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2화 〉 622. 악의 잠식(1)
* * *
응애애애!
하이톤의 시끄러운 울음소리가 평소보다 이른 아침을 알리듯이 올리비온 공작 저택의 내부를 가득 채워나갔다.
막 태어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은 저택의 사람들은 아니나 다를까 일제히 소란을 떨었다.
“공작님! 축하드립니다!”
“아가씨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공작 저택에서 일하는 집사, 시종 등 하인들 모두가 마치 자기 일이라는 양 올리비온 공작 가문의 막내딸이 탄생한 것을 반겼다.
리오드와 그의 가족들이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과 얼마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났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리오드는 마침내 테레지아가 누워있는 침실에 도달했다.
“테레지아!”
얼마나 다급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달려온 리오드의 이마에는 한 줄기의 식은땀이 흘렀다.
항상 담담한 태도로 감정의 동요를 잘 보이지 않는 왕국 최고의 기사가 지금은 얼마나 다급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네. 여보.”
그렇게 동요를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 몹시 오랜만이었을까.
침대에 누워있던 테레지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랜 시간 진통을 겪으면서 분만에 체력을 소진했기 때문일까, 테레지아의 얼굴은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하지만 몹시 안정된 상태로 보이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엘레노아가 상위계의 축복을 계속 걸어준 탓인지, 테레지아는 수척해 보이면서도 어딘가 여유가 있었다.
자연스레 리오드의 시선이 테레지아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로 옮겨졌다.
“아….”
아주 작은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고급스러운 천으로 정성스레 둘러싸여 있는 작은 새 생명을 보고 리오드가 작게 탄식을 터뜨렸다.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아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테레지아에게 다가갔다.
마침내 그녀가 누워있는 침대 앞에 다다랐을 때, 테리지아는 웃으며 리오드에게 물었다.
“안아보시겠어요?”
“…그래.”
리오드는 즉답했다.
애초에 자신과 아내에게서 태어난 막내를 안아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테레지아의 권유에 조심스레 허리를 굽혀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자신의 아기를 안아 들었다.
“가볍군.”
“후후, 당연하죠.”
가벼운 것을 넘어서 너무 가녀리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자신의 아기를 다루는 것에 익숙지 않은 리오드는 보기 드물게 당황하고 있었다.
에이라와 엘리온에 이어 세 번째 아기이건만, 막 태어난 아기를 안는 것은 몇 번이고 시도를 해봐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계속 안고 싶고 바라보게 된다.
“아버지.”
에이라가 웃으며 리오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도 안아보고 싶다는 의미임을 알아챈 리오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내 아이를 에이라의 품에 조심스레 안겨주었다.
“누나. 나도, 나도 보고 싶어.”
자신의 동생인 아기에게 관심을 보인 엘리온의 행동은 오히려 의외였다.
“그래.”
에이라는 의자에 앉은 채로 자세를 낮춰주자, 엘리온이 다른 의자를 가져와 올라가서 눈높이를 맞췄다.
굉장히 작은 얼굴과 자신의 손가락만 한 아기의 손바닥을 보고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이 아기가…. 내 동생이야?”
“응. 우리 동생이야. 어머니나 아버지도 특히 신경 쓰시겠지만, 엘리온도 이제 오빠가 됐으니까 동생을 잘 돌봐줘야겠지?”
“응. 명심할게.”
엘리온은 보기 드물게 아침부터 기운찬 대답으로 돌려주었다.
“언니. 저도 만져봐도 돼요?”
“물론이야. 자.”
막 태어난 갓난아기를 처음 보는 에린도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에이라의 품에 있는 아기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작은 얼굴의 두 눈동자가 에린과 시선이 마주쳤다.
“윽…!”
이내 밝은 웃음을 지어주는 갓난아기의 얼굴을 본 에린이 몹시 아픈 듯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귀여워…!”
자그마한 손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고 자신을 향해 지어주는 갓난아기의 밝은 미소가 마치 심장을 두들기듯 세차게 뛰게 만든다.
곧 있을 일리아나의 아기도 이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울까.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자신이 가지게 될 아기의 모습도 상상하게 된다.
“…고맙다.”
에이라와 엘리온, 에린이 갓난아기를 두고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리오드는 곧바로 엘레노아와 은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니에요. 리오드님. 제가 한 건 축복을 걸어드린 것밖에 없는 걸요.”
“그게 제일 큰 역할을 해주었지.”
이미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는 자신의 아내는 장시간 동안 이어지는 자연분만과의 싸움을 버텨낼 체력이 있었을지 미지수였다.
