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6화 〉 526. 난쟁이 지상 진출 권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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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이 제작한 옵티머스라는 강철의 거인은 처음으로 완성된 골렘이자, 사적으로도 애정이 가장 듬뿍 담겨 있는 골렘이다.
처음 제작되었을 때보다 더욱 개량과 개량을 거듭하여 무장과 내구성이 향상된 만큼 디자인에서도 몹시 신경을 쓴 티가 가득한 옵티머스의 외관은 드워프들에게 있어 가히 새로운 문명의 발견과도 같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오, 오오…! 어떻게 이렇게 정교한 형태를…!”
“게다가 이토록 자유도가 높은 골렘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
갑작스레 공터에 나타나 우뚝 몸을 일으키는 거대란 강철의 골렘이 등장하자, 많은 드워프들이 몰려들었고 하나같이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옵티머스를 관찰했다.
“이 골렘의 제작기술을 우리 드워프들에게 넘기겠다는 것이…진짜요?”
장인으로서의 눈을 빛내며 옵티머스를 관찰하는 드워프들을 뒤로하고, 먼저 구경을 마쳤던 세 부족의 족장 드워프들이 은현에게 다가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은현은 웃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이제 더는 우리에게 굳이 존대하실 필요는 없소. 이미 야장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대장장이요. 게다가…나이 또한 이곳의 어떤 드워프보다도 많지 않소.”
아무리 인간보다는 오랜 삶을 산다고는 하지만, 드워프는 엘프들처럼 자연에 동화되어 영생에 가까운 장수를 하는 종족은 더더욱 아니다.
반면 인간이면서도 조부인 오란과 동시대에 살았던 은현은 대장장이로서도, 나이로서도 공경을 받을만한 인간이다.
단신이지만 우락부락한 체구에 수염이 덥수룩한 드워프에게 윗사람으로 공경을 받다니 어쩐지 기묘한 기분을 느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알았어.”
“음.”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듯이 태도를 바꾸자, 도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서…. 야장께선 어째서 저 기술을 우리들에게 제공하려는 것인지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소?”
도란은 그 이유를 물었다.
은현이 선보인 저 거대한 강철의 골렘은 딱 보기에도 쉽게 공개해서는 안 되는 기술의 정수가 담겨 있는 보물의 집합체.
반면 자신을 비롯한 드워프들이 제공할 수 있는 건 창고 안에 쌓인 장비들과 노동, 그리고 기술력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저런 훌륭한 골렘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드워프들이 제공할 수 있는 기술 또한 상대적으로 변변치 않은 것이 된다.
아무리 자신들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라지만, 이것을 대가로 제시하는 것은 너무 크다.
줄 수 있는 것에 비해 얻는 이득의 차익이 너무나도 커다라므로, 도란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은현은 도란의 그 말뜻을 깨닫고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렇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돼.”
“하지만….”
“물론 순수한 호의만으로 이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게 아니야.”
“…무슨 뜻이오?”
“사실 저 골렘의 제작기술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나만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야.”
“…그러면 더욱 우리에게 넘기려는 의도를 모르겠소.”
인간들 사이에서도 아직 보급되지 않은 독점 기술을 굳이 타 종족인 자신들에게 넘기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은현은 그 이유를 밝혔다.
“아마 도란도 봐서 알겠지만, 저 골렘 하나를 제작하는데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이 들어갔을 것 같아?”
“…….”
도란은 은현의 물음에 많은 드워프들이 열광하며 관찰을 이어나가고 있는 옵티머스의 전체적인 외관을 멀찍이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뭉툭하고 단조로운 디자인의 골렘과는 다른, 인간과 유사한 팔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하나 조형미가 돋보이는 외관도 외관이지만, 내부에 구성되어있는 부품들이 정말 어마어마하다.
작고 세밀한 부품들의 소재는 물론, 그 소재에 새겨져 있는 다양한 마법 술식들은 말 그대로 예술에 가까운 작품에 가깝다.
저것을 만드는 데 소모된 비용과 시간을 가늠해보라고는 했지만, 도란은 그 크기를 측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터무니없이 많이, 무척이나 많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오.”
“그래. 내가 만들기는 했지만, 현재 인간들에게는 저걸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역량도 없어.”
은현이 옵티머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금속을 비롯한 다양한 소재들은 여신의 권능과 은현의 정신력으로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무한정으로 만들어낼 수 있고, 마법의 술식은 일리아나와 함께 새겼으며, 직접적인 제작은 에밀리아와 휘하의 인형부대들이 전담했다.
은현도 혼자만의 힘으로 저것을 만드는 것은 현재로서도 무리다.
