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6화 〉 626. 미확인 던전 탐색(3)
* * *
에린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모험가 길드 건물 안의 무수한 모험가들이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선제공격도 공격이지만, 모험가들을 경악스럽게 만들었던 이유는 에린이 공격이 적중한 장소다.
남자 모험가의 고간 사이.
남성에게 있어서 목숨만큼이나 사수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 장소를 정확히 가격당했다.
“크…허어억!”
무시무시한 격통과 함께 낭심을 가격당한 남성 모험가가 바닥에 쓰러졌다.
“헉!”
그 광경을 목격한 모험가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양쪽 다리를 오므리며 중요 부위를 손으로 가드했다.
공격을 당한 것은 자신이 아니었음에도, 무의식의 본능에 따라 그것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같은 남자로서 저 고통을 상상도 하기 싫은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씨이…!”
하지만 정작 선제공격을 성공시킨 에린은 그러고도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정체성을 거의 끝장낸 것이나 다름이 없음에도, 그것은 에린에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이게 미쳤나!”
낭심을 공격당한 남성의 동료 모험가가 얼굴을 붉히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저 나도는 가십거리로 파티원들끼리 저속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던 그들에게는 에린의 등장과 갑작스러운 공격이 마른하늘에 날벼락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공격당한 남자는 자신의 파티원이며 생사고락을 함께해온 전우였다.
그것을 갚아주기 위해 에린의 멱살을 붙잡으려 했지만.
“야! 안돼!”
파티에 속해 있는 또 다른 동료 모험가가 그것을 뜯어말렸다.
“아, 왜! 지금 이 여자가 우리 선빵쳤잖아!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이 여자가 그 여자라고! 그 미친개라고 불리는 ‘푸른 여우’!”
얼마나 다급하게 말했는지 언성을 높인 모험가의 목소리가 건물 내부에 순식간에 퍼졌다.
“뭐?”
“저 여자가?”
“그 푸른 여우라고?”
갑작스러운 에린의 낭심킥으로 깔려 있던 경악스러운 정적이 깨지고, 길드의 내부는 수군거리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에린은 순식간에 자신에게 집중되는 이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은현을 비방했던 남성 모험가 파티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에린의 모습이 무척이나 사납다.
“자, 잠시만요! 싸움은 안 됩니다!”
뒤늦게 모험가 길드의 직원이 황급히 달려와 에린과 남성 모험가 파티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중재에 섰다.
“아, 저 여자가 먼저 우리를 공격했다고요!”
남성 모험가들이 에린을 삿대질하며 역정을 내면서 본인들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에 질세라, 에린 또한 재빨리 대답했다.
“저 사람들이 먼저 제 남편을 헐뜯고 비방했단 말이에요!”
“하! 소문이 그렇잖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 다 근거가 있으니까 그런 소문이 퍼지는 거지!”
“이게 진짜…!”
에린이 결국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고 남성 모험가들에게 다가가려 한순간.
“에린.”
길드 건물의 입구 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에린이 움찔 몸을 떨었다.
당장이라도 남성 모험가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려 했던 몸이 이내 딱딱하게 경직되고, 고개만이 천천히 돌아가 입구 쪽을 향했다.
“무슨 일이야?”
괜찮은 숙소에 방을 잡고 뒤늦게 모험가 길드 건물로 들어온 은현이었다.
은현은 시끌벅적함을 넘어서 험악해지려는 건물 내부의 분위기에 의아함을 품었고, 그 소란의 중심에 에린과 어떤 모험가 파티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혀, 현아. 그게….”
마치 잘못한 행동을 부모에게 들킨 어린아이처럼 당황하고 있는 에린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리고 더 당황한 건 사태를 처음부터 지켜보았던 모험가들과 공격을 당한 모험가 파티 당사자들이다.
“…뭐야?”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로 사납게 으르렁거렸던 에린이 은현이 나타나자마자 순식간에 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괴리감이 엄청났다.