그것을 가능케 해주었던 요인은 분명히 엘레노아가 지속적으로 걸어준 상위계의 축복 때문일 터.
“이른 새벽부터 내 연락을 받고 바로 와준 너희에게는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라다.”
리오드는 재차 고개를 꾸벅 숙이며 솔직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리, 리오드님….”
왕국 최고 전력이자, 최고의 기사라고 평가받는 리오드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여오자, 엘레노아는 적잖게 당황했다.
귀족 가문의 여식인 그녀는 그가 한 행동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만약 이 자리가 사석이 아닌 공석이었다면, 많은 귀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을 것이 틀림없다.
“고개를 들어. 우리도 비슷한 입장이니까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거든.”
당황하고 있는 엘레노아를 대신해서 은현이 말했다.
곧 있으면 일리아나 또한 아이를 낳게 된다.
그때를 대비하여 테레지아의 출산을 가까이서 보고 돕게 된 것은 일리아나가 아이를 낳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너와 일리아나에게 도울 수 있는 게 있을진 모르겠지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지.”
“그래. 그거면 충분해.”
“우리는 이만 돌아갈게.”
“벌써 가는 건가? 아침이라도 먹고 가는 게 나을 텐데.”
적잖게 도움을 준 은현과 엘레노아, 에린을 이렇게 보내는 것은 영 석연치 않았던 탓인지 리오드가 아침 식사를 권했지만, 은현과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호의를 거절했다.
“우리도 아침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으니까.”
이미 일찍부터 일어난 릴리가 아침을 준비하고 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렇군.”
리오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내가 너희 집으로 찾아가도록 하지.”
“그래. 에린. 가자.”
“아, 응!”
올리비온 저택의 아침은 매우 활기찬 시작으로 하루를 맞이했다.
에린은 곧바로 은현에게로 다가왔다.
“현아. 아기 진짜로 귀엽다.”
들뜬 표정으로 갓난아기를 직접 보고 만져본 감상을 늘어놓는 에린을 보고, 은현과 엘레노아는 웃었다.
“우리도 조만간 생길 거야.”
“응. 정말로 기대돼. 일리아나님과 현이의 아기니까…. 분명히 이쁘고 잘 생겼겠지?”
갓난 아기에 대한 환상을 어디까지 가졌는지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기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에린의 기분을 꺾을 마음은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은현과 엘레노아는 그저 웃으며 에린의 들뜬 소리를 들어주었다.
◆ ◆ ◆
전란으로 어지러워진 어느 왕국의 수도.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그 위에서 피어오르는 회색빛의 연기들.
연기들이 모이고 모여, 끝에는 그 나라의 앞날을 비추듯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하여 어둑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엄마아…! 아빠아…!”
누군가는 애걸복걸하며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고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부모를 찾으며 서럽게 울고 있다.
“큭큭.”
그 재앙의 한복판을 유유히 걸으며 마리우스는 낄낄댔다.
철컥 철컥 철컥
자신을 뒤따라 걷는 검은색의 갑옷들은 모두 살아있지 않은 망자의 시체들로 이루어진 죽음의 기사들.
마리우스가 직접 수집한 강자의 육체들로 만든 데스나이트들이다.
렌디르 왕국에서 레이넌이 직접 머리를 깨부숴버린 공석수나, 그에 준하는 강자들의 시체를 직접 수집하여 데스나이트로 만들었다.
덜그럭거리는 무거운 철갑옷들은 하나 같이 막강한 방어력과 견고함을 자랑하며 얼핏 보기에는 질량을 가진 실체로 보였지만, 실상은 다르다.
철갑옷과 전신에 일렁이는 검은색의 기운은 인간의 시체에서 생겨난 사기(死?)로 형성된 것들.
그 기운과 철갑옷의 안쪽, 중심에는 이미 활동을 멈추고 부패가 진행되어 있던 인간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죽어서도 그 영혼은 명계로 승천하지 못하여 하계에 귀속되고, 평생을 사령술사의 노예로 복종해야하는 운명.
공석수를 비롯하여 데스나이트로 전락한 무수한 영혼들은 마리우스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다.
그런 데스나이트들을 거느리며, 마리우스는 자신이 멸망시킨 왕국의 왕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라면 왕궁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삼엄한 경비로 출입이 불가하지만,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들과 왕궁 안의 병사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그 몰골이 하나같이 끔찍하다.
어떤 이는 사망한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며칠이 지난 것처럼 부패가 진행되어 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곳곳의 신체 부위가 뜯어먹힌 무수한 이빨 자국이 가득했다.
이 왕국의 수도를 습격하면서 죽여버린 인간들을 모조리 구울로 만들어버렸고, 수도 전체를 뒤덮게 만들었다.