어디까지나 공짜에 가까운 무한한 자원과 노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당연히 인간들에게는 무리다.
“하지만 드워프들이라면, 비록 시간은 걸려도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저 골렘들을 양산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
조만간 싸우게 될 악마의 끄나풀, 그리고 언데드들과의 전쟁은 많은 사람과 생명을 앗아가는 대륙 전체를 휘말리게 만드는 전쟁이 될 터.
“이 골렘의 양산이 나중에 있을 싸움에 아주 큰 전력이 될 거야.”
“…그렇구려.”
도란은 얼굴을 굳히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나, 드워프라면 가능하다.
그 말은 자신들의 기술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과 동시에, 아주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저런 엄청난 골렘을 만들어낸 천일야장의 인정을 받다니, 도란의 가슴 속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의 감정이 피어났다.
도란이 대장장이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뿌듯함이나 성취감에 젖어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은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사과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고.”
“사과?”
“나와 오란 때문에 모든 드워프들이 피해를 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오란이 ‘천일야장의 표식’을 은현에게 넘기면서, 은현이 찾아오지 않아 약 300년간의 공백이 생겨버린 것에 은현은 뭐라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비슷한 마음을 품었다.
만약 2년 전 자신이 제국의 황궁에서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고, 베르단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지 못하여 드워프의 마을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 상황을 상상하니 자연스레 머리가 아파졌다.
“허허, 그것은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인상을 찡그리며 표정을 하는 은현과 달리, 굳어져 있던 도란의 인상이 풀어지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미 모든 드워프들이 납득했소. 그 두 자루의 검을 보았다면 납득 할 수밖에 없지. 게다가…그대는 훌륭한 대장장이이자, 그 어떤 드워프보다 뛰어난 천일야장이오.”
“…그런가.”
“어느 누가 저런 골렘을 제작할 수 있겠소. 적어도 우리 드워프들에게는 불가능하오.”
신문물의 결정체인 옵티머스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는 동족들을 보며 오란은 쓰게 웃었다.
“황금 망치 부족과 붉은 화로 부족은 야장의 제안을 받아들였소.”
이미 은현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던 도란의 부족까지 포함하면 이미 드워프들 전체가 은현을 따르기로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 고마워.”
은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지만 도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천일야장의 칭호를 끊어지지 않도록 계승해주고, 저런 놀라운 기술까지 제공해준다니, 오히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오.”
설계와 제작기술 등 전반적인 회의는 내일 제대로 진행하기로 약속을 잡게 되었다.
오히려 자신 쪽이 더욱 값진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고, 당장이라도 옵티머스의 내부 구조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난 드워프들을 통솔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괜찮으신 건가요?”
“뭐가?”
“저 골렘은…주인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거잖아요. 그 제작기술을 다른 분에게 넘겨도 괜찮으세요?”
릴리는 은현이 에밀리아와 함께 저 골렘을 제작하기 위해 밤낮을 구분 없이 움직이며 바쁘게 움직였던 나날들을 가까이서 지켜본 아내들 중 하나다.
그것을 넘긴다는 것은 그가 고생해왔던 노력과 시간 자체를 남에게 넘긴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
하지만 은현은 그 행위를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듯 보였다.
“옵티머스를 넘기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기술 따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어. 기술을 전수했다고 저것과 똑같은 걸 단기간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도란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것이라 말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가 이번 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아.”
“…드워프분들의 무기와 협력을 얻는 게요?”
“정말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
“…그러면요?”
“뛰어난 무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는 대장장이가 필요한 것은 물론, 제작에 필요한 최고급의 소재들과 그것들을 가공할 수 있는 환경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어야만 훌륭한 무기는 탄생한다.
“드워프들이 뛰어난 것은 단순히 손재주나 대장장이로서의 기술만이 아니지.”
소재를 모으기 위한 채광 기술, 건축과 토목 기술 등 전반적으로 높은 근력과 체력을 가지고 있는 드워프들의 감각이나 기술은 특히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분야에 특화되어 있다.
“이렇게 깊은 지하에 땅굴을 파고, 지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지탱하여 이곳에 마을을 만든 기술도 굉장히 훌륭한 부분이 아닐까?”
“…그렇네요.”
릴리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토목이나 건축 쪽의 분야에 무지한 릴리도 지상에 건물을 짓는 것보다, 지하에 땅굴을 파서 아래에 건물을 짓는 것이 몇 배는 어렵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드워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긴 했지만, 그들을 아르미타스령으로 데려와서 단순히 무기만을 만들게 할 생각은 없어.”
골렘의 제작으로 군사력을 키우는 것은 물론, 영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개축하는 것부터 다양한 분야에 드워프들의 기술을 투입하고 영지를 발전시킬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은현이 원하고 있던 것은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는 드워프들의 노동력 그 자체다.
