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25화 (608/730)

〈 625화 〉 625. 미확인 던전 탐색(2)

* * *

“먼저 접수대에 가서 이야기하고 있어. 난 여관에 들러서 방 좀 잡고 갈게.”

“응.”

레토나를 타고 빠르게 티르니스령으로 진입한 은현과 에린은 일단 개별 행동을 시작했다.

은현은 아르티아 기사단이 도착해 오기 전까지 티르니스령에서 대기할 생각인 만큼 먼저 여관에 가서 좋은 방을 얻기 위해 움직였다.

에린을 먼저 모험가 길드로 보낸 이유는 대외적으로 그녀가 금위계 등급의 모험가라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먼저 모험가 길드에 가서 그녀의 방문과 티르니스령 인근 미확인 던전의 탐색 공략에 지원하러 왔다는 것을 알려둔다면, 미확인 던전에 대한 사전 정보를 더욱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혼자가 된 에린은 곧바로 티르니스령의 모험가 길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물끄러미 길드의 내부를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많네.’

갑작스레 출몰한 던전의 공략에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고 있어서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치고는 길드를 드나드는 모험가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게 아니라, 굉장히 많아서 북적거릴 정도였다.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모험가 길드만큼 모험가들이 접수대 앞에 줄을 서면서 대기를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란스럽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만큼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한 건가.’

던전의 공략에 지원할 모험가들이 적다는 거지, 모험가들의 숫자 자체가 적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이 티르니스령에 거주하는 모험가들 대부분이 던전의 공략이나 마수의 토벌 의뢰만을 수행하면서 생업을 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티르니스령은 커다란 항구를 가지고 있는 영지.

주로 타국이나 다른 항구와의 해상 무역을 중심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운영되고 있는 영지인 만큼, 이 영지에서 가장 많은 의뢰가 발생하는 것은 이 대형 선박의 호위다.

장기간에 걸쳐 먼 거리를 항해해야 하는 만큼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큰 이득이 없겠지만, 사실상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정체불명의 해양 마수를 만날 수도 있고, 해적들을 만나면서 선박에 싣고 있는 물자와 금품들을 모조리 강탈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대형 선박으로 항해하는 상인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자신들의 물자를 보호해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 자신을 호위해줄 의뢰를 모험가 길드에 넣는 것으로 모험가들을 호위로 고용한다.

‘이래서 던전의 공략에 지원하는 사람이 없는 거구나.’

­사람은 말이야.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자신에게 더 익숙하고 이득이 되는 쪽을 고르기 마련이야.

에린은 은현의 말을 떠올렸다.

속으로 대형 선박의 호위 같은 것과 위험도를 가늠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던전 공략.

티르니스령에 거주하는 모험가들이라면 당연히 자신들이 늘 해왔던 선박의 호위 의뢰 등을 선택할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의뢰이니만큼, 위험수당과 그 의뢰 기간이 겹쳐지면서 막대한 보수를 챙길 수도 있고, 이 영지의 모험가들에게는 던전의 공략보다 바다 위의 항해가 더 익숙한 일이었다.

굳이 위험도를 가늠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던전에 발을 들이밀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큰 보수를 준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몸과 장비가 재산인 그들에게는 자신의 목숨을 걸만한 매리트가 존재하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는 거려나.’

에린은 홀로 납득했다.

어떤 선택을 내리건, 어떤 일이 벌어지건 그것은 자기 책임.

모험가들 사이에서 흔히들 말하는 격언 같은 것이었다.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몸을 사리는 모험가들이 있는가 하면, 어떠한 사정이나 자신은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고 나서는 모험가들도 있기 마련이다.

에린은 티르니스령 인근에 출몰했다는 정체불명의 던전 공략에 지원하지 않는 모험가들을 탓할 마음이 딱히 생기지 않았다.

모험가 길드의 내부를 전체적으로 훑어보는 것을 마치고 접수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요즘 아르미타스 공작령이 굉장히 소문이 자자하던데?”

“아, 너도 그 소식 들었냐?”

