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화 〉 518. 천일야장(?一??)(1)
* * *
“이, 이쪽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적잖게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 드워프는 은현과 릴리를 어떠한 장소로 안내했다.
아직 수염도 나지 않아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소년 드워프는 살면서 인간이라는 것을 처음 보게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신기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고개를 돌리고, 힐끔 위를 올려다보며 두 사람을 관찰하기를 반복했다.
“응?”
이윽고 아래서 올려다보는 소년 드워프의 시선을 느낀 릴리와 눈을 마주쳤고, 릴리가 미소로 화답해주며 고개를 살짝 갸웃하자, 소년 드워프는 황급히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귀까지 빨개져 시선을 피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이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한창인 나이 때의 아이들과 비슷해서 릴리는 웃음이 나왔다.
순간 자신이 돌보고 있던 보육원의 아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후후.”
“왜 그래?”
“그냥…보육원의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그렇구나.”
은현은 훈훈한 미소를 짓고 있는 릴리를 보며 덩달아 미소지었다.
이어서 릴리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은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인님이 가지고 계셨던 그거…. 정말 괜찮은 건가요?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많은데요.”
“…글쎄.”
은현도 쓴웃음을 지으며 애석한 표정을 드러냈다.
“나도 이게 ‘천일야장(?一??)의 표식’이라는 건 지금 처음 알았어.”
운전하면서 릴리에게 드워프라는 종족과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친 오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던 것처럼, 은현도 떠날 당시 오란에게 받았던 이 금속의 정체는 알지 못했다.
그저 다시 돌아왔을 때, 이 표식을 드워프들에게 보여주라는 말만을 했을 뿐이다.
이 금속을 본 드워프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경악과 놀라움, 누군가는 분노까지 드러냈던 것을 생각하면 오란은 자신에게 터무니없는 것을 넘겼다고 은현은 짐작했다.
“도대체…무슨 생각으로, 뭘 준 건지….”
이상한 것을 떠맡았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일야장’이라는 건 뭘 뜻하는 건가요?”
“이 드워프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에게 주어지는 칭호라고 들었던 적이 있었어.”
‘천일야장(?一??)’이란 하늘에 도달한 단 한 명의 대장장이라는 뜻으로, 이 마을 안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를 가리키는 영예로운 칭호다.
“오란은 이 마을 안에 있는 여러 부족 중 가장 뛰어난 야금술을 가진 드워프였지.”
그래서 천일야장의 칭호를 가진 드워프가 어쩌다가 마을 안으로 들어온 인간에게 야금술을 가르치겠다는 것에 대해 다른 드워프들이 난리를 피우며 반대하는 사건도 있었다.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오란은 자신의 결정을 꿋꿋이 밀어붙였으며 은현을 가르쳤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은현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며 지금도 풀리지 않는 영원한 의문이다.
“그런 칭호와 함께 이런 표식이 계속해서 후대에 전해지고 있었구나.”
그때 당시 드워프의 문화와 사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은현은 오란이 건네준 이 망치 문양이 새겨진 금속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대체 300년 전의 오란은 어째서 자신에 이 표식을 넘긴 것일까.
“그분은…주인님께 무언가를 바라고 계셨던 게 아닐까요?”
“나한테? 오란이? 하하, 그럴 리가.”
은현은 말도 안 된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곧바로 릴리의 말을 부정했다.
“내 야금술은 드워프들에 비하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어.”
금속을 다루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이었던 자신이 그나마 1인분의 구실을 할 수 있는 대장장이로서 거듭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날짜와 계절이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도 알 수도 없는,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이 지하 속에서 그저 수없이 망치를 두들겼다.
“그런 나에게 오란이 뭔가를 기대했을 리가 없잖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은현은 이 드워프의 마을에서 살면서 자신이 여신의 사도라는 특별한 비밀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여신의 권능으로 다른 인간들보다 육체의 노화가 더디다는 특이점은 있었지만, 원체 인간과의 교류가 적었던 드워프들은 은현의 그 점이 평범한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대장장이의 기술을 쌓기 위해 몸이 가는 대로 흐름에 맡기어 생활을 해왔다.
“…주인님.”
릴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은현의 귀를 잡아당겼다.
“…릴리?”
“저라면, 아무런 미래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전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동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은현에게 야금술을 가르친 오란의 행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이 되어 버린다.
