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49화 (532/730)

〈 549화 〉 549. 새로운 이종족(2)

* * *

“뭐야아! 이 성희롱 난쟁이 아저씨!”

가늘지만 높은음으로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던 강렬한 노호성.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게 만들어 당장이라도 집어넣었던 레이피어를 다시 뽑아 자신을 고몬이라고 소개한 남성 드워프에게 휘두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참아냈다.

“지, 진정하세요! 에린님!”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요!? 이런 모욕을 들었는데!”

“그, 그게…!”

씩씩거리며 잔뜩 흥분을 표출하는 에린을 말리지 못하고 차한성은 몸을 움찔 떨어야만 했다.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다.

눈빛만으로 자신을 쫄게 만들 수 있었던 사람은 지금까지 리오드 뿐이었는데, 그보다는 못하더라도 에린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

도끼눈을 뜨며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하여 에린을 어떻게 진정을 시켜야 할지 몰라 식은땀을 흘렸다.

“진짜 뭐야!”

사실 최근까지 에린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몹시 자신감이 넘쳤었다.

깡말랐던 학생 시절의 모습을 탈피하고 훈련을 거듭하여 성장한 몸과 외모, 그리고 최연소 금위계 모험가의 지위와 명성.

무의식적이기는 하나 구미호로서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페로몬은 이성에게 좋은 감정을 심어주는 플러스 요인이기도 하다.

게다가 남부럽지 않게 애정과 사랑을 쏟아주는 남편까지 있는데 자신감이 넘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리아나나 엘레노아처럼 강대한 힘이나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 그녀들보다 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에린은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에 비해서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짜고짜 듣게 된 혹평은 에린의 자존심을 몹시 긁어대기 충분했다.

‘아, 미치겠네….’

차한성은 화가 나서 씩씩대고 있는 에린을 진정시킬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에린.”

“엇?”

고몬의 말에 잔뜩 분개하던 에린의 씩씩거림이 단번에 멈추고,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문 쪽에서 들려온 여성의 목소리는 에린의 상담을 듣고 고몬, 골렘과 함께 게이트를 타고 곧바로 이곳으로 넘어온 엘레노아의 목소리였다.

“엘레노아니임!”

엘레노아를 발견하자마자 에린은 곧바로 달려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저, 저 난쟁이 아저씨가…! 저보고 미녀가 아니래요! 현이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어요!”

“…엥?”

차한성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분개하며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뿜어냈던 에린이 어느샌가 순한 개처럼 엘레노아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고자질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에게 짓궂은 장난을 쳤던 초등학생 소년의 만행을 친 언니에게 이르는 소녀와도 같아서, 진지한 분위기였던 이 상황이 자못 우스워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한 대 할퀼 것처럼 발톱을 세우는 사나운 암고양이와도 같았는데, 어느샌가 주인의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순종적인 강아지처럼 행동하는 것이 어이를 상실하게 했다.

‘저 정도로 비약적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 어떤 의미로는 저것보다 질이 나쁜가…?’

자칫 잘못하면 성희롱처럼 들릴 수도 있었던 문제였는데.

에린에게 있어서는 은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들려, 그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런…. 정말로 상심이 크겠네. 괜찮니?”

“안 괜찮아요! 혼내주세요! 엘레노아님!”

단호하게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에린의 말에 엘레노아는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엘레노아도 드워프와 은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은현이 드워프 마을 안에서 제일 훌륭한 대장장이로서 천일야장이라는 칭호를 거머쥐었다는 대강의 사정은 들었다.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을 만나보았지만 고몬이 보이는 천일야장에 대한 존경심은 진짜다.

그런 그가 설마 존경해 마지않는 천일야장의 아내에게 막말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은 채로 고몬을 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과 드워프 사이에는 가치관이 많이 다른 듯합니다. 저희 에린이 적지 않게 상처를 입은 듯한데, 사과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중하고 교양있는 태도로 나오는 엘레노아의 부탁에 고몬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아무래도 내가 실례될 말을 한 것 같구만. 이것 참 미안하게 됐네. 으하하하!”

“으….”

호탕하게 웃어 보이며 사과를 했지만, 에린은 그것이 고몬의 진심 어린 사과라는 것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감정에서는 정말로 자신에 대한 악의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에린은 신음했다.

기분이 몹시 상했지만, 정중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드워프들 사이에서는 풍채가 좋고 큰 엉덩이를 가진 여성을 최고의 미녀로 본다네! 인간과 대화를 해본 것이 처음이라 내가 너무 무신경했군!”

드워프에게 있어서 최고의 미녀란 건장하고 튼실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몸매를 가진 여성을 뜻한다.

인간이 아닌 드워프의 그 가치관으로 에린을 평가해버렸다는 것을 자각한 고몬의 사과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에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받아들이겠습니다.”

엘레노아는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이 삐죽 나온 에린을 달랬다.

“고생했어.”

“네에….”

◆ ◆ ◆

“정말로…. 터무니없는 것을 가지고 왔구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골렘을 응시하던 모그라프 백작은 중얼거렸다.

영지의 중심에 있는 영주의 저택의 창문 너머.

이곳을 수호하고 있는 단단한 성벽 위로도 또렷이 보이는 금속 골렘은 그저 저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며 영지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래도 피해가 적게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하오만.”