그들이 개발하는 무기와 기술들은 아르미타스령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퍼지면서, 아르미타스령에는 막대한 재화를 쓸어 담는 것과 동시에, 언데드와 악마들에 대항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는 시작점이 될 터.
“그리고 드워프들을 아르미타스령으로 데려오는 건 릴리. 너를 위해서이기도 해.”
“…저를요?”
릴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째서 이 거대한 흐름이 물결치는 계획 속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드워프들이 아르미타스령으로 이주하는 것과 동시에, 레지나도 숲을 나와 엘프의 모습을 밖으로 드러낼 결심을 했어. 아마도…데르킨처럼 아르미타스령에 정착하려는 엘프들도 언젠가는 생겨나겠지.”
“…네.”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미 인간 여성인 앨리스를 반려로 맞이하여 낳은 딸 아이를 키우며 데르킨이라는 엘프는 행복한 생을 누리고 있었다.
최근에는 앨리스의 눈이 고쳐진 것을 계기로, 아내의 두 눈에 아름다운 것을 하나라도 더 많이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데르킨의 모습을 떠올리고 릴리는 웃음을 지었다.
“아.”
이윽고 릴리는 머릿속으로 드워프와 엘프, 어쩌면 수인들까지 인간을 포함한 많은 종족이 공존하는 아르미타스령의 모습을 그리며 작게 탄식했다.
은현이 그리고 있는 그림의 단편을 엿본 듯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은현을 바라보았다.
“주인님은 혹시….”
“맞아. 나는 다양한 종족들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여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영지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 이건 이미 엘레노아나 알렉스와도 사전에 이야기해뒀고 허락도 받아놨지.”
그리고 그 계획은 릴리와도 연관이 있다.
이것은 인간들의 내면 의식 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종족에 대한 다름’이라는 것을 없애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공존하면서 종족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도우며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함.
그 결과 인간과 엘프, 드워프와 수인 등 다양한 종족들이 화합하여 한 자리에 평화로운 공존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쩌면 그 울타리 안에 악마가 들어갈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언젠가, 네 정체를 사람들 앞에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어.”
“주인님….”
릴리에게 있어 자신의 몸 안에 반절이나 흐르는 악마의 피는 치명적인 콤플렉스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영지 안에서 살면서 들키게 되는 순간을 항상 각오하고 살아왔다.
은현이 만들려는 영지는 릴리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영지다.
“세상에 착한 악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그것은 지구가 멸망하기 전부터, 자신의 부모를 살해했던 악마들과 끊임없는 사투를 벌여왔던 은현의 마음속에 영구히 자리 잡은 지론이다.
“그래도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든, 예외라는 건 존재하는 법이더라.”
은현에게 있어 릴리와의 만남이 그러했다.
아버지의 만행으로 어머니와 함께 노예로 팔려가고 흑마법사에게 인체 실험을 당해 반마(半?)가 되어버린 그녀는 은현의 지론을 깨부순 유일한 예외.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은현은 더는 그녀가 이렇게 정체를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자 결심했다.
“감사해요. 주인님….”
은현의 계획을 들은 릴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은현을 꽉 끌어안으며 그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도 분에 넘치는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 더 나아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배려해주고 위해주고 있는 그의 마음에 감격의 감정이 흘러넘쳤다.
그렇게 천천히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모든 드워프들을 각자의 자리로 되돌려 보낸 도란이 은현을 찾아왔다.
“야장께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소.”
“뭔데?”
“야장과 야장의 부인께서 머물고 계신 숙소를 옮겨드리려 하오.”
“흠? 아니. 괜찮아. 지금 제공해준 곳으로도 충분해.”
“…야장을 배려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방음 설비가 더 좋은 숙소로 안내해드릴 테니 그곳에서 지내주셨으면 좋겠소.”
“…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깨달은 릴리가 작게 탄식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은현도 이어서 도란의 갑작스러운 호의에 대한 이유를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야장께서 머무시는 숙소의 부족원들이 민원이 넣었다고 하오. 어젯밤에 두 사람의 소리가 너무 적나라해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고…. 두 분이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방음 설비가 더 좋은 곳에서….”
“…그만. 알았어. 당장 옮길게.”
은현은 황급히 도란의 말을 끊으며 그의 호의 어린 제안을 받아들였다.
“천일야장은 모루 위가 아닌 이불 위에서도, 무기가 아닌 아기를 만드는 일에서도 전력과 진심을 다하는구려.”
훌륭한 대장장이를 바라보는 존경해 마지않는 도란의 시선이 몹시 부담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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