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8화 〉 538. 언데드 마수(1)
* * *
크르륵!
먹이의 냄새를 맡은 무리가 날렵한 발걸음으로 땅을 차고 서서히 접근해오고 있다.
그것은 바람을 가르고 점점 가까워지는 마수의 숨소리와 땅의 울림.
일반인은 느끼는 것조차 어려운 그 미세한 떨림은 에린의 감각에 정확히 감지되며 전신을 긴장시키게 만든다.
이윽고 위치를 특정한 방향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어 소리쳤다.
“아니에스님!”
“흥.”
아니에스는 곧바로 코웃음을 치며 에린이 특정한 방향을 주시했다.
수풀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마수는 이족과 사족 보행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날렵한 움직임이 특징인 워울프.
높은 민첩성을 실은 워울프의 다리가 아니에스의 위로 크게 도약하여 그녀의 어깨를 물어뜯기 위해 입을 쩍 벌렸다.
“어딜. 입 닫아.”
콱!
주먹을 휘둘러 워울프의 턱을 위로 쳐올리자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입이 다물어지고, 턱을 가격당한 충격으로 인해 멈칫한 마수의 앞발을 낚아채어 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크, 르릇!
비명을 지르는 워울프의 몸통을 발로 짓눌러 도망치지 못하도록 고정하고 낚아챈 앞발을 잡아당겨 거칠게 뜯어낸다.
크르륵!
순식간에 한쪽 팔을 잃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마수의 울음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졌지만.
아니에스는 그것을 신경 쓸 새도 없다는 듯 머리를 거칠게 짓밟아 두개골을 으스러뜨려 끝을 냈다.
한 마리가 아닌 다수의 마수가 공격을 해오는 이 상황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여 마수들의 숫자를 처리하기 위한 행동과 판단이었을 뿐, 머리를 발로 밟아 터뜨리는 그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기엔 아니에스는 이미 전투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크르르!
또 한 마리의 워울프가 아니에스에게 달려들어 공격을 시도했고, 아니에스는 바닥에 패대기쳐 짓밟아버린 워울프의 머리를 부수자마자 곧바로 또 한 마리 마수의 공격에 대응했다.
몸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마수의 입속에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크륵!
오히려 먹잇감을 스스로 내어주는 멍청한 인간이라고 속으로 비웃으며, 워울프는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팔을 아예 뜯어 버릴 기세로 턱에 힘을 실었다.
크…륵?
하지만 이윽고 당황한 듯 워울프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턱에 힘을 주어 날카로운 자신의 이빨을 팔뚝에 관통시키려 해도, 이빨은 들어가지 않았다.
작고 가녀린 인간 여성의 팔이라고는 생각해볼 수 없는, 마치 단단한 강철을 씹는듯한 느낌을 겪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왜? 못 씹겠냐?”
마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팔을 물어뜯으려 턱에 힘을 주고 있는 자신을 비웃고 업신여기고 있다는 것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좀 맞자.”
오히려 물려있는 팔을 위아래로 크게 휘두르자 워울프의 몸체가 휘청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크, 크륵!
위기를 직감한 워울프는 곧바로 자신이 물고 있던 팔을 놓고 아니에스에게서 거리를 벌리기 위해 떨어지려 했지만, 이미 그녀의 반대쪽 손바닥은 워울프의 뺨에 근접한 상태.
짜악!
있는 힘껏 따귀를 맞은 워울프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가며 바닥에 풀썩 쓰러졌고, 무방비 상태의 몸통 부분을 발로 걷어차며 내장과 뼈를 분쇄시켰다.
‘이 정도면 강신은 필요없으려나.’
아니에스의 강신(??)은 극강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그녀만의 일격필살에 가까운 비장의 수였지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만큼 막대한 신성이 필요하며 제한시간과 횟수가 제약으로 존재한다.
