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19화 (502/730)

〈 519화 〉 519. 천일야장(?一??)(2)

* * *

“천일야장의 시험을 받으시오.”

담담하게 내건 도란의 조건을 들은 조르가 다시 한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쾅!

두툼한 드워프의 근력이 그대로 실린 주먹이 테이블 내리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도란에게 소리친다.

“제정신인가!?”

“…….”

“어떻게…. 어떻게 인간에게 그 시험을 치르라고 할 수 있는가!”

“자격은 충분하오. 천일야장의 표식을 가져왔으니.”

“…흐음.”

잔뜩 분개하는 조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방안에 가득 울려 퍼지고 있음에도, 도란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듯 팔짱을 끼고 신음을 내뱉는 고몬은 둘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조르는 자신의 말에도 표정의 변화가 없는 도란을 보며 더욱 얼굴을 붉혔다.

“그는 인간이다! 그 자리는 우리 종족 안에서 가장 뛰어난 드워프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자리이자 칭호지!”

“아니. 사실 도란, 이 친구의 말에 모순은 없네.”

둘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은 팔짱을 끼며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고몬이다.

조르는 자신과 달리 도란 쪽의 의견에 동조하는 고몬을 보며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고?”

조르는 도란에게 향했던 시선을 옮겨, 고몬을 쏘아보며 되물었다.

“‘천일야장’이라는 칭호는 이 마을 안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에게 주어지는 칭호일세.”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 드워프들 중에서…!”

“지금 이 마을 안에는 우리 드워프만이 아니라, 저 친구 또한 있지 않은가.”

“하! 무슨 개 같은 소리를…!”

“천일야장의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중에는 꼭 그 종족이 드워프여야만 한다는 규율은 없네. 그러니 저 친구 또한 시험을 받을 자격이 있는 셈이지.”

경위가 어찌 되었건, 은현은 표식을 소지한 자로서 드워프들의 명예로운 칭호인 천일야장을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하지만 모든 드워프가 그것을 납득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조르는 천일야장의 칭호를 이어받는 시험을 치는 이가 드워프가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을 매우 분개하고 있었다.

“그것을 어찌 인간에게 양보하려 드는가! 자네들은 수치심도 없는 건가!?”

“그렇게 자신이 없는가?”

“…뭐라고?”

조르는 자신에게 건 고몬의 도발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칠 것만 같은 험악한 시선을 받아들인 고몬은 아까 전 자신에게 싸움을 걸었던 것에 대한 복수라도 했다는 듯 만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 친구가 대장장이로서의 실력이 형편없다면, 당연히 시험을 포기하거나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 아니면 설마 성공할까 걱정을 하는 건가?”

“…….”

조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몬을 노려보기만 했다.

“저 인간이 자네보다 대장장이로서도 더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것 같아서?”

“그 입 다물어라!”

“흥. 어쨌든 나는 찬성일세. 나는 천일야장의 칭호보다, 저 친구의 능력이 더 궁금하군.”

“…….”

시선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세 드워프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은현을 본 고몬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도란의 제안에 찬성의 의사를 표시했다.

이로써 세 부족 중 두 부족이 은현에게 시험의 자격을 주는 것에 찬성한 상황.

설령 조르가 반대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결정이 변하지는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은현의 선택뿐.

침묵을 지키며 두 부족의 족장 드워프들이 은현을 바라보자, 지금껏 계속해서 불만을 표출했던 조르 또한 입을 굳게 닫으며 은현을 노려보았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은현은 지금껏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호오. 정말인가?”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는 표정으로 답하는 은현의 말에 고몬이 더욱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당장이라도 은현에게 달려가 자신의 얼굴을 후려칠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조르의 위세와 압박감은 ‘붉은 화로 부족’의 부족원들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눈앞의 인간은 그것을 태연히 받아들였다.

과연 장인으로서의 기개와 실력은 있다는 뜻일 터.

무엇보다 은현은 이 시험을 받고 이후에 ‘검은 모루 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상, 도란의 제안을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쳇! 마음대로 해라!”

은현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조르는 곧바로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하하! 기대되는군! 그럼 나도 이만 가보겠네!”

고몬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회의실을 나가자, 방안에는 은현과 릴리, 도란 셋만이 남았다.

