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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570화 (553/730)

〈 570화 〉 570. 이차원(???)의 마녀(1)

* * *

은현은 진지하다 못해 무거운 표정을 짓는 일리아나를 안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녀가 물어온 질문만으로 심각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임신 이후 계속 행복하고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던 그녀가 보여주는 무거운 표정.

은현은 자신과 그녀의 사이에서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에린에게 이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이 있었기에 자리를 옮겼다.

“…그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거실의 테이블로 나와 따뜻한 밀크티를 올려두고 나서야 은현이 자세한 이야기를 물었다.

“또 다른 ‘너’라고?”

“전에 너가 했던 이야기 기억해? ‘누군가가 내 집에 침입했다.’라는 얘기.”

마침내 일리아나가 은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기억하지.”

은현은 기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건은 수도 페르닌의 왕궁에서 개최되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은현과 엘레노아가 일리아나의 집에 머물렀을 때, 은현이 눈치채고 일리아나에게 물었다.

누군가가 일리아나의 집에 몰래 들어와 장기간 체류를 했던 흔적.

무언가 물건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애초에 귀중품들도 이사하면서 모조리 옮겼기 때문에 사라질만한 것도 없었다.

정말로 그냥 이 집에서 살았던 흔적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 자체가 굉장히 비정상적이었다.

지금은 은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리아나는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여덟 자릿수의 고위 마법사.

그런 그녀가 과거 그녀가 살았던 집에 펼쳐둔 결계의 수준도 평범한 사람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강력한 보안장치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일리아나의 집에 침입했다는 것은 그녀의 결계를 상쇄시킬 수 있는 수준을 가진 일리아나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수준을 가진 마법사라는 뜻이 된다.

“그거 아무래도 ‘나’같아.”

정확히는 ‘또 다른 일리아나’를 뜻한다고, 일리아나는 말했다.

“내 결계를 상쇄하거나 파괴한 것도 아니고, 그저 통과했다는 건 ‘나’밖에 할 수가 없어.”

“…….”

은현은 생각에 잠겼다.

그게 말이 되냐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고 일리아나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또 다른 ‘자신’이라니.

받아들이는데 도저히 시간이 걸렸을 뿐, 아예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내 집을 청소하는 업체에도 사람을 보내서 확인도 해봤어. 누군가가 나를 사칭하며 살았던 게 확실해. 아니. 나 자신이니까 사칭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으려나.”

일리아나는 계속해서 대꾸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는 은현을 보며 물었다.

“내 얘기. 믿어?”

“…믿어야지. 누구의 말인데.”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가 한 말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하는 말도 아닌 만큼, 은현의 머릿속에도 어떠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리고 짐작 가는 것도 하나 있고.”

“짐작?”

“나도 확신을 가질 수는 없지만….”

“베르단디님.”

은현은 곧바로 자신의 여신을 불렀다.

느닷없는 부름이었지만, 그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와 준 베르단디가 반투명한 영체로 하계에 현현했다.

[그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을?]

“다른 시간대의 다른 분기점을 통한 인물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게 가능한가요?”

[…….]

베르단디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현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제 경우를 생각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경우?]

“신계에서 시련을 받을 때, 제가 열쇠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빙의시켰던 것. 기억하시나요?”

[…알고 있지.]

베르단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질문의 의도를 깨달았다.

[아이는 지금 마녀 아이가 아이 같은 경우의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

“벌어진 결과는 전혀 다르지만, 저와 비슷한 경우로 인해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야?”

일리아나는 신계에서 은현이 받았던 시련의 의미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신격을 갖추기 위해 세 가지의 시련을 받았다는 것만을 간략히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자신이 했던, 자칫하면 영혼이 부서져 버릴 수도 있었던 그 경험들을 모두 설명한다면, 일리아나는 또 무리한다며 짜증을 내고 걱정을 할 것이 분명하다.

베르단디에게도 자세한 설명은 하지 말아 달라고 눈짓으로 호소하자, 여신 또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나’. 그 존재를 경험해본 건 나도 있기는 하거든. 물론 실제로 이 하계에서 그것과 마주해본 적은 없었지만.”

일리아나의 말을 듣고 은현이 떠올린 것은 또 다른 자신이 도달하게 되는 어떠한 미래다.

