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02화 (585/730)

〈 602화 〉 602. 겨우살이(3)

* * *

“…….”

“왜 그래?”

설산을 내려가던 도중, 입을 꾹 닫고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에린을 보며 은현이 물었다.

“아니. 그냥…. 현이가 만들 예정인 그 검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값어치를 가졌을까 싶어서.”

현재 왕국에서는 미스릴이라는 금속은 일반적인 강철과 가격을 비교해보면 아무리 저렴한 가격에 구한다고 하더라도 열 배가 넘는 금액을 필요로 한다.

미스릴의 가격이 그럴 진데, 미스릴을 상회하는 오리하르콘이라는 금속의 가격이 어떨지는 굳이 고민해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졌다.

에린은 현재 인간들 사이에서는 오리하르콘이라는 금속을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는 정말로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미스릴로 제작된 무기가 금화 수백 닢이나, 백금화 몇 닢에 거래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리하르콘으로 제작된 무기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들의 숫자까지 극히 한정된 만큼 부르는 게 값이나 마찬가지인 셈.

‘페르니아스 왕국의 국보인 듀란달이라는 성검도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졌다고 했었지?’

에린은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며 어이가 없다는 시선을 은현에게 보냈다.

왕국의 국보라고 불리고 있는 성검을 뛰어넘는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 바로 자신의 옆에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심지어 그는 다름 아닌 자신의 남편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규격 외라는 것은 이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이건…. 팔려고 만드는 무기가 아니니까.”

오직 시에테에게 어울리는 검을 제작하는 것에만 모든 생각을 집중하고 있던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애용하는 검의 날, 길이, 두께, 무게와 경도,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최상의 신검(??)을 제작하기 위해서 머릿속의 생각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불순물이 단 하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오리하르콘으로 제작하는 무기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은 부족할 정도로,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밖에 제작할 수 없는 검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오직 시에테 만이 사용할 수 있고, 그녀에게만 허락된 유일한 신검(??).

은현이 만들려는 것은 그런 검이다.

‘어쩌면 지금 내 영혼과 동화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는 적월과 청월보다도 대단할지도 모르지.’

그것은 적월과 청월이라는 두 자루의 신검(??)을 제작한 오란의 기술을 초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지금 은현이 시도하는 이 장비 제작은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쳤던 오란에게 도전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애초에 소재도 내가 압도적으로 좋은 걸 가지고 있는데.’

비록 적월과 청월도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완성시켰다지만, 동일한 오리하르콘도 아니고 순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오리하르콘을 가지고 오란보다 못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현이는 대스승님을 너무 좋아해.”

설산을 내려가던 도중, 느닷없이 에린이 은현의 팔 한쪽을 끌어당기며 자신의 품 안에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거리고 있는 것이 어딘가 서운한 듯 보였다.

“내가?”

자신이 시에테를 좋아한다?

에린의 툴툴거리는 한마디를 들은 은현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상상도 해볼 수 없는 그 말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아니. 아주 좋아해. 아~주!”

하지만 에린은 확실하게 단언했다.

“좋아하지 않으면 왜 검을 만들어드리려는 거야?”

그것도 그냥 평범한 검이 아니다.

세상에서 그 어떤 누구도 쉽게 초월할 수 없는 최고의 검을 제작하는 이유는, 자신이 직접 사용하려는 것도 아니다.

시에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녀의 검술을 완벽하게 이어받지 못했다는 미안함.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여 자신의 스승으로 있어 주길 바라는 동경심.

시에테에게 가지고 있는 은현의 감정들은 매우 다양하다.

“현이는 가끔가다가 바보 같을 때가 있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누가 이렇게까지 노력을 한다는 거야.”

검을 만들기 위한 최고의 소재를 찾기 위해 대륙의 최북단을 찾아오고, 앞으로도 며칠 밤낮을 망치만을 두들길 예정인 그 노력이 향하는 최종적인 목적지가 바로 시에테다.

에린은 그 감정이 자신이나 다른 아내들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조금 복잡한 심경을 품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뭐, 그 대스승님이시니까. 일리아나님도 봐주고 계신 거겠지.’

