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56화 (539/730)

〈 556화 〉 556. 스승의 이야기(1)

* * *

“…그렇군.”

구미호는 자신의 사당을 찾아온 아홉 백귀들의 사정을 듣고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에린이 은현과 대련을 마치자마자 찾은 곳은 구미호의 사당이었다.

느닷없이 자신의 앞에 와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는 곧바로 백귀들을 소환시킨 것이 처음의 시작.

구미호는 변화한 백귀들의 상태를 곧바로 알아보았다.

전신을 둘러싼 마력의 밀도와 양이 몰라볼 정도로 현격히 상승한 것도 있었지만,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백귀들이 육성으로 구미호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백귀들을 부려왔던 구미호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로, 구미호를 당황하게 한 에린은 크게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급하게 지원을 하게 된 모그라프령에서, 에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깨달은 구미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히히. 어때? 나 대단하지!?”

“…….”

그것은 확실히 대단한 일이긴 했지만, ‘나 이제 미호 너보다 굉장해!’라고 의기양양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는 에린의 저 표정이, 구미호는 굉장히 아니꼬웠다.

“아야!”

결국, 참지 못하고 구미호가 에린의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자 느닷없이 한 대 얻어맞은 에린이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왜 때려!”

“그 기고만장한 표정이 아주 꼴 보기가 싫어서 때렸다. 그게 어디 순수히 네 노력으로 얻은 힘이냐?”

“그, 그건 아니지만….”

에린은 구미호의 지적에 살짝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것은 순전히 베르단디의 소개를 통해 자매 여신인 우르드의 힘 일부를 부여받으면서 행사할 수 있게 된 힘과 권리.

하지만 여신과 이어져, 권속의 서약을 맺기 위한 은현이나 베르단디가 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특혜일 뿐이지, 에린이 노력을 통해서 얻어낸 힘은 아니다.

“…치이. 그래도 현이는 굉장하다고 엄청 칭찬해줬는데.”

에린은 은현과 달리 냉혹한 평가를 하는 구미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구시렁거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흥. 확실히 네 녀석의 그 발상은 특별하긴 하지.”

아무리 그 힘을 부여받았어도 백귀들에게 현실의 육체를 부여하여 부활시킨다는 발상은 확실히 구미호에게는 바로 떠올릴 수 없는 에린만의 특별한 사고방식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가 한계다.”

구미호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불만이 많은 얼굴이구나. 그렇다면 지금 나랑 한번 붙어볼 테냐?”

“…….”

에린은 분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답하지 못했다.

곧바로 그러자고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과 구미호 사이에 존재하는 신수로서의 격차를 에린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신의 힘 일부를 부여받았다고는 하지만, 에린은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막 검을 잡게 된 초보 검사가 사기적인 수준의 스펙을 가진 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그 초보 검사가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느닷없이 신수의 힘을 각성하게 된 에린은 자신이 이 힘을 다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미호의 말뜻을 곧바로 이해했다.

“적어도 나한테 인정을 받고 싶다면, 신수의 힘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라.”

“치…. 알았어.”

에린은 그냥 칭찬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으나 아직 멀었다는 구미호의 냉혹한 평가에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백귀님들. 미호랑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알겠습니다.”

다른 백귀들을 통솔하는 리더격에 위치한 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당을 떠나는 에린을 배웅했다.

자신 이전, 구미호를 주인으로 모셨던 백귀들과 그들끼리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에린의 배려이기도 했다.

“너무 기준이 높으신 건 아닐까요?”

구미호의 평가는 대체로 정확했지만, 에린에게는 아픈 팩트 폭력과도 같았다.

“흥. 저 녀석은 다른 주위 사람들에게서 너무 오냐오냐 크고 있어.”

검과 다양한 기술들을 가르치고 있는 은현도 그렇게 무르게 키우고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쓴소리보다는 칭찬과 애정으로 의욕을 더욱 높이는 쪽에 가깝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고만장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은현도 쓴소리를 계속해주는 구미호가 있기 때문에 계속 오냐오냐 받아주면서 키우는 이 방식을 계속 사용하고 있을 뿐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했으리라.

“너희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구미호는 앞으로의 백귀들의 계획을 물었다.

“당분간은 모그라프령이라는 곳에 머무를 생각입니다.”

그것은 백귀들에게 제안한 엘레노아의 계획이기도 했다.

이제는 현실의 육체를 가지게 되어 먹고, 마시고, 잠을 잘 수 있게 된 백귀들에게 에린은 자유를 부여하게 되었고, 그런 그들이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고른 방법은 싸움터에서 활약하는 것이었다.

백귀들의 본질은 에린에게 예속된 부하들이었지만, 엘레노아는 그들에게 정식으로 아르미타스 공작령에 고용된 형태로 정당한 보상과 지위까지 챙겨주는 만큼 몹시 형편이 좋았기 때문에 엘레노아의 그 제안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돈도 받으면서 맛있는 밥까지 먹을 수 있는데, 싸움까지 실컷 할 수 있다니! 이거 완전 최고 아니겠습니까!? 으하하!”

트리스탄은 호탕하게 웃어 보이는 것이 이 상황이 제법 마음에 든 듯 보였고, 다른 백귀들 또한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흥, 아무튼 꽤나 의외의 소식을 가져왔군. 이제 너희도 그만 돌아가라.”

이전에는 그저 명령을 내리면 수행하는 존재들로 백귀들과 소통을 해본 적도 없었지만, 이렇게 육체를 가지고 육성으로 소통을 하게 되니 사당의 내부가 몹시 소란스러워졌다.

구미호는 귀찮다는 듯 손짓하며 백귀들을 내보내려 했지만, 이 집의 안주인 노릇을 하며 자리를 잡은 제라드가 웃으며 백귀들에게 말했다.