누구와도 연을 맺지 않고, 오로지 홀로 약 800년 동안 검의 수행을 거듭하며 ‘검성’의 칭호를 부여받아 하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또 다른 은현.

시에테의 검술을 이어받고 시간과 경험, 노력을 쌓고 또 쌓으며 마침내 그녀를 초월한 경지를 거머쥐었던 그 ‘은현’은 현재 은현이 검술의 분야에서 목표로 하는 남자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선택지와 그 선택지로 인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분기점들이 존재한다.

지금의 은현이 존재하고, 다른 ‘은현’이 존재하는 것처럼.

일리아나 또한 다른 시간대에서는 다른 경험과 사건을 겪었을 또 다른 일리아나가 존재할 것이라는 건 이미 자신의 경우를 통해서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어떠할까.

‘평행선’에 가로막혀 서로의 두 세계를 오가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은현도 그 수많은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미래의 ‘검성 은현’이라는 기억을 소환하여 자신의 몸에 빙의를 시켰을 뿐이지, 실제로 그를 만나본 적은 없다.

그래서 은현은 베르단디에게 물었다.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일리아나가 이곳으로 넘어왔을 가능성은 아예 없나요?”

자신이 모시는 여신 베르단디는 운명의 단편을 내다볼 수 있는 여신.

일리아나의 운명을 내다볼 수 있는 베르단디라면, 어쩌면 이 가정에 대해 답을 내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은현은 생각했다.

[…….]

하지만 오직 일리아나의 얼굴만을 빤히 쳐다보며 베르단디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여신 또한 그 가능성을 골똘히 생각하고, 고민 끝에 대답을 내놓았지만.

[…알 수 없구나.]

“네?”

“어?”

베르단디의 대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알 수 없다.’라는 불확실한 대답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맞지. 하지만….]

하나의 분기점에서 각각의 다른 선택으로 나누어진 두 세계는 서로 간섭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베르단디는 머릿속으로 떠오른 한 가지 불길한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묘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는 베르단디의 태도를 보고, 은현이 물었다.

“베르단디님? 지금 하고 계신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나는 전에 세계수를 습격했을 때, 그때 만들어졌었던 ‘차원의 문’이 굉장히 신경 쓰이는구나.]

“그건….”

은현은 곧바로 자신이 죽였던 한 여자를 떠올렸다.

­불쌍한 놈.

팔다리가 으스러져 가고, 브류나크가 관통당한 머리가 붕괴하던 와중에도 자신을 보며 동정의 눈빛을 보냈었던 여자.

자신의 육체에 드래곤의 조직을 합성시켜 스스로 키메라와 같은 돌연변이 용인(?人)이 되어버린 레나트를 떠올리자, 은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은현은 육체가 붕괴가 되고 머리만 남았던 그녀의 영혼에서 조각조각 나버린 기억의 단편을 읽어 들였던 적이 있었다.

­힘이 필요하니?

­너에게 특별한 능력을 내려줄게.

­이걸로 차원과 차원의 틈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어내.

­얼마나 많은 목숨을 희생시키던, 어떤 대가를 치르던 반드시.

그때는 갈가리 찢겨버린 레나트의 영혼에서 제대로 된 기억을 읽어 들이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그것이 한계였다.

그리고 처음 레나트를 만났을 때는 마리우스와 함께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 또한 메디아의 심복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만약 그녀에게 ‘차원을 넘나드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 전혀 다른 존재였다면.

“…설마.”

그녀 또한 이차원(???)인 다른 평행세계에서 넘어온 존재라고 가정한다면, 그때 그녀의 진짜 목적은 악마나 마수들을 소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소환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이도….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구나.]

비록 싸움에서는 졌지만,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에 만족하며 태연히 죽음을 맞이했던 용인 레나트의 진짜 목적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차원의 문에서 누가 넘어와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지도.

◆ ◆ ◆

렌디르 왕국의 왕궁 내부는 몹시 고요했다.

평소였다면 업무를 보는 다수의 귀족과 사용인들로 많은 이들이 왕궁 안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 정상.

하지만 이미 망해버린 나라의 왕궁은 참혹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왕궁을 지키는 근위 기사와 궁정 마법사들은 물론, 전투가 가능한 병력은 모조리 처형되고,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는 왕좌에 앉아 있는 들, 지위도, 명예도, 권력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지 이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할 뿐.

