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8화 〉 618. 개교 준비(2)
* * *
까아앙!
엘레노아와 릴리와 함께 세실리아가 도착한 곳은 작업장 곳곳에서 쉴새 없이 철을 두들기는 망치 소리가 가득한 대장간이었다.
“…굉장하네요.”
내부의 후끈한 열기와 망치와 쇠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충격의 여파가 공기를 타고 전해져 세실리아의 몸을 움찔 떨게 했다.
“이곳입니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는 대장간의 위층에 마련되어 있던 방이다.
릴리가 안내를 마치고 방의 문을 열자, 방안에서 찬 공기가 흘러나왔다.
“어….”
세실리아는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아래층은 수십 개의 화로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와 많은 이들의 땀 냄새, 그리고 소란스러운 소리로 가득했는데, 2층으로 올라오자마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기 때문이다.
복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고요하여 선선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상쾌한 공기가 가득하다.
아무리 층수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같은 건물 안에서 이 정도로 분위기가 다를 수가 있을까.
“왜 그러신가요?”
릴리가 열어준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엘레노아가 주저하는 세실리아의 반응을 보고 의아해하여 물었다.
“그게…. 1층과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요.”
“아아, 그럴 만도 하지요.”
엘레노아도 이해한다는 듯 피식 웃었다.
하지만 이 대장간은 은현이 직접 설계에 참여했고 수십의 드워프들과 인간들이 몇 달간 공사를 진행하여 완공시킨 장소다.
어째서 층이 다른 것만으로도 이렇게 전혀 다른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엘레노아나 릴리도 처음엔 놀라운 반응을 보였었다.
“일단 들어가실까요? 그 사람은 이 안에 있어요.”
“…네.”
세실리아는 엘레노아의 권유에 따라 그녀와 릴리의 뒤를 따랐다.
“현재 철광석의 소비량은? 충분해?”
“으음, 아직은 여유가 있소만, 그렇다고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양이요.”
“장비의 제작량을 조금 조절해. 만드는 것도 좋지만 너무 많은 물량을 만드는 건 도리어 안 좋아.”
“그렇게 하겠소.”
현재 아르미타스 공작령 내부에 거주하고 있는 드워프들을 통솔하는 대표, 오란은 은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인기척을 느낀 은현이 입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구에서 걸어오는 세 여성의 모습을 발견한 은현이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손님이 오셨네.”
“손님?”
은현의 중얼거림에 오란 또한 고개를 돌렸고 엘레노아와 릴리, 그리고 세실리아를 발견했다.
“모셔왔습니다.”
“수고했어. 두 사람. 세실리아님. 오랜만입니다.”
세실리아는 은현이 내민 손을 맞잡아 악수를 받아들였다.
“…네. 오랜만이에요. 결혼식 이후로는 처음 뵙는 것 같네요.”
“그렇네요. 제가 요즘 좀 바빴거든요.”
“그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은현은 정말로 바쁘다.
그의 대외적인 활동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들려오는 소식이 없었지만,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그가 연루되어있는 사건들은 모두 하나같이 무겁고 살벌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오히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정말로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세실리아는 2층의 공방 내부를 둘러보며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다. 오란.”
“예. 야장이시어.”
“그걸 가져와.”
“…그것을 말씀이십니까?”
오란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두 눈을 크게 뜨며 짧은 몸으로 은현과 자신을 번갈아 보고 있는 드워프를 보고, 세실리아가 적잖게 당황한다.
생전 처음 본 드워프라는 종족도 세실리아를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은현이 무엇을 가져오라고 시켰길래 드워프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신경이 쓰였다.
“그래. 이분에게 그걸 부탁드릴 거야.”
“아! 그렇구먼! 이분이! 내 빨리 가져오겠소!”
은현의 말을 이해한 오란이 짧은 다리를 다다닥 뛰어가 사라졌다.
도대체 뭘 부탁하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세실리아는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에밀리아라는 인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덥석 엘레노아의 제안을 받아들여 찾아오기는 했는데, 혹시 자신은 속은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까지 든다.
“…도대체 뭘 부탁하려는 건가요?”
“보시면 압니다.”
“야장이시어! 가져왔소!”
아니나 다를까 빠른 걸음으로 종종 달려온 오란의 품에는 상자 하나가 있었다.
그것을 받아든 은현이 중앙 테이블의 위에 올려두고 상자를 개봉했다.
세실리아의 두 눈에 들어온 것은 주괴의 모양을 한 금속이다.
“…미스릴?”
아이테르를 졸업하면서 마법사로서의 소양을 아주 기초적으로 갖추고 있었던 그녀는 금속 주괴가 품고 있는 마력을 알아보았다.
일반적인 강철과 달리, 마력을 품고 있는 금속 주괴는 세실리아가 알고 있는 금속에 대한 지식 속에서는 미스릴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이건 미스릴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철이 미스릴의 특성을 지닌 금속으로 진화하는 단계죠.”
“그냥 철이…. 미스릴로요?”
“네.”
세실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자신이 야금술이나 대장장이 쪽의 분야에는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연금학에 대한 분야에 대해서는 제법 조예가 깊은 그녀였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미스릴이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종류의 금속이 아니다.
수십 년의 시간을 거쳐 방대한 마력에 노출되면서, 그 마력을 자연스레 흡수하여보다 단단해지고 마력의 전도율이 상승하는 금속이 바로 미스릴이기 때문이다.
양질의 마력을 품고 있는 광산 안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거쳐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미스릴을 직접 만들어내겠다니, 세실리아는 말도 안 된다며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불가능했죠. 지금까진.”
