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1화 〉 611. 이성의 괴물(2)
* * *
시에테가 머무는 여관으로 들어가자,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던 여관주인은 사전에 이야기를 들은 대로 은현 일행을 그녀의 방까지 안내했다.
그녀의 방 앞에 멈춰선 여관주인은 방문을 노크하여 은현 일행의 도착을 시에테에게 알렸다.
“손님. 말씀하신 손님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알았다.”
무덤덤한 여성의 목소리.
하지만 노크와 여관주인의 알림에 즉각 반응한다는 것은 그녀도 지금까지 은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 저는 이만.”
“수고하세요.”
작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여관주인이 물러가자, 은현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스승님.”
“안녕하세요. 대스승님!”
“…그래.”
은현과 에린의 인사를 들은 시에테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뚱한 표정이었다.
‘기분이 안 좋으시군.’
시에테의 기분을 파악하는 것에 도가 튼 은현은 곧바로 스승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음?”
에린도 시에테의 감정을 읽어 들이고 심히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원인이 설마 은현 때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뒤의 두 사람은?”
시에테는 이내 은현의 뒤를 따라온 두 남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에린이야 은현의 제자이면서 아내이기 때문에 껌딱지처럼 은현의 뒤를 졸졸 쫓아다닐 것이라는 건 대강 알고 있었지만, 뒤의 두 남성은 시에테도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차한성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기억 속에는 없었다.
애초부터 타인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시에테는 누군가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않는 편이다.
“친구와 그 친구의 부하입니다.”
은현이 두 사람을 짧게 소개하자, 리오드와 차한성이 각자 입을 열어 자신을 소개했다.
“리오드라고 합니다. 이 녀석의 친구입니다.”
“차, 차한성이라고 합니다.”
“…흐음.”
시에테는 두 사람 중 리오드를 매서운 눈으로 유심히 관찰했다.
기사단의 갑옷을 착용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허리춤에 차고 있는 장검과 다부진 체격을 보고 그가 검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리오드 또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자신들을 관찰하고 있는 시에테를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 또한 검사이기에 눈앞의 다른 검사를 관찰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과도 같았다.
서로는 서로의 체격과 태도, 품고 있는 기운의 질을 곧바로 파악했고 상대의 수준을 가늠했다.
‘강하군.’
‘강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내린 결론은 같았다.
하지만 표현이 비슷할 뿐, 그 알맹이는 전혀 다르다.
시에테는 잘 단련되고 갈무리된 기운을 내포하고 있어, 검사로서 완벽에 가까운 완성된 육체를 가지고 있는 리오드의 강함을 평가했다.
반면 리오드가 본 시에테는 기묘했다.
그녀가 품고 있는 기운은 범상치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에린의 능력으로 인해 백귀로 부활하면서 얻은 신수의 마력일 터.
겉으로 보이는 육체의 강함 자체는 그다지 특출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은현 또한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특징.
‘과연. 보이는 게 다는 아니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군.’
이미 이 모그라프령에 파견을 나온 아르티아 기사단의 지휘관, 부단장 카인에게 시에테의 활약을 보고받고 있었던 만큼,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은 리오드도 알고 있었다.
“뭐, 상관없겠지.”
시에테와 리오드는 무뚝뚝하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미 눈빛으로 서로를 관찰하는 탐색의 시간이 끝나자, 경계를 푼 것은 시에테 쪽이었다.
은현이 직접 소개를 해온 이상 자신에게 해가 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진즉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시에테는 다시 테이블로 시선을 옮겼고 잔에 와인을 따랐다.
“…술 드셨습니까?”
“그래. 뭔가 문제 있느냐?”
“…….”
시에테의 물음에 은현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이도가 올라갔다.’
과거의 경험상, 시에테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때는 절대로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취기가 전신에 돌아 쓰러지기 전까지 그녀의 술주정을 계속 받아주어야 하는 앞날이 자연스레 그려져 은현은 다급히 행동을 서둘렀다.
곧바로 그녀에게 다가가고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스승님께 드릴 검이 완성되었습니다.”
“…….”
시에테는 와인을 마시려던 행동을 멈칫하고 은현의 손에 천으로 밀봉된 검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내 와인잔을 내려놓고 은현에게서 밀봉된 검을 받았다.
천천히 밀봉을 풀고 감싸져 있던 천을 풀어헤치자, 안에서 한 자루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
그 검을 한차례 응시한 시에테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놀라고 계시구나.’
