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52화 (535/730)

〈 552화 〉 552. 부활과 재회(2)

* * *

까앙! 까앙! 까앙!

계속 들으면 들을수록 귀가 먹먹해지는 시끄러운 망치 소리가 마을 전체에 가득하다.

처음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이 소리에 릴리가 인상을 찡그리며 양쪽 귀를 막았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어떻게 적응했나 싶을 정도의 소음.

“정말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소.”

가르칠 수 있는 기술 중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침 받은 드워프들의 세 부족 중 두 족장이 은현을 보고 짧은 허리를 숙였다.

“뭘 이 정도로.”

은현은 작게 피식 웃어 보이고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면목이 없소. 본래는 세 부족의 족장이 모두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현재 자리를 비운 황금 망치 부족의 족장인 고몬은 시험작으로 완성된 골렘 ‘기가트론’을 직접 탑승하여 모그라프령으로 연결된 게이트를 타고 먼저 전장에 나갔다.

한시라도 빨리 완성된 프로토타입의 골렘을 직접 움직여 보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던 그는 자신이 탑승하여 시험해보겠다는 부족원들을 제치고 기가트론에 첫 시승하는 영광을 거머쥐었다.

하나의 부족을 통솔하는 족장에 위치해 있었지만, 그 이전에 고몬 또한 새로운 기술과 발전에 열을 보이는 대장장이였다.

“크게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영영 작별하는 것도 아니니까.”

애초에 프로토타입의 기가트론을 가지고 모그라프령으로 가서 지원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은 은현 쪽이었다.

거기에 선뜻 나선 것이 다름 아닌 한 부족의 족장인 고몬이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행동력이 넘치는 그를 말리는 것보다는 권장하는 쪽이 좋다고 판단했기에 굳이 말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히려 관계와 대우 등 사회적인 관계에 신경을 쓰는 도란이 너무 과한 편이다.

‘어떻게 그 양반의 밑에서 이런 드워프가 태어났는지.’

자신밖에 모르고 오로지 대장장이의 기술에만 관심이 있었던 이기적인 드워프의 끝판왕이었던 오란의 손자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도란은 한 부족의 훌륭한 족장이기도 했다.

은현은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란에게서 억지로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그와 같은 다른 부족의 족장, 조르에게 물었다.

“이주의 준비는?”

“다른 부족은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 부족은 모두 끝낸 상태다. 짐은 최소한으로 모두 꾸려두었고, 땅만 있다면 곧바로 건설 작업에 착수할 수 있겠지.”

“우리 검은 모루 부족도 마찬가지요.”

은현의 제안을 받아들여 선뜻 지상으로 진출하는 결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 결정으로 이주가 끝나는 건 결코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터에 그들만의 주거와 작업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거기에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물자들을 모조리 옮겨놓아야 하니 적어도 1~2개월로 마무리가 되는 일이 아니다.

언제 언데드들이 다시 왕국을 덮쳐올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드워프들의 결정이 굉장히 빨랐다는 점이다.

“오히려 나야말로 고맙지.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여 이주를 결정해주었으니까.”

그것은 수백 년 동안 땅속 지하에서 대대로 이어져 왔던 전통과 규율, 역사를 버린다는 것이기도 하다.

은현은 흘끗 조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종족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처음 릴리와 함께 은현이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 천일야장의 표식을 가지고 있던 은현을 적대했던 드워프들 중 하나였던 조르 또한 이 이주를 선뜻 받아들여 주었다는 것은 몹시 의외였다.

“크흐음…!”

찔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조르는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려 은현의 시선을 피했다.

딱히 추궁할 생각은 없었지만, 짓궂은 농담이 섞여 있었던 은현의 말은 조르에게는 살짝 아픈 가시와도 같았다.

“나는…. 딱히 인간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몇십 년에 한 번 있는 길쭉귀들과의 거래를 제외하면, 이종족을 만나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지.”

그런 그가 생전 일면식도 없었던 인간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은 순전히 감정적인 문제였다.

“아무런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은 평범한 이가 천일야장의 표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마을에 천일야장의 칭호를 계승 받을 수 있었던 기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르의 안목은 틀렸다.

은현은 이 마을 전체의 모든 드워프들을 통틀어도 부족할 정도로 뛰어난 수준의 야금술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는 없는 발상과 불가능에 가까운 공상을 현실로 재현해낼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이 존재했다.

소재를 만들어내는 연금학과 마법적인 분야도 무기를 제작하는 드워프들에게 있어서 절대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 자부할 수 있지만, 은현이 가지고 있는 그 기술과 지식은 드워프들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결국, 내가 틀렸던 것일 뿐이지.”

단지 그것뿐이다.

