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7화 〉 617. 개교 준비(1)
* * *
“…후우.”
“긴장되시나요?”
오늘은 공작령 안에서 개교할 예정인 학교를 미리 스카우트로 초빙된 교수들에게 소개하는 사전 설명회의 날이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려나.”
“작은 마님이라면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 릴리.”
엘레노아는 자신을 보조하는 메이드, 릴리의 격려에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영주 대행이 아닌, 영주로서 하는 첫 번째 공식 업무에 가깝다.
평민과 영지민들을 교육할 학교를 설립하고 싶다는 은현의 이야기를 듣고,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전 영주였던 아브로스와 현 영주인 알렉스는 은현의 이야기에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영주의 전반적인 업무를 엘레노아에게 맡겼다.
잘 부탁한다. 엘레노아. 너는 영주 대행 같은 게 아니야.
엘레노아에게 공작령을 맡긴 알렉스의 신뢰가 가득한 눈빛은 이미 그가 공작령의 영주라는 자리를 엘레노아에게 넘겨주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이미 훌륭하게 영지를 경영하고 영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 그녀에게 가지는 아브로스와 알렉스의 기대는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엘레노아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무리 가문의 여식이라고 하더라도, 버젓이 아들과 아버지가 존재하는데 자신이 영주의 자리를 물려받아 영지의 경영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도 되는 걸까.
아버지와 오빠의 기대는 너무나도 기뻤고 좋았지만, 영지민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은 굉장히 무거웠다.
하지만 그런 엘레노아가 이 자리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런데도 해볼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사람만 같이 있어 준다면….’
엘레노아는 속으로 은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활발해진 지금의 아르미타스령을 이만큼이나 발전할 수 있도록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지금껏 이끌어왔던 것은 은현의 공이 컸다.
은현이야말로 많은 사람을 이끌고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영주로서 어울린다고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으며 마음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그가 공작령의 영주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지.’
엘레노아는 그것이 자신만의 바람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은현은 이 영주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신경을 써야 하며 몸이 두 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은현에게 자신 대신 공작령의 영주 자리를 부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받아들였다.
은현만 곁에 있어 준다면, 은현을 도와서 그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그의 아내로서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가자.”
“네. 마님.”
엘레노아는 릴리와 함께 힘찬 발걸음으로 저택을 나서 학교를 향했다.
“세상에….”
세실리아는 너무 놀란 나머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전방의 거대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럴 수가….”
그녀뿐 만이 아니라, 은현과 엘레노아에게 제안을 받고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개교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예정인 교수진들 모두가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째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관해 묻는다면, 그것은 그들의 앞에 떡하니 존재하는 커다란 학교 건물 때문이다.
“이것이…. 정말로 저희가 가르칠 학생들이 다닐 예정인 ‘학교’가 맞나요?”
“네. 맞아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세실리아가 다른 교수들을 대표하여 물었지만, 엘레노아의 대답은 역시나 당연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세실리아를 포함한 교수들은 여전히 쉽사리 믿음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으로 학교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들이 맞이한 학교의 건물은 어마어마하다는 감상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하다.
페르니아스 왕국의 귀족 자제들이 다니는 아이테르와 비교를 해봐도, 고급스러운 양식과 자재들로 건축된 공작령의 학교는 더 화려하고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이 건물이 고위 귀족의 자제들도 아니고, 그저 평민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이라는 것이, 교수들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면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엘레노아와 함께 그녀를 시중을 들고 있는 메이드, 릴리가 세실리아와 교수들을 학교 내부로 이끌며 안내했다.
“음….”
고급스러운 내부의 시설들을 보고 있는 교수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감탄 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강의실과 휴게실, 교무실 등 다양한 내부 공간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고급스러운 설비들은 이 학교를 건축하는데 드는 돈이 얼마나 들었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다.
내부의 안내를 마치고 한 강의실로 안내한 엘레노아와 릴리는 간단한 질문을 받았다.
“궁금하신 점이나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기 바랍니다.”
