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93화 (576/730)

〈 593화 〉 593. 설녀(雪?)(1)

* * *

“…너무 대놓고 수상하지 않아?”

이런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와중에, 떡하니 존재하는 통나무의 집이라니.

아무리 생각이 없는 에린이라도 함정이라는 냄새가 풀풀 풍기는 저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

은현도 헛웃음을 짓는다.

설마 자신이나 에린이 저런 노골적인 함정에 걸리리라 생각하고 있던 걸까.

“그런데 꼭 그렇게 생각해볼 만한 것도 아니네.”

“응? 왜?”

“사람이 마음속에 절박함이나 급박함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 판단력도 흐려지기 시작하니까.”

뼛속까지 시리다 못해 아프게 만드는 추위와 바람, 그리고 마수들과의 연전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심신의 피로가 누적된 모험가들이 극한까지 내몰려 휴식을 간절히 원하게 될 때 맞이하는 장소가 바로 이 통나무집.

오리하르콘을 자주 채광하여 경험을 쌓은 설치된 베테랑 모험가들의 경우에는 이 산맥의 지리에 대해 제법 빠삭한 편이기 때문에 이 통나무 집이 노골적인 함정이라는 것을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신출내기나 한몫을 크게 잡아보려 외부 지역에서 온 모험가들의 경우에는 꼼짝없이 당하는 함정일지도 모르는 일.

은현과 에린은 가지고 있는 전투력의 수준도 남들과는 다르고, 스노모빌을 통해 초반부터 산을 빠르게 올라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단기간에 이 통나무집 앞까지 오지는 못했으리라.

다른 모험가들과 달리 적은 소모만으로 지금 이렇게 통나무집 앞에 도달한 두 사람은 제법 냉정하게 이 함정에 넘어가 줘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으음…. 어떻게 할 거야?”

사실 그렇게 지치지도 않았기에 굳이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 여기에 넘어가 줄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들어가 보자.”

“어, 진짜로?”

하지만 은현의 생각을 듣고 에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무서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함정인 걸 알면서도 들어가겠다고 하니깐.”

“때로는 호랑이 굴에 스스로 들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은현은 에린을 업고 있는 채로 통나무집을 향해 걸어갔다.

다리가 쑥 빠지는 눈밭을 헤치고 도달한 통나무 집의 문을 노크했다.

“계신가요?”

집안에서의 반응은 은현의 방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했다.

문이 열린 통나무 집안에서 남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한 명이 나타나 은현과 에린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시죠?”

은현은 최대한 지쳐있는 연기를 하며 사정을 설명했다.

“저희는 모험가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현재 저희가 너무 지친 상태라 하룻밤만 쉬었다가 갈 수 있겠습니까? 물론 돈은 내겠습니다.”

“…….”

통나무 집의 주인으로 보이는 여성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은현과 에린의 행색을 살폈다.

현재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조난한 모험가들 그 자체였다.

지속된 추위로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고 거친 눈보라를 뚫고 들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두 사람의 털옷에는 서리가 가득 맺혀있다.

사실 전혀 지쳤던 것도 아니었지만, 몇 분 동안 에린을 업고 걸어오면서 급하게 만들어낸 연출과 은현의 연기는 제법 공을 들여 잘 통하는 수준이었다.

“들어오세요.”

여성은 은현와 에린을 자신의 집안으로 들였다.

에린은 은현의 목에 두르고 있는 양팔을 꼭 끌어안았고 그의 귓가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오직 은현에게만 들릴 만한 몹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현아. 이 사람….”

“알아.”

은현은 곧바로 에린의 말을 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했다.

신수의 힘을 받아들여 특별한 ‘영안(??)’을 가지고 있던 에린도 곧바로 여성의 정체를 눈치챘다.

무슨 수를 써서 인간의 육체를 차지한 것인지 그 경위까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여성의 육체 안에 빙의된 것의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스펙터인가.’

은현의 예측대로, 쿠르델 산맥의 악마라는 소문의 정체는 스펙터였다.

그냥 스펙터와는 조금 다르다.

보통 스펙터는 현실에 실재하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오염된 마력과 영혼으로만 구성된 유령과도 같은 존재.

하지만 눈앞의 여성은 실재하는 인간 여성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육체에 빙의중인 굉장히 신비로운 상태였다.

본래 인간의 육체는 오염된 마나에 노출이 되면 그대로 육체 전체를 침식당해 마수화가 진행되기마련.

그와 달리 여성은 오염된 마나를 체내에 품고 있음에도 온전한 인간의 육체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고 평범한 인간을 연기하고 있다.