자신이 가진 신수의 힘으로 영혼만 존재했던 시에테가 부활하게 되자, 은현의 마음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스승인 시에테의 죽음은 은현의 마음속에서 큰 짐을 지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린.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응?”

“내가 스승님께 검을 만들어드리려는 이유는 스승님을 존경해서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그냥 나중이 편해서야.”

“그게 무슨 말이야?”

“말씀하셨잖아. 나한테 검을 만들라고.”

“그랬지.”

에린은 기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짜고짜 모그라프령의 복원 작업에 한창인 드워프들을 찾아와 깽판을 놓으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검을 만들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던 것이, 현재 은현과 에린의 쿠르델 산맥 여행의 시작점이다.

“그 스승님이 정말로 주위에 흔한 소재로 제작한 검에 만족할 거라 생각해?”

“…….”

에린은 순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모그라프령의 드워프 대장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서졌던 검들이 수십 자루나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무 무거워서, 너무 가벼워서, 내구도가 약해서, 검의 길이가 너무 짧아서, 반대로 또 너무 길어서, 다양하면서도 하나같이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부서져 버린 검들이 한두 자루가 아니다.

드워프들이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불만을 내비칠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해낸 역작들이 시에테의 검격을 단 한 합도 버텨내지 못하고 부러져버렸기 때문이다.

최고의 무기를 해내는 종족이라는 자부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리자, 멘탈이 나가버리는 드워프들을 보고 있자니 에린이 다 불쌍할 지경이었을 정도다.

“한 번에 만들 때 제대로 해야 해. 스승님의 마음에 단 한 번에 마음에 들어야지 나중에 또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아.”

은현이 이번에 최고의 소재와 최고의 환경에서 시에테의 검을 제작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려는 이유는 당연히 스승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지만, 그것뿐 만이 아니었다.

은현은 시에테의 귀찮은 꼬장을 두 번이나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한다면 불만의 목소리가 찍소리도 나오지 못하도록 단 한 번의 시도로 완벽하게 끝낸다.

“…….”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스승에 대한 귀찮음.

어느 쪽의 마음이 더 우선시하고 있는 것일까, 에린은 굳이 묻지 않았다.

물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 ◆ ◆

“……. 사라졌어.”

실험하던 와중, 마녀는 자신이 풀어놓은 실험체 중 하나의 연결이 끊어져 버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설녀 쪽인가.”

설산에서 얼어 죽어가던 여자의 원혼 하나를 오염된 마나에 지속해서 오염시켜 스펙터로 변이시킨 끝에 탄생한 설녀는 마녀가 꽤 공들인 실험체 중 하나였다.

자신이 원래 있었던 세계에서는 그 설녀가 지속해서 인간들을 잡아먹고 힘을 키워나가며 자신의 영역을 점점 넓혀나갔고, 북부 전체를 눈보라로 뒤덮어버리면서 많은 수의 인간들을 동사(?死)시켜버렸다.

이번에도 그와 같은 수법으로 쿠르델 산맥의 적당한 원혼 하나를 붙잡아 스펙터로 변이시키면서 그와 같은 전철을 밟게 만들려 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설녀가 소멸하였다는 것은 눈치챌 수 있었지만, 그녀가 누구에 의해 소멸을 당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던 마녀는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였을까.

이전 세계에서는 손쉽게 힘을 키워나가며 몇만 단위가 넘는 인간들을 동사(?死)시켰던 설녀가, 이번 세계에서는 제대로 힘을 키워버리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소멸하여버렸다.

“설마 현이가?”

마녀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간 가능성은 은현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멸망시킨 이전 세계와 현재 세계의 차이점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은현의 생사뿐이었다.

자신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다른 변수도 있었을 수도 있지만, 마녀는 이것이 확실하다고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마녀는 이쪽 세계에서는 지난 세계에서만큼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계획을 앞당겨야겠네.”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숫자는 늘지 않고 있지만, 은현 쪽의 세력이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를 가늠할 수 없는 이상, 마녀는 하루라도 빨리 선공을 취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다.

