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37화 (520/730)

〈 537화 〉 537. 실종 소대 수색(6)

* * *

“언니! 괜찮으세요!?”

황급히 에이라에게로 달려온 에린은 곧바로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에이라의 몸 상태를 살폈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못한 갑옷은 많이 손상된 상태로 그것을 제외하면 외상 자체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에린이 얼굴을 굳히게 만든 것은 복부를 감싸며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에이라의 모습이다.

“언니? 복부를 다쳤어요? 많이 아파요?”

“아무래도…늑골이 나간 것 같아….”

“아…. 잠시만요. 바로 응급처치를….”

“그럴 필요 없어.”

어느샌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에린이 뒤를 돌아보았다.

만신창이로 두들겨 패어 잘 다져진 오우거의 몸뚱이를 걷어차며 치워버리고, 등을 돌려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는 아니에스의 모습을 본 에린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와….”

거구의 오우거가 처참하게 넝마가 되어버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광경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물리력에 혀를 내둘렀다.

막대한 신성을 대가로 여신이 내려주는 강신을 사용하는 아니에스는 아무리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몇 분 정도가 한계라고 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행사할 수 있는 공격력과 방어력은 여섯 명의 영웅들 중에서 최상위에 속할지도 모른다.

­에린양. 사실 저희 중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분은 아니에스 누님입니다.

에린은 언젠가 영웅 중에서 누가 가장 강하냐는 호기심이 가득 담겨 있던 자신의 질문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해주었던 제라드의 말이 떠올랐다.

신성의 축복으로 지원하는 회복과 보조는 단연 사제들 중에서 최강.

거기에 더불어 조건만 갖추어지고 일정 시간 동안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물리력을 행사하는 아니에스의 능력은 확실히 비합리적이다.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많은 노력을 해온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성녀로서 타고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저 신성력은 확실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엘레노아의 치천사의 날개와는 전혀 다른 부분으로, 신성력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나와봐. 상처 좀 볼게.”

“네.”

에린은 사제로서 이쪽으로 전문 분야인 아니에스에게 순순히 에이라를 양보했다.

에이라의 몸을 위아래로 흘끗 보며 상태를 살핀 아니에스는 곧바로 기도를 올렸다.

[여신님. 힐 좀.]

[베스타의 축복]

[하이네스 힐(Highness Heal)]

경건한 마음을 담아 베스타 여신에게 기적을 내려줄 것을 기도하는 엘레노아와는 달리, 경건이라고는 일도 없는 굉장히 무성의한 기도.

하지만 그 기도로 만들어진 기적은 너무나 따스하고 밝은 빛을 발산하여 에이라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한다.

“어…?”

격렬한 전투 이후 정신을 잃어버린 탓에 미처 응급처치하지 못하고 방치해버려 더욱 심각해진 내상이 깔끔하게 낫고, 심지어 누적되어 있던 피로들까지 눈이 녹듯 싹 사라져버리는 이 기적에 에이라는 물론 에린까지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에이라의 경우에는 순식간에 자신의 컨디션이 최상으로 회복되는 이 기적의 놀라움에 당황을 하였다면, 에린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와…. 저런 대충하는 기도로…?”

에린은 자신이 직접 신을 받들어 모시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신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것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남편이 반신(半?)이라는 존재이며, 그를 반신으로 만들어 수호하고 있는 여신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공경해야 하는 존재에게 올리는 기도치고는 너무나도 성의가 없어, 마치 친한 친구에게 별것도 아닌 부탁을 하려는 모양새처럼 보여 어처구니가 없었다.

심지어 엘레노아가 보여주는 신성의 기도와는 확연한 차이가 보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좀 어때? 나아졌어?”

“나아진 정도가 아니라…. 평소보다 더 좋은 상태로 회복시켜주셨는데요…?”

“그럼 됐지. 어서 일어서.”

“아, 네.”

에이라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저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언니…. 죄송해요. 언니 검 못쓰게 된 것 같은데….”

에린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오우거의 목덜미에 박혀있는 에이라의 장검을 가리켰다.

여우불의 마력을 담아내면서 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검날의 내부부터 부서진 장검은 더는 무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에이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그래도 마수를 처치했으니까. 그보다…에린이야말로 괜찮아? 에린의 검도….”