느닷없이 공격을 당한 남성 모험가가 포함된 파티원들조차도, 그 갑작스러운 태도의 변화에 얼이 빠진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은현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소란의 중심인 에린과 남성 모험가 파티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다수의 모험가가 자신도 모르게 은현이 가는 길을 터주었다.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은현이 사정을 물어본 대상은 에린이 아니라 에린과 남성 모험가 파티의 싸움을 중재하느라 정신이 없는 길드 직원이었다.
곧바로 에린에게 사정을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보는 눈이 많고 모험가 길드라는 공적인 장소에서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는 길드의 관계자에게 사정을 듣는 것이 가장 옳은 판단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그게 저도 자세한 사정을 듣지는 못했지만,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은현은 길드 직원에게서 소란의 원인을 들을 수 있었다.
남성 모험가 파티원들이 자신들끼리 하는 이야기로 가십거리를 입에 담았고 저속한 대화와 농담을 이어갔으며, 에린이 그것을 듣고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 사건의 전말.
‘그냥 무시하지. 아니. 그럴 수도 없었으려나.’
은현은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남성 모험가 파티가 확실히 저속한 대화로 자신을 헐뜯는 뒷담을 하기는 했다지만,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이런 가십거리를 씹고 뜯으며 즐기는 것은 어딜 가나 있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곳은 아르미타스 공작령도 아니고 먼 거리에 위치한 티르니스 백작령.
타이밍 좋게 당사자가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는 그들 또한 생각도 하지 못했을 터.
게다가 이렇게 소란스러운 길드 건물 안에서 자신들의 대화를 정확하게 캐치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청력을 가진 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은현이라면 그냥 똥을 밟았다는 식으로 넘어갈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슬쩍 에린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에게는 순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성 모험가 파티를 흘깃거리는 눈길은 아직도 사납기 그지없다.
‘바쁘니까 일단은 정리할까.’
은현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이런, 죄송하게도 제 아내가 무례를 저질렀군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쓴웃음과 함께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은현이 정중한 사과를 했다.
“현아! 저 사람들 현이를 욕하고 있었다니까!? 왜 이쪽이 사과를 해야 하는 거야!”
“그래도 먼저 공격한 건 에린이니까. 잘못된 건 순순히 인정해야지.”
“그치만…!”
“아무 때나 힘을 쓰면 안 되지. 그리고….”
은현은 흘끗 남성 모험가 파티를 바라보며 그들의 수준을 가늠했다.
아직 에린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나이대.
이제 막 성인이 되어 20대가 된 청년들은 이제 막 신참의 티를 벗어던지고, 빠르면 동위계 등급을 달게 되는 단계다.
은현은 이 나이대의 젊은 청년 모험가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막 성장하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언젠가는 자신이 이쪽 업계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꿈을 꾸기 시작하는 시기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나이대의 모험가들은 모두 그렇게 신참에서 살아남아 동위계에 달성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갖게 되는 시기라는 것은 그동안 많은 모험가를 봐오면서 은현이 경험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막 자라나는 새싹을 이렇게 만들면 안 되지. 에린은 금위계잖아. 그에 대한 책임을 가져줬으면 좋겠어.”
“…응.”
은현이 단호히 말하자 거세게 반발했던 에린의 태도가 점점 수그러들었다.
“흥!”
하지만 고개를 홱 돌렸을 뿐,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는 절대로 반성할 생각이 없었다.
에린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윽고 은현은 남성 모험가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희 쪽이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건 여러분들이라는 것도 명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크.”
반박을 하지 못하고 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에린을 알아보고 동료를 말렸던 남성 모험가가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하지만….”
“허으윽….”
남성 모험가는 흘끗 낭심을 발차기로 가격당하여 아직도 바닥에 기어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은현은 무언가를 꺼내는 시늉을 하면서 인벤토리를 발동시켜 안에 넣어둔 포션을 두 병 꺼내어 남성 모험가 파티원에게 건넸다.
“이…건?”
“최상급 포션입니다. 가격당한 곳이 가격당한 곳이다 보니,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으니까요. 제대로 치료해주세요.”
“하지만 어째서 두 병을…?”
두 병의 포션을 받은 남성 모험가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면서 포션을 쥐고 있는 양손을 덜덜 떨었다.
