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17화 (500/730)

〈 517화 〉 517. 동굴 난쟁이(6)

* * *

하루를 꼬박 달려 은현과 릴리가 도착한 것은 울창한 수풀로 가득하여 도저히 레토나가 진입할 수 없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엘프의 마을이 숨겨져 있었던 숲 또한 몹시 광활하여 사람이 조난되면 그대로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복잡함이 가득했지만, 눈앞의 가로막힌 산맥은 발을 들이미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광활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산맥을…타는 건가요?”

악마의 피를 이어받았다고는 하지만, 릴리의 체력은 그저 평범한 인간 여성과 다를 바가 없다.

서큐버스의 능력을 발현시킬 수는 있어도 아직 마력을 이용한 신체 강화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이 과연 이 거대한 산맥을 지나 넘어갈 수가 있을까?

‘…주인님의 도움을 받는다면 안 될 것도 없지만, 그건 싫어.’

릴리는 은현을 떠받들어 모시고 뒤에서 받치는 여자가 되고 싶지, 그의 도움을 받기만 하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레지나에게서 그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그래서 은현에게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 이 산맥을 넘어가기 위한 각오를 다지며 침을 삼키고 있을 때, 긴장하는 릴리를 보는 은현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 산맥을 타고 올라갈 필요는 없어.”

“네? 그러면…. 저흰 어디로 가나요?”

은현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릴리의 물음에 답했다.

“이 아래.”

“아래…? 땅속이요?”

“아까 설명해줬었잖아. 드워프라는 종족은 지하에 땅굴을 파서 그 아래에 터전을 일구어 살아가는 종족이라고.”

“아…?”

릴리는 작게 탄식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은현의 설명을 듣고도 어떻게 하면, 이 땅속 아래의 어딘가에 있을 드워프의 마을에 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움직이자.”

“…네.”

은현은 아직도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릴리와 함께 이동했다.

경사진 산맥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초입 부근을 빙 돌며 이동하는 은현은 무언가를 찾는 듯 보였다.

“괜찮아? 계속 걸을 수 있겠어?”

아직 초입 부근으로 그렇게 길이 거친 것은 아니지만, 메이드의 기다란 치맛자락과 구두로 제약이 있는 릴리에게는 조금 험할지도 모른다.

릴리는 은현의 걱정에 고마움을 느껴 작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주인님.”

조금 험한 길이긴 했지만, 걷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은현의 걱정을 안심시켰다.

릴리의 손을 잡아주고 그녀의 걸음걸이에 보폭을 맞추어 앞장서 이끌어주는 배려를 받고 있는데, 여기서 더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 그래도 넘어지지 않도록 내 손은 꼭 붙잡고 있어.”

“네.”

이윽고 약 한 시간 동안 이동한 뒤, 두 사람은 한 동굴을 발견했다.

“찾았다.”

“저 동굴을 찾고 계셨던 건가요?”

“맞아. 과거에 내가 드워프의 마을을 방문했을 때 사용했던 동굴이기도 하지.”

저 동굴의 깊숙한 곳에는 드워프의 마을이 위치한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주인님이 그곳을 방문하셨던 곳은 300년 전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은현의 뒤를 따라 걸어오던 릴리는 눈앞의 거대한 동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면 강과 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300년 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통로를 유지하고 있을 수가 있을까.

무엇보다 저 동굴은 햇볕이 들지 않아, 멀리서는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동굴에 가깝다.

은현의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머릿속으로 떠오른 의문은 의심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겉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동굴이라면, 당연히 소문을 타고 접한 인간 중 호기심을 가진 누군가가 이 동굴을 찾을지도 모르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일반적으로는 금은보화를 비롯한 재보를 찾기 위해 유적을 탐험하는 모험가들이라면, ‘딱 봐도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 같다.’라는 부류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동굴에 환장할지도 모른다.

은현은 릴리의 손을 맞잡은 채로 그녀와 함께 동굴의 내부로 진입했다.