목을 미처 완전히 절단하지 못하고 오우거의 맨손에 막혔던 에린의 레이피어는 이미 칼날이 부러져 바닥에 처참히 버려져 있는 상태.

“저야 뭐…. 워낙에 자주 부숴 먹은 지라….”

신수의 강대한 마력을 온전히 담아내면서 내구성을 유지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비싸고 강력한 무기를 구매하여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수명을 다하여 부러져버렸다.

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또 한 자루의 검을 응시했다.

‘하다못해 이걸 뽑을 수만 있게 되면…. 이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텐데.’

은현이 선물해준 레반테인이라는 은색의 세검은 아직도 검집에 단단히 박혀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에린은 자신의 몸 안에 있었던 구미호의 도움으로 레반테인을 뽑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신수의 힘을 모두 수용하면서 온전한 상태를 유지했던 레반테인의 성능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자격을 갖추게 되면 미숙한 네 녀석이라도 혼자서 검을 뽑을 수 있게 될 거다.

당시 구미호가 했던 충고의 의미는 아직도 자신이 이 검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신수의 힘을 완벽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뜻.

그것이 몹시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다.

“괜찮아?”

작게 한숨을 쉬며 아쉬운 표정을 보이는 에린을 보고 에이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자, 그럼 이제 어떡하지? 이제 돌아가면 되는 건가?”

“늦었지만, 저를 구하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사과는 됐어. 감사는 이 녀석한테나 해.”

아니에스는 담담하게 손가락을 가리켜 에이라를 구한 공로를 에린에게로 넘겼다.

“예? 저, 저요!? 하지만 아니에스님이 더 강하신데….”

“너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단기간에 저 녀석을 찾지도 못했어.”

예민한 감각을 이용하여 에이라의 냄새를 추적하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레토나를 타고 빠른 속도로 에이라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에린의 능력과 판단에서 이루어진 결과다.

그저 오우거를 토벌한 것이 아니라, 에이라에게 무슨 변고가 생기기 전에 그녀를 찾아내고, 지금의 상황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에린의 역할이 가장 컸다.

“후후, 그러시다네? 고마워. 에린.”

에이라는 작게 미소지으며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엉망이 된 건틀렛의 감촉은 몹시 딱딱하고 차갑지만, 에이라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몹시 따뜻하여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네, 네….”

“흠, 뭐 이제 몸 상태도 무사히 회복되었으니 바로 돌아가자. 아까 그 레토나라는 거. 다시 꺼낼 수 있어?”

“어…. 아니요? 이미 소환된 상태라서 그건 불가능해요.”

“그 바이크라는 건 2인승밖에 안 될 것 같으니 불편할 것 같고…. 그냥 걸어가야 하나?”

한 명을 이곳에 대기시키고 에린이 한 명을 태우고 복귀한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도 생각을 해보았지만, 거리도 거리이며 또 어떤 마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한 곳에서 떨어져 단독행동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아무리 강한 아니에스나 에린이라도, 대기하는 쪽이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픽업해야 하는 쪽이나 부담이 큰 것은 마찬가지.

심지어 에린이나 에이라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무기조차도 없다.

“셋이도 함께 이동해요. 그게 안전할 것 같아요.”

에린의 경우에는 구미호의 요술을 이용하여 싸울 수도 있기는 하고, 체술을 사용해도 웬만한 중하위계의 마수들은 간단히 압도할 수 있다.

게다가 아니에스도 있으니 오우거와 같은 상위계의 마수들만 만나지 않는다면, 아니에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다행히도 식량은 충분히 챙겨오긴 했는데….”

에린은 머릿속으로 현재 위치에서 모그라프 령까지의 거리를 대강이나마 가늠했다.

사나흘 정도를 도보로 쉬지 않고 걸으면서 노숙으로 지낸다면, 무사히 복귀할 수 있을 터.

“응. 에린의 말에 따를게.”

“그래. 그러든지.”

아니에스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별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믿음직스러운 여동생을 보는 에이라의 눈에는 신뢰가 깔려 있었다.

금위계의 모험가로서, 솔로로 활동해온 에린의 경험과 판단을 믿기 때문에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쪽을 택했다.

“한 가지 걱정인 거는…. 차한성님인데….”

“한성이가…? 왜?”

에이라는 여기서 어째서 차한성의 이름이 나오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여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사실 저희가 언니를 찾으러 온 게 차한성님 때문이거든요.”

