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94화 (577/730)

〈 594화 〉 594. 설녀(雪?)(2)

* * *

방심하고 있던 차, 은현의 기습으로 간단히 제압을 당한 설녀는 동요했다.

‘뭐…야! 이것들!’

지금까지 농락하고 사냥해왔던 모험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이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무언가라는 것을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고, 공격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눈앞의 백은발의 남자는 자신에게 홀딱 넘어올 듯한 연기로 눈속임을 하고 있었으니, 반대로 자신이 감쪽같이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한다.

조금만 더 신중하게,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설녀는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자신이 역으로 내몰릴 것이라고는 전혀 상정하지 않고 있었다.

모험가들이란 것들은 어리석고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이 다인 줄 알며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통나무집 인간 여성의 정체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설녀라는 스펙터라는 것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몸과 마력의 단련을 꾸준히 하고 모험가로서의 경험을 쌓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영적인 존재들을 인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령이나 귀신과도 같은 영적인 존재를 믿지 않는 모험가들은 매우 많다.

자신들의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인식할 수 없으므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커흑!”

점점 목이 졸리면서 호흡할 수 없어진 설녀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째서….’

눈앞의 부부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던 두 남녀는 다르다.

“어떻게 내가 인간이 아니란 걸…!”

어떻게 자신의 정체를 눈치챌 수가 있었을까.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어. 네가 스펙터라는 건.”

그리고 수상쩍게도 대놓고 있던 이 통나무집의 존재부터가 이미 함정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고, 은현은 말했다.

“나한테…넘어온 줄 알았는데…!”

설녀는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은현을 노려보며 분노로 이를 갈았다.

멍청하게도 속았다는 것에서 차오르는 치욕과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는 것에서 비롯된 짜증의 감정들이다.

이대로 아내라는 여자의 앞에서 남자를 대놓고 농락하고 잡아먹을 생각이었는데 그것이 첫 단추부터가 은현의 연기였다는 것이 몹시 짜증났다.

“아니. 넘어올 리가 없잖아. 나 아내도 네다섯이 있는데.”

목을 꽉 조르고 있던 은현의 손에 힘이 잠시간 풀렸다.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

설녀 또한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딴 삶을 산단 말인가.

어떤 왕국의 국왕이 첩을 여러 명 들였다면 모를까, 눈앞의 남자는 국왕은커녕 그냥 얼굴만 반반하게 생긴 보잘것없는 평민 모험가였다.

“그리고 너 내 아내들보다 못생겼어. 남자를 꼬실 거면 성형부터 다시 하고 와라.”

대놓고 악담을 늘어놓는 은현의 말에 설녀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설녀가 뒤늦게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린 은현의 손을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발광을 하던 차.

“크흑…! 이거 당장 안 내려…!”

“감히 내 남편을 유혹하려 해!? 넌 오늘 죽었어!”

에린이 침대에 누워 자는 척을 하면서도 풀지 않았던 허리춤의 레반테인을 뽑아 들고 설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좁은 방안에서는 침대 위에서 도약하여 설녀의 머리에 닿기까지는 아주 짧은 시간만이 필요했고.

‘젠장…!’

설녀는 순식간에 자신의 이마까지 근접해온 에린의 레이피어를 보고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리고 자신의 실체화를 해제했다.

간발의 차로 설녀가 실체화하고 있던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도망치자, 알맹이가 빠지고 껍데기만 남아버린 그녀의 육체는 점점 형체가 풀어지고 스르륵 무너져내렸다.

“…눈?”

무너져 내린 설녀의 육체가 겨우 조잡한 눈덩이로 변해버리자 에린이 적잖게 당황했다.

은현은 곧바로 몸을 뒤로 돌렸고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에린. 위야.”

“위? 어!”

은현이 보고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시선을 올려다보자, 에린도 허공에 떠 있는 존재를 인식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새하얀 소복과 함께 허공에 넘실거리는 하늘색의 기다란 머리카락.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기온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살벌한 추위.

옷을 입고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고 몸 안으로 들어와 체온을 빼앗는 그 추위에 에린은 순간적으로 몸을 떨어야만 했다.

하지만 설녀의 입장에서도 이 상황이 그리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하. 정말로 나를 볼 수 있네?]

어째선지 눈앞의 두 부부는 자신의 모습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명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였을 진데, 절대적으로 자신이 유리했었던 전제조건이 지금, 이 순간 깨져버린 것이니 조바심이나 동요가 생길 만도 하다.

“볼 수만 있을까? 널 공격할 수도 있어!”

