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91화 (574/730)

〈 591화 〉 591. 쿠르델 산맥(4)

* * *

타아앙!

거대한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에린의 귀청을 때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과 헬멧이 아니었다면, 총구에서 불을 뿜는 리볼버의 폭음은 감각이 예민한 에린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리볼버에서 튀어나온 탄환이 두 사람을 향해 휘두르는 눈토끼의 거대한 앞발과 충돌했다.

크륵!?

강렬한 충격과 함께 뒤로 밀려난 자신의 앞발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눈토끼가 흠칫하는 반응을 보인다.

살가죽을 찢고 살점을 헤집어 놓은 것은 조그마한 크기의 쇳덩이 하나.

눈토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모험가의 무기를 맨몸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했던 자신의 두껍고 질긴 가죽이, 고작 쇳덩이 하나에 뚫려버렸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엔 마수의 지성은 너무나도 낮다.

하지만 은현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아앙!

눈토끼의 앞발에 박혀있던 초대구경 리볼버의 총알이 마침내 폭발해버린 것이다.

이번에 제작한 ‘초대구경 리볼버’는 현대의 지식을 기반으로 은현과 에밀리아가 제작한 원거리 사격용 무기다.

강철조차도 간단하게 뚫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관통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리볼버의 외관과 내부 구조를 개조하여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것에 중시했다.

그 관통력을 기반으로 대상의 몸 안쪽에 탄환이 파고들면, 일정한 충격을 받게 되면 몇 초 뒤 폭발하는 마법이 발동한다.

즉 리볼버 안에서 사출된 탄환 자체가 정교한 마법이 각인된 하나의 아티팩트나 마찬가지다.

그 공격을 꼼짝없이 맞아버린 눈토끼는 자신이 무슨 공격을 당한 것인지 자각할 새도 없이, 팔 한쪽이 터져버리면서 허무하게 잃었다.

그렇게 가장 앞장을 서서 선공을 취했던 눈토끼가 허공에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헐….’

에린이 은현의 새로운 무기가 보여준 위력을 보고 경악했다.

두꺼워 보이는 마수의 가죽을 뚫어버리는 무시무시한 관통력과 속도.

그리고 그것보다 더욱 경악스러웠던 것은 저 무기를 사용하면서 은현은 일체의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대로 된 사용방법을 익힌다면,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저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당연히 그것에 대한 리스크도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초대구경 리볼버의 탄환이 총구에서 사출됨과 동시에, 총신으로부터 발생한 무시무시한 반동이 은현의 팔을 타고 스노모빌의 차체 전체를 뒤흔들었다.

기적적인 균형감각과 기술들로 스노모빌의 흔들림을 제압하여 균형을 잡은 은현은 이어서 쫓아오는 눈토끼들을 향해 리볼버를 겨눴다.

크륵!

제일 앞장을 서서 달려든 자신의 동족이 팔 한쪽을 잃어버린 끝에 바닥에 고꾸라졌음에도, 눈토끼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은현과 에린이 타고 있는 스노모빌을 쫓아왔다.

곰만 한 크기의 육중한 거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런데도 토끼와 같은 민첩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이 날렵하게 점프하며 따라오는 것이 거리가 벌어지기는커녕 조금씩 좁혀져 갔다.

점프한 눈토끼들이 바닥에 착지하고 무시무시한 다리의 탄성과 각력을 이용하여 다시 점프할 때마다, 눈밭으로 되어 있는 지면이 울리는 것만 같다.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눈토끼의 무리에게 쫓기고 있으면서도 은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타앙! 타앙!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눈토끼의 머리들에 탄환을 정확히 명중시키자, 머리들이 하나둘씩 폭발하여 터져나갔다.

방아쇠를 당겨 한 발을 쏠 때마다 스노모빌 전체가 휘청일 정도로 격렬한 반동이 은현과 에린을 덮쳐왔지만, 그 반동을 완벽히 제어한 은현의 사격은 굉장히 깔끔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리볼버의 사격도 그렇게 만능의 성능을 자랑하지는 않았다.

회전식 약실 안에 장전해둘 수 있는 탄환의 수는 고작 여섯 발.

그 이후에는 다시 탄환을 꺼내어 장전하기 전까지는 공격할 수 없다는 명확하면서도 심플한 단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은현은 탄환을 모두 소모한 리볼버를 다시 역소환시켜 인벤토리 안에 넣었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에린에게 손짓했다.

곧바로 공격하라는 수신호를 보내려 했지만, 에린은 이미 한쪽 팔로 은현의 허리를 감아 고정했고 그녀의 무기인 레이피어, 레반테인을 뽑아 든 상태였다.