◆ ◆ ◆

이미 절반 이상의 드워프들이 이주를 하면서, 제법 한산해졌던 드워프의 마을은 은현과 에린의 방문으로 다시 떠들썩해졌다.

“오셨어! 오셨다고!”

“야장께서 돌아오셨다!”

은현과 에린을 발견한 드워프들이 잔뜩 흥분한 채로 두 사람의 복귀를 마을 전체에 전파하고 다녔다.

이미 마을 안은 그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축제의 분위기다.

“…저렇게들 좋나?”

에린은 어째서 드워프들이 자신들의 방문을 저렇게 반기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하, 야장의 신부께서는 우리 종족이 아니니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오.”

가장 앞으로 나온 도란이 껄껄 웃으며 은현과 에린을 맞이했다.

은현과 에린이 드워프 마을을 방문한 오늘은 그들에게 있어 축제와도 같은 날이다.

그 이유는 이 마을의 대장간에서 은현이 검을 제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천일야장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그가 시작부터 끝까지 검의 제작에 대한 모든 공정을 주도하는 일이며, 도란은 이 순간을 위해서 마을 안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열 명의 대장장이들을 미리 선별해두었다.

천일야장의 작업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그 열 명의 대장장이들에게는 평생을 거쳐 자손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업적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최고의 무기 제작을 꿈꾸는 드워프들에게는 멀찍이서 천일야장의 작업을 관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될 터이니 가슴이 뛰지 않을 수가 없다.

“준비는?”

은현은 사전에 이야기해두었던 대로 도란에게 대장간의 준비 상황을 물었다.

“모두 마쳐두었소. 야장께서 마을에 돌아오셨다는 말을 듣고 바로 화로에 불을 지폈으니, 아마 지금 당장이라도 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거요.”

“그래.”

은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 지금부터 쉬어도….”

“아니야. 괜찮아. 나도 돕고 싶어.”

에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다.

대장장이의 야금술에는 전혀 문외한이었지만, 이런 자신이라도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은현이 작업에 들어간다면 기본적으로 사흘을 밤낮으로 먹지도 쉬지도 않고 망치만을 두들긴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은현을 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나뿐이니까.’

일리아나는 자신에게 은현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에린은 여기서 편하게 혼자만 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 알았어.”

에린의 그 말뜻을 이해한 은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도란에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명령을 내렸다.

“안내해.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알겠소.”

도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바라 마지않았던 은현이 가진 천일야장의 기술을 볼 기회를 얻게 된 드워프들이 흥분으로 가득한 열기를 띄우며 대장간으로 우르르 발걸음을 옮긴다.

화로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공방의 안으로 들어서자, 은현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순수한 오리하르콘을 꺼냈다.

“오, 오오…!”

“어찌 저런 빛깔을…!”

“아름답다! 아름다워!”

“난…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

“흐, 흐윽…! 신이시어…!”

모루 위에 올려두어 단단히 고정하는 오리하르콘을 본 드워프들이 감탄과 경악, 사랑과 탄식 등 각각 다양한 감정들을 표현했다.

은현의 지시를 받아 모루에 오리하르콘을 고정하고 있던 에린은 그들의 반응이 기괴하기만 했다.

“…뭐야. 무서워.”

자신이 보기에는 그저 신력이라는 특별한 기운을 품고 있는 쇳덩어리에 불과할 텐데, 어째서 저렇게 쇳덩이 하나에 열광하고 탄식한단 말인가.

“뭐,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손에 신의 무구를 소환시켰다.

[신의 무구]

[불카누스의 망치]

“원소주기율표를 보고 아름다운 예술의 극치라고 찬양하는 사람들을 보고 공감 못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그냥 미쳤다고 결론을 내리더라.”

그냥 보는 관점이 다르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살짝 틀릴 뿐인데, 그것을 미쳤다고 말을 해버린다면 살짝 서운할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있어. 그런 게.”

까아앙!

은현은 자신의 중얼거림을 이해하지 못한 에린의 물음을 뒤로하고, 신력을 불어넣은 불카누스의 망치로 오리하르콘을 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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