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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불멸자-521화 (504/730)

〈 521화 〉 521. 천일야장(?一??)(4)

* * *

망치를 한번 쥐면 손이 찢어질 때까지 놓지 않는 놈.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골렘처럼 자동으로 망치를 휘두르기만 반복하는 놈.

밥도, 휴식도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그저 망치만을 두들기는 놈.

그냥 미친놈.

마을에 방문한 오래간만의 인간 손님을 수식하는 용어들은 하나같이 기괴했다.

방문하고 체류하고 있는지 약 2주의 시간이 지난 인간 손님에 대한 소문의 내용은 몹시 간략하다.

아침이 되어 일과를 시작하게 되면, 모루 위에 새빨갛게 달구어진 금속을 고정하고 망치로 두들긴다.

식힌 금속을 또 화로 속에 집어넣어 달구고, 다시 두들기는 과정을 반복할 뿐인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금속 제련의 과정.

하지만 이 과정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 번을, 스무 번을 넘는 횟수로 반복을 한다면 이 간단한 이 작업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체력적인 한계는 물론이고, 그것을 장시간 반복할 수 있는 것에는 놀라운 정신력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

“독종이라던데. 아주.”

술꾼 드워프 친구의 이야기를 들은 오란은 가게를 나와 홀로 밤길을 걸었다.

몇 통이나 되는 양의 맥주를 들이켰음에도 취기가 전혀 올라오지 않았던 차, 머릿속으로 술꾼 드워프가 해주었던 인간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곳인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인간에 대한 흥미가 생겨 그가 머무르고 있다는 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그다음부터는 소문이 퍼져있는 인간의 위치를 찾기는 아주 쉬웠다.

까아앙!

저녁 시간이 되면은 대부분 시설이 소등하여 어두운 가운데, 불이 켜져 있는 단 한 군데만이 청아한 금속음을 흘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곧바로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 오란은 작은 대장간에서 망치를 휘두르며 금속을 두들기고 있는 건장한 인간 남성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까아앙!

“…….”

있는 힘껏 모루 위의 금속을 내려치는 금속음이 오란의 귓가를 때렸다.

오란은 조용히 대장간의 입구에 서서 유심히 금속을 제련하고 있는 인간의 뒷모습을 살폈다.

대량의 땀을 흘려 잔뜩 젖어있는 민소매 셔츠 위로 나타난 어깨와 팔의 근육은 잘 단련된 것으로 보아 범상치 않은 인간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하지만 오란에게는 그런 것은 눈앞의 등을 보이는 인간이 어떠한 인간인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엉망이군.”

오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인간은 그저 있는 힘껏 망치를 내리치며 금속을 두들기고 있을 뿐, 저것은 야금술 따위가 아니다.

마치 금속에게 화풀이를 하며 두들겨 패는 모양새와 비슷한 저 행위는 순식간에 오란의 기분을 짜증 나게 했다.

오란의 목소리를 들은 인간이 멈칫거리며 망치를 휘두르던 것을 멈추었고, 뒤를 돌아보았다.

“…예?”

조그마한 키에 비해 우락부락한 체구를 가지고 수염이 덥수룩한 오란의 모습을 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멍청한 표정을 짓던 인간이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이 시간에 누군가가 이 장소를 찾아와 인간에게 말을 건 것은 지금까지 오란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가 누군지 묻기 전에, 네 녀석의 소개부터 해라.”

“…은현이라고 합니다.”

“오란이다. 네놈….”

오란은 천천히 은현에게로 다가와 그의 얼굴을 보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 보았다.

“지금 야금술을 얕보고 있는 거냐?”

“예?”

느닷없이 날아 들어온 매서운 질문에 은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망치를 두들기고 있었는데, 은현을 올려다보고 있는 드워프는 마치 극심한 모욕을 당했다는 것처럼 그를 쏘아보고 있다.

마치 입을 잘못 놀리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망치로 자신의 머리를 깨버릴 것만 같은 강력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에 더욱 당혹스러웠다.

“금속을 제련하는 건 무척이나 섬세한 일이다. 네 녀석이 하는 것은 그저 망치로 쇠를 두들기고 있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제련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이런 멍청하고 무식한 놈을 봤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되묻는 말을 들은 오란이 펄쩍 뛰며 버럭 화를 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망치를 가져와 그의 머리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인간인 은현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신장의 차이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열이 뻗쳤다.

“네놈이 제련한 금속을 봐라!”

