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25화 (508/730)

〈 525화 〉 525. 난쟁이의 지상 진출 권유(1)

* * *

숙면을 통해 피로를 어느 정도 해소한 은현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배고파.’였다.

열 시간이 넘는 장시간 동안 망치질을 하며 혹사한 몸은 막대한 열량을 소모한 만큼 보충해주기를 호소하고 있다.

“네. 곧바로 준비할게요.”

릴리는 당연히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곧바로 움직였다.

부엌에는 기절했던 은현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미리 준비해둔 음식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상태.

평소에도 꾸준한 자기단련으로 많은 열량을 소모하는 은현은 평균 남성보다 많이 먹는 편이기 때문에 식재료도 넉넉하게 4인분을 준비해두었다.

“죄송해요. 이 마을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자재는 많이 한정적이라….”

“괜찮아. 그건 나도 알고 있으니까.”

드워프 마을의 식사 문화는 지상의 존재들과는 달리 몹시 독특하다.

지하에서 재배하는 작물들 대부분은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 콩 등의 구황 작물들이 대다수이고, 야채와 채소들은 전혀 재배하지 않는다.

여기에 목장에서 기르는 가축들의 고기를 곁들여 먹는 드워프들의 식문화는 이미 은현도 잘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불만을 품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부엌에서 릴리가 요리를 개시하는 동안, 은현은 자리를 잡고 방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자루의 칼날들이 자신의 몸과 영혼에 들어오면서 어떠한 변화와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파악했다.

‘…찾았다.’

영혼에 녹아들었던 두 자루의 칼날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존재하고 있을 뿐.

그것을 끄집어내어 외부로 소환하는 것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처음 시도하는 일임에도, 몹시 낯설지 않아 익숙했다.

그것은 베르단디를 비롯한 세 여신의 권능을 조합하여 자신의 영혼을 제련하여 창조해낸 자신의 열쇠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신기하네.’

어떻게 하계에 실재하는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체가 자연스레 자신의 영혼 속에 녹아들 수 있었던 걸까.

자신이 사용했던 브류나크나 다른 무기들은 모두 여신에서 하사받았거나 자신이 창조해낸 권능으로 하계의 법칙을 비틀어 소환해내는 것들이며, 엄연히 말하면 이 하계에 속한 무기들이 아니다.

반면 자신이 완성한 이 두 자루의 칼날은 하계에 속해 있으면서, 스스로의 제약을 벗어던지고 은현의 영혼에 스스로 각인된 아주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

더욱 기이한 것은, 검이 스스로 모양새를 바꿨다는 점이다.

날카로운 예기를 번뜩이며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의 빛을 발하는 칼날은 처음 제련을 시작했을 당시의 은색 빛을 뿜어내지 않았다.

모양새 또한 오란이 제작하고 남겨두었던 롱소드 계열의 장검이 아니다.

양날이 아닌 외날로 환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심지어 아직 제작하지 못했던 손잡이까지 제대로 구현이 되어 있다.

정말로 자신이 완성한 검들이 맞을까 스스로 확신을 할 수가 없어 의심이 들 정도로 놀라운 변화다.

하지만 두 자루의 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자체는 자신이 주입했던 신력이 맞다.

반신반의하여 붉은빛의 검 손잡이를 손으로 쥐자, 은현은 손가락에 착 감기는 그립감에 더욱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딱 맞는데?’

이윽고 푸른 빛의 검 손잡이 또한, 마치 일평생 자신이 사용해왔던 검을 쥐고 있는 것처럼 딱 들어맞는 일체감을 선사해주고 있다.

마치 두 자루의 검이 자신에게 있어 최적에 가까운 무기의 형태를 스스로 취했다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설마?’

순간 은현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것은 브류나크의 존재다.

이 두 자루의 검들은 신창(??) 브류나크를 모티브로 은현이 완성한 두 자루의 신검(??).

만약 이 검들이 브류나크처럼 ‘에고(Ego)’를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현상도 이해가 간다.

생각을 마친 은현은 곧바로 브류나크를 소환했다.

[엉? 뭐냐. 또?]

소환에 응하여 은현의 손에 쥐어진 브류나크는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곧바로 주위를 탐색하여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싸움 때문에 불렀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곧바로 용건을 물었다.

“이것 좀 봐줘.”

[엉? 어…?]

뒤늦게 은현이 자신의 양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검을 내밀었고, 각각 적색과 청색의 검을 확인한 브류나크가 얼이 빠진 소리를 내었다.

검날이 품고 있는 강력한 신력의 기운은 브류나크도 아주 잘 알고 있는 은현의 신력이다.

아주 가느다란 실처럼 은현과 두 자루의 검이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에 브류나크는 곧바로 은현과 두 자루의 검 사이의 관계를 눈치챘다.