그런 만큼 강신을 무작정 남발하여 사용할 수 없는 아니에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워울프들을 차례로 여유롭게 처리하면서 흘끗 에린과 에이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에이라 언니!”
“알았어!”
에이라는 에린의 호명을 듣자마자 곧바로 그녀가 가리킨 방향을 주시하며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어 들었다.
기사들에게 지급되는 장검뿐 만이 아니라,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예비용으로 지급되는 작은 단검은 주 무기인 장검을 잃었을 때 부족한 공격력을 조금이라도 메꾸기 위한 도구.
크르륵!
에이라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워울프의 입을 건틀렛을 착용한 주먹으로 쳐내고 동시에 자신의 얼굴을 향해 할퀴려 드는 마수의 팔뚝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크릇!
하지만 워울프는 높은 민첩성으로 날렵한 움직임이 특징이지만 그렇다고 물리적인 힘이 완전히 약한 것은 아니다.
오우거만큼은 아니지만, 엄연히 중위계의 마수 등급에 속하는 만큼 일반적인 인간 남성 이상의 근력을 보유하여 제대로 타격을 입기만 해도 뼈 하나는 간단히 부러뜨릴 수 있는 수준.
무엇보다 정말 위험한 것은 높은 민첩성과 준수한 근력을 활용하여 날렵하게 휘둘러오는 날카로운 발톱이다.
자신의 팔에 단검을 꽂아 넣은 눈앞의 인간 여성을 흉흉한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그녀의 얼굴을 손톱으로 찢어발기기 위해 반대쪽 손을 휘둘렀다.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에린은 에이라와 워울프의 사이에 난입했다.
마수의 품에 파고들어 몸통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주현성 극원류]
[호접발경(????)]
퍼엉!
손바닥의 정중앙 한점에 모으고 응축시킨 마력을 터뜨리면서 발생한 강력한 충격파가 워울프의 몸통을 중심으로 전체에 퍼지며 뒤로 튕겨나갔다.
“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뿐.
막대한 타격을 주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공격력으로 끝을 내지는 못한 이 상황에 작게 혀를 찼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살상용으로 대인전을 전제로 내부에 타격을 입히는 기술일 뿐, 상대를 빈사에 가까운 데미지를 입힐 수는 있어도 죽음에 이르게는 할 수 없다.
“고마워. 에린!”
에이라는 적절한 타이밍에 백업해준 에린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계속해서 달려드는 워울프들의 공격을 대처해나가는 두 사람은 아니에스처럼 극강의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만큼 마수들의 공격을 신중히 피하며 반격의 틈을 찔러넣었다.
“좋아. 다치면 치료해줄테니 죽지만 마라?”
어느샌가 자신 쪽의 마수들을 모조리 처리하고 두 사람에게로 가세한 아니에스가 전방에 서며 워울프들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내었다.
신성력으로 보호를 받는 아니에스에게 들어오는 데미지는 거의 제로에 가까워, 살점은커녕 새하얀 사제복조차도 손상을 입히지 못한다.
오히려 옷에 튄 마수들의 피조차도 모조리 정화되어 청결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규격 외의 존재처럼 보일 정도였다.
[호족요술(????)]
[여우불]
에린의 손바닥 위에 정갈한 마력으로 만들어진 청염은 평소에 사용하는 여우불보다도 더욱 작다.
자칫 잘못하면, 이 숲 전체를 불태워버릴 수도 있는 화력을 가진 여우불을 오직 자신과 에이라에게 근접해있는 워울프들만을 불태우기 위해 사이즈를 조절한 에린은 인상을 찡그렸다.
여우불의 크기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쉬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이냐. 이 미숙한 녀석.
‘도대체 뭐가 쉽다는 거야. 미호 이 바보.’
차라리 원하는 만큼 마력을 사용하여 거대한 여우불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
소모되는 마력 자체는 더욱 적지만, 그만큼 컨트롤에 집중하여 많은 정신력의 소모와 함께 쌓이는 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수준.
