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3화 〉 533. 실종 소대 수색(2)
* * *
카인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상 기사단은커녕 그 어디의 소속도 아니긴 하지만, 아르미타스 공작령 쪽의 사람인 에린 개인에게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맡기는 것이 정말로 옳은 일일까.
하지만 이 수색 임무를 자신이 맡고 싶다는 에린의 말은 기사단에 부탁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반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자신의 상관인 리오드의 친구, 은현의 모습이 연상되어 이러나저러나 그의 제자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
에린이 커피를 모두 마시고 테이블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와중에도 카인은 에린의 제안을 거부하지 못하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어떠한 것을 강제할 수 있는 명분도, 권리도 없으며 도리어 이 일을 맡아주겠다는 에린의 호의는 카인으로서는 몹시 고마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 혼자가 아니라, 그녀가 장담하고 있는 아주 든든한 동행의 존재도 있다는 것이 더욱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생각에 빠진 카인은 은현의 제자이자 금위계 모험가로서의 에린을 믿어 보기로 했다.
“…부탁한다.”
“네. 맡겨주세요.”
에린은 자신 있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아이테르라는 학교에 재학 중이었을 당시, 자신을 많이 도와주었던 친한 언니이자 친구인 에이라의 행방불명 소식은 에린에게도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굳이 카인의 허락이 없더라도, 사정을 파악한 이상 에린은 아니에스의 조력이 없더라도 혼자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곧바로 아르티아의 숙소를 나온 에린이 다시 신전을 향해 발걸음을 향하려 할 때, 뒤늦게 숙소로부터 한 사람이 나와 에린에게 외쳤다.
“잠시만요!”
“…응?”
멈칫하여 몸을 돌린 에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숙소의 입구를 응시했다.
얼마나 급하게 나왔는지 자신을 부른 남성의 익숙한 목소리는 무척이나 다급했다.
에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부른 차한성의 얼굴을 확인했다.
“차한성님?”
“후우…. 저도, 저도 데려가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으세요?”
느닷없는 그의 동행 의사에 에린은 갸웃했던 고개를 멈칫하고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차한성의 실력은 검사로서도, 기사로서도 뛰어나다는 것은 에린 또한 알고 있다.
그는 흡혈귀들의 소탕 작전에서도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을 갖춘 흡혈귀들에게 밀리지 않는 전력을 보여주었으며 에이라와 합을 맞추는 훈련을 옆에서도 자주 지켜보았다.
에린은 자신이 누군가를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이들 중에는 차한성도 아슬아슬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동행자로서 차한성의 도움은 굉장히 든든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작정 자신과 동행할 수 있는 입장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차한성님은 아르티아의 기사이시잖아요.”
왕국의 기사이자, 현재 아르티아에 소속되어 있는 차한성은 개인적인 단독행동을 벌일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에린과는 달리, 왕국과 아르티아에 소속되어 카인이라는 상관이 존재하는 이상, 그는 명령에 따라야 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허락은 받고 나왔습니다.”
차한성은 숨을 고르게 쉬고 사정을 설명했다.
에린이 숙소를 나오자마자, 끈질기게 카인을 설득하여 기어코 허락을 받아냈다.
에린에게 조력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이 여섯 영웅 중 한 사람인 아니에스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상, 두 사람만을 보내는 것은 몹시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이쪽에서도 소식이 불분명한 단원들의 수색을 위해서는 최소 한 명의 기사가 동행해야 한다는 차한성의 설득이 통했기 때문이다.
사실 수가 틀리면 어떻게든 본인 혼자서라도 수색을 하기 위해 막무가내식의 행동을 일으킬까 봐 적정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으로 그의 설득을 받아들였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네?”
“어째서 이렇게 에이라 언니의 수색에 필사적이신 거예요?”
“그건….”
차한성은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본인 스스로도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이 마음속 감정을 어떻게 타인에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했다.
에린은 신수의 힘으로 그런 그의 태도 속에서 감정을 읽어냈다.
당혹과 쑥스러움, 그리고 그것을 조금씩 자각한 그의 속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에린은 아주 잘 알고 있다.
“혹시 에이라 언니 좋아해요?”
“사, 사수로서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이끌어주신 선배가 걱정되는 것뿐입니다!”
핵심을 찔러오는 에린의 말에 황급히 답하는 차한성의 목소리는 더더욱 떨리며 당혹스러움을 표현했다.
거짓말이 몹시 서툴다.
“…….”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지그시 바라보자 차한성은 에린의 눈초리를 받으며 침을 삼켜야만 했다.