[…이 검들 어디서 났냐?]

“내가 만들었어.”

[…너한테 실망했다.]

“…뭐?”

느닷없이 서운함이 가득한 브류나크의 목소리에 은현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상담을 위해 브류나크를 소환했건만, 어째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날 두고 다른 무기를 쥘 수가 있냐? 니가 그러고도 주인이야?]

은현이 자신을 이용하여 창술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검을 사용한다는 것은 브류나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사용했던 검들은 질 좋은 고급품이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성능 면에서는 브류나크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그렇기에 불만을 느끼고 있어도 은현이 사용하는 무기들보다 더욱 우월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검들은 다르다.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절단시킬 것만 같은 날카로운 예기.

신력을 안에 품고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아를 가진 이 두 자루의 검은 틀림없이 자신과 동급, 아니 그 위의 무기임을 브류나크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너 이거 배신이야! 어떻게 나를 두고 다른 무기를…! 그것도 이렇게 존나 좋아 보이는 걸 만들 수 있냐!]

“…….”

[이런 거 할 수 있었으면 나부터 업그레이드를 시켜야지!]

무언가를 잘못 건드려 발작 버튼을 세게 누르기라도 했는지, 브류나크의 하소연에는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가득 묻어나왔다.

“아니. 내가 언제 널 버린다고….”

[뭐? 너 지금 나 버릴 거냐? 진짜로? 진심이야?]

“아니. 아니라고! 혼자 앞서나가지 마!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너를 부활시키지도 않았어!”

[…그렇지?]

“…지금 뭐하고 계신 거예요?”

요리를 마치고 냄비를 상위로 옮기려던 릴리는 행동을 멈추고는 미묘한 표정으로 은현과 브류나크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을 내버려 두고 다른 여자를 만든 커플의 치정 싸움을 보는 것만 같다.

[야! 저 여자는 또 누구야!?]

“내 세 번째 아내.”

[이, 이 미친 새끼!]

브류나크는 처음 두 자루의 검을 보았을 때보다 더욱 격렬하게 경기를 일으켰다.

[야! 너 저 여자 정체가 뭔지는 알고 만나냐!?]

“알지.”

[이 또라이 새끼가 어떻게 악마를…!]

쿵!

드워프들의 신장에 맞게 제작된 나무 테이블 위에 음식이 가득 담긴 냄비가 거칠게 내리쳐지면서 테이블이 들썩였다.

“식사. 하셔야죠?”

“그, 그래….”

미소를 짓는 릴리의 얼굴에서 싸늘한 위압감이 흘러나와 은현을 당황하게 했다.

릴리에게 있어 자신의 몸에 흐르고 있는 악마의 피는 그녀의 트라우마이기도 한 부분.

다시 부엌으로 향하는 릴리를 뒤로하고, 은현은 수저를 쥐었다.

허해진 배 속을 따뜻하게 채우는 따뜻한 스프를 맛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그러지 마. 좋은 여자야.”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싫어?”

[좋고 싫고의 내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냥…내 몸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인간들 사이에서는 이런 걸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들 한다지?]

“…그렇겠네.”

악마인 아스타로스의 고유 능력인 소멸의 겁화에 창대가 불타면서 존재 자체가 소멸해버렸던 경험은 아직도 브류나크의 기억 속에 생생했다.

브류나크에게 있어서 악마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중간 사이에 끼어있는 은현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고심해봐야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네 여자들 중에는 평범한 여자가 없냐?]

은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브류나크의 질문에 그저 웃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 하계에 속해 있지 않은, 한 차원 높은 신계에 베르단디와의 관계를 듣는다면 브류나크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머릿속으로 궁금증이 떠올랐다.

◆ ◆ ◆

4인분으로는 부족하여 추가로 만든 끼니까지 무려 6인분의 음식을 해치우고, 거기에 못 이겨 릴리와도 이불 속에서 좋은 시간을 보낸 다음 날.

은현은 처음 드워프의 세 부족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부족 회의실에 참석했다.

그리고는 가슴 속에서 자신의 권능으로 창조된 열쇠를 꺼내듯이, 두 자루의 적색과 청색의 검을 소환하여 세 부족의 족장 드워프들에게 선보였다.

“오, 오오오!”

“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이래서 그 대장간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게로군.”

날카로운 칼날과 올곧게 뻗어있으면서도 살짝 휘어져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두 자루의 환도를 보며, 드워프들은 경탄을 터뜨렸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탄성을 내지르는 고몬이나, 칼날이 발하는 매력적인 빛을 보며 흥분해있는 드워프들의 태도는 장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족장 드워프들에게 물었다.