“…….”

“…….”

은현과 도란 서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서로를 응시하고만 있어 방안에는 어색한 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 정적의 기류를 깨로 먼저 말을 건 것은 도란이다.

“마을에 체류하는 동안 묵을 곳은 찾았소?”

“아니요. 경비로부터 곧바로 이곳으로 안내를 받았던지라, 따로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한동안 우리 부족의 거처에서 머무르시오.”

“…알겠습니다.”

“음. 안내하겠소.”

은현은 도란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는 곧바로 회의실을 나온 셋은 도란의 안내를 받아 은현과 릴리를 검은 모루 부족의 거처로 이동했다.

“아까는 사과하겠소.”

“무엇을 말입니까?”

“붉은 화로 부족의 족장이 했던 무례한 언사요. 그는…조금 성정이 불같고 이번 일에 대해서 불만을 많이 느끼고 있는 터라.”

앞장서 걷고 있는 도란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언행은 몹시 정중하고 예를 갖추고 있다.

그 모습은 자신의 등장으로 큰 불만을 품고 있는 조르라는 드워프와는 극과 극인 정반대의 태도이기 때문에 괴리감이 엄청났다.

어째서 도란은 일면식도 없는 자신에게 이렇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은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떠오른 의문들은 한둘이 아니었지만, 일단은 현재 드워프 마을의 상황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정리한 은현은 생각을 마치고 도란에게 물었다.

“제가 이 마을을 찾아온 것이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있습니까?”

“문제가…없지는 않지. 아니. 그대가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문제랄 수 있겠군.”

“늦게 찾아온 게….”

찾아오는 것이 너무 늦었다.

그것은 마치 드워프들이 은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분은…주인님께 무언가를 바라고 계셨던 게 아닐까요?

순간 아까 릴리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 은현은 슬쩍 릴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후후.”

은현의 생각을 알아차린 릴리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며 미소를 지었다.

‘제 말이 맞았죠?’라는 말을 얼굴로 표현하고 있는 릴리를 보며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란은…내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구나.’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자신이 죽어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데도, 천일야장의 표식을 맡겨가면서까지 자신이 돌아올 때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은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뭘 해주길 바랐던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이 은현의 가슴 속에 차올랐다.

은현은 오란에게 야금술을 배웠을 당시, 특별한 대화를 나누었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둘 사이에 오간 대화는 모두 대장장이로서 철과 망치에 관한 대화뿐이었으며 그 이외의 것은 서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금기시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치 그것 이외에는 전혀 필요 없다는 듯이 오로지 기술의 연마만을 몰두했다.

자신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쳤던 주현성이나, 검술을 가르친 시에테나, 다양한 마법을 가르쳤던 마녀들과는 소통의 방식 자체가 너무 달랐다.

그렇기에 이제 와 생각해보니 은현은 오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뭘 생각했는지, 자신에게 무엇을 바랬는지, 어째서 인간인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쳤는지, 자신에 대한 것이었음에도 아무것도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은현은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해서 도란에게 물었다.

“‘천일야장의 표식’이란…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앞을 걸어갔던 도란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멈췄다.

뒤를 돌아 고개를 올려 물끄러미 은현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오?”

“모릅니다. 저는…. 오란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늦게 찾아온 것이, 어째서 드워프들의 불만을 사게 된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나의 조부께서는…. 정말로 무책임한 족장이셨구려.”

씁쓸함을 가득 담아 중얼거리는 도란의 얼굴은 몹시 복잡한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윽고 은현에게 입을 열어 그의 물음에 답했다.

“‘천일야장의 표식’은 말 그대로 선대 천일야장에서 후대로 선발된 천일야장에게 계승되는 명예의 상징이오. 그리고 천일야장이라는 칭호를 거머쥐기 위한 단 한 명의 도전자에게 수여되는 징표이기도 하오.”

“그러면 이 징표가 저에게 있었다는 건….”

설명을 들은 은현은 머릿속으로 떠오른 최악의 상상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몇몇 드워프들이 적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았는지, 조르라는 드워프가 그렇게 분개했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맞소. 나의 조부이신 오란의 이후로는 현재 ‘천일야장’이라는 명예로운 자리는 계승되지 못하고 그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져 있는 상황이지.”