“힘드실 텐데….”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에이라의 아버지인 리오드가 이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차한성을 어떤 식으로 대할지, 에린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내가 뭐라고 이래라저래라할 문제는 아니잖아?’
이전 흡혈귀 소탕 작전 때 차한성의 걱정을 했던 에이라를 보면 현재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떠한지 자연스레 추측됐다.
중요한 건 에이라의 마음과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다.
‘나야 뭐…. 언니 편이니까….’
에린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다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어요. 카인님이 허락하셨다면 저도 거절할 생각은 없어요.”
“감사합니다.”
차한성은 에린의 허락이 떨어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혹시라도 에린이 거절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내심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일단…다시 신전으로 갈게요.”
“신전은 어째서인가요?”
“모셔가야 할 사제님이 계시거든요.”
“사제님?”
문득 에린의 조력자이자 다른 동행자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그것이 누구일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조용히 에린의 뒤를 따라 베스타 신전 모그라프 지부에 도착한 차한성은 신전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제복을 입은 어린 소녀를 발견했다.
“…설마?”
사제복의 소녀도 놀란 표정을 짓는 차한성과 에린을 발견했다.
“오, 얘기는 끝났냐?”
“네. 그리고 이쪽은….”
“이 어린 소녀가…. 에린님의 동행자이십니까?”
“…네?”
아까 얼굴을 마주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소개는 아직이었기에 차한성을 아니에스에게 소개하려던 에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차한성에게 되물었다.
차한성은 진지한 얼굴로 신전의 안쪽과 에린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무리…. 아무리 사제가 급하게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어린아이를….”
말투와 태도로 보아, 아르티아 안에서 이제 막 신입의 티를 벗어 던진 차한성은 리오드의 옛 동료였던 아니에스의 얼굴을 모르는 듯 보였다.
에린을 만나기 전까지 수색대에 사제들의 지원을 필사적으로 요청했던 차한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전 측에서 지원해준 사제가 이 어린 소녀밖에 없다고 멋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에린과 처음 맞닥뜨렸을 때도 함께 있었던 아니에스지만, 그때는 수색대의 편성과 신전에 지원을 요청하는 문제로 다급해져서 아니에스의 존재를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것도 한몫했다.
“…뭐?”
아니에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차한성을 올려다보았다.
“아니. 그….”
“안 되겠습니다. 지금 당장 신전으로 들어가서 다른 사제님의 지원을 부탁드려….”
에린이 무언가 설명을 하기도 전에,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니에스 쪽이었다.
“야.”
아니에스를 지나쳐 신전 안으로 들어가려는 차한성의 손목을 붙잡아 그를 제지한 아니에스의 목소리는 굉장히 싸늘했다.
“꼬마야. 너를 무시하는 건 아니야. 우리가 가는 곳은 굉장히 위험한 곳이야. 그리고 어른을 부를 때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나 꼬마 아니야. 나이도 너보다 훨씬 많아. 그리고….”
차한성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을 실어 그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기세로 꽉 움켜쥐었다.
“크…윽!?”
차한성은 자신의 손목뼈가 부러질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악력을 느끼며 경악 어린 표정으로 어린 사제 소녀를 바라보았다.
차한성의 표정을 확인한 아니에스는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든 듯 씩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너보다 강해. 그러니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따라와라?”
“…….”
미처 설명하지 못해서 당황한 에린도, 무시무시한 악력과 함께 자신감을 보이는 아니에스의 행동에 경악한 차한성도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얼이 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어, 차한성님….”
“…예?”
“그게…. 이분이요. 아니에스님이세요.”
“아니에스…님?”
어디선가 낯이 익는 그 이름은 자신의 상관인 리오드와 함께 대륙을 구했다는 여섯 영웅 중 최강의 사제이자, 현 베스타 신전의 대주교의 이름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죄, 죄송합니다!”
눈앞의 15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사제 소녀가 리오드와 동급의 영웅이라는 것을 자각한 차한성의 표정이 또 한 번 경악으로 물들어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자신이 지금 외관만으로 누구에게 어떤 실례를 저질렀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 차한성의 사죄는 굉장히 정중하고 신속했다.
“흥. 알면 됐어. 야. 바로 출발해. 얘기는 가면서 해라.”
“…네.”
상황을 순식간에 정리가 되자 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앞장을 서서 성문 밖으로 향했다.
성문을 지키는 위병들의 검문은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고작 세 명에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어린 소녀의 외관이었지만, 다른 두 명은 아르티아의 기사와 금위계의 모험가로 구성된 팀.
실력이나 신원도 확실했기에 위병들의 검문 절차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운을 빕니다!”
