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2화 〉 572. 이차원(???)의 마녀(3)
* * *
신입 사서로 새로 배정되어,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을 은정이라고 소개한 여자는 애써 잠잠해지고 있던 일리아나의 동요를 다시 뒤흔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목소리도, 체구도, 성별도 전혀 달랐지만, 밝게 빛나는 백은발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은 어째서인지 자꾸만 은현을 떠올리게 만든다.
“…….”
“관장님? 왜 그러신가요?”
“아니…. 아무것도.”
일리아나는 애써 그것을 외면했다.
신입사서인 은정은 그 이후로 마법 도서관 업무에 빠르게 적응했다.
이런 쪽의 일은 처음이라는 말과는 달리, 다른 사서들에게도 싹싹하고 맡은 일을 착착 처리해나가면서 도서관 안에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면 그럴수록, 일리아나의 마음은 점점 뒤숭숭해져 갔다.
아무런 접점이나, 연관성 자체가 없었음에도 신입사서 은정이라는 여자를 볼 때마다 자꾸만 가슴 속 한켠이 술렁거렸다.
어째서일까.
일리아나는 스스로도 마음속이 복잡해지는 원인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 마법 도서관의 관장인 일리아나와 말단 신입 사서직이었던 은정이 그렇게 자주 마주칠 일은 없었다는 점이리라.
“안녕하세요. 관장님!”
“…그래. 안녕.”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은정이라는 여자는 몹시 활발하고 친화력이 좋다는 것 정도이다.
밝게 웃어 보이며 맡은 일을 착실히 수행해나가고 동료 사서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그녀의 사교성은 굉장히 뛰어났다.
이것만큼은 은현과 조금 다르다.
도서관에 출근한 은정의 인사를, 일리아나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받아들였다.
은정이라는 여자 자체가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불편해하는 일리아나의 태도를 보고도 은정은 전혀 개의치 않고 친숙하게 말을 걸어왔다.
오죽했으면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일리아나가 혀를 내둘렀을 정도.
“그런데 관장님. 혹시 운명 같은 거 믿으시나요?”
“…아침부터 무슨 이상한 소리야?”
출근한 아침부터, 느닷없이 물어온 뜬금없는 질문은 아침잠이 많아 저기압인 일리아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헤헤. 그냥 물어본 거예요.”
하지만 찡그린 일리아나의 얼굴을 보고도, 은정은 실실 웃으며 태도를 고수할 뿐이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신입 사서는 어딘가 이상했다.
이 마법 도서관 안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든 사서와 직원들은 모두 여덟 자릿수 고위마법사인 일리아나를 조금씩 두려워하고 있고 눈치를 보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은정은 일리아나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어딘가 나사 빠진 태도를 유지하며 실실 웃고 있다.
은정은 그렇게 웃음을 지우지 않고 일리아나의 대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안 믿어.”
은정이 자신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계속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보이자, 일리아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어째서인가요?”
“마음에 안 드니까.”
일리아나는 사람의 모든 만사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믿는다면, 미처 자신이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은현은 그 순간에 죽는 것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두고 약속도 지키지 않은 채로 홀로 떠나버린 은현의 죽음을 용납할 수 없어서, 일리아나는 그런 거지 같은 운명론을 믿고 싶지 않았다.
“…….”
그리고는 더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그런 일리아나를 보고 은정은 오히려 웃었다.
마치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것인 양.
“그렇죠?”
“뭐?”
“사람의 인생에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다면 그건 정말로 불합리하지 않나요?”
“…….”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렸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곳에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평생의 행복을 누린다면 정말로 불공평하니까요.”
그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하지만 일리아나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 예시가 바로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일리아나는 순식간에 자신의 전신에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경계의 기색은 순식간에 본능적으로 전투의 태세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너…. 뭐야?”
도서관장실을 가득 채운 일리아나의 마력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폐를 찌그러뜨릴 정도로 강력한 압박감을 선사하지만, 정작 그녀의 마력에 노출된 은정은 계속 미소를 짓고 있으며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일리아나는 은정을 노려보고는 다시 한번 물었다.
“누구야. 너.”
더욱더 짙고 높은 밀도의 마력을 끌어올려 은정을 압박했지만,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전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거?’
시간이 지날수록, 일리아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이 끌어올린 마력의 압박감은 리오드 정도가 아니라면 모를까, 아무리 강자라고 하더라도 쉽게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조금만이라도 손가락을 까딱하여 술식을 전개하면 발동시킬 수 있는 마법으로 은정을 처리하는 것은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지금 그녀는 한 걸음이라도 잘못 디디면 바로 절벽으로 떨어질지도 모르는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그런데 은정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압박에 대항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거나, 전투의 태세를 취하거나 그러한 행동을 보이기는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압박을 태연하게 받아넘기고 있다.
“…너. 뭐야?”
일리아나는 다시 한번, 처음과 같은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질문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첫 번째 물음은 자신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왜 자신에게 접근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
하지만 두 번째 물음은 은정이라는 여자의 정체, 그 자체다.
은정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려움도, 공포는 물론,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감정’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마력 또한,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인간의 행세를 하고 있었다.
일리아나는 확신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마침내 은정은 말했다.
“만약 정해진 운명을 비틀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지?”
“뭐…?”
은정은 더는 일리아나에게 존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일리아나의 두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을 비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았다.
만약, 만약 이미 정해져 있는 ‘은현의 죽음’을 비틀 수 있다면.
그것은 일리아나가 무엇을 바쳐서라도 손에 넣고 싶은 비원이기도 하다.
“그게 무슨…!”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은정은 갑작스레 사라졌다.
“어…?”
일리아나는 당황했다.