에린은 발걸음을 멈칫했다.

시끌벅적한 모험가 길드 안에서, 한 모험가 파티가 입에 담는 주제가 정확히 에린의 귓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

에린은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면서 관계가 없는 척을 하여, 조심스레 모험가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 장비도 그 공작령에서 구한 장비라고.”

“오오.”

자랑스럽게 검을 선보이는 한 모험가의 말에 다른 동료 모험가가 감탄 어린 얼굴로 검을 바라보았다.

“진짜로 수준이 틀리네. 이게 그 드워프라는 종족이 만든 검이라는 거냐?”

“그렇다니깐.”

“하…. 진짜 거주 지역을 공작령 쪽으로 옮겨야 하나….”

검을 본 모험가가 진심으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최근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외부로 수출되고 있는 장비들의 품질이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서 꽤나 솔깃했다.

아르미타스 공작령은 현재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핫한 장소다.

질 좋은 장비와 포션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할 수도 있고, 이 드워프들의 장비가 제작되기 시작하면서, 장비를 구매하여 전력이 향상된 모험가들의 의뢰 달성률이 눈에 띄게 증가하여 소문을 듣고 다른 모험가들 또한 많이 찾아오는 추세.

치안은 물론 거리에도 활기가 넘쳐 사람이 살기 좋은 영지라는 소문도 적잖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서라. 거기에서 상품들 납품하고 조달하는 상인한테 들은 건데, 거기 요즘 인구도 엄청나게 몰려서 집값도 만만치 않다고 하더라. 옮기려면 진작에 옮겼어야지.”

“하, 씨. 고민하지 말고 진즉에 옮겼어야 했는데.”

“야. 니가 이제 와서 거기서 모험가 활동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 거 같아. 우린 그냥 평생 배나 타야 하는 운명이야.”

“아, 이게 맞지.”

파티원들은 낄낄거리며 동조하면서 후회하고 있는 동료 모험가를 비웃었다.

“아 근데 진짜로 솔깃했단 말이야! 그 공작령 현 영주가 진짜 왕국 안에서 제일 가는 미녀라잖아!”

“그게 너랑 뭔 상관인데. 등신아.”

“얼굴 안 궁금하냐?”

“결혼한 귀족 여성한테 관심 가지는 거 아니다. 목 잘리고 싶냐?”

“아, 그 영주랑 결혼한 남자도 들리는 소문으로는 완전 쓰레기더만!”

같은 파티원들이 자신의 말에 제대로 된 대꾸를 해주지 않자, 모험가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어?”

시끌벅적한 길드 건물 안의 소란스러움에 묻혀 다른 모험가들은 그 파티의 대화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지만, 에린은 그 모험가 파티의 대화를 정확히 들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남편인 은현을 모욕하는 그 발언을 직접 듣게 되자, 에린의 몸이 그대로 딱딱히 굳었다.

“아니. 아내가 서너 명이나 된다는 게 말이나 되냐? 애초에 그런 인간이 진짜로 존재는 하냐고.”

페르니아스 왕국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라면, 왕국의 2인자나 다름이 없는 공작 가문의 여식이 정체불명의 평민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가십거리다.

은현은 일리아나나 엘레노아와 함께 공식적으로 결혼식도 올렸던 사이이긴 했지만, 그 결혼식은 가문과 지위에 걸맞지 않게 지인들만을 초청하여 올린 조촐한 행사로 끝을 맺었었다.

그래서 공작 가문과 깊은 인연을 맺지 않은 귀족들이나, 연관이 없는 평민들, 모험가들은 은현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게다가 들리는 이야기로는 엘레노아와 결혼 전부터 마녀의 애인으로 문란한 관계를 이어왔었고, 결혼 이후에도 계속 여자를 만들어 지금은 네 명이나 된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면 들을수록 은현에 대한 소문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 남편이라는 인간. 일도 안 하고 영지 안에서 아내들이 벌어온 돈으로 놀고먹고 다닌다면서?”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대외적으로 활동하지 않기 때문인지,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상한 오해까지 소문이 와전되어 생기고 있었다.

