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4화 〉 624. 미확인 던전 탐색(1)
* * *
“…네 제안을 받아들이마.”
엘레노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아버지인 아브로스에게 재차 물었다.
“아버지. 정말이신가요?”
“그래.”
많은 고심 끝에, 아브로스가 받아들인 엘레노아의 제안은 곧 개교 예정인 아르미타스 학교의 학교장 자리였다.
아브로스는 이제 더는 큰 책임이 잇따르는 자리는 맡지 않을 생각이었다.
페르니아스 왕국 안에서 왕가 다음으로 큰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아들이었던 애슈턴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고, 그 결과 왕국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킨 것에 책임을 지기 위해 공적인 자리에서 물러났다.
영지와 가문에 큰 타격이 입을 수도 있었던 커다란 사건이었지만, 이 정도선에서 무마시켜준 것은 은현 쪽이 손을 써준 덕분이었다.
그래서 엘레노아의 제안을 망설였었다.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자신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를 관리하는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걸까.
딸인 엘레노아의 의도는 아브로스도 알고 있었다.
큰 실수로 회의감에 빠져 있던 자신에게 의미와 활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은현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나는 학교라는 걸 관리해본 적이 없으니, 너에게도 많이 의지하고 싶구나.”
군무장관으로서 병사들과 기사들을 육성시켜보았던 경험은 차고도 넘쳤지만,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과는 방식 자체가 다를 것이다.
은현이, 엘레노아가 공작령 안에 만들려고 하는 학교들은 아이들이 이 영지의 구성원으로서 잘 적응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기관이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걸요.”
엘레노아는 아브로스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엘레노아 또한 신전의 사제로서 많은 아이를 돌봐온 경험은 있지만, 올바른 인성을 갖추도록 이끌어주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것은 그녀의 영역 밖의 일이다.
“그래도 감사해요. 제안을 받아들여 주셔서.”
엘레노아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흘리면서 한시름을 놓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 이 영지 안에서 아브로스만큼이나 적임자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브로스의 승낙이 기쁘면서도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교 준비는 조만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업무의 방향이나 계획들에 대해서는 천천히 알려드릴게요.”
“음.”
아브로스는 엘레노아의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막 50의 나이에 들어선 그는 자신이 앞으로 하게 될 학교장의 업무 내용들을 간략히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평생을 군대 안에서 삶을 보내고, 아들에게 가문을 물려주고 여생의 끝을 맞이할 것이라 막연했던 예상과는 달리, 이 나이가 되어서 맡게 된 새로운 역할은 몹시 낯설면서도 기묘했다.
그렇게 아브로스가 엘레노아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학교의 개교 준비는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었다.
“그는 출발한 건가?”
“네. 오늘 아침에 에린과 함께 출발했습니다.”
“…그렇군.”
아브로스가 언급한 ‘그’는 자신의 딸인 엘레노아와 결혼하여 사위가 된 은현을 말하는 것이었다.
엘레노아는 보기 드물게 은현에 관해 묻는 아브로스의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걱정되시나요?”
은현에 관해 묻는 경우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를 걱정하는 것보다는 자기 아들인 애슈턴 때문에 상황을 번거롭게 꼬고 피해를 볼 뻔했던 것에 대해 부끄럽고 미안해하는 마음이 더 컸다.
“…솔직히 이번만큼은 많이 신경이 쓰이는군.”
아브로스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티르니스령 인근에서 새롭게 출몰한 던전의 소식에 대해 아브로스도 접한 것이 있는 것이다.
동위계 2파티, 은위계 1파티.
그리고 설마 싶었던 금위계 모험가 1파티까지 소식이 끊겨버리면서 그 던전의 위험성은 더더욱 증가했다.
총 30명 이상 모험가들의 생사는 소식이 끊기면서 생사가 불분명해졌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티르니스령 지부의 모험가 길드는 최악의 경우 그들이 사망했다고 생각하고 왕가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것은 그 던전 안에 고위 전력으로 취급받는 금위계 모험가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마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판단 때문에 내려진 판단이었다.
혹여라도 모그라프령에서 일어났던 스탬피드 사건처럼, 던전이 폭주를 일으켜 던전 안에 있던 마수들이 외부로 흘러나온다면.
인근에 위치한 마을이나 티르니스령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던 티르니스령의 영주와 모험가 길드는 막대한 보상과 지원을 약속하면서 다른 지역의 모험가 길드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몇십만의 마수 군단이 출몰하여 모그라프령의 덮쳤던 사건에 비하면 비교적 큰 사건은 아니었지만, 잠재적인 위험성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았다.
“괜찮을 거예요. 그 사람이니까.”
엘레노아는 웃으며 아브로스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위험한 사지로 향하는 남편에 대하여 걱정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은현을 믿었다.
언제나처럼 일을 마치고 자신의 곁으로, 일리아나와 릴리의 곁으로 돌아와 줄 것이다.
“…그래.”
딸이 아니라, 여자로서, 아내로서 엘레노아가 보여준 깊은 신뢰를 확인한 아브로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샌가 자신의 딸이 누군가의 여자가 되고 그를 떠받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여성이 되었다는 사실이 어째서인지 기뻤다.
◆ ◆ ◆
티르니스령 지부의 모험가 길드 회의실은 몹시 조용했다.
조용하다기보다는 침울한 분위기로 길드 건물의 내부가 몹시 저조하다는 표현이 옳다.
입을 열고 대화를 통해서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데, 길드 직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회의의 안건은 갑작스레 등장한 정체불명의 던전에 대한 대처였다.
티르니스의 영주는 왕가에 지원을 요청하여 아르티아 기사단이 던전의 공략을 맡기로 했다고 모험가 길드에 소식을 밝혀왔다.
