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39화 (522/730)

〈 539화 〉 539. 언데드 마수(2)

* * *

에린과 에이라, 아니에스의 세 사람은 밤을 지나 새벽이 되어서도 모그라프 령의 요새를 향해 쉬지 않고 이동했다.

언데드들을 비롯해 그것들을 피해 이동해오고 있는 마수들이 국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그라프 령에 한시라도 빨리 알리고, 그 위험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 여성은 새벽이 되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힘겨움을 호소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최고의 사제인 아니에스의 신성력은 계속해서 벌어진 마수들과의 전투로 점점 누적되어가는 육체의 피로와 데미지를 깔끔하게 회복시켰으며 10시간이 넘는 무리한 행군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육체에 누적되는 피로가 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에린…. 괜찮니?”

에이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에린의 상태를 살폈다.

오랜 시간 구미호의 모습을 유지하며 오감을 확대하고 감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에린의 얼굴은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몇 분도 아니고, 몇 시간씩이나 유지하며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얼마나 많은 부담과 피로를 주고 있는지, 에이라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심지어 그녀가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까지 해주고 있는 원인은 소대 원정에서 신입 단원을 지키려다 조난한 자신을 구출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더욱 에이라의 마음을 걸리게 만든다.

육체적인 피로는 아니에스의 신성력으로 커버가 되고 있다지만, 마력의 소모와 정신적으로 누적되는 피로는 신성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괜찮아요.”

에린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고, 한시라도 빨리 모그라프 령으로 복귀해야 하는 이상 자신이 해야 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조금의 휴식도 취하지 않고, 무리하게 복귀를 서두르고 있는 것은 현재 가장 큰 역할을 하면서 많은 부담을 지고 있는 에린이다.

“그래도 조금 쉬는 게….”

“하지만 지금은 빨리 복귀를….”

“그냥 이동만 하면 되는 거면 나한테 맡겨.”

결국, 보다 못한 아니에스가 에린의 허리를 팔로 감아 자신의 어깨에 들쳐멨다.

“앗…! 내, 내려주세요…!”

갑작스러운 아니에스의 행동에 당황한 에린이 작게 저항했지만, 오우거조차도 어쩌지 못했던 아니에스를 에린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됐어. 이렇게라도 조금 휴식을 취해. 내 신성력은 육체의 피로를 회복시켜줄 수는 있어도, 정신적인 피로는 어떻게 해줄 수 없어.”

“…….”

“도움이 되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쉬어서 피로를 회복해.”

“네….”

에린은 아니에스의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지금껏 억지로 버텨오고 있었던 피로가 조금씩 머릿속을 지배하여 나른하게 만든다.

강하게 밀려오는 졸음은 이내 에린의 두 눈을 스르륵 감기게 했다.

푸른색의 마력으로 형성되어 있던 구미호 변신이 풀리고 평범한 에린으로 돌아가며 아니에스의 어깨에서 그녀의 전신이 축 늘어졌다.

“…쯧. 이런 것까지 닮아서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든 그 모습은 지금까지 무리해서라도 버티고 있었던 에린의 정신력이 마침내 한계에 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을 본 아니에스가 작게 혀를 차자, 함께 이동하고 있던 에이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누구겠어. 이 녀석을 가르친 녀석이지. 제자나 스승이나 하나같이 똑같아.”

“아.”

에이라는 은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작게 탄식했다.

자신과 이렇게 동행하고 있지만, 눈앞의 어린아이의 외관을 한 작은 소녀는 20년 전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팀에서 활동했던 아주 대단한 영웅이라는 것을 새삼 자각하게 된다.

“그분도…. 그렇게 무리하시는 편이었나요?”

“무리하는 게 일상이었지.”

항상 팀의 중심에서 뒤에서 팀원들을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 은현이다.

마수의 탐색과 색적, 오더, 필요한 경비나 장비의 보충과 계산 등.

자잘한 것부터 커다란 것까지 모두 신경을 쓰면서 심지어 자신을 비롯한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기까지 했다.

은현에게 모두 맡겨버리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자처해주는 것이 너무나도 편하고 고마워서, 팀원들 모두가 그것을 당연시하면서 의존하고 있었다.

아니에스가 에린에게서 겹쳐 보이는 것은 그런 은현의 모습이다.

은현보다 경험이 부족하여 서툴지만 은현을 동경하여 그처럼 행동하고자 하는 에린이 얼마나 무리를 하고 있는지는 아니에스의 두 눈에 훤히 보였다.

“어쩌다 이런 핏덩이를 주워서 결혼까지 했는지…. 그놈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깐.”

절대로 맺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은현과 일리아나가 결혼하여 이제는 배 속에 아기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이제 막 성인이 된 에린도 그녀와 같은 신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니에스님은…. 마음에 두고 계신 분이 있으신가요?”

“…그런 건 왜 물어봐?”

전혀 상관없는 주제가 튀어나온 것에 아니에스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아버지와 함께 했던 전 동료가 지금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근황이 궁금해진 것은 순전히 에이라의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흥. 이런 어린 애 같은 몸을 좋아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

아니에스는 코웃음을 쳤다.

여신에게 받은 은총으로 막대한 신성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성장이 멈춰버린 아니에스는 앞으로도 평생 이 소녀의 외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모습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난 딱히 외로움이나 연애 감정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없네.”

생각해보면 자신의 성향도 몹시 특이하다는 것을 새삼 자각했다.

20년 전 전쟁이 끝난 이후,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고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정착을 하기 시작하여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리오드는 테레지아와 결혼을 하여 왕국의 기사로.

제라드는 은현의 의지를 이어받아 전쟁 때 미처 처리하지 못한 흑마법사 잔당들의 추적을.

