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96화 (579/730)

〈 596화 〉 596. 설녀(雪?)(4)

* * *

[꺄아아악!]

설녀는 자신의 어깨 부근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신체 일부가 불에 타들어 가는 고통은 어깨로부터 점점 더 몸 전체로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파! 아파아! 아파아아아!]

‘…됐다!’

에린은 자신의 기술이 성공적으로 들어갔음을 깨닫고 눈을 빛냈다.

지금 사용한 ‘청사(?)’는 에린이 고대 마수인 거대 흡혈박쥐, 노스페라드를 처리할 때 사용했던 리오드의 오의를 보고 어떻게든 자신의 기술로 어레인지한 기술이었다.

설녀에게 자신이 던지는 여우불이 닿지 않는 만큼, 더 빠르고 강력한 기술을 고안한 끝에 에린의 머릿속으로 리오드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방대한 마력을 한곳에 응축시키고 고정하는 마력의 컨트롤이나 집중력, 그것을 검기(??)로 발산하는 기술은 오직 리오드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그래서 에린은 리오드의 그 오의를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재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리오드와 기사들이 사용하는, 면적이 넓은 기다란 장검이 아니라 레이피어의 형태로 자신의 기술에 알맞은 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리오드가 단 한 번의 일격으로 하늘을 찢어발기며 광범위한 공격 범위와 위력을 자랑한다면, 에린이 원했던 것은 자신이 원하는 한 곳을 꿰뚫을 수 있는 극한의 관통력과 속도였다.

‘더 강하게 쓸 수 있어.’

에린은 확신했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만들어낸 기술은 아직 급조한 것에 불과하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개선해나간다면 더 높은 위력과 속도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처음 만들어낸 기술.’

은현에게서 훈련을 받고, 갤러해드에게서 세검술의 기초를 전수 받았으며, 구미호에게서 신수의 요술을 쓰는 방법을 이어받았다.

그 결과 만들어낸 자신만의 첫 번째 기술은 에린에게 감회가 남달랐다.

‘아, 집중해야지.’

에린은 뒤늦게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처음으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세검술로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늘 위 허공에서 자신의 영체를 좌우로 흔들며 어떻게든 에린의 여우불을 끄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설녀의 거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여우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아픔’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었던 설녀는 에린의 여우불이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하마터면 그 고통으로 인해 이성이 날아가 버릴 뻔했지만, 어깨 부근을 불태우던 여우불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우불의 근원이었던 에린의 마력이 모두 소모되면서 여우불도 함께 소멸한 것이다.

[크…으윽!]

설녀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에린을 노려보았다.

영체를 짓무르고 찢어발기던 여우불의 고통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양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끔찍했던 고통은 설녀의 영체에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공포로 자리 잡았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고통을 느꼈을 때의 그 감각과 경험들이 영체에 직접 새겨져 그녀를 괴롭힌다.

[죽여…죽여버릴 거야…!]

설녀는 계획을 변경했다.

본래라면 이렇게 시간을 끌어 에린의 체력과 마력이 모두 소모되기를 노리기만 해도 설녀의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설녀는 에린을 지금 당장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듯 이성을 잃었다.

[네년을 통째로 얼려서 조각조각 깨부숴주겠어!]

처음 겪어보는 격렬한 화상의 고통을 영체에 새겨준 에린에 대해 증오와 살의가 치솟아 오른다.

에린은 설녀의 그 시선을 받아들이고 웃었다.

유리했던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자신을 비웃으며 조롱했던 그녀가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을 질질 끌며 도망만 치고 다니는 전략을 구사했던 설녀가 다시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하면서 에린과 직접적인 충돌을 해오는 것은 에린 또한 바라마지 않았던 상황.

“해보던가.”

에린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사격의 조준이라도 하듯이 레반테인의 검 끝이 허공에서 표독스럽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설녀를 향했다.

