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60화 (543/730)

〈 560화 〉 560. 타락한 사제(1)

* * *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현재 베스타 신전 콜로라스 지부의 주교를 맡고 있는 벤터라고 합니다.”

콜로라스는 마리우스가 사는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큰 도시이다.

에레니아 신성국은 국교인 베스타 신전의 주요 인사가 국가의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이 나라 안에서는 신전의 주교직을 맡고 있다는 것은 그 신전이 있는 도시를 관리하는 시장 또는 영주와도 같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이 누추한 곳에 찾아와주셔서 정말로 영광입니다.”

비록 마리우스를 보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보잘것없는 보육원에 고위 사제가 방문을 해주었다니 여러모로 큰일이었기에 현재 보육원의 관리자였던 네스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차, 차입니다….”

네 명의 성기사들을 호위로 거느리고 마을을 방문한 주교 벤터는 약 40대 중후반의 외관을 가진 중년 남성으로 몹시 온화해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보육원의 초라한 대접을 받아들였다.

“고맙습니다.”

“…….”

네스는 마리우스가 사용할 수 있게 된 신성력을 확인해보기 위해 보육원을 방문한 벤터에게 차를 대접하며 긴장했다.

이런 변두리의 마을에 신전의 고위인사인 높은 사람이 오게 된 것 자체가 네스는 물론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익숙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신이라는 존재를 강하게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의 국교인 베스타 신전의 고위 사제를 앞에 둔 이상 자연스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 대한 반응은 벤터에게는 익숙한 일이었기에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내 이번 방문의 목적이었던 마리우스의 신성력에 대한 확인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확실히…신성력이 맞군요.”

“그럼…!”

“네.”

기대에 찬 마리우스의 얼굴을 보며 벤터 주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 신전에서 교육 연수를 마친다면 정식 사제로 임관될 겁니다.”

“…….”

“추천서를 써드릴 수는 있지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막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젊은 청년의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벤터는 이미 마리우스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신입 사제들을 만나보아 왔지만, 이 제안을 거절했던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리우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여 벤터에게 추천서를 부탁했다.

“하하. 좋습니다.”

벤터는 흔쾌히 마리우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 제가 부탁을 드리긴 했지만, 정말로 괜찮으신 건가요?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할 방법이….”

“보답 같은 건 사양하겠습니다. 그래도…. 현재 저희 지부의 신전은 변방에 위치한 만큼 사제의 일손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연수를 마치고 정식으로 사제가 되시면, 저희 신전에 오셔서 열심히 일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제가 추천서를 써드린 보람도 생길 테니까요.”

“예! 연수를 마치고 콜로라스 지부 신전에 지원해서 사제로서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이후, 마리우스는 일주일 뒤에 벤터가 준비해준 마차를 타고 그가 함께 써주었던 추천서를 소중히 간직하며 먼 거리에 있는 중앙 신전을 향했다.

“가버렸네….”

사제의 교육 연수를 받기 위해 중앙으로 향한 마리우스를 배웅한 네스는 쓸쓸한 표정을 지을 뻔했던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마리우스는 자신과 이 마을을 영영 떠나는 것이 아니다.

보육원과 이 마을에 더욱 많은 도움이 되기 위해서 그는 성장을 위해 잠시간 자리를 비운 것일 뿐, 머지않아 연수를 마치고 이 마을에 돌아올 터였다.

“돌아오면 축하 파티를 열어줘야지.”

보육원의 가계나 재정이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마을 안에서 생겨난 최초의 사제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마리우스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는 모두가 사제가 된 그의 소식을 축하해주었으며 소소한 환영과 축하 파티를 열어주는 것에도 분명히 동의해줄 터였다.

그렇게 마리우스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리며, 마을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친구이자 오빠, 동생과도 같았던 가족이 없는 시간은 네스에게는 제법 외롭고 쓸쓸했지만, 다행히도 간간이 마리우스의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성적이 꽤 준수해서 현재 연수를 받는 사제들 사이에서도 상위권을 앞다툰다고 합니다.”

“걔가 성실한 것도 그렇긴 한데, 머리가 진짜 좋아요.”

추천서를 써주었던 벤터에게는 중앙에서 연수를 받는 마리우스의 소식이 정기적으로 보고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간간이 마을을 방문하여 마리우스의 소식을 듣는 네스는 기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네?”

이내 어두운 표정을 띄운 벤터의 반응을 보고, 네스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이 타이밍에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 몹시 신경이 쓰였던 그녀는 결국엔 참지 못하여 물었다.