“주인님은 가끔가다 이상한 곳에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하세요.”
“…그렇네.”
은현은 쓰게 웃으며 릴리의 말을 달게 받아들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쳤던 오란의 행동과 말들은 하나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투성이다.
자신에게 ‘천일야장의 표식’을 맡긴 것 또한 분명히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터.
“그리고 또 그런 식으로 주인님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세요. 만약에 이 자리에 베르단디님이나 일리아나님이 계셨다면, 또 꾸중을 들으셨을 거예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은현의 정신 상태가 조금씩 개선이 되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가끔 과거의 인연과 사건이 얽힐 때의 은현은 이런 어리숙한 부분이 조금 존재했다.
릴리의 말대로 베르단디나 일리아나가 지금의 은현을 보았다면 또 한소리를 했을 것이 분명하다.
“혼내줘서 고마워.”
은현은 새삼 자신의 정신을 지탱해주는 베르단디와 아내들의 존재를 다시금 실감하여 웃음을 지었다.
곁에 누군가가 계속 있어 주면서 자신을 지탱해준다는 것이 몹시 든든하다.
실비아가 죽고, 엘프의 마을을 떠나면서 자신의 사명을 자각함과 동시에, 가슴 속에 쌓여있던 묵은 감정들을 모조리 털어버리기 위해서, 은현은 오로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몸을 쓰기 위해 망치로 쇠를 두들겼다.
카아앙!
쇠를 두들기는 망치 소리와 뜨거운 화로의 열기로 가득한 길거리를, 소년 드워프의 안내를 받으며 은현과 릴리가 도착한 곳은 마을의 정중앙에 있는 거대한 건물이다.
“이, 이곳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아직도 긴장이 덜 풀렸는지 어린 드워프 소년은 안내를 마치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황급히 떠났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사라진 드워프 소년의 행동에 작게 웃음을 짓고는 은현이 손잡이를 쥐어 문을 열면서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예전에는 이런 건물은 없었는데, 내가 떠난 이후 지어진 건물인가?”
“…천장이 조금 낮네요.”
내부로 진입하자마자 릴리는 조금만 위로 점프해도 머리가 닿을 것만 같은 천장의 높이에 당황했다.
걷는 데 크게 지장은 없었지만, 평소 사용했던 건물들에 비해 낮은 천장은 굉장히 낯설다.
“그야 드워프들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니까.”
내부 시설의 너비와 높이도, 모두 드워프들의 기준으로 맞춰 건설되는 것이 당연하다.
은현도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는 이 부분에 대해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낯설었다.
“…인간이다.”
“정말로 인간이?”
“저 인간이 ‘천일야장의 표식’을 가져왔다는 게 사실인가?”
“그럼 300년 전의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고?”
“크흠.”
어느샌가 소문을 듣고 은현을 보기 위해 몰려온 드워프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은현과 릴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을 관찰하고 있는 드워프들이 터준 길은 안쪽의 어떤 방을 가리키고 있었기에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침내 그 방앞에 도달하여 발걸음을 멈춘 은현은 방 안에서 세 명분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지고 온 ‘천일야장의 표식’의 등장으로 인해 모인 드워프들일 것이라고 짐작하며 방문을 열었다.
“““…….”””
중앙에 배치된 커다란 ‘ㄷ’형태의 테이블에 한 자리씩을 차지한 세 드워프들은 방안으로 들어오는 은현을 보며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는 정말로 인간이라는 사실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누군가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린 표정을, 마지막 누군가는 담담하게 은현과 시선을 마주하며 은현과 릴리를 관찰했다.
세 드워프 중 은현이 주시한 것은 중앙의 자리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드워프다.
‘닮았네.’
검은색 수염과 이목구비가 300년 전의 오란을 떠올릴 정도로 닮았기 때문에, 은현은 그가 오란의 손자라는 것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정말로…인간들이군!”
“크흠!”
신기함과 감탄이 섞인 말을 흘리는 왼쪽 드워프의 말이 심히 불편했는지 반대편 오른쪽 자리에 앉아있던 붉은 색 수염의 드워프가 심기가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 와중에 중앙에 있는 검은색 수염의 드워프가 입을 열었다.
“엘프의 소개로 우리의 마을을 방문한 인간들이라고 들었소.”
“그렇습니다.”