‘이게 모험가들이 당한 원인인가.’

스펙터의 존재를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험가들에게는 눈앞의 여성이 정말로 평범한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경계를 풀 수밖에 없었을 터.

심신에 가득 누적된 피로와 긴장을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 없었던 모험가들에게는 인간 여성이 있는 이 통나무집이, 안전이 보장된 베이스캠프와도 같았을 것이다.

“왜 그러시죠?”

집안으로 들어온 은현이 자신을 빤히 바라만 보자, 여성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곧바로 작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혼자 사시는 건가요? 이곳에?”

“네. 원래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작년에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혼자서 살고 있습니다.”

“많이 힘드시겠군요. 이렇게 험한 산속에 혼자서….”

은현은 최대한 안쓰러운 표정과 톤을 연기하며 여성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뇨. 괜찮아요.”

여성의 반응은 굉장히 담백하다.

아마도 은현이 보여주고 있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긴 동정의 시선은 여성에게 있어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함정인 것을 모르고 이곳에 방문한 모험가들이 그녀의 진실을 모르고 멋대로 동정하고 공감했을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그녀의 외모 또한 매우 아름답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품었을 정도로 미색이 뛰어나다.

어쩌면 좋지 못한 생각을 품었던 모험가들은 이런 외진 곳에 혼자만 사는 그녀를 보고 못된 생각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쳐야 할까. 아니면 조금 기다려볼까.’

은현은 생각했다.

유일하게 생존하였지만, 마을의 여관에서 스스로 자신의 목에 칼을 꽂아 자살했다는 여관주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짐승에게 거칠게 팔을 뜯기고 커다란 발톱으로 등을 할퀴어진 상흔이 있었다고 했다.

게다가 이 스펙터의 뒤에 다른 평행세계의 일리아나가 있는지도 확인을 해봐야 한다.

‘일단은 모르는 척 넘어가 줄까.’

은현은 등에 업고 있던 에린을 내려놓고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저희를 들여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에린도 은현의 행동을 보고 그 의미를 깨닫고는 곧바로 장단은 맞추었다.

두 남녀의 감사 인사를 받은 여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을 서 은현과 에린이 하룻밤 머물 방으로 안내해주고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막 저녁을 준비하려던 차였어요. 준비가 끝나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네.”

가볍게 목례를 하며 여성이 나가자, 에린이 곧바로 표정을 바꾸며 은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아. 어….”

인간의 행세를 하는 이 집의 주인인 여자가 스펙터라는 것을 알아차린 에린이 바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의하려던 차.

은현이 자신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곤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

에린은 은현이 앞으로 내민 손가락 위로 마력으로 형상화된 반투명한 문자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

‘모르는 척하고 있어. 밤에 우리를 공격해올 거야. 절대로 잠들지 말고. 자는 척만 해.’

혹시라도 대화가 밖으로 새나가 자신들이 그녀의 정체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는 신중한 판단.

“…….”

대강의 계획을 듣고, 에린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모두 방 안에서 잠을 청했다.

눈길 속을 헤치며 계속해서 걸어오고, 마수들과의 전투로 지속된 소모 끝에 초췌한 표정을 지었던 두 사람의 얼굴을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멍청한 것들.”

여성은 킥킥대며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정체는 설녀(雪?)라고 불리는 지성을 가진 스펙터.

잡아먹은 인간 여성의 몸 안에 빙의하여 이렇게 집을 짓고 지쳐가는 모험가들을 함정에 빠뜨려 잡아먹으면서 지금까지 힘을 키워왔다.

때로는 아름다운 미색을 가진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남성 모험가들을 홀려서 농락했던 적도 있었고, 동료 모험가들 사이를 이간질하여 분란을 조장하면서 점점 드러나는 추악한 감정을 즐기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험가들의 마력을 흡수하여 자신의 힘을 늘려가면서 설녀의 능력인 눈보라를 더욱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게 되었고 인간들을 잡아먹는 것이 더더욱 수월해졌다.

조금만 더 힘을 모은다면 마을 아래로 내려가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먹을 생각도 가지고 있었으나, 산에 올라온 모험가들을 모조리 먹어치운 탓인지 발길이 뚝 끊기는 아이러니함이 발생했다.

그렇게 최근에 모험가들이 뜸하던 차에,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먹잇감을 생각하니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요리를 해줄까아….”

지금 자신이 마련해준 방에서 세상을 모르고 잠들어 있을 두 남녀를 보고 혼자서 즐거운 계획을 짜고 또 짰다.