“마리우스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연수 성적이 뛰어나다는 것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

벤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네스가 고개를 갸웃하자, 벤터는 더 자세한 설명을 입에 담았다.

연수에 참가한 신입 사제들은 모두 일정한 기간 교육을 받고, 그 교육의 성과를 평가받는 시험의 성적에 따라 사제들의 다음이 결정된다.

부임지와 등급, 맡게 되는 역할 등이 이 성적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이다.

모두 아무런 전조나 공통점도 없이 모두가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하나로 연수에 참여하게 된 사제들은 나이도, 성별도, 신분도 몹시 다양하여 언뜻 보기에는 공평한 시험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그 실상은 전혀 달랐다.

어찌 보면 신입 사제들을 성적을 기반으로 경쟁에 부치고 있는 만큼, 그 연수조차도 그리 녹록지는 않은 환경이었다.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신입 사제들 중에는 중앙 신전에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을 헌금하는 타국의 귀족이나 대부호의 상인들도 다수 있었으며, 사제 연수의 교육을 맡은 이들이 같은 사람인 이상 이어질 상황은 뻔했다.

명예와 지위, 금전 등 다양한 것들이 오가는 그들만의 조작된 흐름 속에서 보잘 것도 없는 시골 마을 출신의 마리우스는 눈에 거슬리는 모난 돌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경쟁의 구도 안에서 아마도 마리우스는 많은 이들의 시기와 견제를 받을 것이라는 자세한 사정을 들은 네스는 얼굴을 굳혔다.

지금까지 살아온 네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적잖게 당황했다.

모두가 힘을 합쳐 땅을 경작하고 그 위에 집을 지으며 터전을 일구어 나갔던 이 마을에서는 협동과 화합이 기본이었으며 갈등이나 분란의 여지 따위는 생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방법은 없나요?”

“없는 건 아닙니다만….”

“정말인가요!?”

말끝을 흐리며 여지를 남겨둔 벤터의 말을 들은 네스는 덥석 물 듯 다급하게 말했다.

“일단은 콜로라스에 가서 이 방법에 대해 상의를 드리고 싶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네스는 선뜻 벤터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망설였다.

마리우스가 닥친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러고 싶었지만, 그만큼이나 중요한 이 보육원을 떠나는 것이 그닥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리를 비우는 것을 꺼리시는 거라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 쪽에서 인력을 지원해드리죠.”

벤터와 함께 마을을 찾아온 성기사들과 하위 사제들은 아마도 그것을 위한 것일 터.

“감사합니다. 주교님.”

첫 만남부터 다양한 호의를 시작으로, 마리우스의 후원자로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벤터를 의심하는 사람은 네스를 포함하여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신전의 주교씩이나 되는 고위의 사제가 이렇게 변두리의 마을을 자주 찾아오는 것부터가 몹시 이상한 일이었으나, 오직 이 작은 마을 안에서의 생태밖에 알지 못하는 네스와 마을 사람들이 그 이상함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주교를 따라 콜로라스에 온 네스는 처음으로 보게 된 도시의 풍경에 감탄했다.

“와아….”

에레니아 신성국의 수도나 다른 큰 도시에 비하면 콜로라스는 그 인구도, 땅의 규모도 반절 정도밖에 안 되는 촌 동네에 불과했지만, 삼백이 남짓한 인구에 불과한 자신의 마을과 비교하면 네스의 눈에는 감탄의 빛이 새어 나올 정도.

네스는 그렇게 새로운 도시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벤터의 뒤를 따랐다.

“여기는….”

당연히 벤터가 콜로라스 지부 신전의 주교인 만큼, 곧장 신전으로 향하리라 생각했지만, 벤터의 뒤를 따라온 네스가 도착한 장소는 제법 고풍스러워 보이는 여관이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다들 와 계신가?”

“네.”

“알았네.”

카운터을 지키고 있던 주인장이 여관 안으로 들어온 벤터의 얼굴을 알아보았고, 곧바로 다가와 그를 맞이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벤터는 곧바로 네스를 데리고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따로 객실의 안내를 받을 것도 없이, 벤터의 발걸음은 마치 자신이 향해야 할 장소를 알고 있다는 듯 거침이 없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여관의 최고층 복도의 가장 끝에 위치한 문 앞이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자 네스의 시야에 보인 것은 이 층 전체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거대한 넓이.

