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48화 (531/730)

〈 548화 〉 548. 새로운 이종족(1)

* * *

사기(死?)를 내뿜으며 사람들을 위협했던 끔찍한 몰골의 언데드 무리를 모두 배제한 끝에, 간신히 승리를 쟁취한 병사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금속 골렘을 보며 경계의 기색을 띄웠다.

“뭐…뭐야!? 저건 도대체!?”

영지를 수호하는 성벽의 높이에 도달할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체구를 자랑하는 골렘은 온몸이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것 또한 몹시 신기했지만, 그보다 더욱 기이했던 것은 골렘의 등장 그 자체다.

“어디서 저런 커다란 골렘이…!?”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모그라프의 영지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전조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그라프의 병사들이 승리를 만끽하며 풀었던 긴장의 끈을 다시 꽉 조이고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려 할 때.

“자, 잠시만요! 여러분…!”

“한성아!”

아르티아 기사 한 명이 금속 골렘과 병사들의 사이에 난입하여 중재를 시작했다.

차한성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허리춤의 검집에 집어넣으며 경계의 기색이 가득한 모그라프의 병사들과 아르티아 기사들, 그리고 베스타 신전의 성기사와 사제들에게 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건…. 적이 아닐 겁니다!”

“…적이 아니라고?”

“기사님은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 그건…. 저도 잘 모르지만….”

지구에서, 그것도 영화라는 허구의 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었던 가상의 존재가 어떻게 이곳에 똑같이 재현될 수 있는 것인지, 차한성 본인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저 금속 골렘이 적이 아닐 거라는 막연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적어도 저 골렘을 제작한 인물이 인간이며 자신과 같은 지구의 기억이 있는 전생자일 것이라는 확신.

‘도대체 어떤 또라이야?’

어떤 기술을 사용해서 어디서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여 저 골렘을 만든 것인지, 겉으로만 보기에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는 골렘의 모습에 속으로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더럽게 잘 만들었네.’

뿐만 아니라 감탄까지 하고 있다.

“…본인도 잘 모른다면서 저게 적이 아니라는 건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으로 나온 결론이지?”

“그건….”

중간에 난입한 부하의 단독 행동에 살짝 인상을 찡그린 카인의 물음에도, 차한성은 당황하며 머뭇거렸다.

어떻게 자신이 저것에 대해 알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살았던 전생의 기억과 자신의 내력을 설명해야 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말도 안 되지.’

누가 ‘저 사실은 전생의 기억이 있는데요. 저거 저와 같은 전생을 살았던 사람이 만든 것 같습니다.’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어줄까.

“음? 싸움은 끝난 겐가?”

“어?”

차한성은 자신의 뒤, 위쪽에서 들려온 금속 골렘의 목소리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확성기를 통해 증폭된 듯 넓게 울려 퍼지는 음성은 골렘의 등장과 함께 들었던 걸걸하고 호쾌함이 가득했던 남자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차한성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여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 끝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에라 모르겠다.’

중간에 난입하여 밑도 끝도 없이 중재하기 시작하고, 상관의 눈초리에 시간이 지날수록 곤란해지는 것은 차한성 쪽.

이윽고 몸을 돌려 금속의 골렘과 마주했다.

“싸움은 끝났습니다!”

“…뭣이?”

골렘의 안쪽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는 당혹스러움이 깔려있었다.

재차 되묻는 그 목소리에 차한성이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러니까! 싸움은 끝났다고요! 무장을 해제해주세요!”

“이, 이럴 수가…! 너무 늦었단 말인가!?”

“…….”

자신의 부하가 눈앞의 골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기묘한 광경에 카인은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적이 아니라는 확인은 얻을 수 있었지만, 적일 지도 모르는 인간이 아닌 골렘과 망설임 없이 의사소통할 생각을 떠올렸는지 당혹스럽기만 하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저건 적이 아니야.”

“…아니에스님은 저 골렘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뒤늦게 카인 쪽으로 합류한 아니에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물음에 답했다.

“아니. 엘레노아가 곧바로 지원을 보내준다고 했었거든. 그리고….”

아니에스는 땅을 차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발소리를 듣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흘끗 옮겼다.

