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5화 〉 535. 실종 소대 수색(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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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내려앉은 어두운 숲속을 가로지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에린이었다.
아니에스를 등에 업고 달리고 있음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거침없이 달리는 에린의 속도는 확실히 빠르다.
거대한 나무들을 비롯해 다양한 장애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울창한 숲속을 감속하기는커녕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더더욱 빠르게 질주한다.
후각을 통해 희미하게 맡는 에이라의 냄새를 추적하며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그녀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몹시 깔끔했다.
‘확실히 잘 가르쳤네.’
아니에스는 구태여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어 칭찬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에린의 이 모습에 감탄했다.
내리는 판단과 결단력, 그리고 잘 단련된 신체 능력이 누구에 의해서 완성된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 더더욱 빛이 난다.
은현이라는 좋은 스승을 곁에 두었던 것도 그렇지만, 은현이 제시하는 방향과 가르침을 수용하고 따라가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에스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뼈와 살을 깎을 기세로 죽도록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고 기본적인 베이스로 삼고 있는 은현의 가르침은 어지간한 정신머리로는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자신을 업고 달리고 있는 에린이라는 이 여성은 그것을 해내고 모험가로서, 그리고 여자로서도 아주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에린 양은 아주 재미있는 분이죠.
넉살 좋게 웃음을 지으며 에린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하였던 제라드의 말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확실히 은현이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은 확고했다.
본인처럼 성장과 성취를 이루어내고자 끊임없는 노력을 갈구하는 사람.
자신이나 리오드, 제라드가 그러했다.
“아니에스님.”
“…왜.”
숨 한 번을 흐트러지지 않고 차분하게 숲속을 달려나가던 에린이 바람을 가르는 고요한 적막을 깨고 아니에스에게 물었다.
“오우거. 만나 보신 적 있으세요?”
“있지.”
아니에스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즉답을 내놓았다.
은현이나 다른 이들과 함께 팀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전투를 경험해보았던 20년 전에는 당연히 오우거와 교전을 했던 경험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넌 없어?”
“…네. 이야기로만 들었지. 싸워본 적은 없어요.”
단기간에 성장하여 금위계 모험가라는 명예를 얻기는 했지만, 상위 등급에 속하는 마수와 조우하는 것은 모험가들 사이에서도 극히 드문 케이스다.
개체 수가 극히 드문 상위의 희소종이기도 하며, 오우거와 얼굴을 마주한 모험가들은 살아남지 못하고 먹이로 전락하는 참담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강한가요?”
“강하지. 힘이 무지막지한 건 물론이고, 그 질긴 가죽을 찢고 살점을 파고드는 건 어지간한 놈들한테는 턱도 없는 수준이니까.”
모험가들 사이에서 나도는 오우거에 대한 이명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다른 마수들보다 상위종에 위치한 압도적인 포식자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인간의 몸을 찢어발기고 살점과 피, 내장들을 먹어치우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다.
아직 실제로 직접 보지 못한 오우거의 존재에 에린은 작게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에스님도 이기지 못하나요?”
“하.”
아니에스는 에린의 어깨 위에서 작게 코웃음 쳤다.
“당연히 이기지.”
“와…. 그러면….”
“근데 내가 오우거를 이길 수 있는 시간은 2분이 최대야.”
“…네?”
에린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에 숲속을 질주하던 다리를 멈칫했다.
“뭐해. 계속 달려.”
“…네.”
멈칫한 다리를 다시 움직여 숲속을 달리기 시작하고, 아니에스는 말했다.
“진짜 짜증나지만, 맨손으로는 못 이겨.”
아무리 막대한 신성의 축복을 받아 인간 이상의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오우거와 일 대 일의 전투에서는 솔직히 전력의 차이를 설명했다.
“강신(??)을 쓰면 이길 수 있지.”
“아.”
에린은 깨달았다는 듯 작게 탄식했다.
막대한 신성의 축복을 받은 사람만이 신의 일부를 이 하계에 강림시키는 특별한 능력.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지, 그 효능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는 에린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대륙의 사제들 중에서도 단 두 명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강신’을 사용하는 이가 바로 은현의 남편인 엘레노아.
곧바로 이전 흡혈귀 소탕 작전에서 엘레노아가 강신을 행하였을 당시, 하늘 위에 떠 오른 그녀의 커다란 날개가 어떠한 기적을 불러일으켰었는지를 떠올렸다.
“그러면 아니에스님도 커다란 날개가 생기나요?”
“…뭐?”
느닷없이 무슨 소리냐는 듯 얼이 빠진 표정을 지으며 묻는 아니에스의 말에 에린이 달리면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 엘레노아님은 그….”