앨리스는 엘프의 숲을 찾아내어 엘프를 남편으로 맞이하면서 평온한 삶을.

레이넌은 작위를 이어받아 렌디르 왕국의 귀족이 되었지만, 최근에는 최악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들었지만 그래도 가장 다행이었던 것은 은현의 부활과 일리아나의 안정이다.

아니에스는 에린을 흘끗 보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 녀석 덕분에 그 둘도 나름대로 안정이 되어 있으니 괜찮나.”

때로는 연인처럼, 여동생처럼, 딸처럼 귀여워해 주는 에린은 이제 은현이나 일리아나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로 두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전 동료들에 대한 것을 생각하느라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아니에스는 딱히 외로움이나 연애를 고파할 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후후,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네요.”

“뭐? 리오드가 뭔 말을 했는데?”

“말투나 성격은 매우 거칠지만…. 아버지를 포함한 팀원 중에서 모두를 가장 아꼈던 건 아니에스님이었다고 하셨어요.”

“…쓸데없는 소리를.”

아니에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애써 이동을 재촉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에이라는 작게 웃었다.

­그 녀석은 말투나 행동은 외모와 달리 굉장히 거칠지만, 정이 굉장히 깊어. 시력을 잃어버린 앨리스의 두 눈을 고쳐주지 못했던 걸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녀석이니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최고위의 신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앨리스의 두 눈을 고치지 못한 것은 자신의 역량의 부족이라고 자책하면서 그것을 끌어안고 있었던 것은 그렇게 모질지 못한 그녀의 심성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훈훈한 미소를 담아 숲속을 걷고 있을 때, 에이라와 아니에스는 빠르게 수풀을 제치고 이곳으로 접근해오는 무언가의 소리를 들었다.

“이건…?”

날렵한 몸놀림으로 땅을 차며 접근해오는 소리가 아니다.

마치 마차처럼 강제로 수풀을 밀고 들어오는 거대한 물체의 소리는 에이라는 몰라도, 아니에스의 귀에는 익숙한 소리였다.

“적이 아니야.”

“네? 그러면….”

의문을 해소할 틈도 없이, 수풀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빛이 점점 강해져 두 사람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점점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는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이윽고 수풀을 해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전방에 배치된 두 개의 헤드라이트가 빛을 발하여 두 사람을 비추고 있는 사륜구동형의 자동차, 레토나다.

“선배!”

운전석의 창문을 내리고 몸을 내밀어 에이라를 부르는 목소리는 굉장히 의외의 인물의 것이었다.

“하, 한성아?”

“와 쟤도 참 대단하네.”

아니에스는 대강의 상황을 파악하고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 상황 자체는 정신적인 피로로 잠들어버린 에린이나, 에이라나 자신에게도 굉장히 반가운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다.

“타자.”

“네, 네….”

아니에스를 따라 레토나 쪽으로 향한 에이라는 그녀를 따라 뒷좌석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고 안락한 쿠션에 몸을 기대자 자연스레 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아, 에린은 제가 맡을게요.”

곧바로 아니에스에게서 잠에 빠진 에린을 넘겨받아 뒷좌석에 눕히고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앉혀 편히 쉴 수 있도록 에린을 배려했다.

그리곤 운전석에 앉아있는 차한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떻게 된 거야. 한성아? 에린한테 너는…. 단원들을 안전하게 복귀시키는 역할을 맡았다고 들었는데?”

“모두 복귀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배와 두 분을 찾기 위해 나온 거예요.”

“…혼자서 그걸 다 했어?”

레토나는 아무리 많은 사람을 태운다고 하더라도 대여섯 명이 한계다.

기사들이 착용한 무장들의 무게까지 고려한다면 그것도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르는 수준.

수십 명의 기사들을 모두 안전하게 복귀시키기 위해 이 숲을 몇 번이고 왕복한 것도 모자라 이 새벽까지 세 사람을 찾아다닌 차한성의 집념은 대단하다는 말로는 모두 표현할 수 없을 정도.

거기에 체력을 비롯해 레토나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마력의 소모도 만만치 않을 터.

실제로 운전석에서 핸들을 쥐고 있는 차한성의 얼굴은 잠들기 전의 에린만큼이나 초췌해져 있어 그것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 상태다.

‘살면서 졸음운전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전생의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터인데,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곳에는 면허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아 취소당할 리스크 자체가 없다는 점이랄까.

차한성은 백미러를 통해 에이라의 상태를 관찰했다.

“선배. 몸은 괜찮으세요? 다치신 데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네 얼굴부터 보고 말해.”

누가 봐도 지금 당장 쉬어야 할 사람은 피곤함으로 찌들어있는 차한성 쪽이다.

“쯧.”

아니에스는 운전석에 앉아있는 차한성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자신의 여신께 기도를 올렸다.

[여신님. 힐 좀.]

[베스타의 축복]

[하이네스 힐(Highness Heal)]

“어…?”

성의 없는 기도로 발현된 기적의 빛 순식간에 전신을 감싸며 그의 몸에 누적된 피로를 모조리 씻어냈다.

조금이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바로 잠이 들어버릴 것만 같았던 자신의 컨디션이 순식간에 회복되는 것을 느낀 차한성은 최고위 신성 마법의 주문을 처음 겪어보았기에 작게 당황했다.

순간적으로 그 기적을 만들어낸 옆 조수석에 앉은 아니에스에게로 시선을 옮겼지만, 아니에스는 인상을 찡그리며 차한성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 앞에 안 봐? 뒤지고 싶어? 나 또 뒷목 잡게 만들면 넌 그때 진짜 알아서 해라.”

“죄, 죄송합니다!”

차한성은 당황을 추스르며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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