“제대로 설명해줄 녀석도 도착한 것 같네.”

“잠깐! 잠까아안! 잠깐만요! 이 골렘은 적이 아니에요!”

급하게 달려와 차한성의 옆에서 발걸음을 멈춰선 에린을 호위하듯 아홉 개체의 백귀들이 둥글게 둘러싸며 자리를 잡았다.

“역시 저 기사들은 아가씨의 능력이었나.”

차한성이 끼어있었지만, 그는 안중에도 없이, 마치 여왕을 모시듯 에린을 둘러싼 청염과 백은의 기사들을 본 카인은 그렇게 매우 놀라지는 않았다.

카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르티아의 단원들 또한 비슷한 반응이다.

에린과 그녀의 부하인 백귀들은 이전 모그라프령의 마수대범람 사태나, 선대 국왕의 장례를 위해 방문했던 오르비스 섬에서도 크게 활약을 보였던 탓에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당황한 부분이 있다면 백귀들의 전력이 눈에 띄게 상승하였고 갑작스레 육성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정도.

반면 에린의 백귀들을 처음 본 모그라프령의 신입 병사들이나 베스타 신전의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돌연 나타나 자신들을 도와준 강자들이 이번에는 단 한 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무장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건 적이 아니에요! 같은 편이라고요!”

“…그런가?”

“저분이 저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럴지도…?”

적의와 경계의 태세를 보였던 이들의 태도가 조금씩 누그러지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에 차한성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후우….”

병사들의 꺾였던 사기를 다시 치솟게 만들고 이 싸움이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에린과 아니에스의 공헌이 크다.

그런 에린이 갑작스레 나타난 금속 골렘은 적이 아니며 아군이라고 단언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다짜고짜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에린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역시….”

일개의 기사단원인 자신이 말을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에린에 대한 질투나 본인에 대한 자괴감을 가질 법도 한데, 차한성은 이 상황이 잘 넘어갔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오히려 그녀가 선보인 무력에 대해 감탄하기에도 바쁘다.

차한성은 에린에게 물었다.

“이 골렘…. 혹시 에린님의 것이십니까?”

“네? 아, 아니요. 저것과 비슷한 걸 가지고 있기는 한데….”

“…비슷한 거요?”

차한성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재차 묻고는 멀뚱히 서 있는 금속 골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게 하나가 아니라고?’

그렇다는 것은 두 개, 세 개 이상의 골렘들이 있다는 소리.

저 골렘들을 디자인하고 제작한 것은 어떻게 보아도 자신과 같은 지구의 기억이 있는 전생자다.

차한성의 머릿속에 에린과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지구인의 모습이 곧장 떠올랐다.

‘연결점은 무슨 이 사람 남편이잖아….’

생각해보니 에이라와 그녀의 소대를 수색하러 갔을 당시에도, 지구의 문물에 대륙의 기술을 적용하여 개발해낸 자동차도 가지고 있었는데, 어째서 곧바로 은현의 존재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엘레노아님이 현이한테 말해서 지원을 보내준다고는 하셨는데….”

에린은 살짝 기가 질린 시선을 지어 보이며 금속 골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저는 이런 게 올 줄은 몰랐죠….”

임산부인 일리아나가 오는 것은 무리일지라도, 엘레노아가 직접 오거나, 현재 자리를 비운 상태인 은현이 직접 와줄 줄 알았는데.

정작 등장한 것은 어디서 또 무엇을 하면서 만들었는지 옵티머스와 비슷한 크기와 외관을 가지고 있는 금속 골렘이다.

“와 나….”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에린과 마찬가지로 이 상황은 아니에스 또한 예상하지 못하여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또 뭘 만들어낸 거야. 이 미X 놈은?”

외관이나, 장비된 무장 등으로 보아서는 저 골렘 하나가 가지고 있는 전투력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아까 전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보여주었던 세 구의 오우거 시체가 합쳐진 좀비와 비슷한 크기로 그와 동등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존나 멋있잖아?”

“…….”

