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30화 (513/730)

〈 530화 〉 530. 변경의 전조(2)

* * *

엘레노아를 따라 집으로 돌아온 에린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저녁 식사를 마친 이후였다.

“모그라프 변경에서…지원 요청이 왔어.”

“어…? 지원 요청이요? 설마…?”

에린은 얼굴을 굳히며 이전 변경령에 들이닥쳤던 마수 범람 사태를 떠올렸다.

국경의 최전방을 수비하는 모그라프 변경령은 한때 큰 위협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이 사망했던 안타까움이 가득한 영지다.

­언데드가…. 출몰했습니다.

최근 렌디르 왕국의 멸망 소식과 함께 그 원흉인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에린도 알고 있는 바다.

사령술사의 존재는 만나 본 적이 없어 소식만을 접했지만, 그와 공범이 되어버린 레이넌이라는 남자는 다르다.

은현이나 리오드, 제라드 등 그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던 영웅이 이제는 대륙을 위협하는 최악의 적으로 변모했다는 것은 에린에게 있어서도 매우 무거운 이야기다.

“사건이 발생한 건 약 1개월 전이야. 모그라프령에서 우리 아르미타스령 사이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아마도…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우리 영지와 왕가에 전령을 보낸 거겠지.”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성 외곽을 나가 위험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 정기적으로 경계를 서는 초소 근무자들이 급하게 경계경보의 신호를 표시하며 초소를 버리고 퇴각을 해왔다.

수색 작업을 시행하는 도중, 숲에서 무언가를 만난 병사들은 곧바로 무기를 쥐며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수의 사람.

하지만 그 행색이 몹시 미묘했다.

전신의 근육이 이완된 듯 힘이 없고, 부패하여 썩은 내를 가득 풍기는 몸을 좌우로 휘청이며 흐느적거리는 그 모습은 기괴하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 덩어리 그 자체였다.

마수를 조우한 경험은 있어도, ‘언데드’라는 것을 말로만 들어봤지 경험해본 적이 극히 드문 병사들은 걸어 다니는 시체들의 무리와 조우하고 패닉에 빠졌다.

수색조의 경계 근무 병사들은 도합 열 명이 남짓한 숫자.

반면 썩은 시체 좀비들의 숫자는 수백이 넘어가는 불합리한 숫자의 차이가 존재했다.

비록 지성이 존재하지 않고, 반면에 병사들은 무장하고 있었다지만.

검으로 좀비들을 찌르고 베며 교전을 펼치면서 상처들은 하나둘씩 늘어났고, 결국 병사들은 퇴각했다.

상처 입은 동료들을 부축하고 업으며 달려온 병사들은 곧바로 모그라프 변경령 내부로 복귀했고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진짜 혼란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좀비들의 공격에 의해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일제히 감염을 일으키면서 언데드로 전락하여 닥치는 대로 변경령 내부의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공격당한 병사들이 또 언데드로 전락하면서 다른 병사들을 공격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시작되었다.

결국, 변경령에 위한 베스타 신전의 사제들에 의해 언데드로 전락한 병사들을 정화하긴 했지만, 크나큰 손실로 이어진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언데드라는 것을 접해본 적이 없는 경험과 그로 인해 패닉에 빠져 냉정한 판단력을 잃은 결과가 만들어낸 치명적이면서도 아주 초보적인 실수.

“그건…. 정말로….”

에린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하여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 또한 언데드라는 존재에 대해 대처 방법만을 들어보았을 뿐이지, 직접 만나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패닉에 빠질 정도로, 그렇게 기괴하고 끔찍한 존재일까?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역하고 소름이 끼치는 존재들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들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순간 속이 메스꺼워져 저녁으로 먹었던 것들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자신 또한 많은 사선을 겪어보면서 잔인한 광경들은 많이 보아왔으며 그 잔인한 행동들을 해보았던 경험 또한 가지고 있었지만, 언데드라는 것들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몹시 기분이 나빴다.

“현재 모그라프령의 상황은…. 에린도 알고 있지?”

모그라프 변경은 많은 희생을 치르며 급격히 쇠락하는 위기를 겪기는 했지만, 왕가와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재정적인 지원을 통해 아직도 ‘국경 수호’라는 중요 임무를 유지하여 수행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식량난이나 주거 문제는 그렇다 쳐도, 역시 마수 범람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해진 것은 인력난이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 몇몇이 현재 모그라프령에 파견을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에이라 언니한테서 들었거든요.”