겉으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은현이 제작한 겨우살이를 응시하고만 있었지만, 에린은 시에테의 감정에서 적잖게 동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읽어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저 검을 제작하기 위해서, 은현이, 그리고 자신이, 열댓 명의 드워프들이 서른 시간을 넘게 고생했던 것을 알아주는 것만 같아서 에린은 내심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설령 자신이 했던 일은 그저 은현을 보조하는 잡일에 불과했지만, 저 검을 제작하는 데 자신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 가슴 안쪽이 벅차오른다.
시에테는 애써 동요를 감추고 있었지만, 자연스레 겨우살이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검의 손잡이를 쥐고 정성스레 만들어진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스르릉
깔끔하게 울리는 금속의 마찰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새하얀 검신을 두 눈에 담았다.
“아.”
시에테는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검을 쥔 손목에 느껴지는 그립감과 무게.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검의 길이와 두께.
겨우살이를 뽑는 순간부터, 시에테는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이 검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제작된 검이라는 것을.
자신에 대해 자신보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은현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주는 일념이 겨우살이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만 같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지금껏 불만으로 가득 찼던 시에테의 마음을 건드렸다.
“정말로…. 이 검을 날 위해서 만든 것이냐?”
“그럼요. 혹시 조정이 필요하신 부분이 있나요?”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다시 수정할 의향이 있다는 듯 거침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진짜다.
“…….”
시에테는 은현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겨우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검은 이 상태 그 자체로 이미 완성이 되었다.
자신이 사용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하지만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은현은 어떻게 시에테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검의 형태를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었을까.
“잠시 이야기가 하고 싶구나.”
시에테는 방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에린과 리오드, 차한성을 한 번씩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이 은현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뜻임을 이해한 리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현아. 이야기 끝나면 불러줘.”
“그래.”
세 사람이 시에테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갔고, 방 안에는 둘만이 있게 되자 시에테가 은현에게 비어있는 와인잔을 내밀었다.
“마시겠느냐?”
“조금만 마시겠습니다.”
은현은 시에테가 따라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이 검은 정말로 나에게 있어 정말로 딱 맞는 이상적인 형태의 검이다. 고칠 점 따위는…. 한 곳도 없구나.”
그것은 은현이 제작한 겨우살이가 시에테에게 있어서 완벽한 검이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평소 무덤덤하며 웬만하면 칭찬을 하지 않는 시에테에게 있어선 최고의 칭찬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은현은 알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스승에게 자신의 야금술이 인정을 받은 것이 꽤 기뻤는지 은현은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으니까요.”
“…나를?”
시에테는 이내 은현의 대답을 듣고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네. 무릇 대장장이라면, 어떤 무기를 만들지, 누구를 위한 무기를 만들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것은 은현에게 야금술을 가르친 도란의 가르침이었다.
드워프들이 무기를 만드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자신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가장 이상적이고 최고의 무기를 직접 만들어 그 이상을 실현시키는 것.
두 번째는 사용하게 될 주인이 무슨 무기를 원하는지, 주인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도란은 그 두 번째 방식을 통해서 적월과 청월을 제작하였으나, 끝내 그 두 자루의 검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도란에게 있어서 은현은 대장장이였지, 검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적월과 청월을 완성하는 것에 자신의 혼과 노력, 기술 등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그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은현은 다르다.
시에테에게 검을 배우면서 그녀가 사용하는 검의 길이, 무게, 형태, 그녀가 사용하는 습관과 버릇들.
무엇을 선호하고 무엇을 껄끄러워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은현은 시에테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생각하는 검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스승님이 이 검에 불만이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 저는 기뻤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봐왔던 스승님의 모습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
밝은 미소를 보여주며 진심을 표현하고 있는 은현의 얼굴을 본 시에테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주는 그의 마음은 시에테의 마음을 기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슴 속 어딘가를 근질거리게 만들어 참을 수가 없다.
그 마음을 얼버무리듯 시에테는 와인을 남겨두고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나가자구나.”
“예?”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에테를 따라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은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녀석의 덕분에, 지금은 기분이 아주 좋구나.”
원래는 은현이 어떤 검을 가져오든, 그 검에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겨우살이를 손에 꼭 쥐고 있는 시에테는 본래의 생각과는 달리, 지금 당장 이 검을 휘둘러보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나와라. 아주 오랜만에 검을 섞어 보자구나.”
살짝 취기가 깃들어 있는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기분이 좋았던 모양인지.
입꼬리가 올라가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시에테의 볼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고, 따라잡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스승이 자신과 검을 겨뤄보고 싶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은현은 피식 웃으며 장난스레 시에테를 도발했다.
“술도 드셨는데,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흥, 건방진 녀석. 안 본 사이에 꽤 여유가 생겼구나. 나중에 괜히 검을 만들어줬다고 후회나 하지 마라.”
하지만 건방을 떠는 은현의 모습이, 시에테는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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