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77화 (560/730)

〈 577화 〉 577. 암사자의 시험(3)

* * *

차한성과 리오드가 치열하게 검을 나누고 있는 장소.

1개월이라는 시간을 잡고, 훈련을 위해 은현이 리오드와 차한성을 데리고 온 곳은 세계수의 축복이 깃들어 있는 엘프의 마을이 숨겨져 있는 울창한 산맥 안이다.

이 산맥은 세계수에서 흘러나온 마력으로 가득 차 있는 매우 특수한 환경.

부상을 입어도 상처가 빨리 낫는 것은 물론, 체내에 흡수되는 청량한 기운은 대상의 체내에 축적된 마력의 총량을 상승시킨다.

엘프들이 정령을 볼 수 있게 되는 특별한 눈을 가지게 된 것도 다 산맥에 가득 차 있는 세계수의 마력이 원인.

대표적인 예로는 소원의 나무라고 불리는 페르니아스의 신목이 있는 아이테르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모두 평균적인 또래 나이대의 아이들에 비해 우월한 마력과 센스를 타고 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구미호의 유해에서 흘러나온 마력으로 성장한 페르니아스의 신목과는 달리, 세계수가 가지고 있는 마력의 수준은 비교할 수 없다.

즉 이곳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여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차한성에게는 놀라운 효과를 볼 수가 있다.

수행의 장소로는 최적의 장소가 따로 없다.

“진짜 신기하다….”

처음 세계수의 마력을 느껴본 에린은 그 기운 속에 담겨 있는 청량함과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함은 에린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차한성과 리오드를 데리고 온 은현과 에린에게 적절한 수행 장소를 소개하고 안내한 이는 현재 엘프의 숲에서 체류 중이던 엘빈이다.

은현의 지인이면서, 현재 엘븐 가드에 소속된 엘프가 아닌 유일한, 자유의사를 가진 정령.

엘빈은 능숙하게 야외 캠프를 설치하는 것을 돕고 있었다.

“오빠는 계속 이곳에 있었던 거야?”

“그랬지.”

과거에는 에린의 친오빠였지만, 은현과 일리아나의 배려로 정령으로서 새롭게 태어난 엘빈이 근황을 물어보는 여동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에린은 엘빈의 몸을 유심히 관찰했다.

‘변했네?’

새로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엘빈의 육체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라는 것은 에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엘빈은 세계수의 나뭇가지와 정령의 마력으로 뼈대와 살을 구성하고 인공 피부로 덮이면서 사람의 모습을 한 호문쿨루스와는 뭔가 달랐다.

그의 육체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의 모습과 흡사해지고 있다는 것이 에린의 인상.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도 없고, 호문쿨루스에 대한 걸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에린이 보기에 엘빈은 점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왜. 뭐.”

“…아니야. 아무것도!”

에린은 이내 신경을 거두었다.

귀찮은데 왜 자꾸 힐끔거리냐는 오빠의 말투가 몹시 거슬려서 고개를 홱 돌리며 콧방귀를 꼈다.

오랜만에 오빠를 만났을 때는 반가웠는데, 그 기분이 유지되었던 것은 겨우 3초에 불과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다.”

마침내 야영 캠프가 모두 완성되자, 엘빈은 곧바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어? 벌써 가?”

할 일을 마쳤으니 곧바로 자리를 떠나겠다는 엘빈의 신속한 태도에 에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엘빈의 얼굴은 다음 일정이라도 있는지 조금 급해 보였다.

“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어?”

“있지. 바로 에리스에게 가봐야 해.”

“…….”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는 듯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엘빈의 태도에 에린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몇 개월 만에 만났는데, 자신보다도 에리스를 더 챙기는 친오빠의 행동과 생각들이 야속하기 그지없다.

엘빈으로서는 에린이야 은현이나 그녀의 다른 아내들이 붙어있으니 별다른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무런 의도도 없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에 불과했지만, 에린은 그것이 서운했다.

“그래! 가버려! 흥!”

“……?”