그 왕좌에 앉아서 레이넌은 자신의 몸을 가득 채운 마력을 끌어올렸다.

“…나쁘지 않군.”

신수화를 했었던 제라드에게 한차례 패배를 하면서, 죽을 뻔했던 자신의 육체를 벨페고르가 차지하여 간신히 도망친 끝에 간신히 몸을 회복했다.

“…그 녀석도 살아있을까.”

레이넌은 스스로 뇌광(雪光), 그 자체가 되어 육체와 목숨을 불태워가면서 자신을 막아섰던 제라드를 떠올렸다.

도중에 제라드의 뇌광으로 인해 정신을 잃었을 때, 자신의 육체를 장악하여 도주했던 벨페고르는 제라드가 그냥 가만히 뒀어도 죽었을 치명상을 입었다고는 했지만, 아마도 살아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었다.

그것은 자신의 손으로 반드시 찢어 죽이겠다는 벨페고르의 사적인 증오심이 담겨 있는 희망 사항이기도 했지만, 레이넌도 제라드가 살아있으리라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였다.

자신을 죽일 뻔한 남자였음에도 그가 살아있길 바라는 마음은 벨페고르의 증오심과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과거의 옛 동료였던 추억과 정 때문이었을까.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죽이기로 하고 서로의 목숨을 깎아내는 전투를 하였던 것이지만,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마음이 몹시 기묘하다.

하지만 이제는 멈출 수도 없었다.

“계획은 언제쯤 시작하실 생각인가요?”

홀로 악마의 마력을 끌어올려 상념에 잠겨 있을 때, 한 여자가 넓디넓은 알현실 안으로 들어와 레이넌에게 말을 걸었다.

머리에 붉은 산양의 뿔이 달린 서큐버스 악마는 보기 드물게도 인간인 레이넌을 자신의 상관으로 모시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열등한 인간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성향이 있는 악마들과 달리, 그녀는 레이넌에게 특별한 호감을 보이고 있다.

“마리우스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바로 대륙 전체를 친다.”

그 순간이 다가오는 것은 머지않았다.

“하아…. 기대가 되네요.”

그날이 다가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서큐버스 악마는 맛있는 과일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것처럼 온몸을 배배 꼬았다.

“레이넌 님…. 부디 오늘 밤에도 저에게….”

가슴 속에 차오르는 이 충동을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 레이넌을 유혹하려 했던 찰나.

우우웅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일어나 왕궁 안의 대기를 진동시켰다.

“……!”

왕궁 안을 가득 채우는 밀도 높은 마력의 떨림은 순간 서큐버스의 전신을 소름 돋게 만들고, 레이넌이 곧바로 전투태세를 취하게 만들 정도.

[여덟 자릿수 고위 마법]

[텔레포트]

이윽고 왕궁의 바닥에 그려지는 마법진의 위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잠깐.”

당당한 침입자를 보고 서큐버스가 두 눈을 부릅뜨며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지만, 레이넌이 곧바로 서큐버스를 말렸다.

“너는….”

이윽고 마법사와 시선을 마주한 레이넌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네. 레이넌.”

“…일리아나.”

어째서 그녀가 이곳에 있는 걸까.

레이넌은 전투태세를 풀지 않고 마녀를 보며 경계했다.

자세한 정보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은현의 부활과 동시에 일리아나가 그와 결혼을 했고, 지금은 은거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몹시 혼란스러웠다.

‘일리아나가 은현을 배신한다고? 그럴 리 없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일리아나는 적인가?’라고 묻는다면 그것 또한 틀리다.

그녀는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는 자신을 두고도 전혀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네가 알고 있는 일리아나가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지?”

“난 우리가 서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왔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자신의 목표는 이 대륙에 땅을 딛고 있는 모든 인간의 멸망.

일리아나의 목표가 무엇일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대강 상상이 갔다.

“…은현이 목적인가?”

“맞아. 난…. 현이를 데리고 가려고 왔어. 그런데 이곳에서 현이를 데려가려면…. 일단 ‘나’부터 치워버려야 할 것 같거든.”

그것은 일단 자신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마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현이 말고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되던, 그건 상관없어. 이 대륙 전체를 쓸어버리는 것도 도와줄게. 그러니까…. 어때?”

이차원(???)의 마녀는 또 다른 재앙에게 제안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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