의 머리에 정확히 적월의 칼날이 꽂혔다.
파지직!
뒤늦게 전류가 위로 튀어 오르면서 순간 던전의 내부를 환하게 비췄다가 다시 어둠이 덮쳐왔다.
마수의 머리, 이마 부근에 박혀있던 뿔에서 튀어 오른 전류를 알아보고, 에린도 마수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렘린이네?”
머리의 이마에 달린 뿔에서 전류를 방출시키는 특성을 가진 마수.
꽤 높은 출력의 전류에 직격 되면 그 순간 상대방을 새까만 숯검정이 되어버리는 위험성이 있는 마수로 막 신참의 딱지를 뗀 동위계 모험가들이 방심하다가 자주 목숨을 잃곤 하는 원인인 마수다.
하급 마수치고는 마력의 보유량이 높지만, 전류를 방출하는 특성만 제외한다면 왜소한 체구와 별 볼 일 없는 신체 능력은 최하급 마수인 고블린과 비슷했다.
은현은 양손에 쥐고 있던 적월과 청월을 역소환하고 단검 하나를 소환했다.
자신이 머리를 벤 그렘린의 시체를 해체했다.
어두운 시야 속에서도 망설임 없는 손놀림은 정확히 그렘린의 시체로부터 안에 숨겨져 있는 마석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단검을 역수로 쥐고, 손잡이의 끝에 파여 있는 원 안에 억지로 마석을 끼워 넣고 고정한다.
[한 자릿수 마법]
[라이트]
술식을 짜고 점점 마석이 자체적으로 빛을 내뿜더니 던전 안을 밝혔다.
주위가 훤하게 보일 정도로 밝지는 않았지만, 은현은 일부러 밝기를 조절했다.
이런 어두운 장소에서 빛은 자신의 시야를 밝혀주는 도구이지만, 반대로 마수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리스크도 동반한다.
은현은 마석이 고정된 단검을 전방으로 내밀며 어두운 던전 내부를 조금이나마 밝히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던전의 내부를 탐색하면서, 은현과 에린은 점점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에린은 의문이 쌓여갔다.
“…현아. 우리 잘못 온 거 아닐까?”
던전의 난이도 자체가 너무도 쉬워서, 드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이렇다 할 함정조차도 없고, 출몰하는 마수들의 수준은 은위계는 물론 재능이 있는 동위계의 모험가들에게도 공략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래서 에린은 의심했다.
어쩌면 잘못된 다른 던전을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고.
“아니. 모험가 길드에서 제공해준 지도에 표시된 던전은 이곳이 맞아.”
주위에 또 다른 던전이 있었다면, 그 던전의 위치도 표시가 되어 있었을 터.
이 근방에 존재하는 던전은 이곳 하나뿐이다.
“…여기 그냥 평범한 던전 같은데?”
겨우 이 정도 수준의 던전에 은위계 모험가들이 어떻게 되었을 리는 없다고 확신했다.
금위계의 모험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마수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던전의 최심부까지 도달한 은현은 이 던전의 코어를 가지고 외부로 나왔다.
“…이게 뭐야?”
에린은 왠지 모르게 허탈한 기분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아 답답하다.
도대체 30명이 넘는 모험가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현아. 우리 어떻게 해?”
아르티아 기사단이 공략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미확인 던전의 존재는 이미 자신과 은현이 공략해버렸다.
이대로 간다면 리오드를 포함한 약 200명의 기사들이 헛걸음을 하게 되는 셈.
에린의 물음을 들은 은현은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이 던전이 문제가 아니었던 거지.”
30명의 모험가들이 실종된 원인은 던전이 아니다.
“이 근방에, 무언가가 있어.”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상위권에 있는, 막강한 전력을 가진 금위계의 모험가조차 소리소문없이 지워버릴 정도로 기괴하고 불가사의한 무언가가 있다.
“우린 그걸 찾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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