“아아. 걔랑은 달라. 너는 모든 모험가가 마력을 사용한다고 다 같은 기술이나 같은 마법을 쓰냐?”
“…그렇진 않죠.”
“신성력을 쓰는 사제들도 마찬가지야.”
신성력을 가진 모든 이들이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기적을 행사한다고 해서, 모든 사제가 누군가를 치유하고 보조하는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신성력을 기반으로 전방에 나서서 적을 섬멸하는 성기사들의 존재가 그러하며 아니에스가 대표적으로 그런 예.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막대한 신성의 축복을 기반으로 선보이는 보조 마법과 결계다.
그리고 원하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육체의 성장이 멈추는 패널티를 받게 되면서 갖추게된 절대적인 방어력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우수했으며 우월했지만 부족했던 것은 단 하나.
전선에 나서서 적을 섬멸하여 위협을 제거하는 성기사들과 달리, 그녀에게는 적을 섬멸할 수 있는 극강의 공격이라는 것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니에스에게는 싸움이라는 것에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뒤에서 다른 녀석들을 보조하는 거로는 성이 차지 않았으니까.”
팀으로 활동할 당시엔 전위는 압도적으로 높은 방어력을 가진 레이넌이, 그리고 그 뒤는 우수한 밸런스를 갖춘 은현과 리오드가 전위와 후위를 커버했으며, 제라드는 적의 교란, 일리아나와 앨리스가 높은 화력으로 전방의 적들을 섬멸했던 밸런스가 잘 잡힌 팀이었다.
아니에스는 그 안에서 팀의 회복과 보조를 지원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으나,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팀원과 전방에서 싸우기를 원했다.
그것은 그녀의 고집스러운 행동이기도 했지만, 팀원 중 누구도 그녀의 그 의사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녀석이 나에게 전선에서 싸울 방법을 가르쳤어.”
“…그 녀석이요?”
“니 남편.”
갑작스레 에린의 등에 업혀 있던 아니에스가 에린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양손에 힘을 실어 뼈를 으스러뜨릴 기세로 꽉 쥐었다.
“아, 아파요! 아파요! 아니에스님!”
“아, 미안. 그놈한테 훈련을 받았던 걸 생각하니까 갑자기 짜증이 솟구쳐서.”
“…….”
그렇다고 그 감정의 화풀이를 자신에게 푸는 불합리함에, 자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녀의 이상한 훈련 일부를 직접 본 에린으로서는 아니에스가 지금까지 성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어서 제대로 불만을 표하지도 못했다.
“아무튼. 엘레노아와 내가 사용하는 ‘강신(??)’은 어마어마한 신성을 바치면서 간절한 염원을 담은 기적을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기도를 통해서 만들어진 기적이 같은 거라고 볼 수는 없어.”
아니에스가 강신을 통해 베스타 여신에게 바란 것은 적을 섬멸할 수 있는 극강의 공력력이다.
그 결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그녀를 수호하며 압도적인 물리력을 행사하는 ‘황금의 사자’.
반면 엘레노아가 강신을 하면서 베스타 여신에게 바랐던 것은 ‘많은 사람의 구원’이다.
치명상에 가까운 데미지를 입고 목숨이라는 촛불이 꺼지기 직전의 위태위태한 상황까지 갔었던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무사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원했던 엘레노아의 마음.
그 마음을 기특하게 여긴 베스타 여신은 천사의 상징인 ‘치천사의 날개’를 엘레노아에게 만들어주었다.
같은 사제이면서 서로 바랬던 염원이 다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 선보일 수 있는 기적 또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나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치천사의 날개’의 효과를 직접 체험해보았던 아르티아 기사단과 메이거스 마법사단의 단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입소문이 돌아 엘레노아의 존재가 성녀로 조금씩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정말로 성녀의 표본이지.”
그 모습이야말로 사제로서, 성녀로서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까.
성녀라는 거추장스러운 칭호를 귀찮게 여겼던 아니에스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아니에스님도 대단하시잖아요.”
엘레노아는 누군가를 구원하고자 하는 염원을 기반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했지만, 아니에스가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아니에스가 대단하다는 것은 아니다.
은현이나 엘레노아, 그리고 제라드에게도 아니에스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들었던 만큼 에린은 아니에스가 엘레노아만큼 대단하지 않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하, 이 꼬마 녀석이?”
피식 웃은 아니에스는 에린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쓰다듬었다.
전혀 풀이 죽은 것도 아닌데, 위로랍시고 해주는 에린의 말은 기분이 그리 썩 나쁘지는 않았다.
