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0화 〉 610. 이성의 괴물(1)
* * *
“어이! 여기 맥주 한잔 더!”
“예예! 갑니다아!”
떠들썩함으로 가득한 주점의 안으로 들어온 시에테는 곧바로 테이블에 착석했다.
“야 임마! 적당히 마셔!”
“저 자식, 누가 잘 봐. 오늘도 진탕 마시고 내일. 일 못 나오면 진짜로 다리몽둥이 분질러버린다.”
“아, 글쎄 한 번이었잖아! 다시는 그런 일 없어!”
“저 친구 오늘도 또 왔구만! 하하하!”
술을 좋아하는 손님.
그 손님과 직장 동료로 보이는 다른 손님들.
동료에게 핀잔을 주고, 창피한 듯 얼버무리고, 그것을 보고 또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소란으로 가득한 주점 내부의 분위기는 몹시 어수선했지만, 이곳에서는 이것이 일상이나 마찬가지라는 듯 자연스럽다.
“어서오세요. 손님!”
점원이 곧바로 시에테의 테이블로 다가와 가져온 컵에다 물을 따랐다.
시에테는 점원이 내민 나무판을 받아들었다.
얇은 칼로 파낸 각인으로 무언가가 적혀있는 나무판은 이 주점에서 사용하는 메뉴판이다.
하지만 약 400년 만에 하계에 부활하게 된 시에테는 이 아르케나 대륙의 언어를 아직 익히지 못했다.
“제일 비싼 걸로.”
메뉴판을 건네도 메뉴의 이름을 읽을 수가 없어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시에테는 모그라프령에서 했던 대로 대충 둘러대며 메뉴를 주문했다.
“네!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 자체는 그렇게 적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곤란할 것은 없었다.
엘레노아가 지원해준 돈은 물론, 자신이 모그라프령에서 정기적으로 마수들을 처리해준 대가로 받은 보상금도 적지 않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주문을 받은 점원이 웃으며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고 주문을 전달하기 위해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시에테는 점원이 가져다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시끄러운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은 곳이구나.”
처음 와보는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길거리와 상권에는 웃음과 활기가 가득했다.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고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밝았다.
부활하고 나서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서 한동안 머물렀던 모그라프령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언데드와 마수들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은 모그라프령의 영지민들은 가족과 동료, 연인, 친구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빠져 암울했던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것을 극복하여 내일을 바라보면서 점차 회복되어 갔던 것이 시에테가 가장 최근에 느꼈던 모그라프령의 분위기다.
하지만 아르미타스령은 다르다.
이곳의 영지민들은 희망과 밝은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영지민들이 안정적이고 풍족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이 영지의 주인인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시에테에게 느껴질 정도였다.
시에테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 노력이 들어갔는지까지 모르지는 않았다.
“끄어어! 인간들의 맥주는 역시 시원해서 좋군!”
커다란 잔에 담긴 맥주를 단번에 들이킨 걸걸한 트름과 목소리가 시에테의 귀에 들려왔다.
인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종족, 드워프의 존재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진 지금.
그들 또한, 하루의 일을 마친 저녁에는 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특히나 대장장이라는 직업이나 건축, 토목 공사의 분야에서는 드워프의 기술과 재능이 몹시 특출났기 때문에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인간들과는 제법 어울리면서 잘 녹아들기까지 했다.
“이번에 그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야장’께서 엄청난 검을 만들었다는 그 소문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인가?”
“…….”
시에테는 물을 마신 컵을 내려놓고 멈칫했다.
드워프들이 말하는 ‘야장’이라는 것이 누구를 칭하는 말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일야장’이라는 칭호를 가지면서 모든 드워프들이 우러러보는 이가 바로 자신의 제자인 은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시에테는 겉으로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면서 드워프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은현이 만들었다는 ‘검’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내 친구가 이번에 그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고향에 갔다 왔는데 말이야. 그때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지.”
“빨리! 빨리 말해보게!”
참을성이 없는 드워프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이야기의 보따리를 푸는 드워프를 재촉했다.
