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516화 (499/730)

〈 516화 〉 516. 동굴 난쟁이(5)

* * *

은현이 나무 위에 설립된 목조 주택 내부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있던 릴리가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들어온 은현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곧바로 현관으로 나와 품에 안고는 자신의 상체를 꼭 끌어안는 릴리의 행동에 은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침대 위에서와 달리 평상시에는 항상 메이드로서 절도를 지키는 평소의 릴리가 아니다.

애정표현치고는 굉장히 직설적이다.

“무슨 일 있었어?”

“…레지나님께 주인님의 과거 이야기를 들었어요.”

“…….”

순간 릴리의 포옹으로 안겨져 있는 은현의 상체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레지나 답지 않게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생각을 품으면서, 은현은 쓴웃음을 지어 릴리를 안아주었다.

“저도, 저도 많이 노력할게요. 일리아나님과 엘레노아님, 에린에 못지않게…. 주인님의 곁에 있을 수 있도록.”

스스로 단단히 결의를 다짐하는 릴리는 그 감정을 표현하듯 은현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주인님을 혼자 두지 않을게요.”

“…고마워.”

자신을 걱정해주는 릴리의 마음을 느낀 은현은 자못 기쁜 마음을 느꼈다.

◆ ◆ ◆

다음 날 아침.

릴리와 하룻밤을 보내고 은현은 곧바로 여정을 서둘렀다.

“…그렇군요.”

출발의 직전에 두 사람이 들른 곳은 데르킨과 앨리스 부부가 있는 집이었다.

드워프들을 만나고 협력을 구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앞으로의 일정과 계획에 대해 들은 데르킨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어떻게 할지는 네 부부의 선택에 맡길게.”

드워프와의 용무를 마치고 엘프의 숲으로 복귀했을 때, 아르미타스 공작령으로 돌아가려는 은현을 따라올지 말지에 대한 것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레지나의 허락을 받았었다지만, 이 부부와 딸이 있어야 하는 장소는 엘프들의 터전인 이곳이지, 아르미타스 공작령이 아니다.

“아뇨. 저희는 이미 은현님을 따라가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고민도 없이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의사를 밝힌 데르킨과 앨리스를 보며 은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귀향한 이곳에 다시 정착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렇게 쉽고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설령 따라온다는 의사를 밝히더라도,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했다.

“…빠르네.”

“사실…. 여왕님께서도 저에게 부탁을 해오셨습니다.”

“레지나가?”

“만약 인간들과 다시 교류하게 된다면…. 그때 인간과 엘프들 사이의 중재를 맡기고 싶다고요. 그러니…. 바깥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해보라고 말씀하셨지요.”

바깥세상과의 교류를 끊고 몇백 년간 숲속에 틀어박혀 폐쇄적인 생활을 이어갔던 엘프의 오랜 규율을 깨는 것을 각오하고 있는 레지나의 의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의 계기를 만들었던 것은 은현 자신의 부탁이었으니.

“레지나는…. 엘프라는 종족 자체를 드러낼 각오도 하고 있었구나.”

“맞습니다.”

지금의 데르킨처럼 폴리모프라는 마법을 이용하여 외관을 변신시키는 것으로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바깥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엘프 그 자체의 존재를 외부에 드러낼 계획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렇게 된다면 두 종족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은…확실히 제가 적임이겠지요.”

엘프이면서 인간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고, 은현을 따라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있으니, 이러한 의미에서는 데르킨이 최적이다.

“게다가…이미 딸 아이는 바깥의 생활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 한동안 생활하면서 에리스가 더욱 활발해진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데르킨은 굉장히 뿌듯한 듯 보였다.

물론 에리스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엘빈 또한 끼어있다는 것이 거슬리긴 했지만, 굳이 딸의 의사를 막고 싶지는 않았다.

엘프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다양한 이유로 데르킨은 레지나의 의사를 받아들였고 은현을 따라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용무를 마치고 다시 숲을 찾아와주신다면 따라가겠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결정해줘서 고마워.”

은현은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는 데르킨과 앨리스 부부의 집을 나왔다.