“나는 마을을 이끄는 세 부족 중 하나인 ‘검은 모루 부족’의 족장, 도란이라고 하오.”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시작하는 도란을 시작으로, 양쪽에 위치한 두 드워프들도 이어서 입을 열었다.
“나는 ‘황금 망치 부족’의 족장! 고몬라고 하네!”
“…‘붉은 화로 부족’의 족장, 조르라고 한다.”
각양각색으로 자신들의 소개를 한 세 드워프의 인사에 맞추어 은현과 릴리도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은현이라고 합니다.”
“주인님을 모시고 있는 릴리라고 합니다.”
“…음.”
작게 고개를 끄덕인 도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의 마을을, 우리 종족을 찾은 용건이 무엇이오?”
“그건….”
은현은 자신이 온 목적을 설명했다.
인간들의 왕국 하나가 사령술사와 전 영웅이 포함된 소수 세력에 의해 멸망한 사건부터, 그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언데드로 전락하여 점점 그 피해와 규모를 늘려나가고 있다는, 현재 대륙 전체의 상황과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드워프들에게 힘을 빌리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엘프는 저희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여왕께 소개장을 받아 이곳을 찾아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의 과정입니다.”
“흐음…. 그 숲의 길쭉귀들이 그런 결정을….”
고몬은 드워프들만큼이나 폐쇄적인 그 성향을 버리고 인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협력하기로 선택했다는 소식을 듣고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엘프들에게 있어 은인이라는 눈앞의 이 인간이 믿음직한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륙의 전체적인 상황이 좋지 못하더라도, 자연에 대해 깐깐하기 그지없는 그 숲의 종족이 협력의 의사를 내보였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하지만 다른 드워프들이 모두 ‘황금 망치 부족’의 족장인 고몬처럼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나는 반대다. 인간을 믿을 수는 없어.”
“이보게. 조르. 지금은 인간을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닐세. 엘프들이 인간과 손을 잡아야 할 정도로 지상의 상황이 좋지 않은데….”
“흥! 마수나 언데드들이 얼마나 오던 드워프들의 기술력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면 너희 ‘황금 망치 부족’은 너희들의 기술에 자신이 없는 거냐!?”
느닷없이 싸움을 걸어오는 조르의 언성에 고몬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놈이 또 말을 참 예쁘게도 하는군! 자신이 없긴 누가 없어! 내 망치에 대가리를 한번 깨져봐야 죄송하다고 할 텐가!”
“그만!”
고몬이 자리를 박차고 테이블을 넘어 조르에게로 달려들려던 순간, 생각에 잠겨 있던 도란이 일갈하여 두 드워프들을 제지했다.
걸걸한 목청이 방안을 가득 채워 울려 퍼지자,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았던 릴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아직 회의는 끝나지 않았소. 싸우려거든 회의가 끝난 다음에 우열을 가리시오.”
“…끙.”
“…크흠!”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는 두 드워프들의 사이에서 도란은 다시 은현을 주시하며 물었다.
“천일야장의 표식을 가지고 왔다고 들었소. 사실이오?”
“사실입니다.”
은현은 손에 쥐고 있던 망치 문양이 새겨진 은패를 다시 들어 올려 세 드워프들에게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리던 두 드워프들도 표식을 확인하자 각자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정말로….”
“어째서…. 천일야장께서는 어째서 저 표식을 인간에게…!”
분개하는 붉은 수염의 드워프, 조르의 반응이 몹시 격하다.
마치 자신이 아닌 인간인 은현이 선택을 받은 것만 같은 이 상황에 격한 질투와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만 같다.
중앙에 있던 도란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백은발에 적안의 눈…. 정말로 유언대로군. 그대가 은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요?”
“…맞습니다.”
은현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도란의 질문에 긍정했다.
자신의 외관을 알고 있다는 뜻은, 표식을 넘긴 오란이 그의 후대에게 자신의 외관을 설명하면서 표식을 가지고 이곳을 다시 찾아올 것이라 예상했다는 뜻이 된다.
“우리 ‘검은 모루 부족’의 부탁을 들어 준다면, 그대의 부탁을 수락하겠소.”
“…부탁이 뭡니까?”
이것은 어쩌면 도란의 조부이자,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쳤던 오란이 자신에게 남기는 유언이라고, 은현은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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