오란은 부집게를 손에 쥐고 모루 위에 놓여 있던 철을 집어 은현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보이느냐!? 금속의 정중앙만이 파이고, 전체적인 면이 울퉁불퉁하며 테두리 부분은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지!”

그것은 은현이 반복했던 망치질이 금속 곳곳을 고르게 두들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딴 형편 없는 실력으로 도대체 무엇을 만들겠다는 거냐! 이런 건 그냥 고철덩이에 불과한 쓰레기에 불과해!”

카앙!

거칠게 부집게 채로 구석에 내팽개쳐버리자, 금속음이 대장간 내부에 울려 퍼지며 오란의 노호성이 계속 이어졌다.

“쓰레기를 만드는데 재료와 시간을 이렇게나 낭비하다니! 대장장이를 관두지 않겠다면, 아예 그 손을 자르기 전에 당장 이 마을을 떠나!”

오란은 거친 말을 계속해서 늘어놓으며 은현을 압박했다.

그가 화를 내는 이유에는 당연히 은현의 제련 기술이 너무나도 형편이 없었던 것도 있지만, 약간의 기대를 하고 이곳에 찾아왔던 자기 자신에 대한 화풀이이기도 했다.

술꾼 친구의 이야기를 안주 삼아 즐겁게 술을 마시고 곧바로 집에 들어가 잠을 잤으면 이렇게 기분을 잡칠 일도 없었을 텐데, 굳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은현이 있는 곳을 찾아왔던 것에 대한 시간과 노력의 낭비에 깊은 짜증을 느꼈다.

“젠장…. 그냥 집에 가서 잠이나 자면 될 것을….”

그렇기에 지금 오란의 이 언행은 그저 스트레스가 쌓인 것을 풀기 위한 히스테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 알려주십시오.”

“뭣이?”

“제대로 된 야금술이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된 금속의 제련 방법은 어떤 것인지, 저에게 가르쳐주십시오.”

“…….”

오란은 당당하게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쳐달라는 요구를 하는 은현을 바라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번에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한 것은 도리어 오란 쪽이다.

“…나보고 네 녀석에게 대장장이의 기술을 가르치라고?”

“네.”

“…내가 왜?”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만.”

어깨를 으쓱이며 쓰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은현의 태도가 너무나도 태연해서, 오란은 곧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뒤늦게 은현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행색을 살폈다.

이 대장간 안에서 몇 시간을 화로 앞에 있었는지, 검게 그을린 그의 의복과 피부들은 이제 막 이곳에 온 오란마저도 정상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그저 망치로 철을 두들기기만 하는, 아무런 생산성도 없는 행위를 몇 시간 동안, 그것도 며칠을 반복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어서 오란의 머릿속에 눈앞의 은현이라는 인간이 어떠한 녀석인지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도 재능이 없는 놈이거나, 그냥 미친놈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리고 그중 한쪽은 극도로 싫어하지만, 이외의 다른 한쪽은 오란이 좋아하는 부류이기도 하다.

그 또한 장인으로서 야금술에 자신의 인생 대부분을 바친 드워프이며, 야장으로서의 작품을 논할 때는 미친 자로 취급을 받을 정도로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 나에게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심지어 은현은 고개를 숙이거나 부탁을 하는 태도도 아닌 것이 몹시 당돌하다.

‘나의 실력이 그렇게 불만이라면 한번 직접 키워봐라.’라고 말을 하는 그 태도가 몹시 아니꼬웠다.

천일야장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최고의 드워프로서 자신에게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많은 드워프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겨우 인간 따위를 가르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란은 거절을 할 마음이 들지 않는 자신의 기분이 몹시 신기함을 느꼈다.

“…따라와라.”

오란은 은현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얼마나 땀에 절어있는지 냄새가 가득한 옷을 처리할 방법이 없어 고심했지만, 다행히도 은현은 무슨 신비로운 수단을 썼는지 허공에서 곧바로 새로운 의복을 꺼내어 갈아입었다.

“…그건 마법 같은 건가?”

“비슷합니다.”

“신기한 능력이군.”

오란의 감상은 그것뿐이었으며 별다른 것을 캐묻지는 않았다.

엘프들이 정령술이라는 신기한 수단을 활용하거나 인간들 사이에서 마법이라는 것이 발전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그것이 자신의 관심 분야였던 야금술과는 연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옷을 갈아입고 테이블 위에 앉은 오란과 은현은 그제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네놈은 이곳에 왜 왔지? 엘프들 사이에서 몸을 의탁하고 있는 인간이라고 들었는데.”