그리고 그 방안에 있는 세 명의 남성들이다.

“왔군.”

“흐음?”

방문 앞에 서 있는 벤터와 네스를 발견한 중년 남성들이 일제히 두 사람을 주시하였고, 이윽고 네스의 전신을 훑어보듯 관찰했다.

“괜찮군.”

“…….”

씨익 웃어보이는 중년 남성의 시선이 몹시 꺼림칙했던 네스가 몸을 움찔 떨며 머릿속의 본능이 경고를 해왔지만, 주저하고 있는 네스의 손목을 붙잡은 벤터가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억지로 그녀를 끌고 갔다.

“주, 주교님…!?”

“간단하게 소개를 드리도록 하죠. 이분들이 마리우스를 후원해주실 분들이십니다.”

방 안에 있는 남성들은 모두 네스가 처음 보는 이들뿐이었지만, 그들의 옷과 장신구들, 보이는 태도들이 하나 같이 자신과 같은 평범한 신분의 이들이 아니라는 것은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벤터는 그들의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있는 대부호의 상인부터, 다수의 뛰어난 사제들을 배출해낸 연수 기관의 고위 사제, 타국의 높은 신분의 귀족 등 벤터의 말대로 중앙 신전에 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고위층의 인사들이었다.

“하지만…. 정말 죄송스럽게도 이분들도 모두 나름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지라…. 제 부탁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들어주실 수는 없다고 하셨거든요.”

거칠게 붙잡았던 네스의 손목을 풀어주고, 벤터의 양손이 서서히 위로 올라와 네스의 양쪽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 네스 양께서 저분들을 설득해주셨으면 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설득?”

자신의 어깨를 만지고 있는 벤터의 양손의 움직임이 갑작스레 변모했다.

호의와 믿음으로 보답하는 신실한 사제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는 그 움직임이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아 소름이 끼쳤다.

“네. 네스 양이 아주 조금만 성의와 노력을 보여주신다면, 저분들은 마리우스를 향한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겠죠.”

“…….”

아무리 변두리의 좁디좁은 시골 마을에서만 살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성인인 네스는 벤터의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는 벤터의 얼굴을 노려보는 네스의 얼굴에는 경멸의 표정을 띄워 보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이게 신을 모시는 사제님이 할 일인가요?”

신을 모시고, 신에게서 받은 따뜻한 은혜로 많은 사람을 보살피고 구원해야 하는 사제의 이면은 너무도 추악하고 더러운 짐승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고 혐오와 모멸의 감정이 차올랐다.

“저도 이런 방식으로 밖에 마리우스를 도와드릴 수가 없어서, 매우 슬픕니다.”

“잘도 그런 소리를…! 곧바로 중앙 신전에 가서 항의하도록 하겠어요!”

꽉 쥔 주먹을 휘둘러 벤터의 얼굴을 패주고 싶었던 것을 꾹 참은 것은 그가 이 콜로라스 신전 지부의 주교로서 이 도시의 관리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가 나고 열이 받아도, 그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했을 때의 후폭풍을 생각한다면, 네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속에 차오르는 모멸감을 스스로 참아내고 삭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정말로 그럴 수 있으십니까?”

“…뭐라고요?”

“이곳에서 중앙 신전으로 가는 길은 알고 계신대요? 걸리는 시간은? 필요한 경비는?”

“…….”

그런 것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네스는 이빨을 꽉 깨물고 아무런 대꾸도 없이 벤터를 노려보았지만, 벤터는 오히려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대로 그냥 나가신다면, 중앙 신전에서 사제 연수를 받고 있을 마리우스에게 어떤 결과가 있을지도 생각해보셨습니까?”

네스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은 속았다는 것을.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 추천서를 써주고, 굳이 바쁜 몸을 이끌고 변두리의 작은 마을을 찾아와 정기적으로 소식을 전했던 것도, 모두 거짓된 가면으로 자신을 이곳에 데려오기 위해 신뢰감을 쌓기에 지나지 않았을 뿐.

지금 네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신과 함께 보육원에서 자라왔던 친구이자, 가족인 마리우스의 얼굴이었다.

비록 하위계일지라도, 정식 사제가 돼서 고정 수입이 생긴다면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빵 몇 조각이라도 더 먹일 수 있다며 좋아라했던 순진한 청년의 얼굴.

‘마리우스…. 미안해.’

소녀의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어왔고 처녀가 된 지금까지 그 마음을 끝내 전달하지 못한 네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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