마녀 일리아나의 능력에 기대어 그녀의 집에 틀어박혀 있다던가.

공작령의 영주가 된 엘레노아의 용돈으로 생활을 한다던가.

엘레노아를 보좌하는 메이드 릴리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거나.

금위계 모험가인 에린이 모험가 일을 하면서 백수인 그를 먹여 살리고 있다거나.

소문으로만 들리는 은현은 완벽한 쓰레기에 가까운 기둥서방의 표본.

“그런 인간이라면, 차라리 내가 더 낫지 않냐?”

“…하.”

에린은 기가 차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허탈한 한숨뿐이었다.

최근에는 드워프들과 엘프들의 협력을 구하러 다니거나, 리오드와 차한성의 수행을 봐주거나, 시에테의 검을 만들기 위해 북부에 다녀오는 등 집에 붙어 있을 때가 거의 없다 보니 은현에 대한 기괴한 소문은 더더욱 이상하게 퍼져만 갔다.

아르미타스 공작령 안에서 나도는 소문이라면 어떻게 해볼 수 있었겠지만, 이곳은 공작령이 아닌 다른 영지.

괴상한 소문이 더더욱 와전되는 것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에린은 참지 못하고 움직였다.

본래 모험가 길드의 접수대로 향하려 했던 발걸음은 어느샌가 낄낄거리고 있는 모험가 파티를 향하고 있었다.

‘더는 못 들어주겠어.’

건장한 젊은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모험가 파티는 서로 낄낄거리며 가십거리에 대한 저속한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와중의 한창,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에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에린은 저 저속한 농담을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

“엉?”

이윽고 에린이 그 남성 모험가 파티의 앞에 마주 서자, 낄낄거리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던 모험가들이 일제히 에린을 바라보았다.

“뭐야. 넌?”

“당신들, 뭐에요?”

“음?”

느닷없이 매섭게 노려보는 에린의 눈초리에 남성 모험가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당신들이 뭔데 그런 저속한 대화로 우리 현이를 깎아내리고 있는 거야!”

“뭐?”

남성 모험가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시끌벅적했던 모험가 길드의 내부 분위기가 가라앉고, 대화를 멈춘 모험가들과 길드 직원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자신들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라앉은 정적은 이내 수군거림으로 바뀌었다.

“뭐야. 저것들?”

“몰라. 저 여자가 저 남자 모험가들한테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인데?”

“근데 저 여자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 남성 모험가 파티원들은 자신들에게 이목이 쏠린 원인인 에린을 노려보았다.

“야! 너 뭐야! 뭔데 시비냐고!”

“아니…. 잠깐만.”

성을 내는 남성 모험가를 다른 동료 모험가가 붙잡으며 만류했다.

“아, 왜!”

“이 여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동료 모험가가 에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가물가물한 표정을 지으며 망설이다가, 기억을 떠올리고 그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야! 이 여자, 그 여자야! 그 미친 개라고 불리는 그 여자!”

에린이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미친 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된 계기는 아주 간단했다.

이와 같은 괴상한 소문으로 은현을 헐뜯는 뒷담을 늘어놓으며 낄낄거리고 있던 모험가들을 혼내주기 시작했던 게 그 원인.

한 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사나운 개처럼 으르렁거리며 상대방의 얼굴을 피떡으로 만들어 놓았던 악명은 공작령에서 거주하는 모험가들 사이에서 더는 은현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에린이 불같이 화를 내며 선빵을 날렸다.

“니가 먼저 내 남편 욕했잖아! 이 나쁜 놈아!”

있는 힘껏 다리에 힘을 실어 제일 심하게 은현을 헐뜯었던 남성 모험가를 걷어찼다.

무시무시한 각력의 힘이 그대로 실린 에린의 발차기가 직격한 곳은 남성 모험가의 고간 사이, 그의 낭심이었다.

“커헉!?”

에린의 다리에 걷어차인 남성 모험가가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격통에 양다리가 오므라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