엘빈은 에린이 왜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캠프를 나와 엘프의 마을로 복귀했다.

“씨이….”

에린은 친오빠 때문에 쌓인 짜증을 해소하지도 못하고 억지로 분을 삭이며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은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아앙!

그리고 먼 곳에서 검을 겨루고 있는 두 기사를 보며 작게 감탄했다.

“…두 분 모두 진짜 대단하다.”

벌써 2시간을 가까이 쉬지 않고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광경은 방금까지 오빠 때문에 쌓였던 울분을 순간 잊을 정도다.

“그런데 현아.”

“응.”

에린은 저녁 준비를 하는 은현을 보며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저렇게 아무런 조언도 없이 몸으로 부딪치게 내버려 둬도 괜찮아?”

리오드와 차한성이 은현과 에린을 따라 이곳으로 온지 3일째.

식사와 수면 등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10시간을 가까이 저렇게 검술을 겨루고만 있다.

1개월의 시간을 주기는 했고 옷깃만을 스치기만 해도 성공이라고는 했지만, 저래서는 차한성이 성공을 할 것처럼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조언이나 소통도 없고, 그거 검을 겨루기만 할 뿐인 시간.

저것이 1개월 동안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자신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에린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괜찮아. 저거면 충분해.”

“…진짜?”

에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문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은현의 대꾸에 계속 의심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럴 것이다.

단지 어째서인지 그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차한성, 저 사람은 눈이 꽤 좋은 편이야. 대체로 리오드의 검술에 대해 이해도 높은 편이기도 하지.”

하지만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가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기사 중에서 최고라고 불릴 정도로 높은 수준의 마력, 그리고 잘 단련된 신체.

마력과 신체 능력, 그리고 기술 중 무엇하나 뒤처지기는커녕 황금률과도 같은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는 리오드를 따라잡기에는, 차한성은 신체 능력이나 마력, 기술에 녹아들어 있는 경험의 시간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차한성은 지금 리오드와 검을 나누면서 리오드의 검술이 가지고 있는 깊이를 이해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어떻게든 따라잡기 위해 계속해서 리오드에게 도전하고 있다.

“리오드는 지금 저 사람에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시험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따라잡아야 하는 스승이기도 한 셈이야.”

아직 검술을 제대로 가르친다고 결정이 난 것도 아니지만, 차한성은 이미 리오드를 따라잡기 위해 멈추지 않는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는 셈이다.

“현이는 어땠었어?”

“응?”

저녁 식사로 스튜를 끓이고 있는 커다란 냄비를 국자로 젓고 있던 은현이 에린을 보며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현이도 그…. 대스승님에게 검술을 배울 때, 많이 힘들었어?”

에린은 문득 궁금해져 은현에게 물었다.

“…흐음.”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것에 국자로 스튜를 젓고 있던 은현의 손이 멈췄다.

그것을 계기로 시에테에게서 검술을 배웠던 자신의 과거 시절을 떠올렸다.

시에테는 자신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은현의 재능에 많이 답답해했었다.

성취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노력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검을 쥔 손의 살갗이 찢어질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하루도 빠짐없이 할 정도로 집념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 노력과 시간에 비해서 손에 거머쥐는 성취는 너무나도 적었다.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갈아 넣었던 시간과 노력을 회상한 은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힘…들었지.”

은현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떻게든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

◆ ◆ ◆

“크….”

단 한 번도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던 차한성이 결국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끝내 육체와 정신의 피로가 버티지 못하고 한계를 맞이해버린 것이다.

곧바로 은현이 다가와 쓰러져버린 차한성의 몸을 어깨에 들쳐멨다.

“감…사합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진 차한성은 자신의 몸을 옮겨주고 있는 은현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한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은 은현은 곧바로 리오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돌아가서 먹도록 하지.”

“그래.”

리오드는 곧바로 게이트를 통해 집으로 복귀하겠다고 했다.

3일 동안 어울려주기는 했지만, 그는 기사단을 운영하는 기사단장이자, 왕국의 중요 직책을 맡은 핵심인사다.