아니에스의 뒤틀린 감상에 카인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참아냈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차한성의 독단 행동이었지만, 새로운 정체불명의 적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현재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이윽고 골렘의 가슴팍 부근에 장비되어 있던 금속 덮개가 위로 열리고 그 안에서 누군가가 등장했다.

“끄…으! 젠장! 출입을 더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장치를 개발해야겠군!”

골렘의 가슴팍 내부에서 걸걸한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짧지만 굵고 투박한 남성의 손이다.

“어…?”

이윽고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모습에 골렘을 주시하고 있던 모든 이들이 멍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금속 골렘을 아군이라고 옹호했던 에린과 차한성까지도 처음 남자를 보며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으랏차!”

가슴팍 부근에서 곧바로 뛰어내려 지면에 착지한 남자에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뭐야. 저 키 작은 아저씨는?”

멀찍이서 그를 본 아니에스는 그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외양이다.

전체적인 신체는 굵직하고 근육이 우락부락하여 남다른 체격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와 달리 기형적으로 신장이 짧아 신체의 비율이 이상할 정도로 언밸런스하다.

에린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처음 보는 이를 대면하게 되어 벙찐 얼굴로 남자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설마…. 드워프?”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닌 그를 처음 보고 들었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것은 차한성이다.

“오!? 인간 중에 우리를 아는 이가 있었다니!”

드워프 남성은 자신을 알고 있는듯한 차한성의 얼굴을 보며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땅의 요정족인 드워프! 그리고 황금 망치 부족의 족장인 고몬이라고 하네!”

자신을 고몬이라고 소개한 드워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천일야장께 급히 부탁을 받고 새롭게 제작한 이 골렘의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신비한 문을 타고 급히 이곳으로 왔거늘! 벌써 싸움이 끝나버리다니…!”

아쉬움을 넘어 분통을 터뜨리는 고몬의 모습은 마치 새롭게 만들어낸 장난감을 선보일 기회가 사라져버린 어린 소년 같았다.

우락부락한 체구에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였지만, 평균적인 인간의 신장에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체구 때문인지 더욱 그 인상이 강했다.

“…천일야장이 누구인가요?”

에린은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몬에게 물었다.

“음? 우리 드워프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의 칭호를 거머쥔 위대한 분이시지!”

이윽고 고몬이 에린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그녀의 여우귀과 아홉 꼬리를 주시했다.

“그런데 혹시 그대가 에린이라는 아가씨인가?”

“네? 아, 네. 맞아요. 제 이름을 어떻게….”

“야장께서 이곳으로 오면 아가씨를 찾으라고 했더군. 여우귀와 백은의 아홉 꼬리를 가진 여성으로 자신의 아내라고 하셨었는데.”

“아.”

에린은 고몬이 말한 ‘천일야장’이 바로 은현을 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쩌다가 드워프라는 종족들 사이에서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칭호를 가지게 되었는지, 그 경위가 몹시 신경이 쓰였지만, 고몬이라는 드워프와 함께 저 금속 골렘이 은현이 보내준 지원군이라는 대강의 경위는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야장께서는 굉장히 아름다운 미녀라고 소개하셨었지.”

“헤, 헤헤! 현이도 참…!”

갑자기 은현의 전언으로 치고 들어오는 칭찬에 에린이 헤벌쭉한 미소를 보이며 몸 둘 바를 몰라했다.

“그런데 잔뜩 기대했는데, 영 아니구려.”

“…뭐라고요?”

에린은 웃음꽃이 만개했던 입꼬리를 딱딱하게 굳히며 물었다.

“무릇 여자란 아담한 체구에 살집이 있어야 최고가 아닌가? 우리 마을의 드워프 미녀들과 비교를 해본다면 아가씨는 너무 길고 가늘어. 그래서야 어디 망치질을 두세 시간씩이나 두들 길 수 있겠는가?”

“뭐, 뭔….”

“게다가 가슴은 제법 크지만, 그렇게 허리가 얇고 엉덩이가 작아서야 풍채가 튼실한 아기를 낳기엔 영 아니군!”

느닷없이 드워프의 가치관으로 자신의 몸을 품평 당한 에린은 수치심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격노에 휩싸인 노호성을 터뜨렸다.

“뭐야아! 이 성희롱 난쟁이 아저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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