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8화 〉 608. 성녀와 악녀(3)
* * *
“흠. 이곳인가.”
공작령에 위치한 커다란 건물을 올려다본 시에테는 작게 중얼거렸다.
“큰 상회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건물의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있는 알테리아 상회의 건물은 현재 공작령의 상권에 있는 건물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시에테의 기준은 지구의 빌딩 건물을 비교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니, 그 인식의 격차는 당연하다.
“손님이신가요?”
“…….”
건물의 입구 앞에 서서 조용히 건물을 올려다보고 있는 시에테를 발견한 상회 직원 하나가 곧바로 나와 응대를 했다.
시에테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직원의 말에 답하지 않고 조용히 상회 건물만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알테리아 상회는 손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윽고 뒤늦게 시에테가 자신을 응대하고 있는 직원을 응시했다.
직원은 교육으로 무장하여 일관된 웃음을 유지하면서 위아래로 눈을 굴려 시에테의 모습을 스캔했다.
‘뭐지. 이 사람?’
보석은커녕 장신구 하나를 걸치지 않은 차림새를 보아하니 귀족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나 입고 있는 옷의 디자인이 굉장히 특이했다.
태도에서 흘러나오는 기품이나 당당한 분위기는 평민이라기에도 모호했다.
이윽고 직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에테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목검이었다.
경력이 꽤 되는 모험가인 줄 알았지만, 착용한 장비는 고작 목검 하나.
직원에게 있어 눈앞의 여성은 여러모로 정말 미스테리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애써 감춘 채, 직원은 시에테에게 말을 걸었다.
“찾으시는 상품이 있으신지요?”
“음.”
시에테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인명 피해는 최대한 줄이라고는 했지만.’
그 수위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속으로 고민했다.
이내 시에테는 고민하는 것을 포기하고 상회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소, 손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깔끔하게 무시를 당할 줄은 몰랐는지 직원이 당황하면서 급하게 시에테의 뒤를 쫓았다.
입구를 지나쳐 거대한 중앙홀로 들어온 시에테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목검을 꺼내어 위로 들어 올렸다.
“도대체 뭘 하시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시에테에게로, 건물 안에 있던 손님들과 상회 직원들의 시선이 빠르게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
“…바람?”
모험가 활동을 하면서 사용할 만한 적당한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알테리아 상회를 찾아온 한 손님 모험가가 건물 내부의 공기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그리고 그 원인인 시에테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녀와 그녀가 위로 들어 올린 목검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는 마력을 알아보고 경악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무기는 연습용으로 쓰는 것이 고작인 목검.
하지만 그녀를 중심으로 응집되고 있는 마력의 양과 밀도는 일반적인 모험가의 수준을 간단히 상회한다.
시에테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를 깨달은 손님 모험가는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도망쳐!”
경악과 다급함이 담긴 외침을 들은 다른 손님과 모험가들, 직원들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준비를 마친 시에테의 목검이 어마어마한 마력으로 요동치는 위험을 내뿜으며 아래로 내리쳐졌다.
[시에테 검성술]
[백화참수(?花??)]
콰아아앙!
목검에 응집되어 있던 마력이 해방되면서 막대한 파괴력이 대기를 찢고 뒤흔들어 건물 내부를 휩쓴다.
대기를 찢은 마력의 돌풍은 그대로 건물의 벽을 깎아버리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어느새 목검과 충돌한 바닥 부분이 기이한 형태로 파손되었다.
시에테를 중심으로 나선의 모양을 그리듯 파손된 바닥의 형태를 보고, 간신히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던 한 손님 모험가가 경악했다.
“저건….”
목검에서 해방된 마력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면서 대기를 찢고 바닥을 가르며 뻗어 나간 검흔의 형태라는 것을 알아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품질이 좋은 고급의 장비들을 취급하는 알테리아 상회를 찾는 모험가들이니만큼, 그들 또한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제법 경력이 되고 이름을 알릴 법한 실력을 갖춘 강자들.
하지만 그런 모험가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몸을 뻣뻣하게 굳힐 만큼 등장과 동시에 급습으로 내부를 장악한 시에테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쯧.”
하지만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건 말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시에테는 미간을 좁히며 혀를 찼다.
한 합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버린 목검의 내구도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기의 제작에 반쯤 미쳐있는 드워프들이 제작한 명검들도 시에테의 힘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목검은 자신의 공격 한 번을 겨우 담아낼 허약한 내구도가 고작이었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짜증 나는군.”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무기를 탓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과거, 생전의 자신은 적어도 이 정도로 강한 마력을 보유하지는 않았었다.