“하하! 오랜만에 손님인데,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미호님! 저녁 식사라도 하시고 가시죠!”

“…마음대로 해라.”

구미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포기한 표정을 지었다.

◆ ◆ ◆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마무리하자, 은현은 엘레노아와 함께 모그라프령을 향했다.

드워프들 일부가 모그라프령에 이주하는 것에 대해 모그라프 백작의 허가가 떨어져, 많은 것을 조율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중개인인 은현과 엘레노아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먼저 진행할 건 성벽의 보수와 개축, 그리고 드워프들의 이주 공간을 마련하는 겁니다.”

“음.”

“알겠네. 우리는 야장의 말을 따르지.”

모그라프 백작의 영주 성에서 이어진 회의는 은현의 주도하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공작령에서 백작령으로 전달되는 대량의 보급 물자의 유통 계획부터, 성벽의 보수와 드워프들의 관리 감독까지 은현의 결정으로 모그라프령은 빠르게 피해를 회복시켜나갔다.

“후우….”

드워프들의 성벽 보수에 대한 관리 감독을 마치고 백작이 준비해준 숙소로 돌아온 은현에게 함께 동행해왔던 엘레노아가 물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시간?”

“네. 소개드리고 싶은 분이 있어요.”

작게 웃음을 짓고 있는 엘레노아의 표정은 약간의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어서 자신에게 소개하고 반응을 보고 싶다는 것이 얼굴로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 모그라프령에는 은현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다.

그런데 누구를 소개해주려는 것일까.

엘레노아가 이 정도로 소개하고 싶은 이라면 적어도 알아두어서 손해는 아니라는 중요한 인물일 터.

“그러자.”

은현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엘레노아의 부탁에 응했다.

그가 엘레노아의 안내를 따라 도달한 곳은 같은 숙소 건물의 어떤 방이다.

“이곳에 있는 거야?”

“네.”

은현은 자신의 뒤에서 작게 미소지으며 긍정하는 엘레노아를 뒤로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방문을 열자마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기묘한 기분.

그리운 향수를 느끼는 것만 같은 이 기분은 몹시 기묘하다.

이윽고 방안의 테이블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 한 여성을 보고, 몸을 굳혔다.

“……!”

“왔구나.”

절대로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 그녀의 목소리가 눈앞에 보이고 귓속에 들려왔다.

‘어째서?’

‘엘레노아는 어떻게?’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은현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수많은 의문에 단 하나의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방문 앞에서 멀뚱히 서 있었다.

“어서 들어가세요.”

엘레노아는 망설이고 있는 은현의 등을 떠밀었다.

억지로 방안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아버렸다.

엘레노아로서는 잘 보이지 않는 강압적인 모습에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은현의 시선은 올곧게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향해 있었다.

“스…승님이십니까?”

“그래.”

“…진짜로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의심하는 것이냐?”

시에테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현을 쏘아보았다.

신격을 갖추기 위해 임했던 세 번째 시련에서 시에테를 만났던 은현은 아주 무례하게도 시에테를 가짜 취급했던 전적이 있었다.

기분이 살짝 상한 시에테의 눈초리를 받은 은현이 몸을 움찔 떨며 눈앞의 그녀가 진짜라는 확신을 얻었다.

“죄송합니다.”

은현은 잽싸게 시에테에게 사과하고 곧바로 맞은편의 의자에 착석했다.

접시에 담겨 있는 고기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고 있던 시에테가 잔에 와인을 따르려 하자, 은현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와인병을 잡았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흠.”

시에테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제자의 시절부터 이러한 시중은 은현의 담당이었기에 당연하듯 그에게 와인을 넘겼다.

곧바로 잔에 와인을 채우고, 다시 자리에 앉은 은현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추스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스승님이 이곳에 계실 수가 있는 건가요?”

“프로세르피나님이 날 이곳으로 보냈다.”

손목에 스냅을 주자, 잔 안 담겨 있던 와인이 소용돌이쳤다.

“프로세르피나님이…?”

“아마도 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으셨던 거겠지. 고작 영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너에게 검술에 대한 조언 정도는 할 수는 있으니까.”

그리고 제자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의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스승님은….”

명백히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저 영혼만이 건너왔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가 되살아난 결과까지 이어지기에는 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었다.

은현은 당연히 곧바로 떠오르는 한 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조용히 시에테의 말을 기다렸다.

“그건…. 네가 키우고 있는 그 꼬마의 덕이지.”

정말 인정하기 싫은 듯 아니꼬운 태도였지만, 그녀의 도움으로 육체를 가지고 부활할 수 있었던 만큼, 인정할 건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군요.”

아니나 다를까, 은현은 시에테의 부활에 대강의 경위를 파악했다.

자연스레 한차례 대련을 해보았던 백귀들의 케이스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거였구나.’

베르단디와 일리아나, 그리고 엘레노아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기대하고 있었던 이유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너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지.”

은현과 재회를 하게 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지만, 제대로 된 대화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번째는 망자의 여왕인 메디아에게 영혼이 종속되어 데스나이트로서 은현과 대립하게 되었을 때.

두 번째는 신격을 갖추기 위한 시련 중 세 번째 시련 속에서.

하지만 두 번의 기회 모두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기엔 제약이 너무도 많았다.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너무도 느닷없이 주어진 대화의 기회는 뜻하지도 않았던 스승의 부활과 함께 은현을 찾아왔다.

무엇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머릿속으로 고민을 하던 도중,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은현이다.

“스승님.”

“음?”

“스승님을 죽였던 악마의 이야기. 듣고 싶습니다.”

은현은 주먹을 꽉 쥔 채로, 자신이 반드시 소멸시켜야 할 대상에 대해 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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