에린은 빠르게 자신의 마력을 방출했다.

순식간에 전신을 뒤덮는 청량하고 밀도 높은 마력이 순식간에 형체를 갖춰가면서 백은색의 아홉 꼬리와 여우 귀를 만들어냈다.

에린이 구미호로 변신하는데 걸린 시간은 눈에 띄게 단축되어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미호의 가차 없는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된 에린이 제법 마력의 정밀한 컨트롤 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기운은?]

평소에도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왔던 아주 먹음직스러웠던 기운이 양은 몇 배로 불어났고, 그 정갈함은 더더욱 깨끗해진다.

에린의 변신에 대해 품었던 설녀의 의문을 해소할 틈도 없이, 변신을 마친 에린이 곧바로 설녀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다.

[호족 요술(?? ??)]

[여우불]

밀도 높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푸른색 불꽃의 구체가 에린의 손바닥에서 투척 되어 설녀를 향해 날아갔다.

[흥! 그딴 작은 불씨!]

설녀는 코웃음을 치며 에린이 던진 자그마한 여우불을 향해 입김을 불었다.

[후우!]

싸늘한 냉기가 가득한 눈바람이 설녀의 입에서 불어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입김에 휘청이던 푸른색의 불꽃은 그대로 사라져버릴 줄 알았으나, 에린이 던진 여우불은 사라지지 않았다.

에린의 여우불은 다른 평범한 마법사들이 마력과 마법으로 만들어낸 불꽃과는 달리, 신수의 마력과 요술로 만들어낸 특별한 불꽃.

사용자인 에린이 거두어들이지 않는 한, 부여된 마력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계속 타오르는 신수의 불꽃이다.

게다가 더욱 여우불의 조작이 능숙해졌으며 정밀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된 에린의 여우불은 그 공격력 또한 함께 상승했다.

[…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푸른색 불꽃의 구체를 보고 설녀가 뒤늦게 이상 반응을 보인다.

황급히 몸을 옆으로 틀어 여우불을 직격으로 맞는 것은 피했지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여우불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미처 피하지 못한 설녀의 오른팔이 여우불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꺄아아악!]

자각했을 때는 이미 팔 한쪽 전체에 격렬한 통증이 퍼지고 있었다.

약 2초간 극심한 화상의 데미지를 맛본 설녀가 표독스러운 눈동자로 에린을 노려보았다.

[어째서…! 나한테 공격이 통하는 거야…!]

스펙터인 자신에게는 마법은 물론 물질적인 데미지를 주는 공격은 일절 통하지 않을 텐데, 에린의 여우불은 현실의 뼈와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데미지를 주었다.

설녀는 지금까지 처음 당해본 공격과 통증에 가득 동요했다.

방금의 푸른색의 불꽃은 영체(??) 자체에 직접 데미지를 주는 공격.

절대로 맞아서는 안 됐다.

에린은 설녀의 표독스러운 눈매에 코웃음을 쳤다.

“흥! 그걸 내가 알려줄 것 같아!?”

에린은 다시 한번 손바닥에 여우불을 만들고는 설녀를 향해 던졌지만, 이런 좁은 방안의 제약은 전혀 의미가 없는 설녀에게는 피할 작정을 하고 피하기만 한다면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쯧!]

설녀는 자신의 영체를 내빼어 아예 통나무집 밖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은현은 자신의 감지에 걸린 거대한 무언가가 빠르게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포착했다.

쿵! 쿵! 쿵!

땅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 소리, 점점 근접해지는 그 소리는 이내 곧바로 위협으로 바뀌어 본능에 경고의 신호를 보내왔다.

“아…! 놓쳤어!”

“……! 에린!”

은현은 설녀를 놓친 것에 분해하고 있는 에린을 안아 들었다.

그리곤 여우불로 인해 불타오르기 시작한 통나무집 안을 뛰쳐나왔다.

쿠웅! 쿠웅! 쿠웅!

점점 거세진 진동을 느낀 에린도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진동과 소리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건…. 뭐야?”

눈보라와 안개로 인해 가려져 검은색의 실루엣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런데도 그 크기가 터무니없이 크다.

우워어어어어!

빠른 속도로 달려와 눈보라를 헤치고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신을 새하얀 털가죽으로 뒤덮고 있는 거대한 거인이었다.

가슴을 두들기며 거칠게 포효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그 거인을 보고, 에린은 곧바로 ‘설인(雪人)’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에린.”

“응?”

“골라.”

은현은 짧게 말하여 선택지를 에린에게 쥐여주었다.