“정말로 엄청난 검이었다고 하더군.”
은현이 가져온 오리하르콘은 그 빛깔부터, 품고 있는 기운까지.
소재들 하나하나가 이름을 들으면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고가의 재료들.
“무엇보다도 정말 대단한 건 야장께서 보여주신 기술일세!”
서른 시간이 넘는 장시간 동안 계속해서 망치를 두들기는 집념과 끈기를, 그리고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점점 단단해지는 오리하르콘이 발하는 영롱한 빛을 본 드워프들은 아직도 그때를 회상하며 평생의 자랑거리로 여길 것이라 자랑을 하고 다녔다.
“그, 그 정도였단 말인가!? 야장께서 만드셨다는 검이 도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은현이 제작했다는 검을 본 적이 없는 드워프들은 더욱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난쟁이들의 짧은 다리가 나무로 된 의자를 탁탁 두들기며 호기심을 더욱 강하게 키워나갔다.
“낸들 아나! 나도 들어만 보았을 뿐이지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풀고 있는 드워프 또한 답답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대장장이에게 있어 천일야장의 작업을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드워프에게 영광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것이 한이었다.
잔뜩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드워프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시에테는 생각했다.
‘…그 녀석은 도대체 뭘 만든 거지?’
무엇을 만들었길래 드워프들 사이에서 이런 소문이 도는 걸까.
원래는 눈치를 밥에 말아먹었는지 그대로 자신을 내버려두고 여행을 떠난 은현이 어떤 검을 만들던 그것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은현이 드워프들보다 야금술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드워프들의 검을 모조리 깨부숴버렸던 전적을 가지고 있는 시에테는 은현이 설령 어떤 검을 가져오더라도 그 검을 부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이 이 정도로 소란을 피울 정도라면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흐음.”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이윽고 점원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와 시에테의 테이블에 세팅했다.
우우웅
“음?”
포크를 찍어 음식을 입에 넣고 씹던 도중, 시에테는 품속에 가지고 있던 아티팩트 하나가 작동하여 약한 진동을 보내오는 것을 느꼈다.
엘레노아와 연락을 할 수 있는 통신용 수정구다.
시에테는 품속에서 진동하는 수정구를 꺼내려다 멈칫했다.
이 수정구는 은현과 엘레노아가 직접 개발한 아티팩트.
원거리에서 통신으로 대화를 한다는 기술과 개념 자체가 아직 이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통신용 수정구슬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엘레노아의 당부를 뒤늦게 떠올렸기 때문이다.
엘레노아에게서 사전에 들었던 설명 요령에 따라 수정 구슬에 마력을 흘려 넣었고 억지로 연결을 끊었다.
급한 용건이라면 다시 통신을 걸어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 자신 쪽에서 엘레노아에게 통신을 걸면 된다.
수정 구슬의 진동이 멈추고 반응이 없자, 시에테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주점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치르자마자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향했다.
사람의 기척이 아예 없는 깊숙한 곳으로 향한 뒤, 수정 구슬을 작동시켜 엘레노아에게 통신을 걸었다.
[갑작스럽게 통신을 걸게 되어 죄송합니다. 시에테님.]
“아니. 저녁을 먹는 중이라 받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그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군.”
은현의 복귀 사실을 전해 들은 시에테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주점에서 술을 진탕 마시면서 드워프들이 늘어놓는 은현의 소식을 접했기 때문인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오히려 드워프들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만드는 검의 정체가 궁금해져 살짝 호기심을 가지고도 있었다.
“어디로 가면 되지?”
◆ ◆ ◆
“와…. 진짜 많이 복구됐구나.”
아주 오래간만에 모그라프령을 방문하게 된 에린은 현재 변경령의 복구 상태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마수들과 언데드의 습격으로 파손되었던 성벽은 수복되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견고하고 위용이 있어 보인다.
복구 작업에 착수한 드워프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는지 그 공로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정말로…. 대단하군요.”
함께 동행한 차한성 또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했다.
