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600화 (583/730)

〈 600화 〉 600. 겨우살이(1)

* * *

눈이 덮인 설원에서의 아침이 찾아왔다.

“우으….”

급하게 찾은 동굴 안에 설치한 텐트 안의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에린은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신음했다.

은현과 나누었던 하룻밤이 굉장히 진했던 탓인지 허리에 느껴지는 요통의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푹 잠을 자면서 고통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 정도라서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현아…?”

에린은 곧바로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은현을 찾았다.

침대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잠을 자고 있었던 은현은 이미 일어나서 간단한 휴대식 케이스를 꺼내고는 버너 아티팩트를 이용하여 따뜻한 스프를 만들고 있었다.

에린의 목소리를 들은 은현이 고개를 돌리며 간이침대 위의 에린을 바라보았다.

“일어났어?”

“응.”

“몸은 좀 어때?”

“허리가 아파…. 그래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아. 조금 움직이다 보면 풀릴지도….”

“어젯밤 동상 말한 거였는데, 다른 걸 말한 거 보면 그건 괜찮나 보네.”

“…….”

에린은 순간 얼굴을 붉히며 은현의 시선을 피했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거렸다.

“어젯밤에 그렇게 격렬하게 했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

괜찮지도 않았으면 거기서 하자고 하지는 않았으리라.

알면서도 굳이 은현이 그것을 물어오는 것은 부끄러워하는 자신의 반응을 보며 즐기는 짓궂은 성격 때문이라는 것을 에린은 확신했다.

“미안. 미안.”

은현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순순히 사과했다.

“식탁 좀 만들어줄래?”

“…응.”

에린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허리가 결리는 감각이 남기는 했었지만, 말 그대로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었던지라 곧바로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접이식 테이블을 가져와 침대의 앞에 펼치자 은현이 양손에 들고 있던 스프 그릇을 테이블에 세팅했다.

에린은 은현이 수저를 쥐여주고 어서 먹으라는 말에 곧바로 콘스프를 떠서 입안에 넣었다.

은은하고 따뜻한 크림 스프를 먹자 에린의 전신에 따뜻한 온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좋다아….”

눈꺼풀이 무거웠던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하도록 만들어주는, 깔끔한 콘스프의 맛에 에린이 웃음을 지으며 다시 수저를 움직여 콘스프를 떠먹었다.

“자, 빵도 먹어.”

“응. 고마워.”

은현이 건네준 빵을 콘스프에 찍어 먹으면서 배 속을 든든히 채워나가던 에린은 조금씩 여유를 되찾자 은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현아. 우리 이제 뭐 해?”

여차여차하여 두 부부의 노력으로 쿠르델 산맥에 존재하는 악마의 정체는 밝힐 수 있었고, 깔끔하게 정리도 했다.

어젯밤에는 설녀의 숨결을 근거리에서 정면으로 맞고 동상에 걸리면서 기절했던 것이나 애정을 교환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에 물어보지 못했었다.

“다시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와야지.”

“본래의 목적? 아.”

에린은 곧바로 자신과 은현이 이 쿠르델 산맥을 찾아온 이유를 떠올렸다.

시에테의 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로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오리하르콘을 찾는 것.

그것이 이 아르케나 대륙의 최북단에 있는 쿠르델 산맥을 찾아온 이유였다.

“그럼 우리 바로 움직여?”

“천천히 가도 돼.”

오리하르콘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니고, 현재로서는 ‘쿠르델 산맥의 악마’라는 소문 때문에 오리하르콘을 차지하려고 기를 쓰고 산맥을 올라오는 경쟁 모험가들도 없다.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므로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

게다가 은현에게는 오리하르콘보다도 에린의 컨디션이 더 중요했다.

만약 순수한 오리하르콘을 얻게 되지 못한다면, 시에테의 검을 만드는 계획에는 큰 차질이 생기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가능성을 감수할 생각이기도 했다.

“헤헤. 고마워.”

자신을 배려해주는 은현의 말에 에린은 풀어진 웃음을 보였다.

“아, 맞다. 현아. 나 이따가 상담이 있어.”

“상담?”

“응. 사실은 나 새로 시험해본 기술이 있는데….”

에린은 설녀를 상대하였을 당시 급하게 만들어보았던 자신의 기술, 청사(?)에 대해서 은현에게 설명했다.

노스페라드를 쓰러뜨렸을 때, 리오드가 사용했었던 오의를 보고 에린이 자신의 방식대로 어레인지하여 만들어낸 기술.

리오드가 높은 마력으로 형성된 검기를 광범위로 흩뿌려 주위를 쓸어버리는 것으로 공격력과 범위를 챙기는 오의를 만들어냈다면, 에린은 모든 피지컬과 능력을 단 한 점에 집중하여 극한의 관통력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에린의 청사(?)는 리오드의 기술을 모티브로 자신의 스타일에 맞추어 급조해낸 것이기 때문에 기술의 완성도 자체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이 상태만으로 설녀를 압도할 수는 있었지만, 아마도 진짜로 강적을 만났을 때는 씨알도 먹히지 않으리라.

그래서 에린은 은현에게 자신의 기술을 더 높은 수준으로 완성시킬 방법을 상담하고 있었다.

“흠…. 그렇구나.”

은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에린의 상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리오드의 기술을 보고 자신의 방식대로 어레인지를 시키는 발상과 방식이 꽤 예상외의 것이라, 은현은 속으로 감탄했다.

성장을 위해서 조금씩 강해지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스승으로서도, 남편으로서도 굉장히 뿌듯하고 즐겁다.

“알았어. 같이 생각해보자. 그래도 일단은 이곳에서는 무리니까 집으로 돌아가서. 알았지?”