오히려 살벌한 현재 변경의 영지를 위해서 전선으로 나가준다는 것에 감사의 인사를 담아 세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응원해주기까지 했다.
외곽으로 나와 이동하는 아니에스는 에린과 차한성에게서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즉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리오드의 딸과 그 애의 소대를 수색하는 일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심플해서 좋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게?”
아니에스는 직접적으로 에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셋 중에서 가장 강한 것은 아니에스였으나, 원래부터 작전을 짜거나 행동방침을 정하는 등 팀의 리더의 역할은 성미에 맞지 않아 은현이나 리오드에게 넘겨버리는 것이 습관이었기에, 이 상황에서는 은현의 제자이자 모험가로서 경험이 풍부한 에린에게 리더의 역할을 맡겼다.
차한성 또한 별다른 불만을 품지 않았으며 이 흐름이 자연스레 흘러갔다.
“일단은 빠르게 이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잠시만요. 지금 바로 탈 것 좀 꺼낼게요.”
“탈 것을…?”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무엇을 꺼낸다는 것인지, 차한성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의문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빠르게 해소되었다.
에린의 바로 옆 허공에 생겨난 마법진의 중심으로부터 소환된 것은 네 개의 타이어가 장착된 자동차의 형상.
어디서 구했는지 굵직한 고무 타이어가 장착된 그 모습은 지구에서 자주 보았던 지프의 외관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 이건…!”
“자! 타세요!”
경악에 빠진 차한성이 혼란을 해소할 틈도 없이, 에린이 문을 열어 뒷좌석에 아니에스를 태웠다.
차한성은 묻고 싶은 것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일단은 이동이 우선이었기에 꾹 참고 조수석에 탑승했다.
“어? 차한성님. 이거 탈 줄 아세요?”
아니에스처럼 따로 알려준 것도 아닌데, 능숙하게 문을 열어 조수석에 탑승하는 차한성을 보고 에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에. 뭐….”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지구에서 보았던 것과 흡사하다 못해 똑같은 수준인데.
심지어 승차감 또한 굉장히 편안하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어보니 이제는 느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푹신함을 맛보게 되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차한성의 표정이 의아하긴 했지만, 에린은 그 생각을 접고 바로 운전석에 앉았다.
“그럼 출발할게요.”
핸들을 꽉 쥐고 엑셀을 밟아 주행을 시작하려 했지만, 레토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라? 이거 왜 안 움직이지?”
은현에게 배운 바로는 바이크와 비슷하게 마력을 불어넣고 엑셀을 밟으면 움직인다고 했는데, 레토나는 엑셀을 밟아도 앞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가 바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고정하고 있는 것만 같다.
뭘 빼먹었는지 에린이 알아차리지 못해서 계속 엑셀 위에 올려둔 발을 떼었다가 밟았다가를 반복할 때, 불안한 표정을 띄운 차한성이 중앙에 위치한 막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으…. 사이드 브레이크를….”
“아! 맞다! 이거!”
뒤늦게 깨닫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해제하고 다시 엑셀을 있는 힘껏 밟자, 레토나가 거친 엔진음을 뿜으며 주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방향은 전방이 아닌 후방.
쿵!
덜컹거리며 빠르게 가속하는 레토나는 있는 힘껏 뒤쪽에 있는 나무와 충돌했고 그 충격으로 차체가 거칠게 충돌했다.
“뭐, 뭐야!”
가장 먼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던 것은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니에스다.
점점 당겨오는 뒷목을 한 손으로 붙잡고 아니에스가 불신 어린 시선으로 운전석에 앉아있는 에린을 노려보았다.
“…너, 이거 제대로 조종할 줄 아는 거 맞아?”
“아, 하하…. 사, 사실 현이가 운전하는 거만 봤지. 저도 처음이라….”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 백미러로 보이는 아니에스의 눈초리를 피한 에린이 솔직하게 자신의 운전경력을 밝혔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네?”
느닷없이 자신이 핸들을 잡겠다는 차한성의 말에 에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제가 차한성님 보다는….”
“아뇨. 제가 더 잘할 겁니다. 에린님보다는 확실히.”
“그, 그걸 어떻게 알아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해서 발끈했지만, 차한성은 자신이 운전대를 잡겠다는 의사를 절대 꺾지 않았다.
차한성은 무면허인 에린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이 외곽에서 위험한 마수들과 조우를 하는 것보다, 에린의 무면허 운전이 더 두렵게 느껴졌다.
“보아하니 마력을 이용해서 움직이시는 것 같은데, 이것만 알려주시면 제가 알아서 운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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