그 기한이 무려 300년이 넘는다.

천일야장이라는 자리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표식이 필요한데, 당시 천일야장이었던 오란이 그 표식을 은현에게 넘겨버렸으니, 그가 죽은 이후에도 그 자리를 도전하지도 못하고 아무도 계승하지 못하게 된 드워프들의 원성이 가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신에게는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험의 자격을 드워프도 아닌 인간이 갖추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불만일 수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아마도 이 사태를 만들어버린 오란의 후손인 도란은 자신의 부족 원을 비롯한 다수의 드워프들에게 많은 원성을 들었을 터.

머리가 몹시 아파진 은현은 왠지 모르게 마음속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득해져 고개를 숙여 정중히 사과했다.

“아니. 그대의 잘못이 아니오. 모두 나의 조부가 벌인 일이지. 그 표식의 의미를 전혀 몰랐다면, 이렇게 늦게 찾아온 것도 이해가 가오. 우리는…. 인간의 수명이 몹시 짧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부가 돌아가신 이후,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소.”

어째서 인간인 은현이 자신의 종족인 드워프보다 불로장수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단지 도란은 이제라도 은현이 드워프의 마을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오늘 하룻밤은 부족 안에 빈집이 있으니 그곳에서 묵고, 시험은 언제쯤 볼 수 있겠소?”

“내일 곧바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소.”

◆ ◆ ◆

다음 날.

은현은 뒤를 따라오는 릴리와 함께 검은 모루 부족의 대장간을 찾아왔다.

천일야장의 시험을 보기 위해, 300년 동안 그대로 보존되어오던 오란의 대장간의 입구에 멈춰선 도란은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안으로는 그대 혼자만이 들어갈 수 있소. 그대 혼자만이 치러야 하는 이 시험은 우리도 모르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누구의 방해도 받을 수 없으니, 동행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주인님이 나오실 때까지.”

릴리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에서 대기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도란이 더는 설명할 것이 없다는 것을 표정으로 말하자, 은현은 짧게 목례를 하며 오란의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은현이 대장간 안으로 진입하자, 두꺼운 철문은 드워프들에 의해서 다시 닫혔다.

그가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말을 하기 전까지 이 문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도란의 설명을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전혀 바뀌지 않았네.”

자신이 앉아서 쉴 새 없이 망치를 두들겼던 모루의 위치.

주변에 놓여있는 공구 상자.

화로에 불을 지피기 위해 쌓여있던 수많은 장작.

오랜만에 와보는 오란의 대장간은 몹시 낯설면서도 그리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검은 모루 부족원들에 의해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던 만큼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음?”

내부를 둘러보던 은현은 이윽고 예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낯선 상자를 하나 발견했다.

300년 전의 이곳을 기억하고 있던 은현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자다.

상자를 앞으로 끌어내고 앞쪽의 잠금장치를 확인한 은현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300년 동안 아무도 도전하지 못했다는 건 이런 의미였나.”

잠금장치 부분에는 천일야장의 표식이 딱 들어맞는 홈이 패 있었으며, 그 옆에는 표식에 새겨진 것과 같은 똑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300년 전에 표식의 문양이 아직 드워프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렇게 오란이 잠금장치에 새겨두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아무한테나 주면 될 것이지. 주위 드워프들한테 피해나 끼치고…. 이런 걸 왜 저한테 넘겼냐고요.”

이제는 들을 리가 없는 오란에게 작게 불만을 토로하며 표식을 홈에 끼워 넣었다.

아마도 이 상자 안에 시험의 과제와 관련된 것이 들어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으며 상자를 개봉했고, 내용물을 확인한 은현은 얼굴을 굳혔다.

“이건…날?”

상자 속에 들어있던 것은 은색의 빛으로 빛나는 두 자루의 검날이다.

손잡이도 없는 그저 날 뿐인 두 자루는 그저 바라만 보았을 뿐인데도 빨려들어 갈 것만 같은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누군가의 열정이, 노력과 땀이 그대로 담겨 있던 것만 같은 이 상자의 내부를 보며, 은현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두 자루의 날과 함께 들어있는 하나의 철판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철판을 꺼냈다.

판에 새겨진 글씨를 알아본 은현은 그것이 곧바로 오란의 유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니 네가 완성시켜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