미스릴의 탄생 기원에 대해서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전승된 이야기가 없고, 드워프들 사이에서도 그저 전승으로만 전해질 뿐 미스릴이라는 금속 자체를 만들겠다는 시도가 행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은현은 이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시도해서 성공하고, 미스릴을 양산해낼 수만 있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최초로 미스릴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명예, 그리고 그 미스릴로 제작된 양질의 장비들을 판매하면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이익들.
최종적으로는 언젠가 있을 재앙들과의 전쟁에서 페르니아스 왕국 전력의 향상을 목표로 두고 있는 은현에게는 꼭 성공시켜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가능성이 보이고 있고, 꼭 성공시켜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 연구에…저는 세실리아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연금학이라는 다른 분야에서 받을 수 있는 세실리아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정작 부탁을 받은 세실리아는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당신은 저보다 더 뛰어나시잖아요.”
세실리아는 은현이 자신의 전문 분야인 연금학과 약학의 분야에서도 자신을 가볍게 뛰어넘는 지식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전 페르닌의 고위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나돌았던 신종 마약을 치료하는 약을 직접 개발하여 제공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은현이었다.
그런 그가 이 단계에서 막혀있는 것이 현실인데, 자신이라고 별수가 있을까.
“이건 약학과는 또 다른 분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것은 세실리아님과 같은 연구자의 발상과 사고방식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디어들입니다. 제가 떠올리지 못한 발상을 세실리아님께서는 떠올릴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요.”
“…….”
그건 너무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이쪽의 연구에 모든 신경을 쏟을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당분간은…. 아내에게도 신경을 써주고 싶거든요.”
“…아내?”
세실리아는 이해하지 못하여 엘레노아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필요로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엘레노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해주었다.
“일리아나님의 출산일이 점점 가까워져 가고 있거든요.”
“아.”
뒤늦게 깨달은 표정을 지으며 작게 탄식했다.
얼핏 들었던 소식이었지만, 그 소식을 들었던 때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세실리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식으로 부탁을 해온다면 거절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대신 세실리아님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그건 무슨 소리인가요?”
“엘레노아에게서 이야기를 전달받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
이윽고 자신이 이곳에 은현을 찾아온 목적을 뒤늦게 떠올렸다.
“마, 맞아요! 엘레노아님이 에밀리아의 이야기를 꺼내셔서…!”
세실리아는 엘레노아의 그 뒷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덥석 받아들여 이곳에 은현을 만나러 왔다.
“네. 이 연구를 진행해주시는 대가로, 저는 세실리아님께 인형의 제작기술을 알려드리죠.”
“네? 진행해주는 대가요?”
세실리아는 꽤나 파격적인 조건에 대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연구를 성공시키는 것이 아닌, 연구를 진행해주는 대가라는 것은 이 금속 주괴의 연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여부에 관계없이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건 너무 저에게 유리한 조건인 게….”
“괜찮습니다. 세실리아님이라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주실 거라 믿고 있고, 그리고 저에게도 이 지식을 누군가에게 전수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은현이 인형사의 후계로서 에밀리아와 다수의 인형들, 그리고 인형의 제작기술을 전수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옛 친구였던 아르키스의 바램 때문이었다.
부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형사’라는 직업이, ‘인형술’이라는 기술과 지식의 명맥이 끊기지 않고 후대에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랐던 바람.
그러므로 은현은 아르키스가 자신에게 인형사라는 직업에 담겨 있는 많은 것을 전했듯이, 은현 또한 후대의 누군가에게 이 직업에 담겨 있는 책임과 기술, 지식을 전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은현이 생각했던 자신의 후임 인형사는 연금학이라는 분야에서 조예가 깊은 세실리아였다.
인형사라는 직업을 대륙 위에 드러내면서, 앞으로 있을 재앙들과의 전쟁에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세실리아님에게 인형술을 가르쳐드리려는 이유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사실은 이것이 본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일반적인 강철에 마력을 불어넣어 인위적으로 미스릴과 같은 특성을 부여하는 이 연구 또한 세실리아에게 인형술을 가르치려는 이유와 통한다.
“오래된 옛 친구의 심장을 새로 제작할 생각이거든요.”
은현이 계획하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인형으로서 기능을 정지하여 영면에 잠들었던 아르키스의 부활.
아르키스에게서 인형술의 지식을 전수 받은 순간부터, 은현은 언젠가 그녀를 다시 부활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은 아르키스에게서 받은 인형술의 기술과 지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잠들고 안식을 맞이하고 있는 그녀를 다시 깨우는 것이 맞을까 고민했지만, 앞으로 있을 재앙과 악마들과의 전쟁에서는 아르키스와 같은 강한 전력이 하나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은현은 그렇게 새로운 후임 인형사를 맞이함과 동시에, 자신의 친구를 부활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마 학교가 개교하기 전까지, 이 연구를 완성하고 인형술을 완전히 익히시려면 굉장히 바쁘실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좋아요.”
세실리아는 호기롭게 눈을 빛내며 은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본래부터 고대의 기술이라고 알려진 인형술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교수로 활동할 예정인 학교가 개교하기 전까지는 약 3개월의 시간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 3개월의 시간은 잠은커녕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바쁜 시간의 연속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까짓거 해보자.’
이 3개월의 시간 동안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할 결심을 품었을 때, 은현이 말을 이었다.
“아, 근데 저는 5시에 정시 퇴근 좀 해야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앞으로는 아내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요.”
“…….”
자연스럽게 기본 베이스로 깔고 들어오는 선임 인형사이자 상사인 은현의 갑질에, 세실리아는 반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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