조르는 단순히 대장장이로서의 명예를 가장 추구하는 드워프였을 뿐, 딱히 인간이나 이종족들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은현에게 보였던 적대적인 태도는 순전히 유치한 화풀이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여 그에게 사과하였고, 은현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책은 거기까지. 그럼 우리는 먼저 저쪽에 가서 드워프들이 이주할 땅을 먼저 준비해둘게.”

“알겠소.”

“…으음.”

두 드워프의 대답을 듣고, 은현은 아티팩트를 꺼내어 설치하고 게이트를 발동시켰다.

이어진 곳은 자신의 집이 있는 아르키스 대미궁 던전의 내부.

은현은 흘끗 릴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가자. 릴리.”

“네.”

◆ ◆ ◆

“왔어?”

게이트를 통해 던전 내부로 복귀한 은현과 릴리를 반겨준 것은 일리아나였다.

“일리아나?”

드워프의 마을을 향해 떠난 지 근 3개월.

은현은 오랜만에 집으로 복귀하자마자 자신을 반겨준 아내의 모습에 곧바로 눈이 갔고, 이윽고 그의 시선은 일리아나의 복부 아래쪽을 응시했다.

조금이나마 볼록해진 그녀의 복부는 그 안에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괜히 은현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주인님. 그럼 저는 먼저 올라가서 짐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

눈치 있게 릴리가 은현과 일리아나가 둘만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어느새…많이 커졌네….”

“응. 그렇지?”

자연스레 복부 쪽으로 향한 은현의 손이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일리아나의 배를 어루만졌다.

“미안해. 같이 있어 주지 못해서.”

지금이 일리아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였음에도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은현이 사과했지만, 일리아나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난 기뻐.”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고 있는 은현의 품에 안겨 꼭 끌어안은 채로 몇 개월 만에 은현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은현의 몸에 기대어 함께 집안으로 들어온 일리아나는 오랫동안 참아왔던 은현과의 스킨십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던 도중, 릴리의 복귀를 눈치채고 곧바로 엘레노아와 에린이 은현을 반겼다.

“오셨어요?”

“현아!”

“고생했어. 두 사람도.”

수정 구슬을 통해 모그라프령의 상황을 대강 전달받아 고몬과 새롭게 프로토타입으로 완성된 기가트론을 보냈던 것이 마지막 통화.

두 사람이 이곳으로 복귀했다는 것은 모그라프령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의미라는 것을 곧바로 파악했다.

“아뇨. 저보다는 에린이 많이 고생했는걸요.”

“헤헤.”

“아이야. 왔느냐.”

이윽고 마지막으로 은현을 반겨준 것은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베르단디다.

“베르단디님?”

드워프 마을에 있는 동안 근 3개월 동안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베르단디가 이곳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은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제는 자신과 관계를 맺어 아내가 된 이들의 곁에서도 현현을 할 수 있게 된 여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여신의 마음이었지만, 베르단디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은현의 곁에서 자리를 비우는 여신이 아니었다.

“후후.”

“……?”

무언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베르단디의 표정을 확인한 은현은 이내 자신의 여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리아나나 엘레노아, 베르단디까지 무언가에 대해 잔뜩 기대를 하는 반응을 보여 은현의 머릿속을 더욱 의문으로 가득 채운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있었지. 전혀 예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아이에게 아주 놀라운 깜짝 선물이 준비되었다.”

“…….”

그것이 되살아난 자신의 스승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던 은현은 두루뭉술한 베르단디의 표현에 괜히 불안감만을 더욱 키웠다.

“그럼…. 신수 아이야.”

“넵! 베르단디님!”

에린은 베르단디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은현에게 말했다.

“현아! 그 창! 그 건방진 창 들고 나랑 대련 한 번만 해줘!”

◆ ◆ ◆

복귀하자마자 자신을 반겨준 에린의 부탁은 굉장히 뜬금없었지만, 무언가를 잔뜩 기대한 듯 몹시 흥분하고 있는 에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은현은 에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지하 훈련장으로 내려가 보면, 이미 에린은 몸을 풀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 있다는 거는 아마도….’

그 정도로 큰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면 브류나크를 혼내줄 수 있는 어떠한 수단을 찾아내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추측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신이 미처 돌보지 못했던 에린이 근 3개월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은현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구미호와의 수련, 이번 모그라프령의 지원, 그리고 제일 신경이 쓰였던 것은 묘하게 에린을 밀어주고 있는 베르단디의 태도다.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이제는 아내이지만, 자신이 처음부터 키워내고 가르친 제자의 성장을 직접 확인해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했다.

‘스승님도 이런 기분을 느끼긴 하셨을까.’