에린은 검지 위에 만들어진 구슬처럼 작은 크기의 여우불을 에이라와 대치 중인 워울프의 무리에 던졌다.
신수의 마력이 응축되어 이글거리는 작은 구슬은 터지자마자 허공에 생겨난 청염이 워울프 무리에 옮겨붙어 모조리 불태우기 시작한다.
“두 분! 이제 빠질게요!”
공터에서 꺼지지 않는 청염에 전신을 불태워져 울부짖고 있는 워울프 무리들을 뒤로하고, 에린을 포함한 세 사람은 곧바로 이동했다.
신수의 감각과 감지를 통해 주변의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안전한 장소까지 이동하고 나서야, 에린은 경계를 풀며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후우….”
맥이 탁 풀리 듯 긴장이 풀려버린 에린과 에이라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느슨해진 몸에 숨을 고른 에린은 이내 에이라를 보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아니에스의 기도로 누적된 데미지와 피로에서 회복된 탓인지 그럭저럭 괜찮아 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라 언니. 이거 정말로….”
“응. 아무래도…. 이 추측이 맞는 것 같아.”
소대로 마수들을 토벌할 때보다도, 만나는 마수들의 빈도도, 등급도 현저히 높다.
깊숙한 곳에 서식하는 상위계의 마수들이 점점 국경 쪽으로 접근해오고 있다는 가설이 점점 더 신빙성을 갖춰가고 있었다.
만약 그 원흉이 현재 렌디르 왕국에서 생겨난 언데드들이 숲으로 흘러들어와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어 마수들이 도망치듯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이라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네….”
에이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에스님은 괜찮으세요?”
“나야 뭐.”
아니에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팔팔한 자신의 상태를 과시했다.
영웅이자 최고의 사제인 그녀가 함께 있다는 것이 지금 얼마나 든든한지 에린은 내심 속으로 안도했다.
“네. 그럼 다시 움직이죠.”
◆ ◆ ◆
청염으로 인해 완전히 익어버린 오우거의 시체가 처량하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완전히 머리가 으깨져 버리고, 몸 전체가 불태워져 시꺼멓게 변해버린 다른 오우거들의 시체와는 달리, 그나마 팔다리와 머리가 온전히 붙어있는 오우거의 시체는 단 하나뿐.
바닥을 타고 기어오는 거무스름한 무언가가 다가와 마수의 시체를 감쌌다.
그것은 연기 또는 액체처럼 보이지만, 질량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오직 ‘기분 나쁨’을 표현한 무형의 기운 그 자체.
‘죽음’이라는 것을 그대로 가져다 형상화한 것만 같은 ‘사기(死?)’다.
언데드에게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기운은 밟고 있는 대지와 공기 자체를 오염시키고 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생기를 빨아들여 그 영역을 점점 확장시켜나간다.
처참한 형태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한 마리 오우거의 시체 안으로 스며 들어간 사기는 이미 죽음을 맞이한 시체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쿵!
조금씩 꿈틀거리며 미동을 보인 오우거 하나가 두 발을 딛고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크…르.
‘어째서?’라는 반응을 보이며 당황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은 분명히 자신보다 훨씬 작은 인간 소녀에게 압도당하여 공격 한번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고 일방적인 구타로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인간 소녀의 무시무시한 타격의 흔적은 아직도 고스란히 육체에 남아 있는 상태.
기형적으로 꺾인 팔과 찌그러진 살집.
하지만 기형적이게도 느껴지는 아픔 따위는 없다.
아픔뿐 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감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죽어버린 오우거의 육체를 지배하는 것은 살아있는 살점을 뜯어먹고 싶다는 극심한 공복감과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인간 소녀에 대한 복수심뿐이었다.
쿵!
오우거는 천천히 본능이 이끄는 대로 먹잇감이자 복수의 대상인 존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자신의 육중한 거구를 움직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