현재 시에테는 생전의 육체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한 채로 부활할 수 있었지만, 시에테의 현재 영혼의 본질은 백귀였다.
이 막강한 마력은 에린의 힘으로 인해 백귀로 부활하게 되면서 얻게 된 신수의 마력.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마력과는 질과 밀도 자체가 틀린 만큼 감당해야 하는 힘의 수준도 보통이 아니다.
일반적인 무기로는 백귀의 마력을 모조리 품을 수가 없었다.
시에테는 생전의 자신보다 육체의 스펙도, 마력의 질과 양도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는 있었지만, 정작 그 힘을 모두 발휘하지 못해서 답답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윽고 위층으로부터 엄청난 진동과 마력을 느끼고, 무장한 다수의 모험가가 내려와 상황을 살폈다.
움푹 파인 바닥의 중심에 서 있는 시에테는 누가 보아도 이 소란의 원인.
소란을 듣고 내려온 모험가들은 시에테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냐?”
“그런데.”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건지, 그냥 미X 년인 건지.”
위층에서 내려온 모험가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시에테를 노려보았다.
마치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듯 깔보고 있는 시에테의 태도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희가 철호단이라는 길드인가?”
“…….”
시에테를 노려보고 있던 모험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아르미타스 공작령 안에서 신참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싸구려 물건을 비싼 값에 강매하면서 사기를 쳤었던 범죄가 적발되면서 철호단 길드는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추방을 당한 상태다.
지금은 이름과 단체들을 위장하여 알테리아 상회의 호위로 잔류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정체를 들켜서 좋을 것이 하나 없는 만큼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에테는 자신의 물음으로 확신했다.
“정답이군.”
부정도 하지 않고 긍정도 하지 않는 그 반응이 그들이 철호단 길드의 소속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나 다름이 없다.
심지어 부하로 보이는 몇몇 철호단 길드원들은 흠칫 놀라며 동요하는 모습들까지 보여주었으니까.
이내 철호단의 길드장이 검을 뽑아 들고 흉흉한 기세를 내뿜으며 시에테를 노려보았다.
“검을 내려놓고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어디서 자신들의 정보를 듣고 왔는지 알 수 없었던 만큼, 철호단 길드는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시에테를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얌전히 투항하라는 권유를 들은 시에테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핫!”
“…웃어?”
“그야 웃기지.”
그녀가 목검으로 선보였던 첫 번째 일격을 직접 두 눈으로 체감했다면, 절대로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없었을 터.
하지만 지금의 시에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의 힘도 외부로 흘리지 않고 고요하고 잔잔하다.
반면 시에테는 철호단 길드가 에린과 엘빈 단 두 명에게 처참하게 깨져버렸다는 것을 엘레노아에게서 사전에 전해 들었기 때문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핏덩이 꼬마에게 깨진 주제에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그것은 철호단 길드에게 있어서는 묻어버리고 싶어도 평생 따라오는 치욕스러운 과거였다.
검을 꽉 쥐고 있던 철호단 길드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자신이 부재중일 때, 자신의 길드를 풍비박산 내고 공작령에서 쫓겨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에린을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
“너…. 그 년이랑 무슨 관계냐.”
“…….”
시에테는 철호단 길드를 잔뜩 도발해놓고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결국, 보기 좋게 그녀의 도발에 넘어간 철호단 길드장이 사자후를 터뜨리며 길드원들에게 명령했다.
“쳐!”
흉흉한 눈빛과 무기들로 무장하고 전투의 태세를 취하고 있던 철호단 길드원들이 길드장의 호령에 일제히 시에테에게 달려들었다.
그 숫자는 약 20명이 넘는 숫자.
시에테도 곧장 자세를 낮추고 호기롭게 철호단 길드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가장 앞에서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는 길드원의 손목을 낚아채고 다리를 걷어찼다.
다리가 걸려 넘어지면서 그로 인해 순간적으로 균형이 무너진 길드원이 쥐고 있던 검을 낚아 챘다.
스르륵
“…어?”
어느샌가 검을 빼앗긴 길드원은 무력하게 쓰러지는 자신의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양쪽 다리를 쳐다보자, 그의 양쪽 허벅지에서 붉은색의 선혈이 흘러나와 바지를 적셨다.
언제 칼을 빼앗긴 것인지, 언제 베어진 것인지, 자각도 할 수 없었다.
이어서 늦게 찾아오는 격렬한 고통.
“으, 아아아악!”
그 고통을 표현하듯 비명을 질렀지만, 다른 길드원들은 그에게 신경 써줄 여유가 없었다.
이것은 1초도 되지 않은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순간.