에린은 에이라에게 자신과 모그라프령에 도착을 하자마자 신전에서 차한성을 만났고 그를 통해서 에이라와 그녀의 소대가 연락이 두절 되었다는 사실을 접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에이라를 계속 걱정하며 어떻게든 그녀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편성해서 보내야 한다고 강력히 의견을 피력했다는 것까지.

“한성이가….”

사정을 들은 에이라는 얼굴을 붉히고는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은 굉장히 고마웠지만, 그 때문에 기사단원들에게 민폐를 끼쳤던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언니. 그 사람이랑 무슨 사이세요?”

“어, 어…?”

에린의 질문에 당황한 에이라는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에린은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는 에이라의 얼굴을 놓치지 않았다.

“예전에 언니도 그 사람을 걱정했던 적이 있었는데…. 설마 서로…?”

“아, 아니야. 그런 거!”

정곡을 찔린 듯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 에이라의 태도는 확실하다.

“…언니. 제가 남자는 잘 만나야 한다고 했잖아요.”

“풉….”

아니에스는 본인은 아내가 넷이나 있는 남자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 누군가에게 저런 충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어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뭐 본인이 행복하다는데 그거면 됐겠지.’

일리아나나, 엘레노아나, 지금의 생활에 충실하고 서로를 위하며 은현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친구이자 방관자의 입장으로서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아니에스는 현재 머릿속으로 생겨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흐음….”

“응?”

에린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에 난입한 아니에스의 중얼거림을 들은 에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아무래도 무언가가 마음에 걸린 듯 보였다.

“아니에스님? 왜 그러세요?”

“아니. 그냥. 신경 쓰이는 점이 있어서.”

“신경 쓰이는 점이요?”

“오우거가 왜 세 마리나 있었을까.”

오우거는 본래 무리를 지어 다니는 성향을 가진 마수가 아니다.

강인하고 거구에 가까운 체격을 가지고 있는 오우거들은 그저 단일 개체만으로도 위협적인 상위 마수.

어째서 그런 오우거가 한 장소에 세 마리씩이나 있었던 것일까.

모험가로서의 경력이 제법 있다고는 해도, 오우거에 대한 정보와 경험은 아직 없는 에린은 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아니에스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추측은 에이라 쪽에서 먼저 나왔다.

“오우거가 아니라…. 강력한 마수들이…무리를 지어 국경 쪽으로 접근 해오고 있다…. 라는 건 어떨까요?”

“…….”

“…….”

에린과 아니에스는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리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것과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떠올리기 싫은 그 가능성을 떠올려버렸다.

이윽고 에이라와도 시선을 교환한 세 사람은 서로가 공통된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린이다.

“두 분 모두…. 전에 있었던 마수의 스탬피드 현상을 떠올리셨나요?”

“…응.”

“그런데? 아니. 하지만…. 그때와는 또 달라.”

대규모의 마수들이 단체로 출몰하여 진격해오는 스탬피드라면 겨우 이 정도 규모일 리가 없다.

던전의 폭주로 대량의 마수들이 소환되는 스탬피드가 아니라, 그냥 광활한 이 숲에 존재하는 야생의 마수들이 일제히 페르니아스 왕국의 국경인 모그라프령으로 몰려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허무맹랑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마수들에게는 지성이 존재하지 않지만, 본능에 충실한 고유의 습성이 존재한다.

이 숲의 끝에는 이미 멸망해버려 언데드들이 들끓는 렌디르 왕국이 위치해 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규모를 불려 나가는 언데드들이 숲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은 모그라프 변경에도 이미 보고가 된 사실.

만약 그 언데드들에 의해 생존 본능을 자극당한 마수들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이라면.

모그라프 변경이 막아내야만 하는 것은 단순히 언데드들 뿐만이 아니다.

에이라는 얼굴을 굳히고 급하게 에린에게 말을 걸었다.

“서두르자. 빨리 이 가능성을 기사단과 변경백님께 알려드려야 해.”

“아, 알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에린은 빠른 속도로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는 마수들의 존재들을 감지해냈다.

먹잇감의 냄새를 맡고 포식하기 위해 사족보행으로 날렵하게 달려오는 수십 마리의 마수들의 존재를 느껴 에린의 여우귀와 아홉 꼬리가 털을 바짝 세우며 긴장했다.

“아니에스님! 에이라 언니! 와요!”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