[내가…그걸 다시 맞아 줄 것 같아!?]

설녀는 코웃음 치며 에린을 향해 입김을 내뿜었다.

싸늘한 냉기가 다시 자신을 덮쳐오는 것을 감지해낸 에린이 작게 혀를 차고 자세를 풀었다.

황급히 몸을 옆으로 빼내어 설녀의 입김을 피하고 다시 ‘청사(?)’의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설녀는 그것을 쉽게 용납하지 않았다.

연속해서 불어오는 설녀의 입김은 아까보다 광범위해져 공격보다는 회피에 집중하게 만든다.

‘…전혀 공격할 시간을 만들어주지 않아.’

급조된 청사는 자세를 잡은 상태에서 마력을 응축시켜야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아직 완성도나 숙련도가 너무 낮았다.

위력과 속도, 명중률은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기술이니만큼 그럭저럭 봐줄 만했지만, 준비단계에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다.

눈밭을 달리며 설녀의 입김을 피해내면서, 에린은 고민했다.

‘백귀님들을 소환해서 시간을 끌도록 부탁드려볼까? 아니. 그렇게 되면 내가 구미호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더 짧아져.’

백귀들을 소환하는 것은 큰 전력이 될 터이지만, 그들을 소환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막대한 마력이 소모되는 만큼 섣불리 쓸 수는 없었다.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현재 전신에 여우불을 약하게 두르며 이 눈보라로부터 체온와 체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는 만큼, 지금까지 소모한 마력의 양이 적지 않다.

여기서 마력의 소모를 더 가속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요리조리 잘만 피해 다니곤…!]

자신의 입김이 에린에게 닿지 않자 설녀가 신경질적으로 더욱 난동을 부렸다.

그녀의 기분을 대변하듯 입김의 여파는 눈보라는 더욱 거칠어지고 기온은 한층 더 내려간다.

‘…이상하네.’

더더욱 자신을 몰아붙여 압박해오고 있음에도, 에린은 신비로운 경험을 체험하고 있었다.

자신을 노리고 몰아붙이는 눈보라의 폭풍이, 아까보다도 더욱 선명하게 감각에 인지가 되고 있다.

‘굉장히 느려.’

게다가 자신을 제외한 이곳의 모든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흘러가게 만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에린은 이 감각을 이전에도 한 번 경험해보았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과거에는 영웅이었으나, 이제는 적이 되어버렸다는 은현과 리오드의 옛 친구, 레이넌의 공격을 맞기 직전에 느꼈던 시간의 뒤틀림과 비슷하다.

극한의 상황에서 구석으로 내몰리면 내몰릴수록, 이것은 매번 에린을 찾아왔다.

그 원인은 ‘감지’를 통해서 주변의 정보를 파악하여 받아들이고 그것을 처리하는 머릿속의 사고가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린은 이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의 무언가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면….’

어째서인지 은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달리는 것조차 버거운 눈밭의 설산 위에서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서 빠르게 이동하여 마수들을 도륙 냈던 은현의 모습이.

그 뒷모습을 따라갈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잔상을 남기고 순간이동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은현의 고속 이동 기술.

이형환위의 개념과 이론은 은현이게 몇 번이고 설명을 들어왔다.

그것을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했던 것은 순전히 에린의 경험과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은현의 이형환위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에린이 은현의 보법에서 주목했던 것은, 눈밭 위를 달리면서도 발자국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빠르게 이동했다는 점이다.

‘몸을 가볍게 하고….’

에린은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고 있던 마력의 밸런스를 조절했다.

단단한 내구력과 근력을 키우는 식이 아닌, 신체 능력의 기민함을 최고조로 올리는 방향으로.

다리의 각력을 최대한으로 키워주기 위해 많은 마력을 흘려보내고 전신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리를 뻗어 눈밭을 밟았다.

“아.”

종아리까지 잠겼던 눈이 이제는 발목은커녕 발 자체가 빠지지 않았다.