시에테는 길드원에게서 빼앗은 검을 휘둘러 철호단의 길드원들을 차례차례 베어나갔다.
서걱
천천히 앞으로 걸어갈 때마다, 누군가는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른 누군가의 다리가 바닥을 나뒹굴며 바닥을 새빨간 선혈로 적셨다.
깨끗한 절단면을 만들어낼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와 제대로 된 인식조차 할 수 없는 빠른 속검이 휘둘러지며 철호단 길드원들을 차례차례 정리해나가는 이 상황은 기이하고 기괴하다.
“뭐, 뭐하고 있는 거야! 이 새끼들아! 고작 한 명한테…!”
하지만 그렇게 외치고 있는 철호단 길드장 또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눈앞의 여성은 자신을 비롯한 모험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모험가 등급이 은위계로 강등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명예로운 등급인 금위계 등급을 거머쥔 모험가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철호단 길드장은 시에테와 자신의 사이에 존재하는 압도적인 실력의 격차를 본능적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비록 겉보기에 육체의 스펙으로 자신이 압도할지라도, 쌓아온 전투의 경험 자체가, 기술의 수준이,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할 정도로 철호단 길드장은 아둔하지 않았다.
“아.”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약 2, 30명이나 되는 철호단 길드원들을 모조리 베어 넘기자, 또다시 시에테가 쥐고 있던 검이 한계에 달하여 부서졌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위력을 조절해가면서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러져버린 검의 내구도에 불만을 느낀 시에테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으, 으아아아!”
철호단 길드장은 시에테의 무기가 부러진 틈을 노려 공격을 시도했다.
본능에 자리잡은 공포를 얼버무리기 위한 기합을 내지르며 시도한 공격은 제법 좋은 시도였으나, 시에테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 부서져 가는 검을 들어 올려 철호단 길드장의 검을 통째로 베어냈다.
“이…럴 수가….”
철호단 길드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검이 검신은 부러지고, 검날은 이가 다 빠지면서 무기로서의 수명을 다한 검에 깔끔하게 잘려나갔다는 것에 경악했다.
놀랍고, 두렵고, 기괴하기까지 한 그 검격은 평생을 모험가로서 싸움터에서 살아온 철호단 길드장의 이해를 초월했다.
이윽고 깔끔하게 잘려나간 검에 이어서, 시에테가 쥐고 있던 부러진 검날이 철호단 길드장의 어깻죽지를 그대로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악!”
손잡이를 좌우로 비틀자 어깻죽지에 박힌 칼날이 흔들리며 살점을 파고 들어가 더욱 깊숙이 박혔다.
격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철호단 길드장은 시에테가 검의 손잡이를 놓자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안심해라. 치료하면 죽지는 않을 거다. 일상 생활에서는 조금 불편함을 느끼긴 하겠지.”
하지만 두 번 다시 모험가로서 활동하지는 못하리라.
철호단 길드장 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길드원들 전원이 그럴 터.
“크…으윽!”
시에테는 무릎을 꿇은 채로 어깨의 통증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철호단 길드장에게서 등을 돌리고 상회의 건물을 나왔다.
혹시 모를 미행을 위해 주위를 경계하면서 엘레노아가 마련해준 숙소로 들어오자 숙소 안에 배치되어 있던 수정 구슬에 마력을 흘려 넣어 작동시켰다.
“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에테님.]
통신에 응답해준 여성의 목소리는 은현의 아내 중 한 명인 엘레노아였다.
“부탁한 일은 잘 끝냈다.”
[제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라고 되살린 목숨이다. 그 값 정도는 해야지.”
실제로 자신을 되살린 것은 어디까지나 에린의 능력이었지만, 영혼에 불과했던 자신이 에린에게 보내질 수 있었던 것은 명계를 관리하고 있는 여신인 프로세르피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들은 은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 호의를 베푸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시에테는 자신이 되살아난 이유와 가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고맙다면, 네 남편인 못난 제자 녀석에게 얼굴이나 비추라고 전해라.”
시에테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은현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시에테도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검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재료를 가지러 갔다는 이야기를 엘레노아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은현이 검을 제작해주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음에도 시에테는 현 상황이 그닥 마음이 들지 않았다.
검의 제작은 그저 구실이었을 뿐, 그녀가 원했던 것은 오랜만에 재회하게 된 제자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현은 미련하게도 시에테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재료를 구하러 에린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눈치는 밥이나 말아 처먹은 것….’
지금쯤 그 철없어 보이는 어린 아내와 알콩달콩하게 즐거운 여행을 보내고 있을 은현을 생각하니 괜히 짜증이 났다.
시에테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원인을 곧바로 간파한 엘레노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꼭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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