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8화 〉 588. 쿠르델 산맥(1)
* * *
엘프의 숲을 나온 은현과 에린은 곧장 드워프의 마을로 향했다.
현재 드워프의 마을은 대장장이로서 업무를 이어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설비만을 운용하는 드워프들이 남아있는 상태로 처음 방문했을 때에 비하면 꽤 조용했다.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이곳저곳에서 울리는 수십 개의 쩌렁쩌렁한 망치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두 귀를 막았던 릴리의 반응을 생각하면.
그녀보다 청각이 예민한 에린이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지하에 만들어진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 것은 지금의 드워프 마을이 얼마나 조용한 편인지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다.
“야장이시어. 오셨구려.”
현재 남아있는 드워프들을 통솔하고 있는 검은 모루 부족의 족장, 오란이 개설된 게이트 앞으로 걸어와 은현과 에린을 맞이했다.
“굳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사전에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이야기를 해두긴 했지만, 마중을 나와 있을 필요는 없다고 했음에도 오란은 은현의 마중을 고집했다.
“야장이 방문을 해오시는데, 그럴 수는 없소.”
비록 종족은 다를지라도 마을 안에서, 그 어떤 드워프보다도 뛰어난 대장장이의 기술을 이어받은 은현을 맞이하는 것은 천일야장이라는 칭호와 권위에 대한 존경과 존중의 의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비록 은현이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것만큼은 대장장이로서의 기술을 그 어떤 것보다 우선으로 중시하고 있는 오란이나 다른 드워프들에게도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
약 200년 전에,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친 도란의 독단 행동으로 어쩌다 보니 천일야장의 칭호를 이어받게 되어 이 지경이 되긴 했지만, 이제는 이것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천일야장이라는 칭호와 그 기술의 계승.
귀찮은 일이 하나 더 늘었다는 생각에 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와아…. 현이는 진짜로 대단하구나.”
에린은 ‘야장’이라는 단어가 은현을 칭하는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으면서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던 난쟁이 아저씨들이 은현에게만큼은 진중하고 조용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에린이 신기한 반응을 보였다.
“대단해?”
“응. 저 아저씨들이 현이한테는 엄청 고분고분하고 윗사람을 모시듯 대하잖아.”
모그라프령에 있는 드워프들은 인간들과 협조적이거나 공존하는 방향으로 이주를 해왔다고는 하지만, ‘무언가를 만든다.’라는 부분에서는 이상하리만치 타협이 없고 고집이 셌다.
야금술도, 건축도, 설비의 제작도, 돈이 얼마가 들던, 시간이 얼마가 들던 자신들의 방식과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야지만 만족할 수 있는 종족들.
에린이 본 드워프들은 그랬다.
그런 드워프들이 같은 종족도 아니며 인간인 은현에게만큼은, 다른 드워프들에게 보이는 것보다 더 높은 존중의 의사를 보인다.
“혹시 현이는 이 마을에서 저 아저씨들의 대왕님 같은 거야?”
“허허. 야장의 부인이시어. 우리 드워프의 마을에는 ‘왕’이라는 개념은 없소.”
은현의 왼쪽에 서서 나란히 걸으며 두 사람을 안내하고 있는 오란이 마치 나이 어린 손녀딸을 바라보듯 껄껄거리며 설명을 해주었다.
“어…. 그런가요?”
에린은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드워프들과는 조금 다른 점잖은 드워프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모그라프령에서 만났던 드워프들은 모두 목소리가 우렁차고 땀 냄새가 가득한 이들뿐이었기 때문에 전혀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드워프였다.
‘좋은 아저씨네.’
심지어 자신을 보고 성희롱을 하지도 않았다.
대뜸 드워프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자신보고 못생겼다고 말했던 드워프들이 한둘이 아닌지라, 에린의 마음속에서 드워프들의 인상은 최악에 가까웠다.
오란과의 만남으로 에린은 마음속으로 드워프들의 인상을 100점 만점에 한 0.1점 정도 상향 수정했다.
“그러면 아저씨의 종족은 어떻게 통치되고 있었던 건가요?”
에린은 호기심을 가지며 오란에게 물었다.
“세 갈래의 부족으로 나뉘어 그 무리 안에 소속된 부족원들을 통솔하는 세 명의 족장이 정기적으로 모여 일의 중대사를 정하곤 하오.”