자신의 앞에서 순식간에 은정이 모습을 감춰버렸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린 것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장 오싹했던 것은 일리아나가 은정이 사라져버리는 과정을 파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주 애용하는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사라진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압박을 받고 있으면서도 은정은 그녀의 마력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말 그대로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일리아나와 대치하고 있던 은정은 그대로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있던 곳의 바닥에는 두꺼운 두께의 마법 서적 한 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 떨어진 것도 아니고,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일리아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마법 서적을 집어 들었다.
“도서관장님!?”
“무슨 일인가요!?”
그와 동시에 그녀가 끌어 올려 흩뿌렸던 강력한 마력을 느끼고 도서관의 사서들과 직원들이 황급히 도서관장실로 달려왔다.
어찌나 빠르게 달려왔는지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그들을 본 일리아나는 곧바로 은정을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은정? 그게 누구인가요?”
“도서관 사서인가요?”
“뭐…?”
하지만 사서들과 직원 중 은정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직 일리아나 혼자뿐이었다.
마치 이 세상 속에서 은정이라는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일리아나는 자신이 경험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알았어. 나가 봐.”
“네? 하지만 방금 그 마력은….”
“괜찮아! 나가 봐!”
“아, 알겠습니다.”
내쫓듯이 사서들과 직원들을 내보내고, 일리아나는 은정 대신 존재하고 있던 마법 서적의 내용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이차원(???)과 평행 세계?”
저자도, 제목도 적혀있지 않는 책 속의 내용은 무척이나 해괴했다.
하지만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인 양, 책의 내용을 빠르게 탐독해나갔다.
책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 세상에는 한 줄기의 근원이 존재하는데, 그 줄기는 점점 위로 뻗어 나가며 흐름을 만들고, 무수히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선택들로 인해 파생되는 분기점들은 다양한 차원들이 창조된다는 이야기였다.
만약 지금 일리아나가 이 책을 앞에 두고 읽을지 말지에 대해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놓인다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현재와 달리 책을 읽지 않은 새로운 차원이 만들어진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선택들이라도, 그것은 하나의 분기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명이 아닌 이 세계 전체의 모든 이들의 선택지로 인해 파생되는 평행 차원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일리아나는 인식할 수도 없고, 증명조차도 불가능한 이 책의 내용은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일리아나는 책 속의 지식을 탐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평소의 그녀였다면 인상을 찡그리며 책을 집어 던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약…. 현이가 죽지 않는 다른 차원이 있다면….”
사람의 머릿속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평행 세계 속에 은현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차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가설.
그 가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일리아나는 그 가설을 믿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현이를…. 만날 수 있어.”
0.1%라도, 0.001%라도, 0.00001%라도 은현이 살아있는 차원이 존재한다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해보자.”
일리아나는 결심했다.
마음을 다시 잡고 계속해서 책의 지식을 탐독해나갔다.
본래 평행 세계 간에는 왕래는커녕 간섭조차 아예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책에는 그 규율을 깨고 차원 사이를 넘나들 방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차원과 차원을 잇는 문….”
그것은 고대에 악마들이 이 하계를 침범해왔을 때 사용하였던 이동 수단.
악마와 하계를 잇는 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계와 다른 하계를 잇는 문을 만든다면, 은현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문’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인간의 영혼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적은 숫자가 아닌, 대륙의 절반 이상에 달하는 대규모의 영혼이 있어야 하는 만큼, 일리아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행동에 나서게 된다면, 자연스레 자신의 옛 동료들과 다시 충돌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일단…. 좌표의 특정부터 해야 해.”
행동으로 옮길지 말지는 그 이후다.
일리아나는 술식을 전개하여 이곳 이외에 다른 차원의 존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크….”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그것들을 미처 처리하지 못해 뇌가 타버릴 것만 같은 두통을 느끼면서도, 일리아나는 연산과 차원 탐색을 멈추지 않았다.
마법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엿보는 것은, 이미 그것 자체만으로도 머릿속을 불태워버리고 영혼을 갉아먹는 리스크가 존재하는 위험한 행위.
그것을 일리아나가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일리아나가 이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연산 능력과 마력을 보유한 마법사였다는 점도 있었지만, 가장 컸던 것은 다른 요인이었다.
“…멸망했다고?”
자신이 탐색한 이차원(???)들이 일제히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모조리 멸망했기 때문이다.
마치 커다란 나무 위에 뻗어 있는 수만, 수억 개의 나뭇가지 위에 달린 썩은 이파리들처럼.
멸망한 평행 세계들을 제외하여 머릿속에 가해지는 부담을 그나마 덜어냈다.
그리고 멀쩡한 이파리와도 같은, 무사히 존재하는 평행 세계를 찾아 탐색을 계속 이어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탐색을 이어나가고 있음에도, 무사히 존재하는 평행 세계의 존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들끓는 마수들을 미처 처리하지 못해 멸망한 평행 세계.
사령술사에 의해 패배한 끝에 처참하게 멸망한 평행 세계.
소환된 악마들에게 유린당하여 참혹하게 멸망한 평행 세계.
원인과 과정은 각각 다를지라도, 그 끝에 존재하는 결말은 모두 하계의 종말이었다.
그리고 일리아나는 멸망해버린 차원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현이가 없어.”
모두 은현이 존재하지 않는 평행 세계들이며, 노력한 끝에 평화를 일구어냈음에도 파멸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게 멸망한 평행 세계들의 숫자가 백이 되고, 천이 되며, 만과 십만을 초월하여, 140만 개에 도달했을 때.
“찾았다.”
일리아나는 은현이 살아있으면서, 수많은 세계 중 유일하게 종말을 맞이하지 않은 단 하나의 평행 세계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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