작게 미소지으며 위로하는 엘레노아의 말을 들은 모그라프 백작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이 끝난 후, 병사들은 사후 처리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부상자와 사망자의 파악과 남아있는 물자의 정리, 파손된 성벽의 유지 보수 등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이 끝난 이후에도 그들에게 쉴 수 있는 여유는 그렇게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한 가지 기적적이었던 것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만들어내지 않겠다.’라는 아니에스의 호언장담이 그대로 지켜졌다는 점이다.

오직 그 한 가지의 기적이 싸움이 끝나 피로에 절어있는 병사들의 몸을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살아남았다는 실감과 함께 분주히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후 엘레노아는 곧바로 모그라프 백작의 저택을 방문했다.

“무언가 고민이 있으신가요?”

“이번 사태에서 내가 무엇을 하였는지를 속으로 곱씹어보고 있었소.”

이번 언데드와 마수의 출몰 사태에 관해서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하였을까.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영지를 지키는 데 큰 공헌을 했던 것은 자신과 자신의 영지민들이 아니다.

에린과 아니에스, 그리고 베스타 신전의 사제와 성기사들이며 모그라프의 병사들은 그리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직접 싸움에 나섰던 영지의 병사들 또한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터.

“나는…무능하오.”

자신과 영지민의 힘만으로 이 위험을 이겨내지 못했다.

계속해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위험을 타개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국경을 수호하는 중요 임무를 앞으로도 계속 수행해나갈 수 있을까.

모그라프 백작은 현재 자신감을 잃고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어쩌면…. 이제는 이 역할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소.”

그것은 스스로 모그라프 변경의 수호를 포기하고, 나아가 귀족으로서의 명예와 권위를 왕가에 반납하겠다는 의미와도 같다.

가문에 대대로 내려왔던 중요한 역할을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부모와 선조들에게 불효와도 같은 몹쓸 짓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그라프 백작은 그런데도 작위와 역할을 반납할 것을 결심했다.

무수히 많은 영민의 희생을 쌓은 끝에 간신히 지켜낸 이 자리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겁고 이제는 두렵기까지 하다.

“아니요. 아직은 안 됩니다.”

“…….”

하지만 엘레노아는 단호히 거절했다.

담담한 그녀의 목소리에 모그라프 백작의 은퇴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사가 깔려있다.

“여왕 폐하께서는 백작의 은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사전에 저에게 전달하셨습니다.”

“여왕 폐하가….”

아직 공식적인 대관식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모그라프 백작은 그것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곧바로 눈치챘다.

곧 최초로 이 나라의 왕이 될 예정인 유리아는 이 모그라프령으로 아르티아 기사단의 파견을 직접 명령한 장본인이다.

그리고 이전 마수 대범람 사태 때 직접 지원물자를 전달하면서 이번과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던 모그라프 백작을 보고 은퇴를 결심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여왕 폐하는…. 공녀께서는 내가 아직도 이 영지와 국경의 수호 임무를 계속해서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오?”

“지금으로선 많이 힘드시겠지요.”

애초에 스스로 자신들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면 사전에 왕가와 아르미타스령에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민들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는 그의 판단은 전혀 오만하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나, 계속되는 실패로 자신감의 하락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나 같은 것에게…!”

“그래서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도우러 왔다고?”

“네.”

엘레노아는 모그라프 백작이 응시했던 창가의 너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창문을 넘어 외곽의 성벽 위로 보이는 금속 골렘의 머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백작께서는 제가 저 골렘과 드워프라는 이종족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그건…국경의 수호를 돕기 위해 지원 병력을 보내온 것이 아니었소?”

“그것도 그렇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창가 쪽으로 돌렸던 고개를 다시 정위치로 바꾸어, 정면의 모그라프 백작을 응시하여 엘레노아는 올곧은 눈으로 백작의 물음에 답했다.

“새로운 무기와 병력의 양성.”

“……!”

모그라프 백작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움찔 떨었다.

“저 골렘은 제 남편이 드워프라는 이종족에게 제작기술을 전수하면서 만들어낸 시제품에 불과합니다. 최종적인 목표는 저 골렘을 대규모로 양산하는 것이지요.”

“…….”

“백작께서 보시기에 저 골렘이 양산된다면 국경의 수호 임무에 얼마나 도움이 되실지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당연히…. 아주 큰 도움이 되지 않겠소.”

직접 그 전투력을 체험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골렘의 외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단연코 그 어떤 무기들보다도 압도적이다.

방어력은 물론 물리적인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우월함을 보이는 골렘은 언데드는 물론 상위의 마수조차도 간단하게 힘으로 찍어누를 수 있을 만한 위용을 갖추고 있었다.

“저와 제 남편이 제안을 드리고 싶은 건, 저 골렘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은 물론 뛰어난 무기들을 제련하는 철과 땅의 종족이라고 불리는 드워프 분들의 이주입니다.”

본래라면 아르미타스령으로 이주시켜, 다양한 이종족들이 인간과 어우러지는 영지를 만들려 했던 것이 은현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에린과 엘레노아에게서 모그라프령의 현 상황을 전달받았던 은현은 급하게 계획을 변경했다.

“힘이 부족하고, 시간과 자원이 모자라시다 면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엘레노아는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은퇴를 결심했던 모그라프 백작을 설득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은퇴를 결심하는 것은, 현재 암울한 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그라프령의 영지민들을 두고 도망을 치겠다는 의미와도 같다.

많은 이들의 목숨과 책임에 짓눌려 그 중압감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을 치려 하고 있지만, 그와 반대로 그 어떤 영주보다도 영지민들을 생각하는 모그라프 백작은 놓치기엔 아까운 인재다.

“부디 조금만 더 힘내주시면 안 될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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