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1화 〉 601. 겨우살이(2)
* * *
신철(??) 오리하르콘.
말 그대로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오리하르콘의 탄생 배경은 평범한 철이 대량의 신력에 영향을 받아 변질되었고, 그 끝에 자연스레 신력을 내부에 품으며 진화한 금속.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오리하르콘이란, 여신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여 진화한 금속이라는 은현의 설명을 듣고 있는 에린은, 현재 쿠르델 산맥의 정상에 있는 깊은 동굴 내부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럼 현이 말은 오리하르콘을 만들어낸 게 여신님이라는 거야?”
“그건 아니야.”
“…응?”
마치 수수께끼 문제를 푸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에린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다.
“신력이 원인이긴 하지만, 그건 신들의 의사가 아니었어.”
하계에 악마와 괴물들이 침략해오고,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대지는 황폐화가 되었다.
더는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일곱 여신은 자신들의 신력을 끌어모아 다른 차원의 하계와 이곳을 통합시켜 새로운 하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결과 대지를 가득 채웠던 신력들이 이곳에 다양한 영향을 주었다.
오리하르콘의 탄생은 지금의 이 아르케나 대륙을 재창조한 결과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한데 모였던 일곱 여신의 막강한 신력이 아직도 고스란히 잔류하고 있지.”
이곳에서 흘러나온 소량의 신력들이 쿠르델 산맥 안에 있는 광맥에 영향을 주어 오리하르콘으로 진화시킨다는 것이 신의 금속이 만들어지는 비밀이다.
“왜 사람들은 이 동굴의 존재를 아무도 모르는 걸까…?”
에린은 어두운 동굴의 내부를 계속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흔적이 고스란히 보이는 것에 의아했다.
은현의 말대로 이 동굴 안의 가장 깊숙한 곳에 그런 것이 있다면 너도나도 이곳을 찾아와 순수한 오리하르콘을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무수히 많은 모험가들이 이 쿠르델 산맥을 방문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이곳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곳을 눈치챌 수 없어.”
“어째서?”
“결계가 쳐져 있으니까.”
이 동굴의 존재 자체를 숨겨주고 있는 결계는 대륙의 마법사들이 마력을 이용하여 만들어낸 일반적인 결계와는 성질 자체부터가 다르다.
은현이 이 동굴의 존재를 특정하고 쉽게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처음부터 이 동굴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도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결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반신(半?)이기 때문이다.
“어? 그럼 나는? 나는 인간인데?”
“인간이긴 하지만 그냥 평범한 인간이 아니지.”
은현은 에린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자신의 품 안에 끌어당기며 웃었다.
“내 아내잖아.”
그것은 평범한 부부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신의 선택을 받은 사도이자 반신(半?)의 평생을 함께하는 배우자의 의미.
은현과 밤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왔던 에린의 몸속에는 은현에게서 받은 신력이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아, 그렇네! 헤헤.”
에린은 새삼 그것을 깨달은 것이 기뻤는지 실실 웃으며 은현의 포옹에 호응하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가벼운 스킨십을 교환한 두 사람은 다시 동굴 안을 탐색하며 계속 걸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그냥 동굴이네.”
일반적으로 모험가로서 어딘가를 탐험할 때는 반드시 주위를 경계하며 함정이나 마수의 기습을 주의해야 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이 탐험하고 있는 동굴 안은 정말로 김이 빠질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함정 같은 것은 누군가의 침입을 경계하며 만들어둔 장치.
던전도 아니고, 신의 힘이 잔류하고 있는 이 신성한 공간은 평범한 던전들과도 성질이 달랐다.
신력이 가득한 동굴 안에서는 마수의 존재조차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은현과 에린은 아무런 전투도 거치지 않고 내부를 탐험할 수 있었다.
“뭔가 김이 새네….”
“전투를 치르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으면 제일 좋은 거지.”
“응. 그건 그런데….”
지금까지 모험가 활동을 해왔던 탐색과는 완전히 달라서 그런지 어딘가 허전했다.
언제 어디서 위험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주변을 경계하는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동굴 내부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은현이 감지를 통해서 이 동굴 내부에는 아무런 함정이나 마수들이 없다고 확인을 해주었지만, 그런데도 경계를 풀 수 없었던 것은 에린이 가지고 있는 습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금위계라는 등급을 가지기는 했지만, 아직 2년 차에 불과한 그녀에게서는 이런 부분에서 아직 어리숙하다.
“좋은 습관이야.”
아직 군기가 빠지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에린을 보며 은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현과 함께 계속해서 내부로 깊이 들어가던 에린이 순간 자신의 감각에 느껴지는 기운의 존재를 눈치채고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에린도 느꼈구나.”
“…응.”
에린은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안으로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자연스레 긴장하게 된다.
천천히 앞장을 서는 은현의 뒤를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난 것은 푸른색의 밝은 빛으로 가득 차 있는 광활한 공간이다.
“와, 와아…!”
빛 한 점이 들어오지 않는 깊숙한 곳의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내부를 환하게 밝혀주는 푸른 빛들을 보고 에린이 감탄을 터뜨렸다.
푸른 빛들이 품고 있는 기운들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고 강력하다.
에린은 주위의 허공을 넘실거리는 푸른 빛들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예쁘다!”
“그러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은현도 웃으며 에린의 말에 동의했다.
은현은 동굴 안의 광활한 내부 정중앙에 꽂혀 있는 무언가를 주시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에린도 그것을 발견했다.
“저게….”
정중앙에 꽂혀 있는 무언가는 철이었다.
사람의 키보다 조금 더 큰 2m 정도의 길이와 팔뚝만 한 굵은 두께.