“이걸로 시험은 합격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이미 ‘천일야장’이라는 칭호는 계승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릴리를 통해서 전달받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모든 드워프들을 통솔하는 세 드워프들의 공인만큼 강력한 공신력은 없다.

“하하! 그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크흠! 그때 그대를 무시했던 것은 미안하오. 설마 인간 중에서 이런 뛰어난 기술을 가진 이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조르는 무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은현에게 순순히 사과했다.

대장장이로서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아집에 빠져 은현을 대놓고 무시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이 마을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훌륭한 대장장이이며 부족 하나를 통솔하는 족장이다.

그런 자가 순순히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르가 이렇게 순순히 사과한 것은 그 또한 대장장이로서 은현이 보여준 야금술이 어떤 수준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인으로서, 은현은 존경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후후.”

처음 이 마을을 방문했을 때와 달리, 릴리는 모든 드워프들이 은현을 보고 존경해 마지않는 시선으로 우러러보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기뻤다.

“새로운 천일야장의 부탁을. 우리는 받아들이도록 하겠소.”

처음 도란이 내걸었던 약속.

그것은 천일야장의 시험을 받는다면 도란 자신을 포함한 ‘검은 모루 부족’은 은현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은현 쪽에서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직은 검은 모루 부족만의 협력을 약속받았지만, 은현은 이 성과만을 만족하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슬쩍 도란의 양옆에 위치한 두 드워프들의 반응을 살폈다.

“…으음.”

아직 대답하기를 망설이고는 머릿속으로 고민을 하는 두 드워프들을 보며, 이번엔 은현 쪽에서 치고 나갔다.

“당연히 공짜로 도와달라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겠죠.”

무려 300년을 가까이 햇빛을 보지 않고, 지하 속에만 거주하여 생활하는 난쟁이들을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일인데, 처음부터 은현은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드워프 분들에게 제공해드릴 수 있는 것은 집, 임금, 식자재와 대장간의 건설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것 외에도 드릴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상 이러한 것들은 이미 가지고 있는 드워프들에게 큰 매리트가 되지 못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고몬은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기술이죠.”

“…기술이라고?”

“네. 저와 함께 밖으로 나가주시겠습니까?”

“…흐음.”

세 드워프들은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면서도 은현이 제공할 수 있다는 ‘기술’에 대해서 흥미를 끊지 못하였다.

세 드워프들을 이끌고 미리 물색해둔 큰 공터의 장소로 도착한 은현은 곧바로 앞으로 손을 뻗었고 허공에 생겨난 마법진을 통해서 어떠한 물건을 소환해냈다.

소환된 것은 푸른색 조가 인상적인 거대한 트레일러이다.

지하 마을을 밝게 비추는 마법등의 조명에 비쳐 밝게 빛나는 은색 계열의 금속에 파란 테두리의 거대한 철제로 제조된 트레일러.

그 트레일러를 지탱하고 있는 커다란 고무바퀴들.

이전에 이것을 본 유리아가 경악했던 트레일러, ‘옵티머스’다.

“이건…?”

“바퀴?”

“마력을 이용해서 스스로 굴러가는 구조인가?”

흥미를 보인 족장 드워프들이 눈썰미를 발휘하며 내부 구조를 차근차근 파악해나갔다.

그저 무기 제작에 대해서만 조예가 깊은 것이 아니라,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기술력을 보고 눈을 빛내는 드워프들은 은현의 예상대로 천성이 기술자인 존재들이다.

그저 흥미를 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 시선을 끄는 것은 계획대로 성공한 셈이었지만, 진짜로 드워프들을 낚아 올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배우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로, 미치고 팔짝 뛸 정도로 강력한 임팩트를 가진 기술력을 선보여줄 차례.

“옵티머스. 변형해.”

[명령을 수락합니다.]

주인의 명령을 받아들인 옵티머스가 변형을 개시했다.

“뭐, 뭐야!?”

옵티머스 트레일러의 내부를 흥미롭게 조사하던 고몬이 갑작스레 차체가 떨리기 시작하자 허겁지겁 트레일러에서 떨어져 거리를 벌렸다.

쿵!

마찬가지로 다른 드워프들 또한 경악하며 거리를 벌리고, 변형을 마쳐 공터 위에 한쪽 무릎을 꿇어 몸을 숙이고 있는 강철의 골렘을 보며 경악했다.

“변신했어! 변신했다고!”

“이 골렘은 대체 뭐야! 어떻게 만든 거냐고! 젠장!”

“이럴 수가…!”

경악과 흥분으로 가득해져 걸걸한 목소리를 내지르는 드워프들의 반응은 은현의 예상보다도 더욱 격렬하다.

은현은 속으로 준비해둔 이 임팩트 있는 한방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음을 확신했다.

“어떻습니까? 이 골렘의 제작 기술. 배우시겠습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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