“여자 쪽이 정말 맛있어 보이던데….”

설녀는 두 남녀 중 특히나 여자 쪽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여자가 몸 안에 대량으로 품고 있는 정갈한 기운은 지금까지 먹어보았던 다른 인간들의 그 어떤 마력보다도 먹음직스럽게 생겼으며 맛있는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반면 남자 쪽은 굉장히 볼품이 없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체내에 보유하고 있는 마력 자체가 몹시 적은 편에 속하여 저 정도의 수준으로 어떻게 마을에서 여기까지 올라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여자 쪽이 남자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던데….”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설녀는 두 남녀의 관계를 미리 파악해두었다.

모험가의 일을 하는 부부 관계로서 여자 쪽이 남자에게 엄청 엉겨 붙고 애교를 부리며 애정을 과시했다.

여성의 안목으로 겉보기에는 여자 쪽이 굉장히 강한 축에 속했으며, 남자 쪽의 실력은 가늠할 수 없었던 것 때문인지 굉장히 볼품이 없어 보였다.

보통 남녀관계에서는 낮은 위치에 있는 쪽이 더욱 높은 위치에 있는 쪽에게 설설 기기마련이다.

하지만 두 남녀의 사이에서는 마치 남자 쪽이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여자 쪽이 행동했다.

“뭐, 아무렴 어때.”

하지만 설녀는 그 의문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두 남녀를 맛있게 먹어치울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여자 쪽을 무력화시켜두고 그년이 보는 앞에서 남자를 농락하다가 먹어치우는 것도 재미있겠어. 킥.”

그냥 먹는 것은 재미가 없다.

두 남녀가 들려줄 비명과 절규, 그리고 보여줄 절망스러운 얼굴들을 조미료로 삼아서 잡아먹는 것이 그녀의 취미였다.

남자가 굉장히 아껴주고 좋아해 주는 여자 쪽을 버리고 자신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여자 쪽은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남청색 머리카락의 이쁘장한 여자의 얼굴이 남편을 빼앗긴 끝에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을 상상하니 벌써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미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사전 작업은 쳐두었다.

남편이 사별하면서 혼자서 이 외진 산속에 외롭게 사는 미망인을 연기해주면 지금껏 낚였던 남성 모험가들은 하나같이 설녀의 미색에 홀려 열렬한 어필을 해왔다.

그것은 이번에 찾아온 백은발의 남성 또한 마찬가지.

가짜로 만들어둔 자신의 사연을 들은 백은발의 남성은 진심으로 설녀를 동정하면서 진심으로 공감해주었다.

아내라는 남청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그런 남편의 팔을 꼬집으면서 뭐 하는 거냐고 불만을 토로했고, 두 부부 사이에 작은 실랑이까지 있었다.

설녀는 자신의 미색에 홀려 이미 백은발의 남자가 반쯤 넘어왔다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자신감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의심치 않았다.

“아예 그 젊은 아내가 보는 앞에서 한번 해주고 대놓고 빼앗아버릴까?”

그때 여자 쪽이 보여줄 표정을 빨리 확인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설녀는 조심스레 두 부부가 잠들어 있을 방문을 열었다.

“주무시고 계신가요?”

발걸음은커녕 인기척조차 내지 않는 움직임으로 조심스레 남자가 잠들어 있는 침대를 향해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덮고 있는 이불을 젖히고 비몽사몽 해있을 남자를 깨워 농락하려던 차.

“아니. 널 기다렸지.”

설녀에 의해 이불이 젖혀지자마자 불쑥 튀어나온 남자의 손이 재빠르게 설녀의 목을 낚아챘다.

“컥!?”

그대로 있는 힘껏 벽에 밀쳐버리자 작은 충격을 받은 설녀가 신음했다.

순간 무슨 상황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을 밀어붙인 백은발 남자의 표정을 보고 설녀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게다가 저녁때 보여주었던 동정하고 공감해주는 순진한 남자의 모습과는 달리, 한없이 냉철하고 무덤덤한 얼굴.

“너…처음부터 내 정체를…!”

남자가 자신의 외모에 빠져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설녀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미안. 나한테 미인계는 안 통해. 이미 아내가 네다섯이 있는지라….”

설녀의 목을 쥐고 있는 남자의 주먹에 힘이 가득 실리기 시작한다.

“연기였다고 설명했는데도, 에린이 다른 아내들에게 내가 다른 여자한테 한눈을 팔았다고 고자질하려던 걸 막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남자는 아직도 그걸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르는지 설녀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주먹의 악력이 더욱 거세진다.

“크…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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