“저게 진짜 오리하르콘…?”
에린은 자신이 지금껏 보아왔던 금속들과는 다른 매우 이질적인 모양을 한 오리하르콘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모양이….”
뭉특하고 덩어리의 형태를 가진 가공 전의 금속들과 달리, 정중앙에 꽂혀 있는 오리하르콘은 마치 이미 가공을 끝낸 상태로 무기로 제작되기 이전의 상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이미 저렇게 만들어진 상태에서 신력의 영향을 받아 주입된 거야.”
은현은 담담히 정중앙에 꽂혀 있는 오리하르콘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냐.]
“흣!?”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에린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귀에 들려오는 육성이 아니다.
에린은 자신의 영혼에 직접 소통을 해오는 그 목소리는 굉장히 무겁고 저릿함을 느꼈다.
“뭐, 뭐야!? 누구야!?”
자신에게 말을 건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에린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동굴 안을 가득 채우는 푸른 빛들 뿐이다.
실재하는 기척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감각에 감지되지 않는 것이 에린의 기분을 더 이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무섭거나 두려운 쪽은 아니다.
이 정체 모를 영체는 설녀처럼 자신들을 해를 입힐 만한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인간인가.]
중앙의 바닥에 꽂혀 있는 오리하르콘으로부터 푸른색의 마력이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영혼의 등장에 에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구세요?”
[상대방에게 누구인지 묻기 전에, 먼저 자신을 소개하는 게 먼저라고는 듣지 못했나?]
“아!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린이라고 해요!”
뒤늦게 화들짝 놀란 에린이 급히 허리를 숙이며 꾸벅 인사를 했다.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에린을 앞에 두고, 영혼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는 소개할 만한 이름이 없다.]
“예?”
에린은 숙였던 고개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개할 만한 이름이 없다고 했다. 멋대로 불러라.]
“아, 그러면 영혼님이라고 부를까요?”
[…….]
영혼은 유심히 에린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까칠하게 대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걸어오는 에린을 보는 영혼의 표정은 ‘뭐지? 얘는?’에 가깝다.
“안녕하십니까. 위대한 영혼이시어.”
[…너는 누구지?]
영혼은 정중하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은현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지구가 멸망하고, 일곱 여신에 의해서 재창조되어 아르케나 대륙이 생긴 지 어언 몇백 년.
단 한 명도 접근하기는커녕 발견조차 할 수 없었던 이곳에 찾아온 두 명의 인간 남녀는 딱 보아도 범상치 않은 인간들이다.
특히나 남자 쪽은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한 말투다.
“네. 이 오리하르콘을 수호하고 있는 수호령이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수호령은 경계의 눈초리로 은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의 경계를 받고도 은현은 미소지었다.
“여신님들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
“일곱 여신 중, 쥬노님의 전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앞으로는 푹 쉬도록 하여라.’라고 전해달라 하셨더군요.”
은현은 담담히 쥬노의 이야기를 수호령에게 전달했다.
[아.]
수호령은 작게 탄식했다.
은현이 하는 말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전투에 적합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이 결계를 몇십, 몇백 년이고 유지하는 것에만 특화된 수호령은 일곱 여신으로부터 하나의 사명을 부여받고 만들어진 영혼이었다.
그 사명은 오직 이 오리하르콘을 수호하는 것.
평범했던 철이 신력의 영향을 받아 오리하르콘이 탄생하게 된 것은 확실히 여신들의 입장에서도 미처 상정하지 못했던 계산 외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기쁜 오산.
여신들은 그 오리하르콘의 존재가 인간들의 눈에 띄도록 유도했고, 그 결과 하계를 구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성검’이라는 무기가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오리하르콘이라는 금속의 존재는 언젠가 하계에 다시 넘어올 악마들과 마수들의 존재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그래서 여신들은 이 쿠르델 산맥에 대량의 신력이 집중되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숨겨두었고 아무도 이곳에 들어올 수 없도록 결계를 쳐둔 수호령을 배치해두었다.
‘자격을 갖춘 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곳을 지켜라.’
수호령은 자신의 영혼 안게 각인되어 있는 단 하나의 사명이 몇백 년의 시간 끝에 드디어 완수되었음을 깨달았다.
몇백 년 만에 등장한 처음 맞이하는 두 인간 남녀가 자신이 쳐둔 결계를 무시하고 이 동굴을 특정하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바로 자격을 갖춘 자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런가…. 너희가 그 자격을 갖춘 자였군.]
오랫동안 이어왔던 자신의 임무가 드디어 끝났다는 것에 수호령은 안도했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몇백 년의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이 동굴을 홀로 지켜왔던 임무가 드디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
공허함과 외로움이 가득했던 영겁의 시간이 드디어 끝났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수호령은 자신이 기쁨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고맙다.]
영겁의 시간과도 같았던 자신의 임무를 끝내고 해방해준 두 사람에게, 수호령은 고개를 숙이며 두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은현과 에린 또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곳에 홀로 지내왔을지 가늠이 잡히지 않는 수호령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 인사를 받은 수호령이 스르륵 사라지며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치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 해방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갑작스러웠다.
은현은 수호령이 사라지자 중앙에 박혀 있던 오리하르콘을 바닥에서 뽑았다.
그저 손에 쥐었을 뿐인데, 금속에서 전해지는 막대한 기운의 존재를 실감했다.
“가자. 에린.”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소재는 구했다.
이제 대륙에 존재하는 성검을 뛰어넘는 신검(??)을 제작하기 위해 남은 것은 대장장이로서 가진 자신의 역량에 달렸다.
“부디 스승님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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