언데드의 출현으로 모그라프령에 기사단에서 파견 지원을 나왔던 적이 있었던 차한성은 그때와는 달리 몰라보게 바뀐 변경령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약 2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성벽은 더욱 견고해지고 영지 안의 환경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영민들의 표정이다.
가족, 친구, 연인 등 가까운 사람을 잃었던 상실감과 언제 다시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영지 전체에 깔려있었던 암울한 분위기가 걷혔고, 영민들이 다시 기운을 차리며 앞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장님!”
아직 모그라프령에서 파견 지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아르티아 기사단의 부단장 카인이 사전에 보고를 받았던 대로 리오드와 차한성, 은현과 에린의 마중을 나왔다.
“영지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군.”
“그렇죠.”
카인은 변경령의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리오드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드워프들의 기술력은 정말로 대단합니다. 요즘에는 그들에게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인간들 쪽이 굳이 이곳으로 찾아와 가르침을 청할 정도니까요.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
카인은 자신의 허리춤에 착용하고 있는 두 자루 중 한 자루의 검을 꺼내어 리오드에게 선보였다.
아르티아 기사단의 인장이 새겨져 있는 검 이외에, 이 변경령에서 드워프들이 제작한 검이었다.
재질과 경도, 그리고 닿는 것만으로도 베일 것만 같은 날카로운 예기를 자랑하는 그 검의 완성도는 몹시 뛰어났다.
아르티아 기사단에 납품하는 일반적인 보급형 검보다도 훨씬 좋아 보인다.
“현재 모그라프령에는 이 정도의 검은 널렸습니다. 심지어 이 검도 드워프들에게 야금술을 배운 젊은 대장장이들이 제작한 검이지요.”
지금은 모그라프령의 젊은 영지민들이 이 야금술의 일부를 전수 받아 제작 중에 있고, 외부에서 찾아온 상인들에게 제작된 무기들을 판매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군.”
리오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현상이라고 수긍했다.
암울했던 영지 전체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설령 이곳이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모그라프 변경령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국경을 지키는 최전선과도 같은 장소.
이곳이 회복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곧 나라의 국방과도 관계가 깊은 만큼, 이 나라의 백성이자 관계자로서 나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중에 기사단 숙소로 가도록 하지. 자세한 보고는 그때 듣겠다.”
“어? 보고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리오드의 모그라프령을 방문한 공식적인 이유는 현재 이곳에 파견을 나와 있는 기사들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보고를 통해서 이상이 없다는 것을 들은 리오드에게는 이 일정은 그저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아.”
카인은 리오드와 차한성의 옆에 함께 동행해온 은현과 에린의 모습을 발견하고 대강의 이유를 파악했다.
아마도 현재 모그라프령에 머물러 있는 시에테라는 여검사를 만나보기 위해 은현을 따라왔다는 진짜 의도를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숙소에서 자세한 보고서를 준비해두도록 하죠.”
“음.”
카인이 물러나자, 리오드는 곧장 은현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가 천으로 감싸며 알뜰살뜰 밀봉해둔 검.
‘겨우살이’ 또는 ‘미스틸테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검의 정체는 리오드에게도 흥미가 있었다.
“자, 가자.”
은현은 시에테가 머물고 있는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엘레노아에게서 모그라프령의 숙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전해들었다.
“현아. 긴장했어?”
“…조금 그럴지도.”
“헐.”
에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가 말인가?”
솔직하게 심경을 털어 놓은 은현의 대답에, 오랜 시간을 함께 팀으로 활동했던 리오드 또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을 정도다.
“너에게 검을 가르친 스승은…. 그 정도로 엄격하신 분인가?”
“엄격…이라…. 그런 건 아닌데….”
은현은 리오드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순간 망설여 고민했다.
그녀와 사제 지간으로 함께 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생각을 짧게 표현을 하자면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이내 은현이 리오드의 물음에 답을 내놓았다.
“그냥…. 꼬장이 좀 심하셔. 특히 술을 드시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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