“꼬, 꼬마….”
자신보다 훨씬 어린 소녀의 외형을 가진 아니에스에게 귀엽다고 꼬마 취급을 받는 것이 뭔가 복잡한 심경을 품었지만, 이래 봬도 그녀의 내면은 일리아나와 비슷한 동년배의 여성.
하지만 에린을 애 취급하는 것은 은현이나 일리아나도 마찬가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에이라의 냄새를 추적하여 숲속을 달리고 있을 때, 마침내 에린의 후각에 에이라의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찾았다.”
애 취급에 복잡한 심경을 느끼고 있던 에린이 두 눈이 번뜩이고, 숲속을 달리고 있던 다리를 더욱 가속했다.
그리고 에린의 감지에 들어오는 기척은 한 사람과 그를 둘러싼 세 마리의 거대한 마수들.
“언니이이이이!”
“나 먼저 간다.”
에이라가 있는 방향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치고, 그 소리에 반응하여 마수들이 행동을 멈칫한 아주 짧은 순간.
에린의 등에 업혀 있던 아니에스가 고정을 풀고 에린의 어깨를 밟으며 위로 도약했다.
“아…!”
에린은 자신을 발판 삼아 위로 점프한 것은 그렇다 쳐도 갑작스레 행동을 일으킨 그녀가 무엇을 할지 알 수가 없어 당황했다.
소리에 집중하여 에린 쪽에만 마수들이 집중한 틈에, 무시무시한 각력으로 하늘을 향해 도약한 아니에스는 자신의 여신에 대한 기도문을 올렸다.
[나의 신앙을 대가로, 나의 마음을 대가로, 나의 믿음을 대가로, 당신께 간절히 청하옵니다.]
한치의 더러움도 없는 깨끗한 맑은 신성이 담겨 있는 청아한 목소리는 하늘 위에서 울려 퍼져 숲 아래를 장악한다.
아담한 아니에스의 몸이 하늘 위에 체공하는 아주 짧은 순간, 경건한 기도문과 함께 아니에스의 전신을 황금의 빛으로 감쌌다.
[나의, 당신의, 우리의 적을 물리치고, 모두를 지킬 수 있는 축복을.]
그것은 점점 형상을 갖춰나갔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우락부락한 건틀렛을 착용한 황금의 사자.
[나의 여신께 간청합니다.]
[베스타의 축복]
[강신(??)]
무형의 기운인 신성력을 막대한 양으로 퍼부으며 하계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황금 사자는 전투 능력이 전혀 없는 아니에스에게 있어 최강의 무기이다.
무시무시한 질량을 가지게 된 아니에스와 황금사자는 당연히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낙하했다.
속도는 점점 가속하고 그냥 맞아도 위협적인 신성의 주먹은 마침내 최상위의 마수조차도 간단히 찢어발길 수준의 위력을 형성하기 직전.
마침내 에이라를 둘러싸고 있던 오우거 하나의 머리에 낙하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아앙!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아니에스의 황금 사자 주먹과 충돌한 오우거의 머리가 몸체에서 뜯겨 나가며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마수의 더러운 피가 사제복에 튀었지만, 이미 신성의 축복을 받는 그녀의 사제복은 마수의 피를 깨끗하게 정화했다.
크, 크륵!?
단 한 순간에 파괴되어 넝마가 된 동족의 시신을 본 오우거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최상위의 포식자에 위치해 있는 그들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스멀스멀 가슴 속에 차올랐지만, 지성이 부족한 그들은 그것을 본능으로 억눌러 투쟁심을 더욱 키웠다.
우워어어어!
두 마리 오우거의 포효소리로 숲 전체가 떨리기 시작하여 자신들을 순간 공포심에 떨게 했던 어린 소녀의 외관을 한 여성을 노려보았다.
지성이 없더라도, 본능이 외치고 있다.
눈앞의 저 작은 인간은 자신들의 먹이가 아니라고.
무시무시한 오우거의 포효를 듣고도, 아니에스는 오히려 피식 웃어 보여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아, 아니에스님…?”
“그래. 오랜만이네. 몸 상태는 괜찮고?”
에린의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하늘 위에서 오우거의 머리 하나를 분쇄하며 등장한 아니에스의 모습에, 에이라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자신의 몸 상태를 걱정해주는 아니에스의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였을 정도.
“뭐, 목숨은 붙어있네. 그거면 됐지. 자, 그럼….”
육안으로 에이라의 눈을 쓱 훑어본 아니에스는 다시 전방의 오우거들을 주시했다.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할 귀찮은 마수들을 응시하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빨 꽉 깨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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