그리고 그 아르티아의 기사단원들 몇몇에는 당연히 에이라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에린은 에이라가 파견을 가기 전, 개인적으로 자신과 사담을 나누었던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변경령은 왕가와 우리 가문의 지원을 통해서 국경 수호 임무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좋은 상황은 아니야.

마수들이 범람하여 스탬피드를 일으켰던 지난 사태는 악마에 의해 강제로 폭주시킨 던전이 원흉이었으며, 그 원흉을 제거하기는 했다지만.

언제 다시 그와 같은 사태가 반복하여 터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그런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는 변경령으로 이주를 하려는 영민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을 강조하여 이주를 권해보아도, 그 이익들보다도 모두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다.

전방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위험하고, 중심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안전하다는 것은 나라의 백성들 그 누구도 알고 있는 당연한 이치였다.

오히려 강제로 영민들을 이주시키려 했다가는 많은 반발을 살 수가 있어 왕가 측에서도 몹시 골치 아픈 문제였다.

국경의 수비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결국, 왕국의 방위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불안을 낳기 마련이며 이것은 곧 불신을 낳는 씨앗이 된다.

특히나 먼 거리에 있는 렌디르 왕국이라는 강대국이 멸망하여 대륙의 정세가 극도로 불안정해지려는 이 시기이니만큼, 몹시 민감한 문제인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왕국이 생각해낸 방법은 훈련된 병사들과 기사들을 변경령에 일정 기간 파견을 하여 부족한 인력을 지원하고 국경 수호의 임무를 견고히 다지며 이 위태위태한 인식을 고치는 것이었다.

“맞아. 아르티아 기사단원들 몇몇과 왕국군 일부는 지금 위태위태한 모그라프 변경에 지원을 나가 있어. 하지만…어째서 이 파견이 결정되었는지, 그 이유는 공개적인 사실과는 조금 달라.”

“그게…. 그 언데드라는 것이 출몰했다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요?”

“응. 대외적으로는 인력 충원과 국경 수호에 대한 신뢰도 회복이 목적이지만…. 국경에서 언데드가 출몰하기 시작한 게 지원 요청의 진짜 이유야.”

이것이 대외비로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변경령에 거주하고 있는 영민들을 더 불안에 떨게 하지 않기 위한 모그라프 백작의 판단이었다.

사실 모그라프 백작이 왕가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마수 범람 사태에 이어 두 번째.

마수의 범람 사태는 왕국군과 함께 지원을 온 모험가들이 올 때까지 국경선을 방어해내며 그 임무를 완수했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변경령은 급격한 쇠락으로 이번 사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귀족들은 모그라프 백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나 오라버니는 백작님을 존중해.”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남에게 부탁을 하는 것은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마수 범람 사태 때 자신의 휘하에 있던 많은 병력들의 희생을 치르면서도 이렇게 국경의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모그라프 백작은 자신의 가문만의 힘으로 이번에도 국경 수호 임무를 다하지 못한, 가문으로서 몹시 수치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더는 병사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의 판단은 몹시 합리적이었다.

“모그라프 변경령은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돼.”

그곳의 중요성은 엘레노아는 물론 에린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은현이 세우고 있는 계획안에는 드워프들의 영입을 통해서 모그라프 변경령의 방벽을 새롭게 개축하여 수비력을 높이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엘레노아는 모그라프 변경령을 돕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며 당연히 은현에게 상담한 결과, 그의 허락은 간단하게 떨어졌다.

엘레노아의 생각에 은현 또한 합리적인 판단 아래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모두 듣고 이해한 에린은 묘하게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저를 보내려는 건가요?”

“응.”

“하지만…. 제가 혼자 간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에린은 이젠 모험가로서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다.

최연소 금위계 모험가라는 명칭과 수많은 커리어를 쌓았음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에린 개인이 남들보다 특별한 경험을 많이 했으며 특별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강할 뿐이지,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강하더라도 세상은 아직도 넓고, 자신의 주위에는 자신보다 강한 영웅이나 강자들이 널리고 널려있는데,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것도 웃기는 일.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나나 그 사람이 에린을 혼자 보낼 리가 없잖니.”