일반적으로 최상급 포션의 가격은 동위계 모험가인 자신들이 구매하기엔 굉장히 비싼 축에 속한다.
근 3개월 동안 선박의 호위 임무를 수행해야지 한 병을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금액의 포션이 하나도 아니고 두 병이나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이 손을 덜덜 떨게 만들었다.
설마 저런 비싼 포션을 내놓을 줄은 몰랐는지, 사태를 관망하던 길드 직원이나 다른 모험가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사과의 마음을 담은 제 성의라고 생각해주시죠.”
두 병의 포션을 받은 남성 모험가는 순간 눈을 빛냈다.
치료에 사용하라고는 했지만, 남은 한병은 어떻게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파악했다.
“감사합니다! 야! 빨리 저 자식 부축해!”
“아, 알았어!”
남성 모험가 파티는 황급히 동료 모험가를 부축하며 길드 건물을 부리나케 떠났다.
소란의 원인이었던 이들이 나가자, 모험가들은 이내 흥미를 잃으며 다시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건물 안을 가득 메웠다.
“…….”
슬쩍 에린의 표정을 살펴보니, 입술이 삐죽 나온 것이 아직도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화났어?”
“몰라! 흥!”
팔짱을 끼며 고개를 홱 돌리는 에린을 보고 은현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가 화를 내는 이유는 은현도 이해했다.
자신을 헐뜯고 비방한 상대에게 도리어 호의를 베풀다니, 정말로 납득이 가지 않았을 터.
“나는 에린이나 다른 아내만 나를 이해해주면 다른 건 상관없는데.”
“그래도 나는 싫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좀 더 현이가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인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걸.”
은현은 자신과는 관계없는 타인이 자신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거나 비방하던 크게 상관하지 않는 타입이다.
앞으로도 처리해야 할,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매우 많았던 은현에게는 이런 가십거리는 굉장히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자신이 하는 고생과 인품은 아내들을 비롯하여 자신의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알아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치만 그 사람들 엘레노아님도 가볍게 봤단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쓴웃음을 짓고 있던 은현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가며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에린은 그제야 자신이 엿들었던 남성 모험가 파티의 저속한 대화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은현은 급격히 후회했다.
‘염X…. 포션 괜히 줬나?’
자신을 헐뜯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엘레노아를 굉장히 가벼운 여자로 보고 있었다는 것은 은현의 기분을 심히 언짢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째서 그들이 포션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치듯 모험가 길드를 나갔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붙잡아서 줬던 걸 도로 뺏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은현은 한숨을 쉬며 그 생각을 철회했다.
그것보다는 모험가 길드에서 봐야 할 용무가 우선이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이번에 티르니스령 인근에 출몰한 미확인 던전 탐색 및 공략에 지원하기 위해 찾아온 모험가입니다.”
“아…!”
뒤늦게 은현과 에린이 티르니스령 지부의 모험가 길드를 찾아온 용건을 듣고 길드 직원이 탄성을 터뜨렸다.
계속해서 지원자를 받고 있었지만, 굉장히 저조한 지원율을 보이던 미확인 던전의 탐색 및 공략 지원자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마른하늘에 내리는 단비를 맛본 것처럼 길드 직원의 얼굴이 밝아졌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바로 길드장님께 보고를 올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부리나케 위층으로 올라가는 길드 직원이 다시 은현과 에린에게로 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두 사람이 당도한 곳은 많은 이들이 있는 회의실이었다.
“티르니스령 지부 모험가 길드의 길드장입니다.”
“은현입니다.”
“…에린이에요.”
악수하면서 자기 소개를 마친 길드장은 두 사람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아래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뭐….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보다 일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예. 그러죠.”
은현과 에린은 길드 직원이 권해준 자리에 앉았고, 자연스레 회의에 참석했다.
원래라면 일개 모험가가 모험가 길드의 내부 회의에 참석하여 관여하는 것은 내부 정보 유출로 꺼려야 할 사안이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특례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수집한 미확인 던전에 대한 모든 정보. 받을 수 있겠습니까?”
길드장은 은현의 말을 듣고 어딘가 서두르려는 기색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오늘 바로 두 분이 만 던전을 공략하시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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