지금 마리우스의 눈앞에 보이는 이 끔찍한 광경이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곳에서도, 수도 전체가 똑같이 절망으로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기쁘다.
“하하. 이 얼마나 뿌듯한 기분인지.”
그것이 자신이 이룩해낸 결과라는 것이 가슴 속에 더할나위 없는 충족감을 채워주었다.
그 충족감을 만끽하며, 마리우스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 왕궁 내부로 진입했다.
사람 하나 없는, 아니, 사람의 시체로 가득한 복도를 걸어가는 마리우스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이미 이 왕궁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자신이 향해야 할 목적지를 정해두고 있었다.
자신이 흩뿌린 죽음으로 가득한 이 참혹한 광경 속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있는 장소를 찾아내기는 아주 쉬웠다.
“킥킥.”
마리우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두려움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짜릿한 쾌감이 전신을 지배한다.
낄낄거리면서 10개체가 넘는 데스나이트를 거느리며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저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왕궁의 벽면.
하지만 이 너머에서 느껴지는 공포의 감정은 틀림없이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삶과 죽음에 굉장히 민감한 감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사령술사가 가진 제육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혹시라도 새어 나올까 봐 숨까지 참고 있지만, 차마 몸의 떨림까지는 참아낼 수 없었는지 벽면이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는 것까지 느껴졌다.
마리우스는 씨익 웃으며 그 벽면을 향해 손을 내저었고, 한 데스나이트가 앞으로 나와 사령술사의 명령을 수행했다.
콰앙!
전방으로 휘둘러지는 데스나이트의 검이 벽면을 깨부숴버리고 내부에 숨겨져 있던 비밀 공간을 낱낱이 까발렸다.
“꺄악!”
묵직한 충격으로 벽면이 부서지면서 잔해가 무너져내리는 내부에서, 가녀린 여성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찾았다.”
이 여성은 왕국의 주인인 왕가의 일원으로서, 국왕의 딸, 즉 이 나라의 왕녀다.
마리우스는 웃으며 숨어있던 여성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꺄아악!”
바닥에 질질 끌리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음에도, 아무도 왕녀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이는 없었다.
이 왕궁 안에 있는 인간들은 자신의 사령술로 만들어낸 언데드들이 특정의 인간 몇몇을 제외하고 모조리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마리우스가 머리채를 휘어잡아 질질 끌고 가고 있는 이 여성은 아직 죽여서는 안 되는 특정의 몇몇 인간 중 한 명이었다.
“크윽…! 아리아!”
아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왕녀의 머리채를 질질 끌면서 도착한 곳은 이 궁정의 주인인 국왕이 앉는 왕좌가 있는 알현실이었다.
알현실의 가장 안쪽 중앙의 의자에는 이 왕국의 국왕이 앉아 있었다.
“아, 아바마마…!”
아리아 왕녀는 경악했다.
자신의 아버지인 국왕의 몰골이 참담하고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은 의자에 앉아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양팔은 양쪽 팔걸이 위에 얹혀져 수십 개의 검이 박혀 있는 상태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그의 양쪽 허벅지 또한 검으로 관통되어 의자에 고정된 상태.
“하하! 역시 명령대로 잘 장식해두었군!”
마리우스는 자신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한 데스나이트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에 겨워 박수를 쳤다.
곧 과다출혈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아버지의 몰골을 보고 아리아 왕녀가 마리우스를 증오스러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잔인한 짓을…!”
“잔인? 하하, 그런가? 잔인한가? 잔인하구나!”
하지만 증오스러운 아리아 왕녀의 시선을 받고도 마리우스는 실실 웃어넘겼다.
무엇이 그렇게 기쁜지, 그는 이미 반쯤 미쳐 있는 광인의 상태에 가까워 보였다.
제정신이 아니다.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것은 악마다.
아리아 왕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넘긴 마리우스가 국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아, 존경하는 국왕 폐하. 이 미천한 사령술사가 실례를 무릅쓰고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끄으.”
국왕은 전신을 관통하고 있는 칼날의 고통으로 이가 갈리면서 마리우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에레니아 신성국의 베스타 신전, 콜로라스 지부.”
“……!”
“벤터 주교에 대해서 아십니까?”
마리우스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국왕은 움찔 몸을 떨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금 그의 눈에 깃든 감정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노려보는 증오의 시선보다, 그것을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동요였다.
“그 반응은 알고 계신다는 뜻이군요.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입니다.”
씨익 웃고 있던 마리우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져 갔다.
“네스를 어떻게 했어. 이 쓰레기 새끼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