입구 부근을 비추었던 햇볕이 닿지 않는 안쪽까지 들어가자 내부는 깜깜한 어둠으로 가득해졌다.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고요한 바람 소리와 흙먼지가 자욱한 공기는 자연스레 릴리를 긴장하게 했다.

맞잡고 있는 손을 통해서 그녀의 떨림을 감지한 은현이 아예 그녀의 몸을 안아 위로 들어 올렸다.

“주, 주인님!?”

“여기서는 나한테 맡겨.”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길 주저하고 있던 릴리를 안아 든 은현은 곧바로 동굴 내부의 전역에 자신의 마력을 퍼뜨려 감지를 발동시켰다.

굳이 횃불이나 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어둠이 가득한 동굴의 내부 구조를 구석구석 파악해나갔다.

‘찾았다.’

동굴의 안쪽 더욱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는 길과는 달리, 중간에 설치된 비밀통로의 존재를 발견하자마자 은현은 그곳을 향해 달렸다.

“꺅!?”

갑작스러운 이동으로 놀란 릴리가 짧고 높은 비명과 함께 은현의 목덜미에 팔을 두르며 꽉 껴안음으로써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빠르게 달려나가 비밀통로가 있는 포인트에 도착한 은현은 릴리를 내려놓고 마법을 발동시켰다.

[한 자릿수 마법]

[라이트]

마법을 발동시킨 은현의 검지의 위에 형성된 작은 구체는 겨우 은현과 릴리의 주위를 밝힐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만 조절된 약한 빛을 뿜어냈다.

라이트 마법을 유지하고 있는 검지를 한쪽 벽면에 가져다 대자, 은현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균열을 발견했다.

“릴리. 보여?”

“…네.”

마치 돌로 된 문으로 통로를 막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모양의 균열을 발견하고 릴리가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를 봐.”

“위요? 아….”

검지로 위를 가리켜 라이트 마법에 의해 밝혀진 동굴의 천장 상태를 보고 릴리는 작게 깨달았다.

지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무와 철, 석재들을 조합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버팀목들이 균일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동굴의 내부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다.

“몇백 년이 지나도, 이 동굴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지.”

설령 이 거대한 산맥이 재해로 인해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이 동굴만큼은 무너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설비들은 드워프들의 기술력이 들어간 만큼 300년을 넘게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

“용케 모험가들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네요….”

“애초에 이 넘어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이 산맥을 찾아오는 인간이 드물기도 하고, 특별한 색적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으니까.”

인간들이 사는 지역으로부터 이 산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말을 타고 달려와도 족히 2~3주는 걸린다.

은현과 릴리의 경우에는 가까운 지역에 있는 엘프의 숲에서 출발하였으며 레토나라는 마력 구동형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도착을 할 수 있었지, 순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이 산맥에 온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이 깊숙한 곳에서 제대로 된 내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뛰어난 역량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드워프들의 비밀통로를 발견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 터.

“그리고 이곳은 엘프와 드워프 간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소니까, 엘프들 특유의 결계도 설치되어 있으니, 평범한 인간들이 이 장소를 알아차리는 건 힘들어.”

“…그렇겠네요.”

릴리는 납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마친 은현이 무거운 돌문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입구를 개봉하고 릴리를 먼저 내부로 들여보냈다.

시야가 하나도 확보되지 않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지하로 이어진 돌계단을 천천히 밟으며 내려갔다.

완전히 릴리가 지하 계단 안으로 들어서자, 은현이 뒤따라 지하 계단을 타고 내려오고는 돌문을 다시 입구에 안착시켜 닫았다.

동굴 내부를 활보하여 뛰어다녔을 때처럼, 다시 릴리의 몸을 안아 든 은현은 감지를 통해 다 보이듯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카앙! 쿵!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얼마나 내려왔는지도 전혀 가늠되지 않아, 마음속에 불안감이 조금 있었지만 릴리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걷기를 약 30분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점점 땅과 공기가 떨리는 것이 릴리의 피부에도 전해졌다.

“…철 소리?”

그것은 점점 더 두 사람의 목적지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은현의 품에 안겨서 어두운 돌계단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고 있던 릴리의 시야에 아래쪽에서 희미하게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인님. 빛이…?”