드워프는 인간들처럼 종족의 수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몇천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그 숫자는 엘프들과 비교를 해본다면 엇비슷한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쪽은 종족을 대표하는 자리로서 여왕이라는 존재가 있는 엘프와는 달리 세 명의 통치자가 하나의 안건을 의견을 모아서 처리하는 체제였다.
“아, 그러면 왕이 없는 대신 세 명의 영주님이 모여서 마을의 중대사를 정한다는 건가요?”
“그 영주라는 단어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소.”
“그럼 현이는 왜 모든 드워프 아저씨들이 대왕님처럼 대우해주시는 건가요?”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에린의 머릿속에서 왕이라는 존재는 모든 이들이 하늘처럼 떠받들어 모시는 존재로 각인이 되어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왕가와 관련된 일들을 여러 번 처리했던 경험이 있었으면서 어째서 이런 인식이 박혀버린 것일까 심히 궁금해졌다.
오란은 에린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것은 야장께서 그 어떤 드워프들보다도 뛰어난 대장장이의 기술을 보유하고 계시기 때문이지.”
“뛰어난 기술이요?”
“예를 들어 야장의 부인이 허리춤에 차고 계신 그 검은, 야장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 아니오?”
“아! 맞아요!”
오란은 그저 눈대중만으로도 에린이 가지고 있는 레반테인이 범상치 않은 검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챈 것인지 에린은 신기할 따름이다.
“그저 손잡이와 검집만 있는 외관뿐이라 제대로 된 판단을 내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우리 드워프들 중에서도 그만한 검을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는 몇 존재하지 않을 거요.”
“그, 그렇구나….”
에린은 적잖게 당황했다.
대단한 검이라는 것은 이전에 구미호가 설명을 해주었을 때부터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야금술에 미쳐 장인의 혼을 불사 지르는 것이 특기인 드워프들이 자신의 레이피어를 한 번만 만져보게 해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던 것이 떠오르자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 검의 가치도 제대로 모르면서 뽑지 못하는 검이라고 투덜거리다니, 돼지 목에 걸려있는 다이아 목걸이라는 비유도 아까울 정도군. 돼지 이하, 가축도 아닌 미물 수준의 지능이야.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군.
“…….”
순간 구미호가 해주었던 독설을 떠올린 에린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빠르게 에린의 표정을 확인한 은현이 자신의 상태를 물어오자 에린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괜찮음을 표시했다.
“그냥…. 현이는 정말 대단했구나 싶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레반테인의 성능을 전부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레반테인을 뽑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상 베르단디가 자매 여신인 우르드를 설득 끝에 자신에게 여신의 힘 일부를 부여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에린 혼자만의 노력으로 레반테인을 뽑을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하려면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른다.
“야장께서는 대단한 분이시지.”
오란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띄워주기는 그만해. 부담스러우니까. 그보다 오늘 이곳을 방문한 목적을 말할게.”
“알겠소. 말씀해주시오.”
“신철(??)을 채광하러 갈 거야.”
숙소로 두 사람을 안내하고 있던 오란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신철(??)이란, 세상에서 제일 단단하여 신의 금속이라고 불리고 있는 오리하르콘을 의미한다.
오리하르콘의 존재 자체는 매우 희귀하며 부르는 것이 값이긴 하지만, 돈이 많은 은현에게는 구하는 것에 있어서 큰 제약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은현이 오리하르콘을 직접 채광하러 간다는 것은 아마도 인간들이 이용하는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특별한 오리하르콘을 구하러 간다는 뜻일 터.
“…불순물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신철(??)을 채광하러 간다는 말씀이시오?”
“그렇지.”
“…….”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다.
금속을 채광하러 가는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당연히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오란은 곧바로 은현이 현재 4분의 3 이상이 이주하면서 소란이 잠잠해진 드워프의 마을을 방문한 이유를 추측했다.
“설마 야장께서는….”
“맞아. 재료를 가져온다면, 이곳에서 검을 만들고 싶어.”
자신이 직접 제작한 던전 주택의 지하 공방도 다른 곳 못지않은 설비를 자랑했지만, 드워프들이 직접 제작한 커다란 설비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도움도 빌릴 수 있는 이곳이 시에테의 검을 제작하기에는 더 적절했다.