그녀 또한 은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진즉에 전투태세에 들어가 있었다.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은현의 생각이나 의도를 알아채고 행동으로 옮기는 이러한 부분에서는, 은현과 에린은 역시나 마음이 통하는 듯 제자와 스승이자 부부가 맞았다.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기를 쓰고 쫓아오던 눈토끼 하나가 다시 매서운 발톱을 들이밀어 앞발을 휘두르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몸을 틀은 에린이 자신을 향해 공격을 향해오는 측면의 눈토끼와 대치하게 된 구도에서, 눈토끼의 앞발을 베어냈다.

레반테인을 두르고 있는 푸른색의 검기가 날카로운 예기를 한층 더하며 질기고 두꺼운 눈토끼의 가죽을 너무도 간단히 절단시켰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스노모빌을 쫓던 눈토끼 무리는 자신들의 숫자가 절반이 가까이 줄어들자,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했다.

은현과 에린의 뒤를 쫓아가던 눈토끼들이 본능적으로 자신들이 사냥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자그마한 망설임으로 인해 눈토끼들이 주춤한 짧은 순간.

은현이 핸들을 틀어 방향을 180도 전환했고 일제히 달려오고 있던 눈토끼들과 대치했다.

이미 전방위로 펼쳐둔 감지를 통해서 눈토끼들의 숫자와 위치는 모두 파악해두었다.

스노모빌의 핸들을 쥐고 있던 양손을 풀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은현의 양손에는 이미 자신의 영혼 속에 각인되어 있었던 적색과 청색의 날을 가진 두 자루의 검.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쳤던 오란이 시작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고, 은현이 이어받아 완성한 신검(??)이다.

은현은 이 두 자루의 신검에 각각 적월(赤月)과 청월(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적색과 청색을 띄우며 아름답게 빛나는 칼날의 끝이 마치 상현, 하현달처럼 휘어져 있는 ‘환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떠오른 이름이다.

검을 완성하고, 이름을 붙여준 다음 처음 써보는 것이었지만, 은현은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괜찮네.’

솔직히 말하자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의 감각부터 무게, 길이, 예기가 모두 은현이 머릿속으로 품고 있던 이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은현의 영혼과 동화된 적월과 청월은 마치 실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은현이 원하는 것에 그대로 맞춰주고 있는 것만 같다.

스노모빌을 정지시켜 대치하고 양손에 적월과 청월을 소환하기까지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의 사이.

[은현 고유능력]

[시간 가속]

자신의 신체 능력을 가속한 은현이 보법을 취하여 눈토끼의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

잔상을 남기고 사라지는 은현의 모습이 전방의 몇백 미터가 떨어져 있는 눈토끼 무리의 바로 위에서 나타났다.

너무도 깔끔하고 자연스러웠던 은현의 이형환위를 본 에린이 헬멧을 쓴 채로 탄성을 터뜨렸다.

순간적으로 은현의 동작을 놓쳤을 정도.

경탄할만한 수준이었던 그의 기술은 아직도 끝을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에테 검성술]

[삭풍(?風)]

눈으로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휘몰아치는 바람의 칼날이 눈토끼의 무리를 그대로 덮치며, 일고여덟 마리의 눈토끼들 전신을 모조리 토막냈다.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눈토끼의 시체 조각들을 보면, 단 몇 초 만에 벌어진 참격의 숫자만 얼추 가늠해도 이미 백을 넘는다.

하지만 에린이 두 눈으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백 개가 넘는 참격 중 초반의 단 열둘 정도.

눈토끼들은 자신의 팔다리와 목이 잘려나가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끝을 맞이했다.

순식간에 마수들을 모조리 정리해버리자, 에린은 스노모빌에서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은현 쪽으로 다가갔다.

헬멧을 벗고 의문에 찬 표정을 지으며 은현에게 물었다.

“…굳이 이렇게 추격전을 할 필요가 있었어?”

그냥 바로 은현이 검을 소환하여 정리해버렸으면 간단히 해결됐을 일인데,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뭐 어디까지나 시험해보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스노모빌의 조작이나, 새로 제작한 리볼버의 성능을 확인해볼 좋은 기회였다.

눈토끼는 거대한 거구를 가지고 있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민첩성을 가지고 있는 꽤 성가신 마수이지만, 가장 성가신 것은 이 추위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두꺼운 모피 가죽이다.

웬만한 모험가들의 공격은 잘 들지 않는 만큼 꽤 높은 방어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과연 리볼버의 성능이 통할지 실험해보기에는 적당한 마수였다.

“뭐, 그래도 이걸 보급하는 건 아직 무리겠네.”

방아쇠를 당기는데 필요한 힘도 그렇고, 무엇 보다 쏘면서 생기는 반동의 힘이 어마무시하게 크다.