“그래.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

어두워서 은현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릴리는 은현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찾아온 드워프들의 마을에 대한 그리움이 잠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을 두드리는 소리와 쇳내가 가득한 냄새가 뜨거운 열기를 타고 어두운 돌계단 위로 올라왔다.

“…이봐? 누가 오는 것 같은데?”

출구 쪽에서도 돌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는 인기척을 감지한 경비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거래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길쭉귀와의 거래는 3년 뒤야! 침입자다! 당장 경비들 소집해!”

철을 두드리는 굉음으로 가득했던 어수선함이 조금씩 잦아들고, 그곳에 고요한 분위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주인님?”

그 분위기가 자신들에게는 좋은 징조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한 릴리는 불안한 음성으로 자신을 안고 있는 은현에게 물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요?”

“괜찮아.”

은현은 안고 있던 릴리를 조심스레 내려주고 릴리와 함께 출구를 나왔다.

“으….”

어두운 곳에 오래 있었던 만큼 갑작스레 두 사람의 눈을 비추는 빛이 너무 눈에 부셔 릴리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윽고 조금씩 빛이 적응되어 손을 치운 릴리는 자신과 은현에게 향해있는 무수한 무기들에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기이했던 것은 무기들의 위치다.

창과 검, 도끼, 메이스 등, 쇠로 된 무기들은 모조리 아래에서 위를 향해져 있었으며 무기들을 겨누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몹시 짧은 단신에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수염이 덥수룩한 난쟁이들이다.

“이들이 드워프…?”

은현이 말해준 특징들이 그대로 딱 들어맞는 그런 생김새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던 자신의 머릿속 이미지가 완전히 부숴버린 충격은 무기를 겨누고 있는 이 위험한 상황보다도 더욱 릴리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인간?”

“어? 인간이라고?”

“인간이 어떻게 이 통로를 알지?”

갑작스레 등장한 자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드워프들이 동요를 보이기 시작하고 서로 술렁거리며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먼저 족장에게 알려야 하지 않나?”

“일단 이 통로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심문을 해야지!”

걸걸한 목소리들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자, 지금껏 조용히 있던 은현이 손을 들어 올려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을?”

“여기 소개장을 가져왔습니다.”

“소개장이라고…?”

품에 손을 집어넣어 레지나가 써준 소개장을 꺼낸 은현을 드워프들이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웃으며 소개장을 앞으로 건네자, 경비 드워프들 중에서 가장 직책이 높아 보이는 드워프 하나가 대표로 앞으로 나와 은현이 건넨 소개장을 받았다.

소개장의 내용을 읽은 경비 대표 드워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그 길쭉귀들의 은인이라고?”

“뭐? 인간이?”

중얼거림을 들은 주위 드워프들의 반응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 길쭉귀들과 연관이 있는 자라면…. 이 입구를 알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경비 대표 드워프는 두 눈을 위아래로 움직여 은현과 릴리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이 통로를 안다고 하더라도, 단둘이서 이곳을 찾아온 인간들이 범상치 않은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소개장의 내용에는 엘프들의 은인인 인간 둘이 드워프들의 마을을 방문할 것이니, 경계하지 말아 달라는, 단지 그것뿐인 간결한 내용이다.

“그리고…돌아오게 된다면 이걸 보여주라고 들었습니다만.”

이어서 은현은 300년 전, 드워프 마을을 떠날 당시 오란에게서 받았던 망치 문양이 새겨진 금속을 꺼내어 경비 대표 드워프에게 보여주었다.

“이…이것은…!?”

금속과 새겨진 문양을 알아보자마자, 입을 떡하니 벌리며 소개장을 보았을 때보다 더욱 놀라기 시작한 경비 대표 드워프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이봐.”

“예?”

표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옆의 어린 드워프에게 말을 건 경비 대표 드워프는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당장 족장께 이 사실을 알려.”

“어, 그 손님이 왔다고 전달할까요?”

“아니야! 인간 쪽이 아니라! ‘천일야장(?一??)의 표식’이 돌아왔다고! 빨리 족장께 알리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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