에린은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주변의 환경이 변화했으니, 그에 맞춰 자신 또한 변화를 주었어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몸이 가벼워.’

심지어 이 눈밭 위에서도 다리가 빠지지 않아 더욱 자유롭게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다.

그것이 기뻤던 것도 잠시, 에린은 빠르게 달려나갔다.

[주현성 극원류]

[답설무흔(?雪無?)]

[…어?]

에린을 향해 또 한 번 싸늘한 입김을 불었던 설녀는 순간 에린의 모습을 놓쳤다.

입김의 범위 밖으로 나가는 속도도 속도였지만, 가장 이질적이었던 것은 그녀가 남긴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발자국이…?]

눈 위에 그녀가 남겼어야 할 발자국 자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에린은 빠른 속도로 눈밭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가속하고 더 가속하여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는데도, 바닥을 차면서 눈이 전혀 튀지 않는다는 것이 모순적임으로 그지없다.

하지만 명확히 실재하고 있는 일.

[이게…!]

설녀는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질주하고 있는 에린을 향해 입김을 불었다.

짧은 숨결이 아닌, 길게 늘어뜨린 광범위한 설녀의 숨결이 에린의 뒤를 쫓으며 바닥을 얼려갔다.

‘…아파.’

가속하여 달리면 달릴수록 살을 찢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찬 공기가 폐를 타고 들어와 전신을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여우불을 전신에 둘러 체온을 강제로 높인 에린은 그 공기를 계속 들이마시면서 가속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더 빨라질 수 있어.’

평소였다면 지금이 한계치였겠지만, 어째서인지 에린은 이 눈밭 위에서 달리는 질주가 더욱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요리조리 피하며 설녀의 숨결을 피하던 에린이 어느새 설녀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직선 코스로 설녀를 향해 돌진했다.

[하…! 얼어붙고 싶어서 자기 발로 오는군!]

설녀는 코웃음치며 자신을 향해 직선으로 돌진해오는 에린에게 숨결을 내뱉으려 했지만, 정면에서 달려와 거리를 좁히고 있는 에린이 또 한 번 여우불을 두른 레반테인으로 ‘사격’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영체를 움찔했다.

아까와 같은 직선으로 뻗어오는 푸른색의 섬광이 자신의 영체 어깨 부근을 관통하면서 불타올랐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에린 고유검술]

[청사(?)]

[크…윽!?]

가까스로 영체를 틀어 에린의 레이피어가 향하고 있는 사선의 범위 밖으로 나온 설녀가 작게 신음했다.

자신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가는 푸른색의 섬광은, 조금만 자신이 영체를 트는 것이 늦었어도 정확히 자신의 머리를 관통했으리라.

[이까짓 것…! 공격해올 거라는 것하고, 방향만 특정할 수 있으면…!]

까다롭기는 해도 피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설녀는 작게 안도하며 에린에게 다시 숨결을 토해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거면 충분했어.”

[…어?]

설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에린의 목소리가 바로 자신의 옆에서 들렸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있는 것은 아무리 신체를 강화한 모험가라고 할지라도 도약으로 쉽게 도달하지 못할 높이의 허공.

적잖게 당황하여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설녀의 바로 눈앞에 에린이 다가와 있을 것을 깨닫고 경악했다.

아까 전의 검기(??) 기술로 자신을 동요시켜 시선을 빼앗고, 그 짧은 틈을 이용하여 가속한 속도를 기반으로 점프하여 자신이 있는 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아무리 신체를 강화하였다고 하더라도, 웬만한 모험가를 가볍게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각력을 가지고 있는 에린이었기에 가능한 일.

“내가 말했잖아. 넌 내 손으로 없앨 거라고.”

[갤러해드 세검술]

[질풍사·청(?風?·)]

여우불을 두른 에린의 레반테인이 설녀의 머리를 관통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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