더는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리오드는 다음 주에 다시 이 캠프에 오기로 일정을 잡겠다고 말했다.

“어때? 가망 있어 보여?”

“…글쎄.”

은현의 물음에 리오드는 무덤덤하게 답했다.

하지만 은현은 그것이 리오드 나름대로 긍정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임을 눈치챘다.

끈기 있게 자신의 검을 모방하고 따라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려왔던 차한성에게 바보같이 솔직하게 어울려주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애써 말로 표현하지 않고 에두르는 것이 솔직하지 못하다.

“4일 뒤에 다시 오도록 하지.”

“알았어. 그때까지는 나한테 맡겨둬.”

“음.”

리오드는 은현이 개설해준 게이트를 통해서 몇만km나 떨어져 있는 페르니아스 왕국으로 복귀했다.

리오드의 배웅을 마친 은현은 곧바로 어깨에 들쳐 맸던 차한성을 간이 의자 위에 앉히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녁 식사는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어서 먹고 쉬시죠.”

“…감사합니다.”

체내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에 녹초가 된 차한성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은현은 그의 손에 스튜를 미리 담아둔 그릇과 수저를 쥐여 주었다.

다행히도 스튜를 떠먹을 정도의 힘은 남아있었는지 저녁을 모두 먹어치운 차한성은 은현의 부축을 받아 그의 텐트로 이동했다.

차한성을 텐트 안의 간이침대 위에 눕히고 밖으로 나오자, 에린이 이미 식사를 마친 빈 식기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 현아. 차한성님 몸은 좀 어때?”

“괜찮아. 그냥 몸에 피로가 쌓인 것뿐이니까. 내일 아침이면 회복되겠지.”

아마도 찢어진 근섬유들이 다시 회복되면서 격렬한 근육통으로 고통은 좀 받겠지만, 이 페이스대로라면 거기에 적응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럼 우리도 빨리 정리하고 텐트로 들어가자.”

“응!”

저녁 식사가 끝난 이후, 은현과 에린이 식기류의 설거지와 정리정돈을 하는 소리가 피곤한 차한성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두 사람을 도와 뒷정리를 돕고 싶었지만, 녹초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은 더는 말을 듣지 않았다.

이내 내일을 생각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할 수 있어.”

오늘로 3일 차.

이 산속에서의 수행은 온몸이 찢어질 정도로 극심한 고통의 연속으로 강도가 몹시 높았지만, 신기하게도 이상할 정도로 몸의 회복이 빠르다.

이 고통에 익숙해지고 리오드의 검술을 조금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리오드의 옷깃이라도 스칠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차한성의 멘탈을 흔드는 것은 녹초가 된 육체의 피로도, 아득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격차를 보여주는 리오드의 역량도 아니다.

“꺄악!? 현아! 간지러워!”

“…….”

화들짝 놀라는 에린의 비명에는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깔깔대며, 내심 즐기고 있는 감정이 가득했다.

“그럼 하지 말까?”

“히히. 아니! 더 해줘! 그리고 나도 현이를 만질래!”

차한성은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두 귀를 양손으로 막았다.

서로 꽁냥대며, 진한 애정이 담긴 스킨십을 나누는 부부의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오늘로 3일째.

솔직히 가슴 속에 짜증이 치밀어오르긴 했지만, 자신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는 두 사람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낼 정도로 차한성의 인성은 막돼먹지도 못했다.

“꺄악! 현이는 변태야!”

도대체 어디를 만진 걸까.

심지어 어째서인지 좋아하기까지 한다.

아직 자신이 텐트 안에서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좀 의식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저 부부는 그런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젠장….”

차한성은 밖에서 들려오는 부부의 애정행각을 애써 무시하며 잠을 자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이 훈련 속에서 차한성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극심한 육체의 고통과 피로도,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리오드와의 격차도 아닌, 극심한 외로움이다.

어째서인지, 머릿속으로 에이라의 얼굴이 떠올라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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