은현은 이제는 누군가의 스승이 된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던 자신의 스승을 떠올렸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제자의 성취를 확인하는 즐거움을 시에테가 느꼈을 것이라고는 자신할 수 없었다.

그것을 느끼기엔 자신의 성장은 너무도 느렸으며 시에테의 눈에 만족할만한 성취를 내놓았을 것이라고는 은현 자신도 생각지 않았다.

잠겨있던 상념을 일깨우고, 은현은 자신의 파트너인 브류나크를 소환했다.

[엉? 싸움이냐?]

언제나 그렇듯이 하계에 소환된 브류나크는 곧바로 주위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나타났다…!”

[…이번엔 뭐야?]

하지만 브류나크의 인식에 잡힌 것은 자신을 보며 이를 갈고 있는 에린의 모습뿐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나운지 으르렁거리고 있는 모습과도 같았지만, 브류나크의 눈에는 그저 발톱을 세우고 있는 작은 고양이처럼 느껴졌다.

“너 오늘 죽었어!”

[하.]

하지만 에린의 그 말에도 브류나크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니가 나를?’이라는 생각이 담긴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 웃음 소리는 에린의 전의를 더욱 불태울 뿐이었다.

언뜻 보면 이 싸움은 은현과 에린의 대련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은현은 에린의 성장을 직접 체감해보고 싶을 뿐 별다른 생각은 품지 않았다.

“그럼 준비됐어?”

“응!”

“시작할게.”

“알았어!”

싸움이 개시되자마자, 에린은 곧바로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신수의 힘을 개방했다.

여우귀와 함께 백은의 아홉 꼬리가 등장하였다는 것은 순수히 자신의 기술뿐만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 싸우겠다는 에린의 진심이 느껴졌다.

[호족 요술(?? ??)]

[백귀야행(???行)]

곳곳에 흩어져 다시 한번 생을 누릴 수 있게 된 백귀들이 주인의 부름에 응하여 다시 한곳에 소환됐다.

이윽고 자신들이 대적하게 된 상대를 알아보고 몇몇 백귀들이 환호했다.

“드디어…! 이날만을 기다려왔다고!”

“이번엔 창인가!”

이전 구미호의 소환에 응하여 하계에 현현한 백귀들은 당시 아홉이나 되는 자신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은현과의 재전을 몇 번이나 바라고 있었다.

강자와의 싸움이야말로 그들이 추구했던 바람이었으며 백귀가 되면서까지 싸움터에 남아있고자 했던 이유.

그리고 완전히 힘을 회복하지 못했던 구미호에게 소환되었을 당시와 달리, 지금의 에린은 크게 성장했고 생전의 육체까지 손에 넣었던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아홉 백귀들 중 트리스탄과 가웨인이 각자의 무기인 건틀렛과 창을 휘둘렀고 은현의 브류나크와 정면에서 충돌했다.

카아앙!

[크…윽!?]

충돌과 동시에 자신의 창대에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충격에 브류나크는 신음과 경악이 섞인 소리를 흘렸다.

물리적인 충돌로 인한 힘의 충격은 그럭저럭 버틸만했지만, 경악스러운 것은 백귀들의 무기와 전신을 뒤덮고 있는 푸른색의 불꽃이다.

그것은 이전 자신을 소멸시켰던 고위 악마 아스타로스의 ‘소멸의 겁화’와 비교하면 현격히 위력이 떨어지지만, 닿을 때마다 창대를 뜨겁게 달구고 착실하게 데미지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악마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성질의 힘을 다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경악스럽다.

“이건….”

에린이 가지고 있는 신수의 힘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은현 또한 눈치챘다.

“그분이 조언해주신 게 있는 데 ‘다굴 앞에 장사 없다.’라고 하시더라.”

시에테의 그 조언은 뜬구름 잡듯 모호한 표현으로 가득했던 검술의 조언과는 달리, 에린의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었다.

그 조언을 통해서 브류나크를 혼내줄 수단으로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 이것.

‘좋아. 통한다!’

은현의 신력과 이번에 받아들인 우르드의 힘이 한데 어우러져, 비약적으로 성장한 신수의 마력이 브류나크에게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에린은 곧바로 허리춤에 채워져 있던 레반테인을 뽑았다.

자신의 여우불을 둘러 신수의 마력을 극한까지 담아낸 레반테인을 은현이 쥐고 있는 브류나크를 향해 겨누며 소리쳤다.

“어디 혼자서 열 명한테 죽도록 맞아봐! 용서해달라고 울며불며 애원해도 안 멈춰줄 거야!”

에린과 인간의 육체로 되살아난 아홉 명의 백귀들이 일제히 은현과 그가 쥐고 있는 브류나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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