“…그냥 나왔습니다. 언제까지 그곳에 의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왜 야금술을 배우려 하는 거냐.”

“딱히 배우고 싶어서 배우려는 것은 아닙니다.”

“…뭐라고?”

오란은 모호한 은현의 대답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드워프 마을의 주민들에게 있어 야금술은 이미 그들의 목숨 일부이며, 위를 향하기 위한 목표이다.

“아, 야금술을 무시하거나 그런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뭐냐.”

“…….”

은현은 두 눈을 꼭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아주 소중한…친구이자, 누이 같은 분, 한 분을 또 잃었습니다.”

“…….”

그것은 은현이 엘프의 숲을 나오게 되었던 계기 중 하나였다.

게다가 ‘또’라는 표현을 입에 담을 때 은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과 동시에 그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져가기 시작했다.

“가끔가다 그분이 떠오릅니다. 그분만이 아니라…. 동료, 스승님. 파트너의 얼굴들이 계속 떠올라요. 억지로 밀어 넣으려 해도 그 얼굴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현성, 시에테, 브류나크, 실비아, 엘리시아 등 이외에도 많은 이들의 얼굴.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훈련할 때도 떠오르는, 자신과 함께했으나 자신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간 많은 이들의 얼굴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는 것은, 그리움의 감정을 해소할 수도 없고 쌓여만 가는 은현에게 있어 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다.

‘…뭐냐. 이놈은?’

일그러졌던 얼굴은 점점 공허해져 마치 정신이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로, 마치 몸은 멀쩡한데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영혼이라는 것이 쏙 빠져나가는 것 같다.

자신보다도, 인간으로서도 굉장히 젊은 편에 속하는 은현의 외모와는 달리, 그가 짓는 표정은 수많은 사선과 고난을 넘어와 피로에 젖어있는 노장(?)의 모습과 닮았다.

살면서 이 정도로 정신이 피폐한 놈은 처음 보는 오란은 은현을 보며 당혹스러운 감정을 애써 숨겼다.

“그래서…. 일부러 몸을 움직였습니다. 피로에 절어서 꿈조차도 꿀 수 없는 깊은 잠에 빠지고 싶어서.”

아침에 일어나서 망치를 두들기고, 저녁까지도 쓰러지기 직전까지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금속을 두들기던 때만큼은, 몸이 힘들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만큼은 실비아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은현이 단련하고 있었던 것은 철 따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철처럼 단단하게 제련시키는 것이다.

“손을 펴봐라.”

“예? 손은 왜….”

“잔말 말고 어서.”

오란은 은현의 양손을 붙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손바닥을 응시했다.

망치를 쥔 오른손은 살갗이 찢겨 나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근 2주 동안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망치질에 혹사당한 손바닥을 보며 혀를 찼다.

“미련한 놈.”

그리고 오른손만큼은 아니지만, 굳은살이 박인 왼손 또한 틀림없는 검을 잡는 검사의 손이다.

“한 가지 미리 말해두지. 야금술은 네놈의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을 치기 위해 마련된 도피처 따위가 아니다. 네놈이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어찌 되었건 네 녀석이 한 일은 나를 비롯한 대장장이들을 비웃는 행동이었다는 건 변하지 않지.”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직접 가르쳐보라는 네놈의 그 당돌한 이야기도 틀리지는 않다.”

“…예?”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순순히 고개를 숙여 사과하려던 은현은 느닷없이 180도 유턴하는 대화의 흐름에 멈칫하며 오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흥. 감히 금속을 제련하면서 다른 생각을 품었단 말이냐? 건방지게. 잘 들어라.”

오란은 코웃음을 치며 주먹으로 은현의 가슴을 툭 건드렸다.

“대장장이는 체력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가슴 속에 담겨있는 마음과 열정을 비롯한 모든 감정의 혼을 무기 안에 모조리 쏟아부을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네놈은 그저 그것을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는 도피처로써만 활용하고 있었을 뿐이지. 그러니 그딴 쓰레기 같은 고철덩이밖에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정말로 미련한 짓이 따로 없다.”

오란은 그 방식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은현의 행동은 그저 대장장이에게, 자신에게 있어 모욕적인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

“…오란의 말이 맞습니다.”

은현은 딱히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망치를 휘두른 것은 아니었지만, 정론을 늘어놓는 드워프의 말에 반박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의 그 글러 먹은 정신 상태부터 고쳐줄 테니, 내일부터 당장 나의 대장간으로 출근해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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