“가자. 릴리.”

“네.”

집 밖에서 은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릴리는 곧바로 길을 걸어 숲을 나가는 은현의 뒤를 따라 걸었다.

레토나를 소환하여 운전을 시작한 은현의 옆 조수석에 앉아 은현에게 물었다.

“드워프라는 종족은 어떤 종족인가요?”

“대체로 12~13살 정도 되는 어린아이 정도의 키를 가지고 있고, 뛰어난 근력과 체력을 가지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힘을 쓰는 일에 특화된 종족이지.”

“어린아이의 키…? 그런데 힘을 쓰는 일에 특화되어 있다는 건가요?”

릴리는 머릿속으로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의 이미지로는 무거운 것을 운반하거나 힘을 쓰는 노동의 이미지와 맞물리지 않았다.

보육원을 운영하면서 어린아이들을 돌보아왔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상은 어린아이가 아니야. 키만 작지 거의 수염이 덥수룩해서 근육이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이니까.”

“그, 그런가요….”

은현이 나열한 특징들을 모두 조합하여 머릿속으로 드워프라는 종족에 관한 상상의 이미지를 그려보려 애를 써보았지만, 좀처럼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 다른 쪽으로 생각이 미쳤다.

“그래도 대륙에서 모습을 감추고 전설 속의 이야기로만 존재했다던 엘프가 유일하게 교류를 이어간다니…. 두 종족은 많이 친한가요?”

“아니. 전혀.”

“…네?”

단호하게 대답하는 은현의 말에 릴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은현은 피식 웃으며 과거에 있었던 두 종족 간에 얽힌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했다.

“예전에는 정말로 많은 갈등이 있었어. 엘프들과 드워프는 정착한 터전을 구축하는 방식부터 식습관과 문화가 정말 많이 달랐으니까.”

엘프들은 본래 자연의 터전 자체를 훼손하지 않고 그 위에 터전을 일구어 생활한다.

숲을 형성한 대지와 풀, 나무의 모든 것들이 세계수의 마력을 먹고 자란 것들이며, 그것을 훼손시키는 것은 세계수의 일부를 훼손시키는 것과 같아 엘프들이 떠받드는 세계수를 욕보이는 짓이나 마찬가지.

반면 드워프들의 경우에는 정반대라고 해도 좋다.

나무를 깎고 대지 깊숙한 곳까지 땅굴을 파내어 그 안에 생활 공간과 문명을 구축하는 드워프들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소모하고 활용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두 종족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은 완전히 극과 극이지. 엘프들은 자연을 지켜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고, 드워프들은 자연을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가득한 보고로 대하고 있으니까.”

서로를 보며 아니꼽게 생각하고 있었던 감정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이 싸움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느 날 엘프의 숲에 비상령이 소집되었어.”

원인은 땅속 깊은 곳을 지속해서 파내던 드워프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엘프들의 터전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깊숙이 박혀있던 세계수의 뿌리를 건드려 버린 것이다.

고의가 아니었다지만,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위험 신호를 보내는 세계수를 위협하는 침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두 종족은 어떻게 지금처럼 교류를 이어가게 되었나요?”

“내가 중간에 나서서 중재했고, 그로 인해 엘프와 드워프 간에 협약을 맺었어.”

그것은 은현이 실비아와 함께 엘프의 숲에 들어와 정착하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협약의 내용은 드워프는 세계수의 영역 밖에서 터전을 만들고, 서로의 영역을 확실히 정하고 침범하지 않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엘프 쪽에서는 나무 열매나 짐승의 고기 등 식량의 일부를 제공하고 드워프 쪽에서는 수집한 자원으로 제작한 무기들을 교환하는 식의 교류가 이어졌다.

서로의 문명과 가치관 행동 방식들을 서로에게 설명하여 이해시키고, 무력 충돌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식은땀을 흘리며 중재했던 그때를 회상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 당시 인간이면서도 엘프들 사이에서 꽤 신임을 얻고 있었던 은현이었기 때문에 중재를 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계수를 건드린 드워프들을 상대로 한 종족이 멸족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후, 다크 엘프와 악마들과의 항쟁이 시작되었지.”