학교의 내부에 대한 소개를 마쳤지만, 교수들은 아직도 석연치 않은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건 당연히 예상한 바였다.
“조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 교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네.”
“어째서 평민들을 교육하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그들이 앞으로 저희 공작령을 책임져 줄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은현이 고안해낸 이야기와 제안이었다.
그가 그리고 있는 나중의 미래는 너무도 밝았고 꿈과도 같은 이상의 이야기였기에, 엘레노아는 감화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민들은, 이 영지에 소속된 영지민들은 그냥 영지민이 아닙니다.”
특별하다는 말로 그들을 치켜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영지민은 저희 영지에서 농사를 짓고 한 해 동안 열심히 관리한 작물들을 수확하여 공작령 전체가 먹을 식량을 만들어내죠. 그리고 또 다른 영지민은 피와 땀을 흘려 제작한 무기와 장비들을 판매하여 저희 공작령의 치안을 책임지는 전력을 증가시켜주죠.”
영지민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지극히 평범하여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한 명이 아닌 열 명이, 천 명이, 십만 명의 숫자가 쌓이면서 이 공작령 전체의 영지 운영을 지탱한다.
“지금 앞으로 교육할 영지의 아이들은 지금이 아닌, 나중의 공작령를 책임질 중요한 미래들입니다.”
은현은 그 아이들을 키워나가기를 바랬다.
그래서 학교를 짓고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교수들을 초빙해왔다.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분야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농업과 의류, 건축 등 의식주의 세 가지 요소에 대한 것부터, 대장장이의 양성과 영지의 경영을 보조하기 위한 행정 공부.
그리고 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의학과 약학에 대한 분야도 가르칠 예정이다.
의식주와 관련 영역과 야금술 같은 경우는 평민들에게도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있어 가르치는데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분야였지만, 그렇지 못한 분야들도 존재했다.
전문 지식과 교육을 필요로 하는 행정학이나, 의학, 약학이 그러한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모신 것이지요.”
엘레노아에게 스카우트를 제안받아 이곳에 초빙된 교수들은 페르니아스 왕국 안에서 이쪽 분야의 전문 지식에 대해 인정을 받고 있는 이들이다.
그중에서 신분이나 대우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로 스카우트를 제안했다.
“일단 말씀을 듣고 결정을 내리기는 했지만, 우려되는 부분들이 있긴 합니다. 아이들이 정말로 이런 전문 지식의 교육에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 이건 아이들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교수의 지적은 지당했다.
특히나 의학이나 약학, 연금학 같은 전문 지식의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귀족 집안에서 배출된다.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조기 교육을 통해 그 지식을 습득하고 이해하여 실천할 수 있는 풍족한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
지금와서 그 지식을 평민들이 습득하는 것도 늦은 시기고, 기초 지식도 없는 영지의 아이들이 과연 이 분야의 수업을 따라올 수가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무시할 수 있다고도 여겨질 만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이었지만, 그 지적 자체는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물론 모두가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죠. 하지만 모두가 따라오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개인 차이가 있고 그중에는 분명히 뛰어난 능력이나 생각, 재능을 가진 인물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엘레노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에린 때문이다.
준남작이라는, 그저 무늬만 귀족일 뿐이었던 평민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에린은 은현의 교육과 자식의 노력으로 금위계라는 모험가 등급을 쟁취했다.
분야만 다를 뿐 그와 같은 일을 기대하고 있는 엘레노아에게 이 학교와 이 교육은 투자에 가까웠다.
아르미타스 공작령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한 투자.
“음…. 그렇군요.”
질문을 했던 교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이 학교를 운영하려면 적지 않은 예산이 들 텐데, 제가 듣기로는 왕국의 지원이나 다른 후원도 없이 오직 공작 가문의 예산만으로 운영된다고 들었습니다. 정말로 괜찮은 건가요?”