이번에 다뤄야 하는 금속이 평범한 철도 아니라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오리하르콘인만큼, 자신 혼자 작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가능할까?”
게다가 한번 망치를 잡으면, 최소 3일에서 최대 7일까지 밤낮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망치를 두들기는 은현의 성격상, 몸 좀 챙겨가면서 살라는 아내들의 잔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에테의 검을 제작하는 데 있어 드워프들만큼이나 작품의 완성도에 집착이 강한 은현이 아내들과 타협점을 찾아낸 것이 바로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바로! 바로 준비를 하도록 하겠소!”
은현의 계획을 들은 오란이 보기 드물게 잔뜩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답했다.
그냥 오리하르콘도 아니라 순도 100%의 오리하르콘을 야금하는 작업.
심지어 천일야장의 무기를 제작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에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대장장이로서 자신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순간이며, 어마어마한 명예를 얻게 되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당장 야장의 작업에 들어갈 드워프들을 선별하도록 하겠소! 그럼 나는 이만…!”
은현과 에린의 안내를 하는 도중이었지만, 이것조차도 그의 안중에는 중요한 일이었을 진데, 곧바로 내팽개쳐버릴 정도로 오란이 황급히 달려갔다.
“와….”
보기 드물게 굉장히 점잖은 드워프인 줄 알았던 오란도 결국에는 대장장이였다는 것에 에린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 ◆ ◆
드워프 마을에서 대량의 식량과 물자를 보충한 은현과 에린은 곧장 북쪽으로 향했다.
레토나를 타고 울퉁불퉁한 거친 길 위를 계속 달려가기를 약 일주일.
서서히 기온이 떨어지고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차 안에 내장된 히터 때문에 느끼지 못했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뼛속에 사무치는 한기에 에린은 몸을 오들오들 떨어야만 했다.
“추, 추워….”
“이것들 챙겨 입어.”
방한복을 겹겹이 착용하고 그 위에 코트와 귀마개까지 착용하고 나서야, 에린이 몸을 다시 데우고 안정을 되찾았다.
“아…. 따뜻하다….”
인접해 있는 마을까지는 도보로 걸어야 했기 때문에 은현과 에린은 눈이 발목까지 쌓여있는 길을 헤치며 걸어가야만 했다.
“현아.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쿠르델 산맥.”
짧게 대답해준 은현이 손가락으로 먼 시야에 보이는 커다란 산맥을 가리켰다.
“…눈이 가득 덮여 있는 저 산속에?”
왠지 저 산맥 안에 들어가게 되면 그대로 눈밭에 묻혀서 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동안 페르니아스 왕국에 겨울은 매년 찾아오지만, 겨울에 모험가 활동을 해보았던 적은 2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경험이 없다는 것이 몹시 꺼림칙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에린은 추운 게 싫었다.
은현에게서 출발하기 전에 이곳으로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은현이 함께 가자고 권유해오지 않았다면 에린은 절대로 제 발로 이런 곳에 오지 않았으리라.
“당장은 안 들어가고. 오늘은 산맥에 들어가기 전 인근의 마을에서 휴식을 취할 거야.”
“응.”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것은 오늘부터 당장 저 산맥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침내 인근의 마을에 도착한 은현과 에린은 모험가로서의 신분패를 보여주며 위병들의 검문을 받았다.
“…모험가들이군?”
위병은 이제 막 미성년자의 티를 벗어낸 나이 어린 여성이 금위계 모험가라는 것에 그다지 놀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랍다기보다는, 딱히 관심이 없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으리라.
자신들의 마을이 모험가들이 찾아와 숙박하는 것으로 일정의 수입을 기대고 있기 때문인지, 모험가들의 등급에는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모험가들이 쿠르델 산맥 입구에 있는 쿠르델 마을을 찾아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의 금속이라고 불리며 부르는 게 값이나 마찬가지인 오리하르콘을 채광해가기 위해서.
“그런데 지금 저 산맥을 올라가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아.”
하지만 위병은 은현과 에린에게 목숨이 아깝다면 산맥을 올라가지 말라는 진지한 충고를 해왔다.
그것이 의아했던 에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네? 어째서요?”
“지금 저 산맥에는…. 악마가 살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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