왕국의 최고위 전력이나 다름이 없는 아르티아 기사단이 나서준 것은, 최악의 상황인 현재 마른하늘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으나 티르니스령 지부의 모험가 길드는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
아르티아 기사단의 기사들은 확실히 전투의 부분에서는 왕국의 최고 전력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던전의 공략이라는 분야에서는 경우가 조금 틀리다.
던전의 공략은 주로 모험가들의 영역이었으며, 소수의 파티로 구성된 인원은 비록 규모와 전력은 적더라도 급작스러운 상황에 대해 유연히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나 야생에서 색적과 탐색의 분야를 전담하는 척후의 경우에는 사전에 적진을 정찰하고 함정의 유무를 파악하여 파티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사전에 감지해야 하는 역할인 만큼 그 경험과 센스가 몹시 중요하다.
매일을 훈련장에서 보내며 대인전과 수련에만 매진하는 기사들에게는 확실히 쌓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번처럼 기사단이 던전의 공략을 맡게 될 때에는 반드시 기사단과 경험이 많은 베테랑 모험가들의 공조가 필수적인 조건이다.
티르니스령 지부 모험가 길드의 회의실 분위기가 무척이나 암울했던 이유는 이 기사단과 경험이 많은 베테랑 모험가들의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열 명인가….”
“…네.”
짧게 읊조리는 모험가 길드장의 말에 길드 직원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것도 은위계의 모험가가 아홉 명에 금위계는 딱 한 명….”
티르니스 던전의 공략에 참여하겠다는 모험가들의 숫자가 적어도 너무 적다.
특히나 던전 안의 적이 어떠한 강함을 보유하고 있는지조차도 미지수인 이 상황에서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금위계 모험가들의 지원은 겨우 한 명뿐.
모험가 업계 쪽에서는 은위계만 달성해도 베테랑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상위 전력으로 취급받기는 했지만, 이번 경우만큼은 아무래도 불안했다.
지원자의 수가 이렇게나 적은 이유는 애초에 티르니스령 인근에 상주하고 있는 모험가들의 숫자도 수도인 페르닌이나 그에 못지않은 활기를 띠고 있는 아르미타스 공작령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공략이 예정된 이 티르니스 던전의 위험도가 측정을 불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험가들은 모두 자신의 몸과 장비가 재산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존이 달린 문제에 대해서는 극도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전 모그라프령의 스탬피드 사건 때, 변경령을 휩쓸어버릴지도 모르는 마수 군단을 상대로 무수히 많은 모험가가 지원했었던 이유는 그 위험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지원한 모험가들은 모두 자신이 그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큰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자신감에서 참가를 결정했었던 것이며, 이번 티르니스령과는 경우가 틀리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서 스스로 그 안에 제 발을 들이미는 멍청이는 없다.
만약 지원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런데도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그 정도로 절박한 사정이 있는 모험가일 터이다.
하지만 그런 모험가들의 전력이라도 굉장히 아쉬운 상황에서 이런 저조한 참가자의 숫자는 한숨이 나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른 지부의 모험가 길드에 요청한 지원의 회신은 아직인가?”
“아직입니다. 슬슬 회신이 올 때가 되기는 했지만….”
말끝을 흐리는 길드 직원의 태도는 그마저도 긍정적인 결과를 맞이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했다.
“그래도 믿을 만한 건 이제 그것밖에 없어. 저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면 우리는 물론이고 티르니스령도 무슨 피해를 입을지 몰라.”
티르니스령 지부의 모험가 길드장이 그렇게 암울한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 했을 때, 누군가가 다급하게 회의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길드장님!”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는 길드 직원에게로 회의실 안에 있는 길드장과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모험가 두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아르미타스 공작령?”
길드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르미타스 공작령과 티르니스령은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위치해 있어 자신 쪽에서 보낸 지원 요청의 회신과 지원이 오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터.
생각보다 도착한 시간이 빨랐다.
하지만 그 문제보다 더욱 신경 쓰였던 것은 찾아온 모험가가 겨우 둘 뿐이라는 것이다.
“겨우 두 명….”
외부에서 찾아온 지원 모험가가 겨우 두 명이라는 것에 실망했지만, 소식을 전해온 직원은 어딘가 희망의 빛을 발견한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금위계 모험가에요!”
“뭐?”
이어지는 직원의 말에 길드장과 다른 직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즘 길드나 모험가들 사이에서 떠들썩한 분 있지 않습니까! 신참 모험가였으면서 솔로로 활동하면서 2년 만에 금위계의 등급을 달성한 모험가!”
“아!”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이례적인 사례였기 때문에 다른 지부의 모험가 길드 사이에서도 꽤 유명 인사였다.
티르니스령 지부의 모험가 길드장은 이내 그녀에게 붙어있던 두 개의 별명을 떠올렸다.
하나는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땅을 내달리며 전장을 휩쓰는 ‘푸른 여우’.
그리고 또 다른 별명은 꽤나 충격적인 별명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떠올렸다.
“그 ‘미친 개’라는 여자?”
그 경악스러운 별명과 함께, 그녀가 가진 이력은 굉장히 화려하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성들을 홀리게 만든다는 소문이 들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2년 만에 금위계의 등급을 달성한 천재 모험가.
밀도가 높고 방대한 마력을 기반으로 자신을 따르는 아홉 명의 병사들을 다루는 특별한 능력.
모그라프령의 마수 스탬피드 사태에서도 살아남았고, 한 명과 동행하여 단 두 명이 맨몸으로 철호단이라는 유명 길드를 개박살낸 사건도 굉장히 유명했다.
모험가 길드장은 다급히 소식을 전해온 직원에게 말했다.
“당장! 당장 모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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