본래 엘프들의 싸움 방식은 자신의 체내에 깃들어 있는 마력을 매개로 계약한 정령을 소환하여 싸우는 정령술이 기본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드워프와의 접점이 생기고 협약을 맺은 이후, 엘프들에게 무기의 유용성과 기술을 가르쳐 숲을 지키는 엘븐 가드라는 자위대를 만들어냈다.

오직 정령술만에 의존하는 엘프들이었다면, 다크 엘프와 악마들의 싸움에서 더 큰 피해로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레지나의 어머니였던 당시 선대 엘프 여왕께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드워프들이 제작한 무기와 기술이 그 항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그래서 당시의 엘프 여왕은 엘프와는 다른 드워프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인정해야만 했고, 그 이후로 더욱 많은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했다.

“내가 엘프의 숲을 나온 이후로 향했던 다음 목적지는 엘프들과 교류를 이어나갔던 드워프들의 마을이었어.”

“주인님은…. 대장장이 기술을 그 드워프들에게서 배우신 건가요?”

“맞아. 그때 당시 마을 안에서 어떤 부족을 이끄는 드워프 족장에게 야금술을 배웠어.”

은현은 운전하며 전방을 주시하면서, 머릿속으로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친 드워프의 얼굴을 떠올렸다.

‘편하게 잘 갔을까?’

자신에게 야금술을 비롯한 대장장이 기술을 가르친 드워프가 천수를 누리며 편하게 올라갔을지, 은현은 알 수 없다.

단지 그랬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그의 표정을 헤아린 릴리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좋은 분이셨나요?”

“망치를 다루는 마음가짐이나 그쪽 분야에서는 한없이 좋은 분이었어.”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자신에게 야금술을 가르친 오란이 좋은 드워프였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은현은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대장장이로서의 기술 향상에 대해 누구보다도 목이 마르고 간절했던 드워프였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뭐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어째서 이것을 하지 못하냐는 말부터 달린 손은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거냐고, 또는 손가락이 아까우니 당장 잘라버리라거나 그냥 화로 속에 몸을 던져서 죽으라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분이셨지.”

“그건…. 좋은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요?”

모멸의 감정이 섞여 있는 너무 심한 매도에 릴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거친 언사를 일삼는 자가 은현에게 대장장이의 기술을 전수한 이라는 것도 믿기 어려웠다.

“말했잖아. 망치를 다루는 일 이외의 부분에서는 도저히 좋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고. 독선적이고 거칠며 자기밖에 모르는 드워프였지만, 그만큼 기술의 분야에서는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점에 올라가 있는 분이었지.”

대장장이로서는 일류.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한쪽에 치우쳐진 성향을 가지고 있는 자가 오란이었다.

“꼭…. 그런 분에게 기술을 배우셔야 했었나요?”

못한다면 온갖 모욕과 매도가 섞인 말을 일삼는 거친 자의 아래에서 굳이 기술을 배워야만 했었을까?

릴리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나도 몰라. 오란이 어째서 나에게 야금술을 가르치려고 고집했는지.”

“네? 그건…?”

“내가 오란을 찾아가서 야금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게 아니야. 오란이 나를 선택했던 거지. 오란은…. 내가 드워프의 마을을 떠날 때까지도 나에게 야금술을 가르치길 고집했던 이유를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어.”

오란이 사는 드워프 마을을 떠난 당일, 은현이 오란에게 들었던 작별의 인사는 딱 한 마디였다.

­잘 살아라. 그 정도면 어디 가서 굶어 뒤지지는 않겠지.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면서, 은현은 품속에서 어떠한 물건을 꺼냈다.

“그건…. 뭔가요?”

릴리는 은현의 손에 쥐어져 있는 은색의 동그란 금속을 유심히 관찰했다.

햇빛에 반사되어 밝게 빛나는 은색 금속 중앙에는 망치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물건이었다.

“떠나는 날, 오란이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면서 함께 건넨 거야. 만약 다시 부족을 찾게 된다면, 이 금패를 보여주라고 하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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