“어. 그럼 혹시 아르미타스의 기사님들도 동행하시나요?”

“아니. 이번에는 우리 가문의 기사들은 가지 않아.”

“…그러면요?”

“언데드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딱 적임이신 분이 지금 계시거든. 그분이 나서주시기로 했어.”

◆ ◆ ◆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백만 스물셋….”

“…….”

엘레노아를 따라 집안의 지하 훈련장으로 내려온 에린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엘레노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금발 머리를 가진 1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의 외관을 한 누군가가 한 손만으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체구와 몸무게를 가진 외관이라지만, 그만큼 어린 소녀의 외관으로 저런 기형적인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을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다.

“세상에…. 저게 가능해요…?”

도대체 어떻게 저 가녀린 팔에서 전신을 가뿐히 들어 올리는 놀라운 근력이 나올 수가 있을까.

에린의 머릿속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식 외의 훈련 방법이다.

“나한테 물어보지마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엘레노아도 이해하기를 포기했는지 시선을 피했다.

저 사람이 자신의 선임자라는 것이 뭔가 복잡미묘한 심경을 품고 있는 듯 말을 아꼈다.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가까이 다가가 기괴한 훈련을 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에스님. 저희 왔습니다.”

“백만 스물…. 엉? 아.”

한 손만으로 가녀린 소녀의 체구를 들어 올리던 아니에스가 땀을 흘리며 엘레노아와 에린을 발견했고, 이내 바닥에 발을 붙이며 훈련을 끝냈다.

“…평소에도 그런 훈련을 하고 계신 건가요?”

“뭐, 그렇지. 이것도 니 남편이 20년 전에 나한테 시킨 거였는데?”

“…….”

엘레노아의 질문에 태연히 대꾸하는 아니에스의 말은 두 여성의 얼굴을 동시에 굳게 만들기 충분했다.

정말로 궁금한 것이 생겨, 말도 제대로 섞어 본 적이 없는 아니에스에게 에린이 물었다.

“그…정말로 그 팔굽혀펴기…백만 번 하신 거예요?”

“뭐? 미쳤냐? 그걸 어떻게 해. 그냥 ‘백만’이라는 것만 붙인 거야. 신성력으로 강화하지도 않고 맨몸으로 이거 서른 번 채우는 것도 진짜 빡세죽겠는데.”

아니에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은현과 함께 맺어지는 것이 공인되었던 결혼식 때 주례를 맡은 전적이 있었던 아니에스였지만, 가까운 곳에 살면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어 본 것은 에린도 처음이다.

하지만 에린이 뭔가 묘하게 친숙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자신과 아니에스가 공통의 사람에게 훈련을 받았던 피해자라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에린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그 ‘백만’이라는 숫자는 왜 덧붙이시는 거예요?”

“몰라. 니 남편한테 물어봐. 그냥 ‘감성’의 차이라는데.”

“…….”

“처음 이거 시켰을 때는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니깐. ‘에너라이저 훈련법’이라면서 뭔 개소리를 늘어놓았는데, 그때는 진짜 그놈보다 세져서 꼭 한 방 먹여주겠다는 마음으로 훈련했지. 근데 최근에 만나서 또 싸워보니까 더 빨라져서 안 맞잖아. 이 사기꾼 새끼 진짜.”

‘언젠가 그놈 면상에 주먹 한 방을 꽂아 넣는 그 날까지.’라는 말을 투덜거리며 은현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아니에스는 진심으로 짜증이 나 죽겠다는 듯 이를 갈고 있었다.

“아 그래도 가끔가다가 이거 안 하면 또 허전해서 몸풀기할 때면 자주 하곤 해.”

언데드와의 교전이라는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나 다름이 없는 최강의 사제는 뭔가 몹시 거칠고 자신보다도 더욱 육체파에 가까웠다.

“그나저나. 너희가 왔다는 건 이제 출발할 때가 됐다는 거지?”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레노아는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은현의 험담을 늘어놓으면서도 그의 부탁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들어 주는 아니에스는 여전히 은현의 친구이자 동료다.

“하. 좋아. 우리 후임자와 친구의 부탁이니까 당연히 들어줘야지. 가자고. 불쌍한 망자들을 구원하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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