그리고선 손가락으로 설인이 있는 곳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무엇을 설명한 것인지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에린은 곧바로 은현의 말을 알아들었다.

설녀가 도망친 방향을 직접 가리킨 것이었다.

눈앞의 설인과 설녀 중 한쪽을 자신이 맡아줄 테니, 다른 한쪽은 에린에게 맡기겠다는 의미.

자신을 의지해주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은현의 신뢰가 몹시 기뻤다.

“난 저쪽!”

에린은 고민할 것도 없이 자신있게 설녀가 도망친 방향을 선택했다.

저 거대한 덩치를 가진 설인을 이 기후와 땅에서 자신이 상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감히 은현에게 수작을 부리려 했던 설녀를 용서할 수 없다는 개인적인 감정도 섞여 있었다.

은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 봐. 맡길게.”

“응!”

은현의 품에서 내려온 에린은 손에 쥐고 있는 레반테인을 꽉 쥔채로 설녀의 뒤를 쫓았다.

“자, 그럼….”

설인과 마주한 은현은 양손에 적월과 청월을 소환하여 꽉 쥐고는 자세를 잡았다.

될 수 있으면 빠르게 정리하고 에린을 도와주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설인을 향해 돌진했다.

◆ ◆ ◆

“하아, 하아, 하아….”

에린은 전속력으로 달려 설녀의 뒤를 쫓았지만, 이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잠깐 달리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숨을 몰아쉴 때마다 폐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너무 차가워서, 아프다고 느껴질 정도다.

있는 힘껏 전속력으로 달려왔건만, 바닥이 푹푹 꺼지는 이 눈길 위에서는 역시 평소의 속도를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체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신을 마력으로 감싸 약한 여우불로 응급처치를 해두는 것이 한계였을 정도.

“…어딨지?”

에린은 감지를 펼쳐보려고 했지만, 이렇게 하늘 위에서 눈발이 휘날려 정신 사나운 날씨에는, 은현만큼 숙달되지 못한 에린의 감지로는 설녀를 찾을 수 없었다.

“현이가 나한테 맡긴다고 했는데….”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오기까지 했는데, 해내지 못한다면 은현은 실망할까.

그렇게 에린이 조급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에린은 자신의 등을 무언가가 강하게 강타하는 느낌을 받았다.

“읏…!?”

‘…됐다!’

에린의 시야에 걸리지 않을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설녀는 조급함에 무방비한 등을 보이는 에린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에 성공했다.

지금껏 많은 인간 여성의 몸에 빙의하여 그 몸 안의 마력을 모두 먹어치우고 끝에는 정신을 밀어내고 육체를 장악해왔던 수법이 통했던 것이다.

‘아, 이 정갈한 기운….’

설녀는 에린의 몸 안에 깃들어 있는 신수의 마력 일부를 맛보고 황홀함을 느꼈다.

‘반드시 내 걸로 만들겠어.’

맛보면 맛볼수록 욕심이 가득해진다.

에린의 몸에 빙의하는 것에 성공한 설녀는 다음 단계로 에린의 영혼을 장악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마음에 정신적인 동요를 일으켜 멘탈을 뒤흔들 필요가 있었다.

‘아내가 여럿이라고 했지?’

그리고 은현이 자신에게 반했다는 것을 연기했을 때, 에린이 보여주었던 질투심은 진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멘탈을 자극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설녀는 끊임없이 에린의 영혼에 속삭였다.

‘그 남자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아마 아내 중 너를 제일 나중으로 미룰 거야.’

‘언젠가는 너를 제일 먼저 버릴걸?’

‘너는 그 남자에게 그거밖에 안 되는….’

[꺄악!?]

하지만 설녀는 갑작스레 빙의되어 있던 에린의 육체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을 몰라 당혹스러움이 가득하다.

원인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에린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거부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

하지만 지금까지 이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현이가…. 나를 버릴 리가 없잖아!”

에린은 단단히 화가 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녀를 노려보았다.

에린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베풀어주는 은현의 애정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터.

굳건한 신뢰와 맹목적인 믿음은 어느 의미로 미련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강인하고 단단했으면, 빙의하고 있던 자신의 존재를 순식간에 밀어낼 수가 있었을까.

[뭐, 뭐 이런 멍청하고 단순한 년이….]

“감히 나한테 그딴 말을 해? 넌 오늘 진짜로 나한테 죽었어!”

에린은 자신의 마음을 농락하려 했던 설녀를 절대로 가만둘 수 없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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