“응!”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은현과 에린은 곧바로 동굴 안에 설치된 야영 텐트를 정리했다.

다시 위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 두 사람에게 몰아쳐 온 것은 거친 눈보라의 폭풍.

“괜찮아?”

은현은 어젯밤 설녀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으면서 한차례 동상에 걸렸던 에린의 상태를 물었다.

“응. 괜찮아.”

방한용 장비를 착용한 에린은 어젯밤과는 달리 쌩쌩했다.

오히려 기운이 넘친다는 것을 어필하듯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하며 자신있게 답했다.

이 추위가 가득한 산속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 소모를 하는 것은 그리 좋은 행동이 아니었지만, 은현은 그런 에린을 보며 작게 웃었다.

“힘들면 바로 말해.”

“알았어~.”

걱정도 팔자라는 듯 에린이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에린은 이미 은현이 자신의 체력을 걱정하면서 보폭을 맞추어 산을 등반하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배려를 해주고 있는데, 그에게 민폐를 끼칠 생각은 없다.

에린은 그렇게 배려를 해주고 있는 은현의 옆을 나란히 걸으며 설산을 올랐다.

“그런데 현아.”

그러면서 궁금한 점을 떠올려 곧바로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오리하르콘이라는 건 어떻게 생긴 거야?”

“미스릴이라는 금속이 뭔지는 알고 있지?”

“알고는 있지만…. 원래 어떻게 생긴 금속인지, 어떻게 만들어진 금속인지는 전혀 몰라.”

에린은 자신의 레이피어인 레반테인도 오리하르콘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은현이나 구미호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야금술이나 광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에린은 처음 은현에게 레반테인을 선물 받았을 때, 이 레이피어의 가치를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구미호가 무지했던 에린을 두고 얼마나 신랄하게 까댔는지를 생각하면, 에린은 아직도 이가 갈릴 정도다.

레반테인은 주인인 에린이 가지고 있는 신수의 힘을 증폭시켜주며 배가 되는 위력을 끌어내는 엄청난 검이지만, 에린은 외관만으로는 다른 검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안목이 없다.

심지어 일반적인 강철이나 미스릴, 다른 금속들과의 차이도 잘 모른다.

금위계 모험가인 그녀의 지위에 비해서는 다소 빈약해 보이는 지식과 안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에린이 가지고 있는 실력이 그만큼 남들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모험가가 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에린에게는 그 지식과 안목을 갖추기 위한 경험과 시간들이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이나, 그 시작점은 똑같아.”

“응…?”

에린은 순간 은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고개를 갸웃했다.

시작점이 똑같다는 것은 사실상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이 같은 금속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은현이 계속 입을 열어 자세히 설명했다.

“미스릴도, 오리하르콘도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철이었다는 뜻이야.”

“…진짜로?”

처음 듣는 사실에 에린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그럼 그 금속들은 왜 그렇게 변해버린 건데?”

평범한 철에 불과했던 금속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미스릴이나 오리하르콘이라는 금속으로 바뀔 수가 있었을까.

“에린. 미스릴의 큰 특징이 뭔지 알아?”

“응. 그건 알지. 강도는 그냥 철보다 단단하고 마력을 받아들이는 전도율도 훨씬 높…아!”

에린은 머릿속에 있는 미스릴에 대한 지식을 간략히 설명하던 도중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탄식했다.

이내 에린의 그 반응을 본 은현이 그녀가 깨달은 것이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미스릴은 본래 평범한 철에 대량의 순도 높은 마력이 깃들면서 그 성질이 변화한 금속이지.”

많은 이들이 미스릴이 가지고 있는 성능과 효과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정작 미스릴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기원에 관해서는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다.

알고있는 것은 인간들보다 수명이 길면서 미스릴과 오리하르콘의 기원과 유래를 보존해온 드워프 정도일 터.

“그러면 오리하르콘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금속일까?”

이번엔 은현이 에린에게 물었다.

“…….”

산길을 오르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면서, 에린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은현이 말해준 미스릴이라는 금속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유래, 미스릴과 오리하르콘의 시작점이 같다는 말.

미스릴이 대량의 마력에 영향을 받아 변질된 끝에 진화한 금속이라면, 오리하르콘도 어떠한 힘에 영향을 받으면서 진화를 한 금속이라는 것이 아닐까.

마침내 에린이 생각을 마치고 머릿속으로 내린 결론을 입에 담았다.

“…신력의 영향을 받아서?”

“맞았어.”

오리하르콘의 또 다른 이명은 바로 신철(??).

신의 금속이라고 불리 우는 이유는 말 그대로 신의 힘을 받아들인 특수한 금속이기 때문이다.

강철이나 미스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용자의 힘을 배로 증폭시켜주는 특별한 효과를 지닌 금속.

심지어 그 금속으로 제작된 무기는 대장장이의 역량이나 어떤 과정에 영향을 받아 자아(Ego)를 각성시켜 무기 자체가 자유의사를 가지는 경우도 생겨났다.

은현이 가지고 있는 브류나크나, 아직은 각성하지 못했지만 그럴 조짐이 보이고 있는 적월과 청월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에린은 은현의 입으로 설명하는 오리하르콘의 유래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뛰어난 강도와 금속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 때문에 신철(??)이라고 불리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정말로 신의 존재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것에 적잖게 놀랐다.

“도착했어.”

오리하르콘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했다.

“여긴…. 뭐야?”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싸늘해지는 설산의 눈보라를 헤치고 도달한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 가득한 동굴이었다.

에린은 순간 주춤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다른 인간들보다 예민한 자신의 감각으로도, 이 동굴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서 꺼림칙 했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은현은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며 걸어갔다.

에린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현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 안에 뭐가 있는 거야?”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오리하르콘. 다른 말로는…여신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여 진화한 신의 금속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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