다른 교수의 질문에 교수진들이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아이테르의 경우에는 왕가에서 책정되는 지원 예산과 수많은 귀족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그렇지 않다면 교수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봉급과 설비의 유지비 등 다양하면서도 적지 않은 비용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른 귀족분들의 후원이나 왕가에 예산 지원을 요청하시는 건….”
“제안해오시는 후원 자체를 거부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그것을 빌미로 휘둘릴 생각은 없습니다.”
엘레노아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다른 고위 귀족의 후원을 받거나 페르니아스 왕가의 지원을 받는다면, 그건 그들에게 간섭을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페르니아스의 많은 비리 귀족들을 숙청하기 전의 아이테르는, 파벌 세력 싸움의 판도를 그대로 축소해 둔 것 같은 귀족 자제들의 신경전이 빈번히 일어났었다.
배우고 싶다거나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제안 자체를 막지는 않지만, 엘레노아는 자신과 은현이 설립한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겨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작 가문의 예산만으로 학교를 운영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돈 많거든요.”
엘레노아는 웃으며 자신 있게 교수들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실제로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예산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부가 축적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돈을 사용하여 영지 내의 돈이 돌아가게 하는 것도 경제를 순환시키기 위한 기대이기도 하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자신있게 확답을 늘어놓자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
“그러면…. 개교식 날짜가 정해진다면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사전 설명회를 마치고, 교수들은 모두 엘레노아가 데리고 온 시종의 인솔하에 영지 내의 고급 호텔로 향했다.
“세실리아님.”
마지막으로 설명회를 했던 강의실을 나가려던 세실리아를 엘레노아가 불렀다.
“네?”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게 되었네요.”
“후후, 네. 그렇네요.”
세실리아는 엘레노아의 인사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이대가 비슷한 세실리아는 과거 에린이 아이테르에 다니던 시절, 그녀의 담당 교수였다.
다른 고위 귀족들의 입김 때문에 에린을 돕지 못했던 죄책감을 계기로 은현 쪽과 적잖은 인연을 가지게 된 그녀는 페르니아스 왕국 내부에 돌았던 마약을 중화시키기 위한 치료제를 협상했고 은현과 일리아나, 엘레노아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던 인물.
그녀가 곧 개교하게 될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학교에서 가르치게 될 분야는 연금학과 약학이다.
다른 교수들의 스카우트는 모두 엘레노아에게 맡겼지만, 은현은 이 세실리아를 공작령으로 데려오는 것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것은 은현이 그녀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네. 따로 일정은 없어요.”
세실리아는 페르닌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관광의 기분으로 공작령 안을 돌아다닐 예정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제 남편이 세실리아님께 꼭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다고 하셨거든요.”
“부탁이요?”
세실리아는 은현이 자신에게 직접 부탁하고 싶다는 것이 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간의 얽힌 사건들도 적지 않았고, 페르니아스 왕국 내부에서 그에 대해 나도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에, 부탁의 내용을 듣지도 않았는데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다.
페르니아스 왕국의 귀족 절반을 갈아치워 버리는 데 일조하였으며 곧 여왕이 될 유리아 왕녀의 뒷배라고 불리는 남자.
소문이란 과장되기 마련이긴 하지만, 아예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소문이라는 것조차도 생기지 않기 마련이다.
은현이라는 남자와 얽히게 된다면 고생을 사서 하게 된다.
세실리아는 감으로 그것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짝 꺼리는 기색으로 고민하며 답하지 않았다.
엘레노아는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세실리아님께도 그리 나쁜 부탁은 아닐 거라고 하셨어요.”
“음…. 어, 네?”
“전에 에밀리아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보이셨다고 들었는데요.”
은현을 마스터로 인식하고 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어린 소녀의 외관을 한 전술 인형의 이름.
하지만 에밀리아라는 인형은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하는 자유의사가 존재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고대의 기술로 제작된 특별한 인형이었다.
이전에 지식의 욕구를 자극받아 에밀리아를 분해해보고 싶었던 전적이 있었던 세실리아는 엘레노아의 말을 듣자마자 두 눈을 빛냈다.
“당장 만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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