은현이 아닌 다른 평범한 인간 남성이 이 리볼버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한 발을 쏘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고 반동으로 인해 팔이 부러지다 못해 아예 으스러져 버릴 수도 있을 정도다.

일반인에게 총을 보급할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총화기를 다룰 수 있게 된다면, 마법이나 활에만 의존해야만 하는 원거리 공격의 수단에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적어도 앞으로 있을 언데드와의 일전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그 다음이겠지만.’

은현은 총화기를 개발하면서 이 기술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보급하는 것을 망설이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개발해낸 총 화기들이 인간들 사이의 갈등에서 사용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이라는 무기는 확실히 조작법만 익힌다면 막강한 공격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무기.

하지만 그 총구가 마수나 언데드가 아닌 자신과 같은 사람에게 향한다면, 타인의 생명을 아주 손쉽게 빼앗을 수 있는 무기로 변질된다.

“현이는 이런 무기뿐만이 아니라, 이상한 골렘도 계속해서 만드네. 나중에는 세계라도 정복하려는 거야?”

“설마.”

은현은 의아한 에린의 물음을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옵티머스나 범블비같은 골렘들은 어디까지나 은현의 취미다.

골렘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위협하고 정복 같은 야심이나 계획을 꾸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게다가 실제로 그런 의도가 있었다면 베르단디가 먼저 자신을 막았으리라.

은현이 취미로 골렘의 제작을 허락받고 있는 것은, 베르단디에게는 어이없는 이유였지만 정말로 그저 자기만족에 가까운 취미였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건 이런저런 일들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에린이나 다른 아내들하고 조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은현은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루어질 수 없는 자신의 소원을 입에 담았다.

◆ ◆ ◆

유리아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짙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한복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던 유리아는 갑작스레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눈발이 흩날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거친 눈보라를 정면으로 맞고 있음에도, 뼈를 파고드는 한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리를 움직여 길을 걸어도, 손을 뻗어 눈발을 만지려고 해도, 시각과 청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차단된 것만 같았다.

이내 유리아는 자신에게 닥친 이 상황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이건…꿈인가?’

하지만 꿈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음에도, 유리아는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눈보라만이 치는 배경이 순식간에 일변했다.

이윽고 유리아의 시야에 한 명의 인영이 나타났고,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는 그 뒷모습은 유리아의 눈에 몹시 익숙했다.

‘…스승님?’

비록 정식 제자는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약간의 마법을 가르쳤던 일리아나의 뒷모습이다.

이윽고 일리아나의 앞에 두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보라로 인해 시야가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특이했던 점은 하나는 평범한 남성의 서너 배는 되는 거대한 체구를 가졌고, 또 다른 하나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바닥에까지 늘어뜨렸다는 점이다.

“이 산으로 올라온 사람들을 모두 죽여. 그리고 이 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고 시체와 영혼들을 모조리 내게 가져와.”

평소의 일리아나와는 다른 싸늘한 무관심이 가득한 말을 듣자, 유리아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 여자는…스승님이 아니야.’

유리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일리아나와는 다른 또 다른 일리아나라는 것을.

그리고 마치 그 꿈속의 공간에서 쫓겨나듯이, 유리아의 의식이 각성했다.

“흐읍!?”

물속에 잠겨져 있던 몸이 마치 수면 위로 강제로 끌어올려 지듯이 펄쩍 이며 몸을 일으킨 유리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얼마나 놀랐는지 놀란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뒤늦게 주위를 둘러보니 유리아는 자신이 책상 위에서 깜빡 잠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왕이 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동시에 배우고 있는 스케쥴이 살인적일 정도로 너무 빡빡해서 잠들어버렸던 것이 지금의 상황.

상황을 파악하긴 했지만, 유리아는 다시금 혼란에 빠졌다.

‘방금 그건 뭐지? 꿈? 예지몽?’

잠에서 깨어났는데, 꾸었던 꿈의 내용이 이상할 정도로 굉장히 선명했다.

“…왕녀님?”

유리아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가쁘게 숨을 몰아쉬자, 그녀의 교육담장이자 호위담당이었던 알렉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유리아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알렉스. …후우.”

크게 한번 숨을 내쉬어 머릿속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뒤죽박죽이었던 생각을 정리한 유리아가 곧바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알렉스. 그 사람하고 연락할 수단 가지고 있어요?”

“그 사람이라면, 은현 말씀이십니까?”

“네. 아니면…. 엘레노아나 스승님이라도 되요.”

“…무슨 일이십니까?”

유리아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알렉스에게 설명했다.

“꿈을 꿨어요. 아주 꺼림칙한 꿈.”

“…….”

유리아가 어떠한 특별한 수단으로 미래를 예지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었던 알렉스는 그녀의 그 말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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